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무슨 일이 났느냐구요? 반역이 일어났어요. 아니 반역만큼이나 고약한 일이지요. 이 충실한 카디가에게, 글쎄, 공주님, 그 히스파냐 기사들이 나를 꼬신 거에요. 공주님들을 코르도바로 모셔다가 자기네들의 아내가 되도록 공주님들을 설득하라네요!”
영악한 카디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터뜨리는군요. 아름다운 세 공주님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붉으락 푸르락 하다가 수줍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어요.
마침내 큰 공주가 언제나처럼 앞장서며 말했어요. “그런데, 유모. 이 기독교인 기사들과 달아날 마음이 있다면—그게 가능할까?”
마음씨 좋은 노부인은 갑자기 한탄을 멈추고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가능하다 마다요! 그 기사님들이 이미 후세인 바바를 매수해놓고 모든 계획을 다 짜놓았다지 뭡니까? 그러나 아버님을 배신할 생각일랑 마셔요. 나를 가장 신뢰해주신 분인데!”
“하지만 아버님은 우리를 한번도 신뢰하신 적이 없는걸! 자물쇠와 빗장만큼도. 그래서 우릴 포로처럼 가두어 놓으셨죠.” 큰 공주가 말했어요.
“하긴 옳은 말씀이에요. 공주님들에게 너무 하셨지. 이곳에 가두어 놓고 시들어가는 장미꽃들처럼 이 음울한 낡은 탑 안에서 젊음을 허비하게 하신 건 참 부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제 나라를 두고 달아나다니요?”
“우리가 달아나려고 하는 그 나라는 우리 어머니의 고향이며 우리가 마땅히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곳이 아닐까?”
“오, 그 말씀도 지당하시네요. 폐하께선 폭군 같은 분 인데, 공주님들은 저를 폐하가 무서운 앙갚음을 하도록 이곳에 두고 가실 건가요?”
“말도 안 돼, 우리 착한 카디가. 우리와 함께 달아나면 어때요?”
“참으로 착한 아가씨들, 사실을 말씀 드린다면, 내가 후세인 바바와 이 일을 의논했거든요. 제가 만약 공주님들을 동반해서 달아난다면, 저를 보호해주겠다고까지 약속 했어요. 그런데 생각들 해보세요, 정말로 부왕의 신앙을 저버릴 작정이신가요?”
“기독교 신앙은 원래 우리 어머니의 신앙이었다고. 나는 그 신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동생들도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하구요.” 큰 공주가 말했어요.
“정말 옳은 말씀이에요. 기독교는 어머님의 종교였지요. 임종 머리맡에서도 그 신앙을 저버리신 걸 몹시 한탄하셨어요. 그때 저는 공주님들의 영혼을 돌보아드리겠다고 약속까지 했지요. 이제 공주님들이 올바른 구원의 길로 들어서시는 모습을 보니 그지없이 기뻐요. 저 역시 다시 예전 신앙으로 돌아갈 결심이 서는군요. 후세인 바바 역시 그의 고향인 히스파냐로 돌아가 교회에 복귀할 작정이랍니다. 그래서 기사님들은 만약 우리가 부부가 될 마음만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즉시 기사님들께서 후하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하셨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이미 기사들과 훗세인과 의논하여 탈출 계획을 철저히 마친 다음이었어요. 첫째 공주는 이 계획에 곧장 동의했고, 큰언니의 모범적인 행동은 언제나처럼 동생들의 마음을 결심하도록 끌어갔어요. 막내공주가 좀 주저하긴 했지만요.
조라하이다는 얌전하고 소심한 성격이어서 가슴 깊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젊음에의 열정 사이에 갈등이 왔으나, 늘 그렇듯 결국 젊음의 열정이 승리하여 그녀는 소리 없는 눈물을 닦으며 달아날 채비를 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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