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자쿠(Eddie Jaku, born Abraham Solomon Jakubowicz)의 명저The Happiest Man on Earth(한국 번역본 제목: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의 지옥 같은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자가 100세가 되던 해에 출간한 감동적인 회고록이다. 204 쪽되는 분량의 한쪽 한쪽이 숨을 죽이며 인간이 만드는 최악의 지옥을 상상하게 한다. 전체 줄거리 및 생존 경력 독일 라이프치히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에디 자쿠는 자신을 언제나 유태인이기 전에 자랑스러운 독일인이라 생각했다. 그의 부친의 가훈을 따라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도와주고 고통을 나누어주는 모범적인 유태인계 독일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평화는 깨진다.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아버지의 기지로 신분을 위장해 먼 도시의 대학에서 정밀 기계공학(정밀기계 및 광학)을 공부한다. 이 기술은 향후 수용소에서 그를 나치에게 유용한 인재로 만들어 목숨을 건지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1938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집을 찾았다가 나치의 유태인 박해 사건인 수정의 밤(Kristallnacht)에 휘말려 체포된다. 이후 그는 부헨발트, 아우슈비츠 등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들을 전전하고, 탈출과 재수용, 그리고 죽음의 행진을 겪으며 온갖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든다. 전쟁이 끝난 후 가족의 대부분을 잃은 슬픔과 나치에 대한 증오로 깊은 우울증을 겪었지만, 아내 플로레를 만나고 첫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증오는 자신을 파괴하는 암과 같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호주 시드니로 이주하여 성공적인 새 삶을 개척한 그는, 남은 생을 증오 대신 사랑과 친절을 전파하는 데 바치며 스스로를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선언한다. 그가 겪은 가장 힘든 역경 5가지 1. 수정의 밤(Kristallnacht)의 폭행과 첫 체포 (1938년11월 9일 )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 집을 방문한 날 밤, 나치 돌격대(SA)가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에디는 그들이 키우던 반려견이 돌격대에게 잔인하게 죽는 모습을 보아야 했고, 자신 역시 뼈가 부러질 정도로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뒤 부헨발트(Buchenwald) 수용소로 끌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이었던 독일인들이 하루아침에 야수로 변해 자신을 짓밟은 정신적 충격은 상상 초월이었다. 2. 눈앞에서 벌어진 부모님의 가스실 처형 벨기에와 프랑스 등을 거치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숨었으나, 결국 1943년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로 압송되었다. 수용소 도착 직후 악명 높은 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선별 과정에서 에디는 기술자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분류되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 길로 나치에 쓸모가 없는 부류에 속해 가스실로 향해 운송되었다. 부모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슬픔은 그의 마음에 가장 깊은 상처로 남았다. 3. 기차 바닥을 뚫고 감행한 목숨 건 탈출 프랑스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이송 열차에 태워졌을 때의 일이다. 1945년 1월 에디는 이 기차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몰래 소지하고 있던 도구를 이용해 달리는 기차의 나무 바닥 판자를 뜯어냈다. 그리고 달리는 열차 밑바닥 철로 사이로 뛰어내리는 구사일생의 탈출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은 채 홀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4. 아우슈비츠 '죽음의 행진'과 혹한의 굶주림 (1945년초) 전쟁 말기, 소련군이 진격해오자 나치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수용소 생존자들을 이끌고 추위 속을 걷게 하는 죽음의 행진을 강행했다. 영하의 날씨에 얇은 수용소 죄수복 한 벌만 걸친 채, 낙오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공포 속에서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걸어야 했다. 5. 전후 홀로 남겨진 고독과 나치에 대한 증오심 1945년 6월 구사일생으로 연합군에게 구조되었을 때, 그의 몸무게는 고작 28kg에 불과했고 콜레라와 장티푸스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육체적 회복보다 힘들었던 것은 정신적 황폐함이었다. 누이 헬레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에디는 세상에 대한 깊은 환멸과 나치를 향한 타오르는 증오심 때문에 오랜 시간 영혼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증오는 적을 파괴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파괴한다. " — 에디 자쿠 (다음호에 계속)
존 지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전설적인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가 산티아고 노인을 연기한 1958년작 영화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문학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시도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할리우드(미국) 평단 및 시사평: "위대한 시도와 한계" 당시 할리우드 평단은 이 영화의 예술적 도전에는 찬사를 보냈으나, 문학적 깊이를 완벽히 시각화하는 데는 기술적 아쉬움이 있다는 복합적인 평가를 내렸다. 스펜서 트레이시에 대한 극찬: 할리우드는 노인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존엄성을 육체적으로 표현해낸 스펜서 트레이시의 연기에 압도적인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디미트리 툠킨의 장엄한 음악 역시 음악상을 받으며 극의 영적 분위기를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문학의 영화화에 대한 진퇴양난: 평론가들은 헤밍웨이 특유의 내면적 독백과 영적 사투를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도입한 내레이션(낭독) 방식에 주목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소설 구절을 그대로 읽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에 대해 소설의 숭고함을 잘 살렸다는 호평과 영화라기보다 오디오북을 보는 것 같다는 비판이 공존했다. 기술적 한계에 대한 아쉬움: 당시 타임(TIME)지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실제 쿠바 바다에서 촬영한 거대한 자연의 풍광은 아름답지만, 스튜디오 물탱크에서 촬영한 특수효과(가짜 청새치 모델)와 실제 바다 화면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산티아고와 바다의 완벽한 합일감을 방해했다는 냉철한 지적을 남기기도 했다. 문학을 텍스트로 읽을 때의 매력이 무한한 상상의 바다를 유영하는 것이라면, 잘 민들어진 영화가 주는 매력은 우리가 상상해오던 그 영적인 순간에 구체적인 온기와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가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감동을 증폭시키는 완벽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알수 있다. . 소설의 행간에 숨겨진 인간의 온기를 시각화하다 소설 속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항구로 돌아와 사투의 흔적인 찢어진 손을 어루만지며 침대에 누었을때, 다른 어부들은 그저 거대한 청새치의 뼈를 계측하며 감탄할 뿐이었다. 오직 소년 마놀린만이 노인의 오두막으로 들어와 그의 상처 가득한 손을 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이 숭고한 침묵의 순간을 스펜서 트레이시의 탈진한 표정과, 소년의 애틋한 눈빛을 통해 극대화했다. 영화가 더해준 상상의 깊이: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노인의 거대한 투쟁과 일합상(一合相)의 우주적 원리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반면 영화는 마놀린이 따뜻한 커피와 음식을 들고 와 노인을 깨우는 세세한 동작과 표정을 통해, 그 거대한 우주적 질서의 종착지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지극한 사랑과 돌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시각이 주는 영적 자극:영화 속에서 노인의 깊은 주름과 소년의 눈물이 부딪히는 장면을 보는 것(Seeing) 또한 우리의 뇌리와 영혼에 강렬한 항적을 남긴다. 그 구체적인 장면이 징검다리가 되어, 우리가 소설을 다시 읽을 때 한층 더 풍성한 일합상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 평단 및 소개 당시의 시사평: "고난을 이겨내는 불굴의 인간상" 한국에 이 영화가 소개된 시기는 전후(戰後) 복구와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던 1950년대였다 따라서 한국 평단과 관객들은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인간의 굳은 의지와 영적 구원이라는 메시지에 훨씬 더 깊이 공감했다. 한국 지식인층과 문단의 환호: 1954년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에서도 원작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 평단은 이 영화를 단순한 할리우드 오락 영화가 아닌 최고급 문예 영화로 대우했다. 문학적 숭고함을 스크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가치를 두었다. 전후(戰後) 한국 사회에 던진 위로: 당시 한국인들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뼈대만 남은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상어 떼에게 모든 살점을 뜯기고도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며 항구로 돌아와 다시 사자(Lions)의 꿈을 꾸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우리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실존적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종교적·영적 감동으로의 수용: 한국의 종교계와 평론가들은 노인이 양손에 상처를 입고 돛대를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듯한 종교적 은유, 그리고 바다라는 거대한 섭리 앞에 순응하면서도 투쟁하는 동양적 무아(無我)의 경지를 영화 속에서 읽어내며 깊은 감동을 표현했다. 이영화는 1959년 3월 21일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당시 단성사는 최고의 설비를 갖춘 극장으로, 『노인과 바다』와 같은 세계적인 문예 대작이나 화제작들을 주로 상영하던 곳이었다. 이영화를 보기위해 단성사앞은 앞은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 원작을 스크린으로 직접 보기 위해 개봉후 모여든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신문 광고에는 스펜서 트레이시의 중후한 연기와 테크니컬러(Technicolor) 화면으로 재현된 거대한 청새치의 모습을 강조하며 인간 의지의 위대한 승리라는 문구로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 요약하자면 할리우드가 이 영화를 원작의 거대한 깊이를 담아내려 고군분투한 예술적 장인(匠人)의 영화로 분석했다면, 한국은 비바람과 상어 떼 같은 운명의 시련 앞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인간 영혼의 승리로 눈물겹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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