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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블로그 뉴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

  ywlee

  ▲’오징어 게임' 출연자 오일남(오영수)과 성기훈(이정재)    넷플릭스(Netflix)의 서바이벌 시리즈 ‘오징어 게임(Squid Game)’을 흥미있게 보았다. 시청 소감은  한마디로 온동네 소문날 만하다는 것이다.    게임 시리즈 중 나는 3단계 ‘줄다리기’와 4단계 ‘구슬치기’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으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직전 게임인 줄다리기에서 서로 협력해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참가자들은 당연히 다음번에도 각자가 함께 힘을 합하고 싶은 사람을 짝으로 고르게 돼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고른 짝이 협력과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돌변한 것이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무자비하고 처절하게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팀이 된 부부는 차라리 희극이다. 기막힌 역설이다.      각자의 구슬을 갖고 짝과 시합을 벌여 30분 안에 상대의 구슬 20개를 전부 따면 승자가 되고 지는 쪽은 즉석에서 총살이다. 여기서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파키스탄 출신의 불법체류자 알리를 속여먹는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생’ 상우, 아직 지켜야 할 가족이 남아 있는 새벽을 위해 고의로 져주는 지영…    압권은 기훈과 일남이다. 곧 죽을 노인이라고 버리지 않고 끝까지 배려하며 함께 팀을 이루어준 기훈에게 감동한 일남. 네것 내것 없는 ‘깐부’가 되자며 한팀이 된 그를 속여 구슬을 빼앗는 기훈. 처음부터 기훈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냥 속아줬던 일남…    이런 상황에서 나같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살아남느냐 총살이냐의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양심이란 것이 과연 작동될 수 있을까. 야비하고 잔인한 실험이다.         0…‘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은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오징어’에 열광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에 공감해서일까.      먼저, 외국인들에겐 이색적이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다양한 게임, 한국 드라마 특유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드러나는 휴머니즘,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높이는 현실감 등이 흥행 요소로 작용했다는 게 외신 분석이다.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과 계단 등 시각적 디자인이 살벌한 데스게임(Death Game)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그것도 아이들이 하는 게임으로 목숨을 거는 싸움을 하는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아이러니와 충격을 던졌다.    드라마는 극한경쟁에 몰린 현대인의 상황을 어린시절 추억의 놀이와 결부시켜 잔혹한 죽음의 게임으로 탄생시켰다. 여기엔 계급·계층의 단절과 갈등에 대한 비판의식이 들어 있다. 2년 전 세계를 휩쓴 ‘기생충'처럼 빈부격차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0…게임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회에서 낙오된 자들이다. 이는 빚 없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감정 이입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게임에 진 사람이 죽음을 맞는 규칙은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실패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에 심각한 파괴를 겪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극한상황에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이 탈북여성, 병든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민다.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선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연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에서 ‘징검다리 게임’이 작품의 주제와 가장 닿아있는 상징적인  게임이라고 말한다. 즉 먼저 가는 사람이 길을 터줘야 뒷사람이 갈 수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보통사람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기훈(이정재)도 남의 도움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다리를  통과한다.    게임에서 살아남은 기훈과 상우(박해수)가 말다툼을 벌인다. 상우는 자신이 죽도록 노력해서 이겼다고 하지만, 기훈은 ‘죽은 유리공 덕에 다리 끝까지 살아서 간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루저’의 헌신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이 사회의 승자는 결국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 패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루저들의 얘기다.    0…황 감독이 ‘오징어’를 처음 구상하고 각본을 쓴 건 13년 전. 그가 경제적으로 힘들어 거의 만화방에서 살았던 때였다. 당시 그가 ‘오징어’를 영화로 만들어보려 했을 때 어떤 제작자도 나서지 않았다. 낯설고 난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황 감독은 말한다. “10여 년 만에, 이 말도 안 되는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이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 현실감 있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 것이 차라리 서글프고 슬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부의 불균형이 더 심해졌다. 금융·부동산 자산의 가치가 뛰어오르면서 가진 자들은 훨씬 더 많이 갖게 됐고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사람들은 삶이 더 고단하고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며 더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상이 됐다. 오징어 게임에 더 공감하기 쉬운 세상이 된 것이다.   0…황 감독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오징어 게임’ 속 게임장보다 더 못한 곳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역설적 장치다. 게임장 내에는 꼼수와 반칙을 응징하는 ‘형식적 평등’이라도 있지만 이 세상에선 각종 편법과 찬스로 얻는 기회와 이익이 처벌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을 꼬집고 싶었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7.끝)

  youngho2017

  (지난 호에 이어)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더욱이 영국군은 애당초 아랍국의 독립 따위는 허용할 마음이 없었다. 18세기 중반~19세기 초반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주요 동력원이었던 석탄을 대체할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 석유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고 아랍 민족의 독립을 논의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자 열강국들은 아랍의 분할통치 음모를 기도하는데…. 급기야 로렌스는 대령으로 진급되면서 곧바로 제대 명령을 받는다.    파이살이 말한다. "늙은이들이 협상해서 이제 전쟁을 끝냈소. 젊은이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용기와 희망이 느껴지고 생기가 있소. 그러나 늙은이들은 평화를 원하지. 평화 속에는 불신과 경계라는 늙은이들의 악덕이 숨어 있다오. 피할 수 없지." 그리고 물러나가는 로렌스의 등 뒤에 대고 "자네에게 진 신세는 이루 말로 다 못한다."고 말하는 파이살. 그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파이살이 '아랍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는 제목으로 로렌스의 사진과 함께 톱기사로 난 시카고 데일리 신문을 알렌비 장군과 드라이든 자문관에게 내민다. 그 때 알렌비가 "영국장교에 의한 해방이었다."고 강조하자 파이살 왕자는 "그럼 로렌스는 다용도 칼이었군. 이젠 우리 모두에게 필요없게 됐군요."라며 "당신은 평범한 장군에 불과하오. 난 왕위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오."하고 위엄있게 나무란다. [註: 파이살 왕자는 아랍 수니파로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을 지냈다. 이 이면에는 '여성판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불리는 거트루드 벨(Gertrude Margaret Lowthian Bell, 1868~1926)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고학자, 탐험가이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최초의 여성 정보장교로 카이로에 근무했던 벨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영국을 도와 오스만 터키 제국과 싸웠던 파이살을 이라크의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라크를 사랑하고 영원한 고향 바그다드에 묻힌 여인' 벨은 새로 탄생한 이라크를 위한 헌법을 만들고 이라크와 요르단의 국경선을 획정(劃定)하는 데 일조하면서 왕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가 이라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타계하기 한 달 전인 1926년 6월16일 개관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이다. 평생을 미혼으로 산 거트루드 벨을 소재로 한 영화가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79) 감독, 니콜 키드만 주연의 '사막의 여왕(Queen of the Desert·2015)'이다. 이 타이틀은 벨의 별명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이라크 왕정은 1958년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된 이래로 지금은 아랍 수니, 아랍 시아, 쿠르드 세 파로 나뉘어 혼란을 겪고 있다. 80여 년 동안 권좌를 무력으로 지키다 아랍 시아에 권력을 빼앗긴 아랍 수니가 IS(이슬람 국가) 극단주의자로 되어버린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로렌스는 아랍인들과 동화되어 항상 아랍인 의상을 입고 진정으로 아랍인들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본래 영국 정부의 의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적국 오스만 터키 제국의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해 그들의 지배를 받고있던 아랍 민족들을 선동해 '사막의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정치·외교적 필요성이 존재했을 뿐 약소국과 약소민족에 대한 배려는 물론 언감생심 독립시켜준다는 약속을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음이 드러난다.    또 한편으로 아랍민족은 물론 로렌스의 신념(信念)에 의한 인간적인 노력이, 힘과 권력이 정의인 정치적 게임에 의해 그저 전쟁의 소모품이자 장기판의 말로 이용 당해 토사구팽(兎死狗烹) 되는 처지가 왠지 서글프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무릇 개척자, 선구자의 삶은 따로 있고, 그것을 향유(享有)하는 사람은 뒤에 따로 있는 법이다!    이들의 대화를 부동자세로 듣고 있던 브라이튼 대령이 울컥하며 급히 밖으로 뛰쳐 나간다. 눈물을 글썽이며 로렌스를 찾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다.    한편 기가 죽은 로렌스를 태운 지프차 운전병이 "고향으로 돌아가시나 보죠?"하고 묻지만 대답을 않는 로렌스. 그의 차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이는 오토바이 사고로 그가 죽을 것임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첫 시작 장면과 연결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엄청난 제작비와 명배우들의 명연기, 웅장한 연출이 돋보이는 대작이지만,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이 혼재해 있으며, 그 내용에 깔려있는 은근한 서구 문명 및 백인 우월주의는 개봉 당시부터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이해하면 전혀 반대이지 싶다.    요컨대 영국의 모험가이자 지식인 군인이었던 로렌스의 일대기를 통해 사막이라는 대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식민제국주의의 전쟁과 정치적 배신이 얼마나 치졸(稚拙)한 것이며, 인류의 정의와 세계관이라는 잣대로 보면 인간의 국지적(局地的)이고 단견적(短見的)인 탐욕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 명작으로 기억된다.    T. E. 로렌스의 오토바이 사고가 난 지점인 영국 돌셋(Dorset) 군 웨어럼(Wareham) 읍의 Clouds Hill 길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가 묻힌 Moreton 묘지에는 시편 27장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Dominus illuminatio mea)"라고 새긴 묘비가 있다. 이는 그가 졸업한 옥스퍼드 대학의 모토이기도 하다.    실제 T. E. 로렌스가 타던 오토바이는 최고시속 160㎞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롤스 로이스'로 불리는 '브라우 슈피리어 SS100' 모델로 런던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고가 난 지 6일 후인 1935년 5월19일에 아깝게도 46세로 사망했는데 그 원인은 치명적인 뇌손상이었다. 그로부터 헬멧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사막 장면은 요르단의 와디 럼 및 모로코에서, 사령부 등 건물은 주로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됐다. [註: '와디(Wadi)'는 비가 오는 우기에 물이 흐르는 곳을, '럼(Rum)'은 물이 모여 넘치는 곳을 뜻하는데, 와디럼 사막의 샘물 이름이 '로렌스의 샘'이라고 불린다.]    영국 배우 피터 오툴(Peter O'Toole, 1932~2013)이 출연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로드 짐(1965)'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 때 봐서였는지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후로 그의 열렬팬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백만장자의 사랑(1966)' '굿바이, 미스터 칩스(1969)' '라만차 돈키호테(1972)' '칼리굴라(1979)' '마지막 황제(1987)' 등을 봤지만 위의 두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피터 오툴은 아카데미상에 8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끝)   ▲ 전후의 터키와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통치한다는 밀약(密約)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은 드라이든 아랍 군사자문관(클로드 레인즈)   ▲ 로렌스는 아랍인이라는 동기보다는 현상금이 걸린 죄수 등 돈에 눈먼 사람들로 군대를 만들어 다마스쿠스를 공격한다.   ▲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터키군에 의한 타파스 마을 학살 현장을 목격하고 치를 떠는 아우다(앤서니 퀸), 로렌스와 알리(오마 샤리프).   ▲ 타파스에서 '죄수는 없다!'며 터키군에게 돌진하다 죽은 부하의 분루를 삼키며 이성을 잃고 모조리 학살해 버린 로렌스의 모습. '이에는 이로!'라는 사막의 율법을 따른 것이다.   ▲ 뒤늦게 도착한 벤틀리 기자는 "당신의 역겨운 모습을 찍어 빌어먹을 신문에 내겠다."며 로렌스의 이 모습을 찍는다.   ▲ 아우다(앤서니 퀸)가 다시 돌아가자고 권하지만 "다시는 사막을 안 보겠다"고 말하는 로렌스.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했지만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Hwanghyunsoo

  “희택아! 뭐 하니?” “왜?” “아니, 별일 없으면 같이 부여로 바람이나 쐬러 갈까 해서…” “좋지!” 이렇게 통화를 끝내고 우리는 다음날 아침, 상봉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 여행은 첫 직장에서 얻은 첫 휴가였다. 함께 여행한 친구는 같이 군대 갔다 와서 함께 복학한 절친인데, 우리는 원래 서로 사는 곳이 달라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부천 토박이고 나는 신당동에 살아서 강의실에서나 눈인사할 정도였는데, 군대 훈련소에서 만나면서부터 친하게 된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다고 하면 동창들이 모여 송별회를 해줬다. 나도 그 친구의 송별 자리에 갔다. “희택아, 너는 언제 군대 가냐?” “나, 5월 6일에 가지” “그래, 나는 7월 1일 가는데…” “그러면 잘하면 훈련소에서 만나겠네” “그럼, 너 네 집 주소 알려줘. 내가 훈련소에서 편지할게”하고 군대에 입대한다. 그 친구는 해병대, 나는 해군에 지원했는데, 당시는 해군, 해병이 함께 진해 경화동에서 훈련 받았던 시절이다.  군대 간 친구에게서 “입소한 날 저녁에 식사 끝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있어. 그때 화장실로 내가 찾아 갈게”라고 편지가 왔다. 훈련소 첫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약속대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갔는데, 먼저 온 20여 명이 모여 볼 일도 보고 몰래 담배 피우느라 북새통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 노~무 새끼들 전체~, 꼰아~ 박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있던 훈련병들은 얼떨결에 모두 그 자리에서 ‘원산폭격’을 했다. 훈련소 내에서는 금연이었기에 조교들이 가끔 순찰을 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모두들 조교한테 들켰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황현수~, 황현수! 있나?” ‘뭔 일이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네’. 나는 머리를 박은 채로 “네. 접니다” 하고 대답했다. “일어나, 이리 와 봐” 해서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렇게 나를 부르는 사람은 바로 희택이었다. 그는 8주간의 훈련으로 민간인에서 깡다구 해병으로 변해 있었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눈은 빤짝였고 온 몸이 짙은 구릿빛으로 한눈에 봐도 강인해 보여 솔직히 친구지만 조금 무서웠다. 순간 속으로 ‘내가 반말을 해도 되나?’ 할 정도였다. 그는 나를 화장실 뒤편으로 데려가더니 PX에서 사 온 빵과 소시지, 담배를 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10여분 동안, 지린내를 맡아가며 ‘평생 전설’이 될 이야기를 나눈다. 주 대화 내용은 2개월 선임의 훈련소 요령과 군대에서 잘 지내는 법 등의 ‘족집게’ 과외였다. 다시 여행 이야기다. 우리는 부여까지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그 훈련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갔다. 그러다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여는 왜, 가려고 해?” 나는 “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 군대 있을 때 회식하면 술 먹고 ‘두만강’, ‘낙동강’ ‘백마강’ 노래를 메들리로 불렀잖아, 그런데 두만강은 북한이어서 못 가구, 낙동강은 군대 있을 때 진해에서 가 봤고, 백마강 어디에 있는지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 군대에서는 이런 뽕짝 메들리를 자주 불렀는데, 노래 반주기가 없던 시절이어도 그때는 가사를 어찌 그리 잘 외웠는지 모르겠다. 젓가락 두 개 만 있으면 장단을 맞춰가며 강 노래가 끝없이 이어졌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거쳐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를 지나면 ‘꿈꾸는 백마강’이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데/ 그 누구가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그때는 술 한잔하고 무심코 부른 ‘백마강’이지만, 이 노래에는 서글픈 사연이 몇 담겨 있다. 낙화암에 얽힌 의자왕과 삼천 궁녀의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1940년, 일제의 강점기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백제의 멸망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의 내용이 일제하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며 금지곡이 된다. 또 하나는 작사가 조명암에 대한 것이다. 조명암은 1930년대부터 시와 극작 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1948년 월북하여 남한에서는 금기의 인물이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그는 ‘꿈꾸는 백마강’뿐만 아니라 ‘알뜰한 당신’ ‘바다의 교향시’ ‘세상은 요지경’ ‘무정 천리’ ‘목포는 항구다’ ‘선창’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알려진 노래를 작곡한 작가인데 말이다.  특히 조명암은 북한에서 교육문화성 부수상, 평양가무단 단장을 역임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 1996년 전까지도 그의 이름은 거론하기 거북했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작사가로 등재되었다가, 2005년경 남한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딸이 저작자를 바로잡고 권리를 회복한다.  부여에 도착한 우리는 백마강을 보러 부소산으로 향했다. 부소산성 입구를 지나 산성에 들어서니 천 년의 아픔을 딛고 있는 부소산이 차분하게 자리하고 있다. 8월 중순이어서인지 사람들은 없고 적막함까지 들었다. 숲 속 길을 따라 40여분을 들어갔을까, 자그마한 절과 누각을 지나 부소산 정상(?)에 오르니 백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에게, 저게 백마강이야’ 할 정도로 강 폭이 좁았고 물은 전날 비가 와서인지 탁해 보였고 모래사장이 넓어 실망했다. 그곳 누각에서 가져간 간식을 먹으며 한 동안 게으름을 피우다가 낙화암으로 향했다.     안내판에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20년(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백제여인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적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낙화암이라 부르며 백제 여성의 절개와 고귀한 충렬을 기리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낙화암 암벽은 고작 60m의 높이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절벽 바로 아래는 큰 바위로 되어 있어 뛰어내려도 강물이 아니다. ‘삼천 명의 궁녀가 빠졌다’고 하기에는 좀 의심이 갔지만, 역사 학자도 아니면서 공연한 시비를 걸 이유가 없었기에 백제의 아픈 역사를 잠시 되새기다가 고란사로 내려갔다. 고란사 약수터 고란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목을 축였다. 그날 밤, 우리는 부소산성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서 조 껍질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며, 백제 ‘계백장군’과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군대 이야기로 거품을 물었다. “소정방이 강 속에 살고 있는 용을 잡기 위해 미끼로 백말의 머리를 사용했다고 해서 백마강이 됐다는 전설이 있어…” “야, 백마강이 저렇게 얕은데 무슨 용이 있냐, 장어나 잡았겠지?” 밑도 끝도 없는 취기 오른 우리의 대화는 새벽녘이 돼서야 끝났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35)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그러면 지성은 어디에서 오나. 지성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독서, 건전한 신앙생활, 대인 관계 등에서 배운다. 지성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 문제는 의지다. 좋은 일, 남을 위한 일,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그 의지는 어디에서 오나. 의지는 하고자 하는 행동의 고귀함을 믿을 때 생긴다. 특히 자기보다 더 중요하고 자기보다 큰 존재 (가족, 교회, 동포 공동체, 민족, 국가, 인류)를 위한 행동이 고귀하다고 믿을 때 의지가 생긴다. 모든 인간은 가족, 동포 단체, 교회, 국가, 민족, 인류라는 공동체의 하나의 부분이다. 동물도 공동체를 형성 한다. 동물도 공동체 안에서 주어진 기능을 다 할 때 인정 받는다. 하물며 동물보다 우수한 인간의 가치는 공동체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수행 할 때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의지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결단을 할 때 생기는 심리적 성숙화다. 문제는 누가 이러한 의지를 가르칠 수 있느냐다. 학교에서? 가장에서?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에서? 근본적으로 가정교육에서 의지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곳에서 의지를 키울 수 있다. 교육요점은 공동체를 위한 행동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Levesque 신부는 이렇게 가르쳤다. “여러분은 경제학, 사회학, 노사관계학, 사회복지 서비스학 등을 배운다. 이러한 학문을 통해 퀘벡경제가 왜 미개발되었는지, 세대간의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노사 관계를 어떻게 개선 해야 하는지, 서민의 비참한 빈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러나 배우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 지식은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지식은 퀘벡 사회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즉 사회 과학은 사회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 과학자의 의무는 앞장서서 사회발전에 헌신 하는 것이다.” Levesque, 신부의 이러한 철학적 가르침은 많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게 했다. P.E. Trudeau, Jean Chretien, Pauline Marois, Jean Marchand, Guy Rocher, Rene Levesque 등 강력한 지도자를 배출시켰다. 이들의 공동 특징이 있다면 지성을 구비한 행동의 사람(Wise Men of Actions) 들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시회 철학가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필자의 세계관 및 인생관도 이 신부님의 가르침에 입각한다. 필자도 오직 행동으로만 진리의 길을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7.6.2 자성인의 거절  George Henri Levesque 신부는 조용한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였다. 실제로 지성인, 예술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 ‘거절’ 이라는 선언을 했다. 그 내용은 필자가 벌써 밝힌바 있으나 근본적으로 퀘벡인의 비참한 미개발 상태는 퀘벡인이 비겁하고 만사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퀘벡인은 오랫동안 성당의 억압 속에서 살다보니 공포 속에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심리적 여건하에서 두 분의 신부님이 성당반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두 분 다 Levesque 신부님의 제자고 또 필자의 스승이다. P. O’Neil 신부 및 Gerard Dion 신부는 공개적으로 성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들은 카톨릭 성당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고 설득했다. 변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이해 못한다는 것이 성당위기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종교 개혁에 관한 토의를 요약하자. 종교 개혁을 통해 퀘벡 사회는 242년이라는 긴 세월의 교회 독선, 독재 및 억압에서 해방 되었다. 이로 인해 퀘벡인은 전통적 가족관계, 성(sex) 관계, 믿음생활, 결혼과 이혼, 신부의 사회 위치 등에 대한 회의감을 강력하게 느끼게 되었다. 전통적 가치관에서 해방되면서 개개인의 행복이 인간존재 이유(raison d’etre)라는 것을 파악했다. 이러한 가치관 전환은 개개인에게 자기에 대한 자존심,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것이 또한 창의력으로 연계 되었다. 즉 종교개혁은 퀘벡 사회의 현대화, 민주화,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여름밤

  leed2017

   대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나는 같은 반 친구 L과 함께 내 고향집 역동에 갔습니다. 여름밤이 되어 방안보다는 방밖이 더 시원할 것 같아서 사랑마루로 잠자리를 옮겨서 아버지, L, 나 이렇게 셋이서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당시 나는 미스정이라는 같은 과 2년 후배 여학생에 홀려 어떻게 하든지 이 소녀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L에게 일이 무사하게 잘 되도록 아버님께 말해달라는 부탁도 해두었습니다. 말하자면 뇌물을 쓴 것이지요. 행여나 아버님이 연애결혼에 반대하시면 어떡하나 그야말로 물샐 틈 없는 준비를 해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말 잘하고 붙임성 있는 L은 아버님과 금방 가까워졌는데 L과 아버님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잠이 든 척하고 두사람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L의 주도로 요새는 남녀도 남남처럼 평생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다는 것을 열렬히 주장하였지요. 아버님께서는 L의 화려한 말솜씨에 자기가 밀린다 싶었는지 L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계시다가 L의 열변이 끝나자 “니(너) 다했나?” 하고 확인 질문을 하시더니 “이 사람아, 남녀관계란 니(너의) 말처럼 평생 계속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노 그런데 남자 마음이란 본래 더러운 것이지, 그렇게 깨끗한 것이 못된단 말이여. 처음에 깨끗한 마음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시간이 가면 더러운 심보와 욕심이 발동해서 기어코 여자를 건드리고 싶은 엉큼한 마음이 생기는거여… 내 하나 물어보자. 동렬이 애인이라카는 가(그 아이) 니도 잘 알제? 그 아는 괜찮은 안(아이)가?” 하고 갑자기 내 연인이요 천사, 당시의 미스 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아버지는 나이도 어린 아들친구와 남녀애정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사귄 지가 1년도 채 안 되는, 앞으로 자기 며느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더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지금부터 꼭 57년 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부포동 역동 어느 여름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누워서 이야기 하다가 잠들면 사랑마루는 헐렸다가 다시 들어섰습니다. 아버님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L과 나는 아직도 바다 밖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아버님과 L의 이야기에 나오는 미스정은 나의 본처과 되어 아이 둘을 낳고 우리 부부는 4살박이 소꿉장난 하듯이 서로 킬킬거리며 웃고 지나다가도 별일 아닌 것 가지고 금새 토라지는 생활을 되풀이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13살에 16살이 된 어머니에게 장가를 가셨습니다. 첫날밤에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의 대답이 “나는 이 세상에서 글 읽은 것(공부하는 것)이 제일 싫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님의 고함으로 역동집 기왓장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두 분이 맹렬하게 다투시던 것을 보고 겁이 났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보기 드문 애처가이셨습니다. 아버님은 L에게 자기는 13살에 신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결혼식 당일 만나서 오늘까지 살아왔다면서 신부도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배필을 이루고 살아도 살면 또 정(情)이라는게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 말씀을 따르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정이 새싹 나듯 나고 사랑이 생겨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말도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지요. 서양 사람들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지만 동양에서는 사랑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놓는 것은 어딘지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버니 같이 13살에 배필을 만나 제2차 성(性) 발달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를 낳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쌍고동 울어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가소 잘있소 눈물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씻으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를 마세요    위는 1937년 2월 박영호가 노랫말을 쓰고 김송규(김해송)가 멜로디를 달고 장세정이 취입한 ‘연락선은 떠난다”의 노랫말입니다. ‘아이 울지를 마세요’라는 구절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음반판매가 금지되었답니다.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부두의 이별같이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랑한다는 말에 최후의 진술처럼 술술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임종석에 누운 환자를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척이나 장엄하고 절박한 순간, 이때 방문자가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이 쓰는 말 중에서 사랑이란 말처럼 우리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언제, 어디서나 들어보고 싶어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역동 고가(古家) 사랑마루에 누워서 세 사람이 이야기하다가 잠들던 그 청순 무구한 여름밤은 내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019. 5)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내집 장만의 기쁨 뒤에 찾아오는 불청객…주택소유 부담 30년 만에 최악

  budongsancanada

  캐나다인 2분기 소득대비 집 소유 비용 껑충…토론토 59.1%, 밴쿠버 무려 63.5%   로얄은행(RBC) 자료    캐나다의 주택시장이 강한 수요에도 공급부족으로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어렵게 실현한 내집 장만의 기쁨 뒤에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주택소유 비용부담이 30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토론토 등 일부 지역에선 집을 사고 나면 생활비가 없어 고생해야 한다.  최근 로얄은행(RBC)이 발표한 올해 2분기 국내 중위 가계소득에서 집 소유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45.3%로 2.7% 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4번째 연속 상승으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정부의 재정지원에 따라 가계소득이 늘었어도 집값이 많이 뛰었기 때문이다.  캐나다부동산협회(CREA)에 따르면 전국 평균 주택가격은 지난 8월에 66만3,500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13.3% 올랐다.  특히 단독주택의 경우 소유비용을 충당하는 데 필요한 소득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 상승세도 가파르다.  RBC는 “더 큰 생활공간의 부동산에 대한 수요 증가가 팬데믹 기간 동안 단독주택 가격을 상승시킨 주요인이다. 콘도 구입은 여전히 부담이 훨씬 적은 수단이다”고 밝혔다.  RBC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 콘도의 평균 소유비용 비율은 32.6%로 일반주택보다 훨씬 낮았다.  지역별로는 토론토의 주택 소유비용이 2분기에 59.1%로 4.1% 포인트 오르면서 국내 도시 중 2위를 차지했다. 가장 높은 지역은 밴쿠버로 가계소득의 무려 63.5%(3.2%P 상승)를 부담해야 했다. 이어 빅토리아(48%), 오타와(38.5%), 몬트리올(38.4%) 순으로 높았다.  반면 캘거리, 에드먼턴, 레지나, 사스카툰, 위니펙, 핼리팩스, 세인트존스 등은 장기 평균치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한편, RBC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올해 집값에 큰 압박으로 작용하지만 향후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집값 강세는 불가피해도 그 상승 속도가 둔화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동업(Partnership)(3)

  JOHNCHO

  (지난 호에 이어)  물론 동업을 하나의 재미로만 하란 말은 아니지만 별 흥미도 없어지고 돈은 만들 수는 있겠지만 사람은 얻지 못한다는 것이니 동업에 꼭 의미(Good Deed)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주엔 캐나다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오랜 친구가 토론토를 방문하여 오랜만에 이민 초기 젊었을 때 어울리던 친구들이 함께 모일 수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의 아내가 고약한 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아오르며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지체하게 되었다.    어느 특정인이 불쌍하고 안되어서 보다는 그저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불쌍하고 우리 인간 모두가 누구에겐가 속고 사는 것만 같아서 속이 상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며, 또한 그분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욱 참담해진다는 말이다.    아무리 미래엔 과학과 의술이 발달되어 앞으로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는 말들은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신화 같은 소리로만 들리고, 과연 그런 날들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모두가 이민생활이 50년을 바라보는 친구들인데 낯선 나라에 와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을 하니 누가 무엇을 얼마나 누리거나 가진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그저 건강한 몸으로 여기저기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또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최고의 삶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번 만남은 나이가 70 중반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함께 모여서 몇 십년  전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고, 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이 들면서 주위에 아직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어찌 보면 동업의 최고 장점은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일 수도 있는데 필자의 경험과 의견은 될 수 있으면 동업자들이 직업이나 사업에서 여러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동업이란 꼭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되어선 별 의미도 또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우리가 이 나이에 아님 어떤 나이건 세계적인 부호가 되려는 꿈이 나의 인생 목표가 아닌 이상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을 좀 더 행복하고 외로운 삶이 되지 않게 성공적으로 리드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해야 되는 동업이란 말이다.    예를 들면 바람직한 동업자들이란 의사, 교수, 직장인, 정치가, 과학자, 기술자, 자영업자, 부동산 중개업자, 일반 노동인, 공무원 등 하다못해 핸디맨까지 도둑놈 빼놓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동업은 안될 수가 없는 것이며,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모두가 사는데 언젠가는 필요하게 되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개인들의 인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우리 자신 모두가 단점 투성이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웬만한 교양과 양심을 지닌 사람이면 되는 것이,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경영하는 사무실도 그렇지만 동업자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독선과 욕심을 부리며 비양심적인 행동과 본인만 잘난 체를 계속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다른  직원들에게나 또는 같이 함께 하는 동업자들로 인해 왕따를 당하게 되고 결국은 본인 자신이 자연도태(自然淘汰)를 하기 때문에 그것도 동업을 막는 별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어색함과 익숙함"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는데 사람이 사기나 또는 도둑질, 살인, 불륜 등을 포함해서 죄가 되는 행동을 처음 할 때는 어색하기도 하고 겁도 나지만 비슷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면 어색함에서 곧 익숙함으로 변하기 때문에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하며, 나중엔 죄의식 조차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씀은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며, 다시 한번 나의 삶을 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씀이며, 남의 눈에 티만 보고 살았지 나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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