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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llu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일들
allellu

 

군대생활 할 때 옆 대대에 ‘히스기야’라는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있었다. 종종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히스기야’는 30여 년 전 한국 기준으로 상당히 특이했던 게 사실이다.  

 

히스기야는 기원전 715년께 즉위했던 고대 유다왕국의 왕이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18장에 등장한다.

기독교 신자들이 히스기야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불치병에 걸렸다가 기도를 통해 생명을 연장 받았다는 대목에서 크게 감동하는 것 같다.

사실 유다왕국의 여러 임금 가운데서 성경은 히스기야를 나름 좋게 평가한다.

열왕기하 18장3절은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5절에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에게도 근심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당대의 최강의 제국 앗수르다. 앗수르는 남왕국 유다와 형제라고 할 수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먼저 무너뜨렸고 사람들을 잡아 포로로 끌고 갔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다.”(18장7절)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스라엘을 삼킨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마침내 유다왕국에도 침략의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는 당황스런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에게 사신을 보내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14절)” 하며 사실상 항복 의사를 전달했다. 앗수르 왕이 금과 은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다(15절).” 심지어 성전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 앗수르 왕에게 바쳤다.

 

그럼에도 앗수르 왕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히스기야 왕과 백성을 위협하면서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까지 조롱했다. 앗수르의 장수는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고 으스댔다.

비탄에 빠진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앗수르의 압박이 계속되자 자신도 성전에 직접 나아가 여호와께 기도했다.

 

이야기의 결말은 19장35절이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이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본국으로 돌아간 뒤 니스룩 신전에서 제사를 하다 아들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다.

 

성경이 기록한 히스기야 이야기는 어딘가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했다,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다”고 해놓고는 금방 돌아서서 산헤립에게 항복하고 금은 보화를 갖다 바치는 비굴한 장면을 그린다.

 

구약성경 역대기 32장과 열왕기하 20장에는 히스기야의 이후 이야기가 계속된다.

특히 역대기 하편는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한다.

생명을 연장 받고, 어마어마한 기적을 몸으로 체험했던 히스기야는 병에서 나은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왕국의 모든 금은 보물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 알아챈 선지자 이사야는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라는 저주를 전한다. 

 

성경을 읽은 기독교 신자라면 아마 이 대목에서 이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만일 히스기야였다면 적어도 저것 보다는 더 잘 하겠다’.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히스기야의 믿음보다는 차라리 내가 낫겠다고 자신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경이 히스기야의 생애를 이토록 자세히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으면 안 된다.    

 

역대기 32장31절은 바벨론 방백들과 엮인 에피소드의 결말인데, “하나님이…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밝힌다. 이것은 어쩌면 뒤죽박죽처럼 보이는 히스기야 전 생애를 마무리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마음 속에 침잠해 있는 인간의 본질을 생애 매순간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확 휘저으신 것이다. 그러자 히스기야의 삶에서는 ‘개그콘서트 보다 더 재미있고 심지어 어이없는’ 일들이 마구 벌어졌다.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위장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여러 시험을 통해 하나하나 끄집어 내신 것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히스기야의 반응이다. 그는 자기 아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환관이 될 것이라는 혹독한 저주를 받고도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열왕기하 20장19절)” 하고 납작 엎드려 고백한다.

 

성도는 세상에 벌어지는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들 속에서, 18만5천명을 하루 아침에 송장으로 만든 하나님의 손길을 읽어야 한다. 그 18만5천명은 앗수르의 군대지만 동시에 성도의 마음과 머리 속에 들어있는 ‘대군’이다. 그들은 반드시 여호와의 손에 죽어야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에서 고백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의 진의이며, 그것이 히스기야 왕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어낸 사건들이다. 이처럼 인간들이 기를 쓰고 서로 주인공이 되려 애쓰는 세상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시선은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황무지 같은 돌짝밭을 강제로 기경해 기어이 옥토로 바꾸시는 작업이며, 세상 무가치한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을 강제로 하나님 나라에 입성시키기 위한 십자가의 전략이며, 사사건건 하나님께 트집이나 잡는 무뢰배들을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는 책임과 약속 때문에 기어이 구원의 자리로 끌고 가시는 여호와의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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