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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kim
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51)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남편이 일하던 가구공장에 가서 이름을 대고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먼 시골에서 난민 행색을 하고 나타난 아기 엄마를 보면서 경비원 아저씨는 얼른 남편을 불러줬다. 갑작스럽게 내가 나타나자 남편은 깜짝 놀랐고 많이 당황스러워 했다.

그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장에는 기숙사가 있어 숙식을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공장장한테 사정하여 오늘밤 지샐 수 있는 방 한 칸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여공으로 일하고 싶으니 나를 고용해 주십사 부탁했다.

꽤 호감형인 공장장은 남편이 평소에 성실하고 일도 잘하니 아이만 유치원에 맡길 수 있다면 언제든지 나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방 한 칸을 내주었다.

다음날 아침 자전거 앞에 아이를 태우고 동네 유치원을 찾아가니 마침내 등록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4시에 아이 데리러 와야 한다고 한다. 나는 6시에 일이 끝나므로 그럴 수가 없으니 2시간만 더 데리고 있어 달라고 사정했다. 물론 돈을 더 내고 말이다.

그렇게 유치원 등록비로 120위안을 냈다. 드디어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한 나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연마 작업반에 배치 받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연마지로 가구들의 세밀한 부분들, 기계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연마해야 하는 일인데 일한 개수만큼 돈을 받는다. 그러니 점심시간은 단 5분 정도 밖에 안 된다.

혼자 얼른 먹고 빨리 작업장에 돌아와 일을 시작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려고 물도 적게 마셨다. 작업장은 연마작업으로 인해 나무먼지가 뽀얗게 떠다니고 일 끝나면 코밑에 나무 먼지가 수북이 쌓인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손톱은 연마지에 닳아서 절반이 사라져 버렸고 빨간 속살이 드러나 밤에는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농사짓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비록 하루 15시간 거의 일을 해도 400위안이라는 첫 월급을 받으니 힘든 줄 몰랐다. 나는 될수록 주변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살던 시골과는 완전히 다른 억양과 얼마나 말을 빠르게 하는지 미처 알아듣기도 힘들어 하루 종일 벙어리처럼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중국인들은 나를 바보 취급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뭔가 좀 모자라 보여. 멍청한 것 같아! 말도 제대로 못 해.” 등등.

아들을 맡긴 유치원 선생은 매일 불평을 부렸다. 오후 4시에 아이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내 아들은 혼자 남아서 엄마를 부르면서 울고 또 운다고, 아무리 달래고 설명해도 말이다. 그리고 장난이 너무 심해 자기는 도저히 돌볼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한 달만 좀더 봐주면 안 되겠나, 그래도 안 되면 다음 달에 다시 결정을 해보자고 사정했다.

정말 저녁에 일 끝나고 아이 데리러 유치원에 가면 아들은 온 얼굴에 검댕이와 눈물에 얼룩지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고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왔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장장은 직접 나를 다른 작업장에 옮겨줬다. 가끔 그쪽 일이 급하면 달려가서 도와준 적이 있어 내가 말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마음에 든 공장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새로 옮긴 곳은 가구 완성 직전의 최종단계로 제일 쉽고 깨끗한 환경이었고 일한 개수만큼이 아니라 시간제로 돈을 받는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고급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무나 갈 수도 없고 대부분 소위 인맥이나 백이 있는 사 람들만 그곳에 배치된다. 그런 곳에 갑자기 내가 이직하게 되고 그것도 공장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하니 그곳 작업반 사람들은 질투와 텃세가 장난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 소경이 되어 내 할 일만 하였다. 공장 간부들은 지나가면서 꼭 칭찬 한마디하고 가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것마저 배가 아프고 아니꼬운지 일부러 실수한 척 내가 걸려 넘어지게 만들고 무거운 널판자를 내 발등에 던져 놓기도 했다. 특히 부반장이라는 여자는 사실상 그곳 실세였는데 그녀는 나를 극도로 미워했다.

나는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모두가 그에게 아부 아첨을 하는데 나만은 일부러 잘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대놓고 나를 ‘왕따’ 시켰으며 내 잘못이 아니어도 나에게 뒤집어씌워 욕을 먹게 만들었다. 훗날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컨테이너 차량에 치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비극 적인 소식을 남편이 전해줬는데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4. 제2의 고향

그렇게 거의 2달을 일해왔는데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닥쳐왔다. 유치원에서 더 이상 아들을 못 맡겠단다. 4시에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면 유치원에 데려오지도 말라고 한다. 나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공장장은 몹시 아쉬워하면서 꼭 다시 돌아오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그렇게 공장 숙소에서 나올 수밖에 없던 나는 다시 직업을 얻으러 거리에 나섰다. 매일 아침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동서남북 사방 30km 거리를 돌아다니며 유치원이나 노동시간이 짧은 직장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타지방에서 온 아이엄마는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학교를 갓 졸업한 18살~20대 청년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나 같은 처지의 아기 엄마를 골치 아프게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이때다 싶어 나를 나무랐다.

“그것 봐. 아이 때문에 일할 수 없다고 했잖아. 내 말을 왜 안 들어?”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러 넘기며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한 30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 도착한 나는 그곳이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일단 이 동네를 파악해 보자고 결심하고 하루 7위안씩 내고 아들과 함께 화장실보다 조금 큰 여관방에 들었다. 여관에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지만 월셋집을 찾을 때까지 그렇게 잘 수밖에 없다.

그 지역은 해외 투자 유치로 인해 한국, 일본, 대만, 독일 회사들이 줄지어 들어선 공업단지가 있었고 특히 한국 액세서리 회사들이 한 집 건너 있을 정도였다. 나는 여공을 구한다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들을 가지고 공장 정문마다 들어가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고 했지만 아이가 있는 나를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공장들은 작업시간이 밤 9시, 10시까지는 기본 이었고 사무직이 아니면 오후 5시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거의 6일째 되던 날,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나는 좌절감을 느끼며 우울한 마음으로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그런데 길옆에 어떤 점쟁이가 1위안에 손금을 봐준다는 간판을 걸고 앉아 있었다. 점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왠지 거짓말 점쟁이 같았지만 1위안이라는 말에 끌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앞에 앉았다.

“뭘 물어보려고 왔소?”

“다른 건 필요 없고 일자리 찾을 수 있을지 봐주세요. 난 꼭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내 얼굴과 손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는 말했다.

“흠~ 오늘 오후쯤이면 일자리 구하겠는데? 아주 이상적은 아니지만 꽤 맘에 드는 직업을 찾게 될 것이요.”

“오늘 오후에요? 지금 오후 2시인데 방금 거절당하고 왔는데 이젠 물어볼 곳도 없고 그것도 오늘 오후에 직장을 구한다니 무슨 말인지.”

나는 1위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것도 봐달라고 했다.

“아줌마는 아들이 둘인데…. 꼭 아들이 둘인데 이 아이 말고 집에 아들이 한 명 더 있소? 하긴 정부에서 아이 둘을 못 낳게 하니, 아들들이 나중에 효자가 되겠네요. 아들들 잘 키우시오. 아들 덕에 노년에 팔자가 좋아지리다.”

아들이 둘이냐는 말에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하지만 그에게 첫아들을 잃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갑자기 자석처럼 그에게 끌렸다.

“아들 둘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언제 잘살게 될지 봐주세요.”

“더 이상 알고 싶으면 5위안을 더 내시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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