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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TOPIC
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1-09-15
토론토시 금주말까지 대대적 백신 캠페인

*<토론토시 대대적 백신 캠페인>TTC 정거장, 공원, 쇼핑몰, 학교, 심지어 대중목욕탕까지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백신 접종소 운영…금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백신 2차 접종 안마친 31만 4천명 집중 타깃…현재 접종률 79%를 90%로 끌어올릴 방침…https://www.cp24.com/news/toronto-plans-vaccine-clinics-for-ttc-stations-street-corners-parks-and-bathhouse-as-part-of-weekend-push-1.5586497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캐나다 8월 물가 상승률 4.1%. 인플레이션 2003년 3월 이래 18년 만에 최고치…휘발유, 주택 가격 급등이 주요인…개스값 전년대비 32.5% 폭등, 집값도 14.3% 상승…https://www.cbc.ca/news/business/inflation-august-1.6176383   *<백신 안맞으면 해고될 수도>토론토교육청(TDSB) 산하 모든 교사, 교직원, 스쿨버스 운전사 등 11월 1일까지 백신 2차 접종 마쳐야…거부할 경우 코로나 음성확인서 제출…건강상 문제점, 종교적 사유 등 일부 예외 인정…현재 교직원 83%가 접종 완료…https://www.cp24.com/news/toronto-district-school-board-reveals-details-of-new-mandatory-vaccine-policy-1.5585807   *<오늘의 코로나>온타리오 신규확진자 593명, 사망 5명, 양성률 2.5%. 확진자중 백신 미접종 또는 1차만, 불명자 등 447명(75%), 2차 접종완료 146명…https://www.cp24.com/news/ont-reports-593-new-covid-19-cases-and-5-more-deaths-highest-number-of-tests-processed-since-early-june-1.558618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1-09-10
광역토론토(GTA) 연방총선 투표소 절반 이상 줄어

*<총선 투표소 절반으로>9.20 연방총선 투표소 대폭 감소…특히 광역토론토(GTA) 2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으로 줄어…코로나 감염 우려해 일선학교에서 투표소 설치 거부한 탓…토론토센터 선거구의 경우 2년전 102개에서 단 22개 투표소로 줄어…https://www.cp24.com/news/eight-gta-ridings-will-have-half-as-many-polling-sites-for-this-election-covid-19-may-be-to-blame-1.5580291   *<연방총선 한인후보 판세>당선가능성 한인후보 3명 초박빙 예측 불허…노스욕(윌로우데일): 알리 에사시(자유당, 현역) 44%, 이기석(보수당) 40%. 뉴마켓-오로라: 해롤드 김(보수당) 41%, 자유당(현역) 40% …BC주 넬리 신 후보 34%, NDP 32%, 자유당 30%. https://338canada.com/35065e.htm   *<일자리 회복, 실업률 급감>캐나다 8월중 일자리 9만여개 창출, 실업률 7.1%,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경제봉쇄 완화되면서 서비스업종 고용 활발…https://www.cp24.com/news/canada-adds-90-000-jobs-in-august-unemployment-falls-to-pre-pandemic-levels-1.5580022   *<오늘의 코로나 상황>온타리오 신규확진자 848명, 사망 11명(누적 9,590명), 양성률 3.1%. 새 확진자 중 659명(77%)은 미접종, 1차만, 불분명…2차 접종자 189명…토론토 166, 필 117, 욕 77명…https://www.cp24.com/news/ontario-reports-848-new-covid-19-cases-11-new-deaths-1.5580027   *<헷갈리는 공휴일>필지역(Region of Peel)은 9월 30일 '진실과 화해의 날'(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정식 공휴일로 지정…이에 따라 미시사가, 브램튼 등 관공서 휴무…온주정부의 방침과 반대…https://www.cp24.com/news/peel-region-to-recognize-national-day-for-truth-and-reconciliation-on-sept-30-1.557990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cook
2021-09-10
우리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합시다 ~ 사전투표를 원하면 13일(월)까지 오전 9시∼오후 9시 정해진 투표소에

판세예측서 해롤드 김(오로라).넬리 신(코퀴틀람) 후보 선두, 이기석씨도 각축전    연방총선(20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인 후보들이 선방하고 있다. 이들은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해달라”고 당부했다.    후보 지지율을 예측 발표하고 있는 338canada.com에 따르면 7일 현재 한인 현역 의원인 넬리 신(B.C주 코퀴틀람-포트무디, 보수당)은 37%로 2위 신민당 후보(32%)를 확실히 따돌리고 있다.    한인 1.5세 해롤드 김(뉴마켓-오로라, 보수당) 후보도 지지율 41%로 경쟁 자유당 현역 후보(39%)를 앞지르고 있다.    한편, 한인 밀집지역인 윌로우데일 지역구의 이기석(보수당) 후보는 40%로 현역 알리 에사시(자유당, 43%)를 바짝 뒤쫓고 있다. 장민우(B.C주 랭리-알더그로브, NDP) 후보도 선방하고 있다.    소수 집권당인 자유당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야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코로나 상황에서 조기 총선이란 무리수를 들고 나왔으나 자칫 역풍도 우려되고 있다.     총 338석의 하원의석 중 과반 확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보수당(당수 에린 오툴)과 선두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이밖에 신민당(재그밋 싱)과 블록퀘벡당, 녹색당(Green Party) 등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선방할 지도 관심을 끈다.    18세(총선 당일 기준) 이상 시민권자는 오는 20일 유권자 카드에 적혀있는 투표소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면 된다. 운전면허증 또는 본인 사진과 이름, 주소가 적힌 정부발급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유권자카드와 전기요금 납부 영수증으로 신분증명을 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선거관리위원회 웹사이트(www.elections.ca) 참조.    사전투표를 원하면 13일(월)까지 오전 9시∼오후 9시 정해진 투표소에서 권리행사를 하면 된다.    코로나 시대에 우편투표도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오는 14일(화) 오후 6시까지 웹사이트(elections.ca)에서 신청하면, 반송용 봉투와 투표방법 안내서 등이 포함된 우편물을 받는다. 투표용지에 지지후보의 이름을 기재한 후 동봉된 봉투(총3개)에 넣어 우송하면 된다.  이번 총선의 우편 투표율은 예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선거일에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3시간의 유급 투표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wlee
2021-09-09
현실적 이상주의-행동없는 동정은 허무할 뿐

    ▲2011년 강준만 교수의 저서 ‘강남 좌파’ 표지    “야, 내 앞에서 돈 얘기 하지마. 술맛 떨어진다…” 한국에서 친구들끼리 모임을 가지면 대화의 주제가 참 다양했다. 학창시절엔 관심사나 취미들이 비슷했지만 졸업 후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다 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주요 관심사는 종사하는 직업만큼이나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신문기자생활을 하면서부터 주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그때(1980~90년대)만 해도 시국상황이 어수선했기에 나는 주로 사회적 정의와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모임자리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경영학과를 나와 그 당시부터 일찌감치 주식투자나 부동산에 눈을 뜬 친구들은 만났다 하면 주로 돈과 주식 얘기를 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정색을 하며 위와 같이 외쳤다. “야 임마, 너는 돈이 최고냐? 사회는 썩어 문드러지는데, 돈 모아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면 술자리가 갑자기 썰렁해지곤 했다.   0…당시 내가 별로 달갑지 않아 했던 직업이 바로 금융, 증권사, 투자회사 등 주로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정의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재산 불릴 궁리만 하는 것 같아 경멸해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해지는 기억들이다. 나도 잠시나마 대기업에 근무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일찌감치 이재(理財)에 관심을 갖고 주식투자 등을 하던 친구들은 한밑천 잘 건져 지금은 골프나 치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뼛속까지 문과(文科) 성향인 나는 애당초 돈 따위에는 욕심이 없었고, 문학이나 철학 등에 관심을 갖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다분히 한량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친한 친구라도 너무 현실적인 얘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0…이런 나의 성향은 자라온 집안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은 별 볼일  없는 ‘양반 가문’이었다. 경제적으로 궁핍까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크게 가진 것도 없으면서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어른들이 주로 하는 얘기는 누구네 가문이 어떻고 역사상 누가 어떤 일을 했다는 둥의 화제거리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세상엔 오직 펜대 굴리는 직업만 있는 줄 알았고, 손으로 무엇을 만들거나 장사를 해 돈을 버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거니와 누가 구차하게 돈 얘기나 하면 속으로 경멸하는 습성이 배었다. 이를테면 냉수 마시고 이빨 쑤시는, 전형적인 선비집안이었다.    기자생활을 할 때도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며 술이나 퍼마실 줄 알았지, 정작 뒤주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친구가 몇평짜리 아파트를 샀다고 자랑하면 혀를 차며 저런 놈들이 나라 일에 관심이 없으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고 한탄했다. 나이 들어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0…그러던 내가 변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의 부동산 신문을 만들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히 그런 방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부동산 신문을 만들면서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부동산에 문외한인데다 관심조차 없던 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뉴스를 다루고 기사로 쓰다보니 전문용어도 제법 익히게 됐고 시장흐름도 파악하게 됐다. 특히 아내가 이 일을 하면서부터 나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실은 내가 이 신문을 만들면서 집사람도 이 일을 하게 됐다).    이전에는 교외(郊外)에 나가면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싯구절을 떠올리곤 했는데, 지금은 저 광활한 땅이 곧 개발될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게 됐고, 저 대지가 개발되면 땅주인은 엄청 부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으니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0…그런데 변한 것이 나만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전에는 콘도 등에 관심도 없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아서 그런지 점차 흥미와 관심을 갖는 눈치다.    나는 이런 변화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예전같이 부동산에 전혀  무관심하다면 아이들도 장차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뒤쳐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주택의 형태와 면적 단위에서부터 모기지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래, 너희들은 아빠처럼 뜬구름 잡는 이상이나 추구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좀더  풍요롭게 살아다오.”란 말이 절로 나온다.    나도 조금만 일찍 이런 방면에 눈을 떴더라면 지금쯤 (경제적)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0…사람은 젊어서부터 어느 분야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젊은이들이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일찌감치 재테크에 눈을 뜨는 것도 나쁠 게 없을 것이다. 아무리 높은 이상을 지녀도 경제적 현실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언행이 일치한다면 ‘강남 좌파’야말로 이상적인 모델이 아닌가 한다. 이들은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서민과 약자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현실주의자가 되자. 다만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 하나는 간직하고 살자.”- 체 게바라    (사장)       

Hwanghyunsoo
Hwanghyunsoo
2021-09-09
“왜, 외할아버지는 만주로 이주했을까?”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셨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만주로 이주한다. 지금의 길림성 연변 하마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해방이 된 다음해, 혼자서 이모가 살고 있는 회령으로 가게 된다. 짐작이지만, 해방이 됐더라도 정착한 터전을 바로 버리고 가족 모두가 다시 회령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아 우선 막내딸을 이모 댁에 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 어머니는 이모네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제 나도 외손녀가 생기다 보니, “외할아버지는 왜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이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여쭤보면 됐을텐데, 아쉬워 해도 벌써 지난 일이다. 그나마 책이나 대중음악 등에 묻어 있는 일제 강점기의 ‘만주 이주’를 더듬어 느껴본다.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이주하는 것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등 북부지역 주민들이 이주를 하다가, 후기로 접어들수록 경상, 전라, 충청 등 남부지방 농민들이 많아진다. 대부분 정치적 이주보다는 경제적 궁핍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910년에 시행된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과 그 후,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  농민들은 몰락하였고 토지를 빼앗기거나 소작할 땅을 잃는다. 1931년 만주 사변으로 만주국을 세우며 일제가 사실상 장악하며 일본은 만주 개간을 위해 조선인들의 이주를 장려하였다. 이러한 상황 변화로 1930년에 60만 명이었던 이주민이 1944년에는 약 170만 명이나 된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그 중 약 80만 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귀국하지 않고 만주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의 후예들이 1세기를 거쳐 현재의 중국 조선족이 된다. 나의 외할아버지 가족도 그때 다시 돌아오지 못해 그곳에서 정착한다. 만주로 떠난 이주민들의 고된 삶은 당시의 대중가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알려지고 있는 <오대강 타령>, <타향살이>, <울리는 만주선>, <찔레꽃> 등에 애환의 이주 생활이 담겨 있다. <오대강 타령>의 일부분이다. “동쪽은 두만강 간도살이 가는 곳/ 고향을 떠나갈 때 눈물은 핏빛” 에서 느껴지듯이 ‘살이’란 무엇에 종사하거나 기거해 살아가는 것이다. ‘시집살이’, ‘처가살이’, ‘머슴살이’, ‘셋방살이’, ‘피난살이’ ‘타향살이’에서 보듯 어느 것 하나 편하고 여유롭지 않은 서민의 삶이다. 핏빛 눈물로 두만강을 건너가는 조선 농민의 앞길에 기다리고 있을 ‘간도살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울리는 만주선>에서는 수탈의 상징인 일본 제국주의 열차에 몸을 실은 이주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향에서 못 살 바엔 타향이 좋다/ 찾아가는 그 세상은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모른다 모른다.” 라며 절규하듯 반복한다.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만주로 가는 길은 이처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아직도 인기 있는 <찔레꽃>의 가사다.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동무야/ 2.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던 즐거운 시절아/ 3.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찔레꽃>은 1942년에 발표되었지만, 해방 직후에 크게 유행한 노래다. 하지만, 작곡가가 월북했다는 소문이 돌며 한때 금지곡이 되기도 한다. 노랫말 속에 ‘남쪽 나라 초가삼간’과 ‘천리 객창 북두성’은 서로 대비를 이루는 표현이다. ‘초가삼간’을 떠올리는 순간, 떠나온 고향, 동무들과 놀던 시절이 그리워 3년 전에 찍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따뜻한 봄이 돌아와 북간도에도 찔레꽃이 피고 꾀꼬리가 울지만, 고향은 더욱 그립다. 기회의 땅, 만주에 뿌리내리고 열심히 살아보려 해도 현실은 힘들었다. ‘이상 국가’를 건설한다던 총독부의 선전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두고 온 고향을 떠올리지만, 쉽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을 노래에 담아 달랬다.     광복이 되니 이번에는 삼팔선이 생긴다. <가거라 삼팔선>은 “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 라며 남북 분단을 슬퍼한다. 애당초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설정한 삼팔선은 남북의 왕래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통행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고, 초기에는 통제가 느슨한 편이었다. 마침내 삼팔선은 남북의 강력한 체제 구축으로 가는 영구분단선이 된다. 삼팔선을 경계로 나뉜 남과 북에서는 이념에 배치되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남과 북으로 넘어간다. 이 노래에는 분단 현실에 대한 원망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들어 있다. 한국전쟁 중, 1.4 후퇴로 흥남부두를 떠난 실향민은 임시 수도 부산으로 간다. 어렵사리 피난 왔으나 살아갈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연인을 찾아 헤매는 노래가 만들어진다. <굳세어라 금순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전쟁 중에 연인과 생이별하고 피난지에서 장사치로 일하며 살아간다.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굳세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당시의 대중가요를 들으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노래 속에는 고향을 떠난 이주의 삶 속에 애환과 그리움이 녹아 있다. 고국을 떠나온 우리 같은 해외 교포들도 그때 ‘만주 이주민’ 같은 절박함은 없지만 그리움과 향수는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노래를 들으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듯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oungho2017
2021-09-09
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2)

  (지난 호에 이어)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동안 왕자의 막사에선 대령과 중위를 앉혀놓고 마지드(가밀 라티브)가 코란 강론을 한다. "코란은 많이 암송할수록 쉬워지고 많이 읽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보상받는 최상의 방법입니다."고 말하는데 아까 우물에서 만났던 알리 족장이 들어온다.    앉아있던 로렌스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살기가 돈다. 이를 간파한 파이살 왕자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진정시킨다.    다시 마지드의 강론이 이어지는데 파이살이 "미래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오."라고 부연(敷衍)하자 로렌스가 즉각 코란의 구절을 암송한다. "결국 신은 당신을 풍족케 해주고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끝맺음을 해 파이살 왕자와 알리 족장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때까지 오랜 강론에 지루함을 느끼던 브라이튼 대령이 헛기침을 한 후 '옌보'로 후퇴하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화제를 돌린다. 파이살 왕자가 "수에즈 운하는 영국에게나 중요하지 아랍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자 브라이튼 대령은 "영국과 아랍의 관심은 동일하다."고 항변하는데 옆에 있던 알리 족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투로 경멸한다.    이에 대령이 "옌보로 후퇴하면 영국은 무기, 전략, 훈련 등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재차 다짐하자 파이살과 알리는 그러면 대포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실 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랍인들에게 대포 등 최신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 때문에 브라이튼 대령이 '대포보다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설득하려는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영국이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훈련이 잘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훈련을 재차 강조하자, 파이살은 '해군과 대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는데, 이 말에 로렌스가 동의하자 대령은 "자네는 군사 조언가가 아니다. 누구의 명령을 듣는거냐?"며 화를 낸다.    이에 파이살이 그냥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무마한다. 양측의 이익을 얻기 위한 정치적 암투는 이렇게 치열하다. 옆에 있던 마지드가 "여기서는 파이살 왕자님을 따라야 한다."고 점잖게 일침을 놓는다. [註: 에미르 파이살(Emir Faisal, 1883~1933) 왕자는 메카의 대종주 후세인 빈 알리(1854~1931)의 셋째 아들로 1920년 시리아 아랍 왕국의 왕이었고,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으로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통합을 장려하여 인종, 종교를 초월한 '범아랍 독립국가'를 창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3년 9월8일 48세의 나이에 스위스 베른에서 건강진단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개인 간호사는 죽기 직전 비소 중독의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역의 알렉 기네스는 실제 파이살 왕자와 너무도 닮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로렌스가 말한다. "폐하 생각이 맞습니다. 사막은 '노가 필요없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선 베두인이 우위를 차지할 겁니다. 지리에 익숙하니까요. 옌보로 후퇴하면 아랍군은 영국군의 예하(猊下)부대로 전락합니다." 그러자 브라이튼 대령이 "자넨 배신자야!"하고 몰아붙인다. [註: 옌보(Yenbo)의 정식 명칭은 Yanbu' al Bahr (Spring by the Sea)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서부에 있는 홍해의 주요항구이다. 석유화학 및 정유 산업 단지가 집결돼 있어 주로 외국 근로자들로 인구가 형성돼 있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서유럽으로 오일을 수송할 수 있는, 그 이름처럼 '바다의 샘'인 주요 거점이다.]    영국이 아라비아에까지 욕심이 있음을 간파하고 있는 파이살 왕자가 "한창 젊을 때라 열정으로 가득해서 그러니 할 말은 하게 놔둡시다."라며 이를 수습한다. 그리고 후퇴에 관한 결정은 내일까지 하겠다며 모두 물러가게 한다.    로렌스와 독대한 파이살 왕자는 그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한다. [註: 대영제국의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 장군은 열렬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였으며, 1885년 1월26일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을 함락시켜 수단 총독이 되었지만 반란 토민을 토벌하던 중에 총독 관저에서 토민병이 던진 창에 찔려 죽어 효수(梟首) 당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1966년 찰턴 헤스턴,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하르툼 공방전(Khartoum)'이다. 또 하르툼에 파병된 이른바 영국 고든구원군을 다룬 영화가 히스 레저 주연의 '네 개의 깃털(The Four Feathers·2002)'이다.]    그리고 이어서 "9세기 전 '코르도바'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영국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무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영국의 이익에 반하여 아랍을 위해 "지금이 다시 위대해질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로렌스의 비범한 식견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 파이살 왕자. [註: 코르도바(Cordoba)는 711년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 당한 후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완료된 15세기 말까지 7세기 반 동안 인구 50만 명에 이베리아 반도의 수도 구실을 한 번영의 도시였다. 중세의 유려한 이슬람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의 도시다.]    그의 막사를 나온 로렌스는 사막을 걸으며 홀린 사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 곳은 물자를 하적할 수 있는 항구가 있는 곳이며 또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요새화된 곳으로 터키군 대포는 바다로 조준, 고정돼 있을 뿐 육지 쪽은 무방비 상태이므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 로렌스의 판단이었다. [註: 아카바(Aqaba)는 홍해의 북동단, 아라비아 반도의 최서단에 위치한 전략적 산업 도시로 '홍해의 신부(新婦)'로 불리는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이다. 1917년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이 곳을 T. E. 로렌스와 아우다 이부 타이가 주도한 '아랍 반란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지금은 와디 럼, 페트라와 더불어 요르단 3대 황금 관광지의 허브다.]    로렌스는 파이살 왕자에게 50명의 정예 군인을 요청하는데 그 리더가 알리 족장이다. 물론 50명의 특공대가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카바를 점령함으로써 아랍에 돌아올 이익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조차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사막횡단을 이끈 것은 아라비아를 위하는 로렌스의 진심이었다.    사막에 들어서기 전 오아시스에서 여장을 풀고 있는데 10대 고아소년인 다우드(존 디메치)와 파라지(미셀 레이)가 뒤따라와 로렌스의 하인이 되겠다고 한다. 그는 알리 족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몸종으로 고용한다. 로렌스는 장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듯 신분의 차이가 문제될 것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로렌스와 베두인 안내인 타파스(지아 모혜딘)가 파이살 왕자를 만나러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 허가 없이 마스투라 우물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안내인을 멀리서 장총으로 쏴 죽이고 나타나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왼쪽 로렌스 발 앞에 안내인에게 주었던 권총이 떨어져 있다.   ▲ 로렌스가 안내자에게 선물로 주었던 권총을 챙기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로렌스로 상징되는 서구 문화와 알리로 상징되는 아랍 문화의 첫 충돌 장면이다.   ▲ 터키군의 무장 경비행기 2대가 나타나 파이살 왕자의 진영을 무차별 공격한다. 현대식 무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랍군은 말과 낙타를 타고 칼로 무모하게 싸운다.   ▲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하는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   ▲ 사막에서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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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30)

  (지난 호에 이어) 더군다나 연방 정부의 경제 정책은 항상 온타리오 옹호적 정책이었다. 군수산업을 위한 정부 지원은 온타리오가 독점 했고 1950년대의 St-Laurence 가의 운하 공사도 온타리오가 주된 수혜지역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피하려면 퀘벡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경제 개발을 인도해야 했다.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 시킨 또 하나의 변수는 1930년의 대 공황이었다. 1937년에 영국경제학자 J.M. Keynes 교수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최선의 조치는 수요 강화이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수요 강화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모든 것이 1960년대에 와서 퀘벡 정부 주도의 조용한 혁명의 동기가 된 것이다.   7.1.3 종교적 배경 카톨릭종교도 조용한 혁명의 요인 변수였다. 1763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영국은 프랑스 캐나다에 종교자유를 허락했다. 퀘벡인의 카톨릭교인수가 영국인 수보다 훨씬 많아서 종교자유를 부여하지 않으므로 발생할 수 있는 반란을 억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카톨릭 성당은 사회평화와 타협을 선호하므로 영국입장에서는 카톨릭 성당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40년 Patriot 반란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온 Durham 영국 특사도 퀘벡인에게 카톨릭 종교를 유지하게 하라고 건의했다. 이유는 성당이 퀘벡인의 반란을 차단하는 기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카톨릭 종교 유지는 지배하는 영국계 캐나다와 지배당하는 퀘벡인간의 협상이었다. 즉 퀘벡인은 종교 자유권을 부여 받는 대신 사회 평화를 유지하라는 협상이었다.  하여간 이러한 중재 역할을 한 성당은 1763년부터 1960년대까지 프랑스언어, 프랑스 문화 그리고 카톨릭종교 보전에 핵심적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즉 퀘벡인의 정체성 보전은 성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개 주 정부에 불과한 퀘벡 정부는 재정적 제한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 부족으로 교육, 보건, 사회복지 등의 시민의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 못하고 있었다. 정부 대신 성당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1960년 전만해도 대학교를 포함한 학교의 장은 대부분 신부 혹은 수녀이었다. 병원장도 대부분 신부 혹은 수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당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영향력은 사회 곳곳에 퍼져있었다. 성당은 개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공동 생활에도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탄생하면 교구에다 신고했다. 혼인은 물론 약혼 할 때도 배우자 선택에 대한 신부의 판단이 중요했다. 취직할 때 신원조회를 하는데 목적은 카톨릭 종교 신앙의 건전성의 소유자냐 아니냐에 있었다. 대학 강의는 라틴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한 후에 시작했다. 직장에서의 진급도 신부의 추천을 의무화 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정치를 하려면 고위급 성당 지도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했다. 다시말 해면 가정, 학교, 직장, 정치 생활은 성당위주로 진행 되었다. 당시 가문하면 학벌, 재벌 혹은 사회적 출세보다는 가족이 배출한 신부와 수녀의 수이었다. 가문이 있는 집안은 적어도 신부가 두세 명, 수녀가 한두 명 정도 나와야 존경대상의 가문이었다. 당시 퀘벡 사회는 근본적으로 부친주도의 가족 체제이었지만 가족 공동 생활의 중심은 가족이 배출한 신부였다. 필자가 Laval 대학에 재학 중 Pare 라는 가족에서 하숙을 했었다. 10남매의 가족이었다. 당시 10남매 가족은 보통이었다. 성당은 대가족제도를 격려했다. 이유는 영국계 캐나다의 지배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오직 인구이었다. 왜냐하면 인구 규모가 국회의원의 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농업위주의 산업구조 속에 있는 퀘벡 경제는 많은 농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Pare 가족은 가족 내 상하관계가 분명했고 형제간에 정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가족 생활을 했다. 신부가 한 명 수녀가 한 명 배출되었다. 가장인 Pare 씨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아들인 신부와 상의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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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9.20 연방총선 열흘 앞으로…한인후보들 “소중한 한 표 꼭 부탁해요”

  판세예측서 해롤드 김(오로라).넬리 신(코퀴틀람) 후보 선두, 이기석씨도 각축전    연방총선(20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인 후보들이 선방하고 있다. 이들은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해달라”고 당부했다.    후보 지지율을 예측 발표하고 있는 338canada.com에 따르면 7일 현재 한인 현역 의원인 넬리 신(B.C주 코퀴틀람-포트무디, 보수당)은 37%로 2위 신민당 후보(32%)를 확실히 따돌리고 있다.    한인 1.5세 해롤드 김(뉴마켓-오로라, 보수당) 후보도 지지율 41%로 경쟁 자유당 현역 후보(39%)를 앞지르고 있다.    한편, 한인 밀집지역인 윌로우데일 지역구의 이기석(보수당) 후보는 40%로 현역 알리 에사시(자유당, 43%)를 바짝 뒤쫓고 있다. 장민우(B.C주 랭리-알더그로브, NDP) 후보도 선방하고 있다.    소수 집권당인 자유당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야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코로나 상황에서 조기 총선이란 무리수를 들고 나왔으나 자칫 역풍도 우려되고 있다.     총 338석의 하원의석 중 과반 확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보수당(당수 에린 오툴)과 선두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이밖에 신민당(재그밋 싱)과 블록퀘벡당, 녹색당(Green Party) 등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선방할 지도 관심을 끈다.    18세(총선 당일 기준) 이상 시민권자는 오는 20일 유권자 카드에 적혀있는 투표소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면 된다. 운전면허증 또는 본인 사진과 이름, 주소가 적힌 정부발급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유권자카드와 전기요금 납부 영수증으로 신분증명을 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선거관리위원회 웹사이트(www.elections.ca) 참조.    사전투표를 원하면 13일(월)까지 오전 9시∼오후 9시 정해진 투표소에서 권리행사를 하면 된다.    코로나 시대에 우편투표도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오는 14일(화) 오후 6시까지 웹사이트(elections.ca)에서 신청하면, 반송용 봉투와 투표방법 안내서 등이 포함된 우편물을 받는다. 투표용지에 지지후보의 이름을 기재한 후 동봉된 봉투(총3개)에 넣어 우송하면 된다.  이번 총선의 우편 투표율은 예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선거일에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3시간의 유급 투표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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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광역토론토 8월 주택가격 13% 급등. 신규매물 43%나 급격히 줄어든 탓

  평균 집값 107만 달러, 거래량 20%↓…TRREB “연방총선 공약은 공급 증가에 맞춰야”    광역토론토(GTA) 주택가격이 지난달 새 매물 급감에 따라 큰폭 올랐다. 이에 연방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이 주택정책 공약을 내놓고 있으나 업계는 공급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토부동산위원회(TRREB)에 따르면 지난 8월 GTA 주택 평균가격은 107만 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12.6% 뛰어 올랐다. 같은 기간 신규 매물이 43%나 급감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TRREB은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한 후 캐나다로 이민이 다시 늘어나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 기간 신규주택 등록은 1만609채로 2020년 8월의 1만8,599채에서 약 8,000채 감소했다. 이의 영향으로 같은 기간 GTA 집값은 거의 12만 달러 올랐다.    지난달 주택 거래는 8,596채로 작년 동기대비 20% 감소했다. 그래도 여전히 1988년 이후 TRREB 기록에서 세 번째로 많은 거래 수준이다.    한편, 콘도미니엄 매매는 전통적으로 약세인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강세를 보였다. 이 기간 콘도는 2,544채 거래돼 작년 대비 11.3% 증가했다.    단독주택 거래가 3,704채로 연간 31.5% 급감했다. 토론토시(416지역)에서 36.6%, 905지역에서 30.2% 각각 내려갔다.    그렇지만 단독주택 가격은 142만 달러로 21.4% 급등하며 새 기록을 세웠다. 토론토시가 170만 달러로 11.2%, 905지역은 137만 달러로 25.6% 각각 뛰었다    이 기간 콘도 가격도 68만8,568달러로 9.4% 상승했다. 토론토시에서 평균 72만832달러로 7.1%, 905에서 61만8,997달러로 14.5% 각각 올랐다.    TRREB은 “연방총선(20일)을 앞두고 각 정당이 주택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점이며,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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