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BC
추천업소
추천업소 선택:
추천업소 그룹 리스트
  • 식품ㆍ음식점ㆍ쇼핑1
  • 부동산ㆍ건축ㆍ생활2
  • 미용ㆍ건강ㆍ의료3
  • 자동차ㆍ수리ㆍ운송4
  • 관광ㆍ하숙ㆍ스포츠5
  • 이민ㆍ유학ㆍ학교6
  • 금융ㆍ보험ㆍ모기지7
  • 컴퓨터ㆍ인터넷ㆍ전화8
  • 오락ㆍ유흥ㆍPC방9
  • 법률ㆍ회계ㆍ번역10
  • 꽃ㆍ결혼ㆍ사진11
  • 예술ㆍ광고ㆍ인쇄12
  • 도매ㆍ무역ㆍ장비13
  • 종교ㆍ언론ㆍ단체14
오늘의 TOPIC
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4-12-20
이민정책 변경으로 2년 안에 200만 명 떠날 수도

  "상당수 임시 근로자들은 체류 연장 시도할 것" 전문가들 "망명신청 증가 등 혼란 불가피"     연방 자유당 정부의 이민정책 변경으로 약 200만 명이 2년 안에 캐나다를 떠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포스트'는 경제학자들과 이민업계를 인용해 "정부가 단기간에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전했다 경제학자들과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많은 수의 유학생과 임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짧은 시간 안에 캐나다를 떠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그들은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거주 비자를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파이낸셜포스트는 2018년 인도에서 유학을 온 25세 청년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7월 취업허가가 만료된 후 캐나다 체류를 연장하기 위해 방문비자를 신청했다. 이 청년은 혼자 살다가 체류비를 아끼기 위해 최근 거처를 공유아파트로 옮기고,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등 이민점수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체류비용을 벌기 위해 주로 캐시잡을 하고 있다. 그는 "인도로 돌아갈 수 없다. 캐나다로 오기 위해 큰 돈을 대출했고, 만약 인도로 돌아가면 대출금을 루피로 벌어 갚아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털어놨다.   임시 외국인 거주자 수를 줄이기로 한 연방 정부의 결정은 팬데믹으로 인한 기록적인 수의 일자리 공석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수를 단기간에 몇 배나 늘렸던 데 따른 후폭풍이다. 지난 몇 분기 동안 국내 일자리 증가가 인구 증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고, 실업률이 상승함에 따라 트뤼도 정부는 이민 정책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최근 몇 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높은 증가세를 보인 캐나다 전체 인구 수는 내년과 2026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론토의 한 이민 컨설턴트는 "많은 임시 거주자들이 떠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매년 100만 명이 떠나도록 하는 목표는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어떻게든 여기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에 따른 시스템의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많은 컨설턴트와 이민 변호사들은 임시 거주자들이나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근로자에서 방문자로 신분을 바꾸거나 망명을 신청함으로써 이곳에 체류를 연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민업계는 정부 데이터가 현실화하면 떠나는 인력과 새로 유입되는 유학생 등을 감안해 국내 인구가 2년 안에 90만 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JOHNCHO
2024-12-20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4)

  JC칼럼- 213   (지난 호에 이어)   지난 달 초 직장으로부터 은퇴를 하게 된 필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향했지만 역시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며 여행을 아주 긴 여정으로 만들며 힘들게 했다. 은퇴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긴 시간을 비행하며 지난 50년이 넘는, 쉽지만은 않았던 이민생활이 머릿속에 영화 필름처럼 돌아갔다. 내가 원해서 살았던 삶의 순간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그 많던 순간들 중에 단 한 순간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의 인생은 실패와 후회, 고통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나의 오만한 욕심이 삶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나 높여 놓은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삶이 살아야 우리는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옛날 영국의 수상 Winston Churchill은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원할 거라 말했지만, 필자는 그것은 그분이 거짓을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삶은 고사하고, 다시 또 한번의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해도 또 하나의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너의 삶, 나의 삶, 그의 삶 모두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무 가치와 의미도, 또 즐거움도 목적도 없는 것이란 걸 우리 모두는 어제도 오늘도 이미 깨닫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조물주에 의해서 지어졌고, 또 그분에 뜻대로 분해될 우리들일 뿐 우리의 실체는 아예 없었고, 너도나도 이 세상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란 생각은 우리를 많이도 우울하게 만든다.    이제 곧 성탄절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시간인데 우리들의 모국 대한민국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분열과 다툼 그리고 끝이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우매한 국민들을 좌우로 갈라놓고 언론사마다 사실과 진실 보다는 자기들의 욕심과 이익만을 위하여 보고와 보도를 하다 보니 사실과 진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좀 살만한가 했더니 또 한번 공 들여 쌓아온 성과를 남의 나라에게 바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이제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 탄핵인데, 그동안 탄핵을 통해서 나아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외 수많은 탄핵에 몰두하며 상대방이 잘한 것은 몽땅 묻어두고 못한 것만 찾는데 혈안이 된 국회는 민생은 고사하고 도대체 나랏일은 언제 하는 것일까?  아마도 한국은 대통령이 적어도 300(국회의원 수)명은 되어야지 매주일 한 명씩 탄핵을 한다 해도 5년 대통령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미디어는 방송마다 온 국민이 탄핵을 기뻐하며 감격과 눈물까지 보이는 장면들을 쉽게 볼 수가 있는데 불과 2년 전 자기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의 탄핵이 저렇게 감격스럽고, 가슴이 설레고 또 그리도 기쁜 일이 되는 걸까?  또 탄핵 후엔 누가 대통령을 할 것이며, 덕분에 망가지고 있는 나라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의문이다. 새로 뽑힐 대통령은 언제 또 누가 탄핵을 시킬 것인가? 거리에 또 국회 앞에 나와서 밤새 또 며칠씩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탄핵 농성을 하는 수십만의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이며 모두가 자기 돈으로 피켓 또는 싸인을 만들고 추운 날 많은 시간들을 투자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저들은 돈 많은 실업자들인가, 아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인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탄핵을 반대하는 무리의 사람들도 유튜브를 통해 볼 수가 있지만 주류 방송사에서는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언론의 힘이란 대단하고 정치를 하려면 언론을 등에 업고 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대로 흘러가고 또 순리대로 흘러가길 바라지만 다만 북한처럼 몇몇의 나쁜 사람들로 인하여 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한국 탄핵 사태를 보고 느낀 것이 많지만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의 갑자기 돌변한 행동의 진실이 뭔지는 몰라도 윤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고 믿던 이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이 나라에 지난 몇십 년을 살면서 한두 번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한 적이 있는데, 대게 남의 뒷통수를 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평상시에 아부와 아첨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며 막상 간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평생에 은인, 절대 은혜를 잊지 않을 것, 귀인을 만났다, 나의 팔자가 바뀌었다, 한없이 존경한다는 등 그야말로 간지러운 사람들이다. 직업상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런 부류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지만 막상 당하고 나면 억울하고 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보다 날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저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남을 배반하고 공갈, 협박, 모함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들의 처지가 참으로 치사하고 더럽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allellu
2024-12-20
질질 끌려간 믿음의 용사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바로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를 여호와의 은혜로, 그분의 언약에 따라 구출해 내는 이야기가 출애굽기다. 때문에 이집트 탈출기는 저주 받아 마땅한 속성을 갖고 태어난 성도들이, 예수의 피, 즉 유월절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이야기로 읽어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앞두고 모세를 불러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라는 내용인데, 바로왕의 억압 아래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그들에게 진짜 세상의 왕, 통치자가 누구인지 보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왕과 큰 차이가 없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6장)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5장2절)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6장 12절).   출애굽기 3장에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살던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3장 10~11절). 끈질기게 말씀하시는 여호와께 모세는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4장1절) 하고 핑곗거리를 찾는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고, 말 솜씨가 없고 등등.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는 관심이 없고, 애굽의 왕자에서 한순간의 사건 때문에 광야의 양치기로 전락해 살아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만 매몰돼 있었다.  모세가 계속 머뭇거리자 여호와께서는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시고, 그것을 잡게 하시며, 또한 손에 나병이 들게 하셨다가, 낫게 하시는 등 여러 이적을 보여주셨다. 그런 기적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떠서 땅에 부으면 피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고래심줄 같은 끈질김이라는 측면에서 모세도 여호와께 결코 지지 않는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4장10절~). 죽어도 못 간다고 버티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노하셨다. 그리고는 형 아론과 같이 가라고 말씀하신다.   아론과 함께 바로를 찾아가서도 모세의 마음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애굽에게 나가게 해 달라는 요청에 화가 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더 학대하기 시작하자 모세는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5장22~23절) 하고 불평했다. 출애굽기 6장에서는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라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모세의 전언을 들은 백성들은 출애굽기 4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에, 또 그분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신뢰하지 않는 데 백성들도 모세 보다 덜하지 않았다.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4장 30~31절). 여호와를 경배했다던 그들은 바로의 학정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자 곧바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 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5장 21절).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6장9절).   그러나 출애굽 사건이 복음의 핵심인 이유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불신과 관계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증명, 언약을 신실하게 이끌어 가시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으시다는 점에 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14장 4절)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4장 11~12절).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사람과 짐승까지, 모든 장자들이 죽는 유월절 사건을 경험하고도 홍해가 앞길을 가로막자 원망을 쏟아낸다. 차리리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뒀으면 더 좋았다는 탄식이다. 끝까지 믿지 못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간 제자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던 자들의 모습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런데 출애굽 당시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히브리서 11장 24~27절에 완전히 다르게 적고 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새번역) 출애굽기의 기록과는 딴판인 이유는 26절에 나타나 있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모욕, 수치, 치욕”이란 구절이다.  그것은 모세가 실제로 걸어갔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셔서 죄인들을 위해 당하신 고난이며, 몸소 받으신 모욕에 대한 이야기다. 그 느닷없는 구원의 과정에 모세는 피하고 내빼려 노력했지만 결국 휘말려 들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믿음과, 그분의 언약에 질질 끌려간 모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일하신 뒤에 모세를 ‘믿음의 용사’였다고 칭찬하고 있다. (사장/편집인)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WWW.AHAIDEA.COM
4065 CHESSWOOD DR. NORTH YORK, ONTARIO,M3J 2R8, Canada
info@ahaidea.com | ahaidea@gmail.com
Ahaidea
캐나다 daum.ca와 대한민국 daum.net은 관련성이 없습니다.
Copyright © 2024 AHAIDEA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