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와 아버지
요즘은 흔히 쓰지 않지만, 군자란?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을 일컫는데,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사군자(四君子)’란? ‘네 가지 군자’라는 뜻으로, 네 가지 식물이 지닌 고귀한 품성을 군자에 비유한 말이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리켜 사군자라 칭했으며, 사군자는 동양화의 소재로 동양화가들은 묵화를 치며 군자의 도를 닦았다. 사군자를 이르는 말로서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우리말 규범표기로는 ‘매란국죽’이다.
사군자를 간단히 설명하면,
매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릎 쓰고 제일 먼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봄을 상징, 꽃말은 희망, 고결, 인내라고 하며, 또한 선비의 품격과 절개를 대변하는 꽃이라 한다.
난초- 산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살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멀리 퍼트리는 강인한 성품의 꽃, 여름을 상징, 꽃말은 겸손, 우아함, 고결함이라고 한다.
국화- 늦가을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표현했으며, 다른 꽃들이 피었다가 다 졌어도 홀로 꼿꼿하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국화는 가을을 상징, 꽃말은 고귀함, 절개, 장수라고 한다.
대나무- 곧게 뻗은 줄기에 속은 비었으나 꺾일 줄 모르고,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으며, 추위 속에서도 굳은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는 겨울을 상징, 드물게 꽃이 핀다. 꽃말은 지조, 강인함, 유연성이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사군자를 좋아하셨다. 강하다는 의미가 중심이 되는 식물들이기 때문일까?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사군자를 치셨고, 평생에 한문과 한글, 해서, 행서, 초서체를 막론하고 붓글씨를 참 많이도 쓰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사남매에게 호를 지어 주셨는데, 사군자로부터 힌트를 얻으신 것 같다.
오빠는 큰 아들이라고 강하며 품격을 잃지 말라, 또한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매화처럼 소리 없이 인내하라는 뜻의 호로 ‘매은(梅隱)’이라고 지어주셨다.
나에게는 난초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며, 고고하고 강하게 살라는 ‘난은(蘭隱)’ 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국은(菊隱)’ 이라고 호를 칭하였으니, 매서운 서리 발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막내남동생은 ‘죽은(竹隱)’이라고, 대나무처럼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푸름의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우리 사남매는 과연 아버지가 지어주신 호처럼 살았는가? 또 살고 있는가? 나의 양심은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우리 사남매를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를 말라고, 꽁보리밥을 소금물에 찍어먹더라도, 굶어죽게 생겼어도, 아니 굶어 죽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마라, 도둑질은 하지마라, 차라리 굶어죽어라 하시며, 정직하게 살아야 하늘과 사람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수없이 하시던 말씀이, 평생 가슴 깊숙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나의 세 자녀들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씀대로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내 비록 한국에서 먼 캐나다 땅에 살고 있지만, 하루의 삶속에서 항상 아버지와 엄마의 눈동자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음은, 나의 수호신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사군자의 하나로 난초처럼 살지는 못할망정, 칠십 중반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아버지의 비장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똑바로 살아라! 똑바로!
정직, 성실, 검소, 절약이 가훈이었던 우리 집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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