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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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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부동산캐나다 칼럼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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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im3000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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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8
2024-10-23
엄마의 목소리

 

엄마! 벚꽃이랑 자목련이 활짝 피었어요. 가로수마다 왕벚꽃이 가지가 휘게 매달렸네. 주홍색 철쭉도 폈던데, 우리 꽃 보러 나갈까? 엄마는 꽃 소식을 전할 때마다 왠지 심드렁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걸 환영하듯 고국은 몇 년 사이에 꽃 천국이 되어 있었다. 올해는 개나리와 벚꽃, 목련과 철쭉이 동시에 피었다고 했다. 긴 겨울 옷을 벗은 꽃나무들은 화사했다. 어딜 가도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펼쳐졌고, 꽃을 볼 때마다 집안에만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사진을 못 보시는 엄마, 지금 한창인 꽃 이름과 모양이라도 알려드리고 싶어 딸은 안달을 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겹벚꽃과 왕벚꽃이 파란 하늘을 떠받들고 있었고 바위틈마다 철쭉으로 붉었다. 
고국에만 오면 가속도가 붙은 듯 시간이 휘발된다. 엄마는 날짜를 마음속으로 꼽고 계셨는지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자, 갈 날이 며칠 남았느냐고 어린아이처럼 매일 물어보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년 만에 만난 엄마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아파트 단지를 두어 바퀴 도는 게 고작일 만큼 행동반경이 좁아져 있었다. 바깥나들이는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음식점에 다녀오시는 게 전부였다. 

 

외식하러 가는 길이었다. 눈이 시리게 만개한 벚꽃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묻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허옇게’ 지나간 게 뭐냐고. 나는 엄마의 그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말았다. 황반변성이 심하면 사람이나 사물을 윤곽으로만 파악하는데, 빛의 종류와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볼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이 곱디고운 봄꽃마저 보실 수 없게 됐구나. 어쩌면 내가 전해주던 바깥세상 꽃 이야기에 마음이 더 무거울 수도 있었겠구나. 창가에 앉은 동생이 말없이 차창을 열었다. 봄꽃 향기라도 들어오게 하려는 마음 씀씀이인지. 엄마는 안 보이는 눈으로도 연신 바깥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과거 어느 봄날 풍경을 상상 속에 더듬고 계신 것이었을까.
잘 보이진 않아도 들을 수는 있어서 매일 너랑 전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던 엄마 목소리가 바람처럼 귓전을 울리며 윙윙거렸다. 다시 창문이 닫히고 차 안에 밀도 높은 침묵이 들어설 때쯤, 운전하던 제부가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바꿨다. 그날 우리는 모두, 웃음 끝이 아팠을 것이다.

 

떠나려면 닷새 남았다.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안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사가 재미있어서 엄마가 즐겨 듣는다는 노래, '백 세 인생'이었다. 거실로 나오던 엄마가 선 채로 두 팔을 벌리더니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웃는 엄마 얼굴이 하회탈을 닮았다. 식사할 때만 틀니를 끼는 엄마가 틀니를 빼고 웃으니 영락없는 하회탈이었다. 덩실덩실 팔을 흔들다가 손목을 앞뒤로 꺾을 때는 제대로 배운 춤꾼 같았다. 넘어지실까 봐 불안하면서도 나도 일어나서 같이 흔들었다. 어깨에 흥이 실리자, 어설프지만 팔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처음으로 춰 본 엄마와의 춤. 이별을 앞둔 모녀의 춤이었다. 엄마 자궁에 있을 때 양수에서 흐느적거리던 몸짓이 이랬을까. 2분 남짓한 노래가 끝나자, 96세 등 굽은 노인의 춤도 멈췄다. 더운 피가 돌기 시작한 것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진 엄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 "내 나이는,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면 군소리 말고 따라가라는 나이인가 보다." 노래 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하회탈이 내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 소리가 알알이 부서져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떠나는 날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울컥거리는 감정을 애써 다잡고, 엄마와 나는 오전 시간을 용케 버텼다. 가는 뒷모습이라도 보려고 현관문을 붙들고 서 계신 엄마를 의식했는지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는 쉬지 않고 16층까지 단숨에 올라왔고, 타자마자 어느새 1층이었다. 차에 짐을 다 싣고 혹시나 하여 올려다본 하늘. 베란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양팔을 휘젓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엄마~~! 나는 남편과 함께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며, 까마득한 곳에 있는 엄마를 향해 두 팔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힘껏 흔들었다. 그때였다. 깊은 창자 끝에서부터 쥐어짜내어 끌어올린 듯한 격앙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잘 가게 임서바앙~~~! 잘 가라 영수야아~~~!"
가냘프던 목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카랑카랑한 소리가 되어 16층 아래까지 내려올 수 있는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위와 딸을, 이름이라도 한 번 더 부르고 싶으셨을까. 이별이 서러운 노모의 목소리를 불가사의하게 증폭시킨 것이 강렬하고도 처절한 모성애의 발현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목련꽃 지듯이 후드득 떨어지던 목소리는 나의 눈물보를 기어이 터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엄마는 딸의 눈물을 볼 수 없는 높이에 여전히 한 조각 구름처럼 떠 있었다.

 

14시간 비행 후, 집에 돌아와 전화기부터 집어 들었다. 긴 비행시간에 피곤하면서도, 나 살던 익숙한 곳에 돌아왔다는 편안함 때문인지 짐짓 씩씩해진 내 목소리에 비해, 엄마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래 잘들 갔구나!"라는 말이 "이제는 정말로 갔구나!" 하는 한숨처럼 들렸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주눅이 들어 소리 죽여 가만가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디선가 이명처럼 울리는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 

 

"잘 가게 임서바앙~~~! 잘 가라 영수야아~~~!"
오랜 세월 다하도록 나에게 달려왔을, 그리고 여전히 다가오고 있을, 엄마. 나의 어머니!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kim3000
김영수
118027
10288
2024-08-15
저항하는 꿈 앞에서

 

(전 문협회장)

 

한탸와 만날 시간이다. 나는 지하실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한탸라는 남자가 그곳에서 일한다. 그는 35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공장 노동자다. 희미한 전구 불빛 사이로 분쇄기와 압축기가 보이고 한 늙은 남자의 윤곽이 차츰 드러난다. 천장에서는 연신 책과 폐지가 뒤섞여 쏟아져 내린다. 쥐가 들끓고 먼지 가득한 공간, 그곳에 그가 있다.

책들은 분쇄되어 압축되면서 책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거대한 폐지 뭉치로 전락한다.

보흐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가 일하는 현장은 이보다 더한 곳이 있을까 싶게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게 그에게는 큰 기쁨이다. 그는 소음과 악취가 진동하는 공간에서 매일 책을 분쇄하고 압축하며 상사의 욕설과 다그침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운 좋게 폐지 더미 속에서 좋은 책 한 권을 찾아낼 때, 말 못 할 희열을 맛본다. 일하는 틈틈이 양서를 읽다가 집으로 가져가 수집하는 즐거움에 몸이 고된 줄도 모른다. 그렇게 원하던 책을 긴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읽다 보니 어떤 게 자기 생각이고 어떤 게 책에서 읽은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책과 하나가 되었다.

 

나의 내면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 그녀도 한탸처럼 책 읽기를 좋아한다. 독서가 삶의 중심인 한탸만큼 많이 읽지 못했고 그 남자만큼 교양을 쌓지도 못했다. 하지만 책은 그녀 삶에 위로와 치유와 은신처를 제공한다. 살아온 시간의 아름답고 빛나는 기억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슬프고 괴로운 시간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밀어낼 수 있는지 그녀는 알아가고 있다. 독서를 통해 화해와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분노와 좌절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견 없이 그녀와 내 생각이 하나로 모아질 때 나는 내 삶을 긍정하며 안도한다.

 

저만치 한탸가 보인다. 읽던 페이지를 펼친 채 한탸의 눈길이 한동안 허공에 머물고 있다.

나는 주춤주춤 다가가 그의 어깨 너머로 그 페이지를 흘깃거린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미래로의 전진’이라면 노자는 ‘근원으로의 후퇴’였다.’

이 몇 문장으로 오늘 밤 나의 사유 또한 끝없이 이어지리라. 작업장에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으며 삶의 순리를 이해하게 된 초로의 남자. 나는 명상에 잠긴 듯한 그를 남겨두고 계단을 올라 지상의 내 방으로 돌아온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지상의 현실과 지하의 환상이 공존한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언어가 있어 소통할 수 있듯이 한탸와 나는 계단을 통해 소통한다. 한탸는 책 속의 과거요 나는 현실 속의 현재다. 그의 집에는 이미 넘칠 만큼 책이 많지만 은퇴하면 압축기를 구입하여 계속 일하면서 좋은 책을 찾아 읽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어 마음이 아리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자신의 꿈은 이룰 수 없는 허상이었음을 한탸는 아프게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은 전진을 계속하는데 혼자 멈추어 서 있는다면 그건 멈춤이 아니라 후퇴다. 한탸가 지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 방식으로 일하면서 책 속에 빠져 지내는 동안 세상은 놀랍도록 변했다.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도록 발전한 바깥세상은, 그가 사용하던 기계와 비교할 수 없이 성능 좋은 최첨단 기계가 들어선 쾌적한 일터로 바뀌었다. 평생 꿈으로 존재하던 그리스 여행이 한탸에게는 책 속에서나 가능했지만, 풍요로워진 바깥세상에서는 보통 사람도 누리는 평범한 일이 되어 있었다. 35년이라는 세월은 세상을 그렇게 바꿀 수도 있는 거였다.

 

한탸가 일하던 폐지 공장은 문을 닫고 한탸는 다른 일터로 옮겨가게 될 거라고 한다. 책이 아닌 다른 폐지를 압축하는 곳이라는 말이 칼날처럼 아프게 파고든다. 책이 없는 삶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 그가 따라잡지 못할 만큼 앞서 달아나버린 바깥세상과 화해나 타협이 가능할지 그것도 문제다. 책과 함께하는 노후를 꿈꾸며 안이한 긍정 속에 허비한 세월이 원망스럽다. 자신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킨 세상과 타협하는 대신, 한탸는 책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마음먹는다. 자기가 평생 사용한 분쇄기 속으로 들어가 폐지가 되는 책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한탸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지 작가는 독자의 손에 남겨둔다. 그것이 책의 세계로 이동한 한탸의 선택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한탸가 지상으로 올라와 급변하는 세상의 궤도에 한 발을 얹고 오래 참았던 숨을 크게 몰아 쉬는 장면을 그려본다. 그에게는 독서가 숨을 트이게 하는 수단이었을 터. ‘시끄러운 고독’ 속에 질식할 것 같은 현실에서, 그는 ‘읽음’으로써 숨 쉬는 방법을 터득했으리라. 삶을 견디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한몫한 것은 결국 문학이 아니었을까.

그는 갔어도 그가 오랫동안 간직했을 꿈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어딘가에 여전히 머물고 있을 것만 같다. 희망이란, 마음에 품고 있을 때만 유효한 허상인가. 그는 달려가는 시간을 향해 묻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가 잡으려던 희망이 진정 있기는 있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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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im3000
김영수
115604
10288
2024-06-20
기억속에 핀 해바라기

 

나는 무슨 이유에서, 기회 있으면 이 영화를 다시 봐야지 하며 기다렸을까. 그건 아마 추억으로 자리 잡은 사랑에 대한 막연한 향수, 그리움에서 싹튼 기다림이었는지 모른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먹고 자란다. 슬픈 사랑 이야기에 눈물 흘리던 나의 젊은 시간도 어느새 아득한 곳으로 밀려가 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영화 <해바라기>에서 인상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끝없이 펼쳐지던 해바라기밭과 소피아 로렌의 우물처럼 깊은 눈빛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지 이름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전쟁이 사랑을 어떻게 비극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 알려준 영화가 내게는 <해바라기>였다.

영화는 드넓은 해바라기밭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젊은 남자와 한 여자의 기약 없는 이별, 그리고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조용한 이별이 더 아프다고 하던가.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던 지오반나라는 여인의 사랑이 해바라기밭에 진한 노란빛으로 일렁인다. 해바라기와 푸른 하늘의 절묘한 대비가 이미 감정이입이 된 관객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자신의 태양인 남편만 ‘바라기’하던 '해바라기' 여인.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이미지와 여성으로서의 섬세한 감정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소피아 로렌을 캐스팅한 감독의 안목이 놀랍다. 그녀만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으리라.

 

갓 결혼한 남편 안토니오를 전장에 내보내고 가슴 졸이며 무사 귀환을 빌던 아내 지오반나는 어느 날 비보를 전해 듣는다. 안토니오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노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그럴 리 없다며 그녀는 그의 전사를 부정한다. 소피아는 살아 있을 것만 같은 남편을 찾아 사진 한 장 들고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닌다.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 시체가 매장된 묘지에 이른 그녀. 과거 해바라기밭이었던 그곳에는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가 해바라기 숫자만큼이나 많이 꽂혀 있다. 혹시,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확인할 때마다 관객도 숨을 죽인다.

그녀를 떠올리면 오로지 태양만 바라보며 피고지는 소박한 해바라기꽃이 연상된다. 태양을 향한 그 맹목적인 사랑을 지키려는 그녀의 집념은 무섭도록 강인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안토니오를 만나게 되지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군부대에서 낙오되어 혹독한 추위에 기억을 잃고 죽을 뻔한 자기 목숨을 구해준 여성 마샤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 그토록 찾던 자기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있는 한 여자를 응시하던 지오반나의 표정. 절망으로 무너져 내린 가슴을 그 이상 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태양을 잃어버린 지오반나는 실성한 듯 고향으로 돌아와 그와의 감정을 정리하고 모든 추억을 어둠 속에 묻으려 한다. 기억은, 그리움이라는 회로를 따라 순환하다가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을까. 뒤늦게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가 그녀를 찾아오자, 잊힌 줄 알던 아픈 추억이 가슴을 헤집고 살아난다. 더는 젊지 않은 그녀도 이제 가정을 가진 여자다. 서로 다른 가정을 꾸렸다는 매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그와 그녀다. 우리 사랑은 여기까지구나, 하고 인정하며 체념으로 순응하기까지 인간이 견뎌야 하는 갈등은 얼마나 복잡하고 잔인한가.

결별의 아픔을 절절히 경험한 그들이었기에, 무겁고도 질긴 가족이라는 이름만큼은 지키기로 한 것일까. 멀어져 가는 안토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제된 듯 서 있던 소피아 로렌. 슬픔덩어리가 너무 크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이제 그녀도 귀밑머리가 희끗하다. 사랑을 찾아 헤매느라 청춘을 소진한 허무한 세월이 무연히 서 있는 그녀를 위로하듯 가만히 더듬고 지나간다. 떠나는 남자와 남겨진 여자 사이에 해바라기밭이 들어선다. 하나가 될 수 없던 그들. 그는 태양으로, 그녀는 해를 바라보던 꽃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온 것일까.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듯이.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밭에 또다시 전쟁이 들어선 지 일 년이 넘는다. 세상을 밝히던 빛과 색을 찰나에 지워버리는 전쟁은 모든 것을 무채색으로 바꾸어버린다. 되풀이되는 전쟁에 소중한 생명이 흩어지고 무고한 삶이 붕괴되며 가족도 가정도 의미를 잃고 있다. 오늘도 뉴스는 비관적인 전황을 전한다. 영상은 세 살배기 아들을 안아 들고, "아빠 곧 돌아올게"라며 얼굴을 비비는 젊은 아빠에게 초점을 맞춘다. 아들한테가 아니라 스스로 다짐하는 말 같아 나는 목이 멘다. 아들만 전쟁터에 내보낼 수 없어 자원입대했다는 초로의 남자가 화면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운명의 여신은 과연 저들을 평온했던 일상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까.

영화 <해바라기>에서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전쟁이라는 일그러진 욕망의 군화에 짓밟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아물지 못할 상흔이 되고 만다. 하지만 언젠가 해바라기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그 불변의 진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값있고 아름다운 사랑, 그 사랑 이야기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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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im3000
김영수
11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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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낙타가 울었다

 

사막에 해가 진다. 황야에 스며드는 어둠이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뭇 생명이 휴식에 드는 시간. 유목민 한 사람이 이동식 천막집인 게르에서 나오더니 어린 낙타를 줄에 붙들어 맨다. 태어난 지 며칠밖에 안 된 것이 밤 동안 길을 잃고 헤매면 어쩌나 싶어서다. 어미는 놔둬도 괜찮을까. 세상의 모든 어미는 어린 제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한다. 새끼만 단속하면 모성은 저절로 묶이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고 천륜이다. 어미는 멀리 가지 못하고 밤새 어린것의 곁을 지킬 것이다. TV 화면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도 어미의 밤샘에 동참하고 싶다.

 

동이 트면서 모래바람이 분다. 붉은 해를 등지고 서 있는 어미 낙타 다리 사이로 무엇인가 보인다. 새끼 낙타다. 어미와 새끼 낙타가 한동안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소 눈을 닮은 어미 낙타의 눈이 먼 기억을 더듬는 듯 허공을 향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것은 제 어미 몸에 머리를 비비며 응석을 부린다. 무슨 영문인지 어미는 새끼가 젖을 물지 못하도록 몸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어린것은 애절한 눈빛으로 어미를 응시하며 제 어미를 빼닮은 눈을 끔벅거리고 있다. 허기진 새끼 낙타가 다시 한 번 어미 품을 파고든다. 이번에도 어미는 거부의 몸짓을 분명히 한다. 순하디 순한 눈망울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 제 새끼에 대한 저 집요한 거절은 무엇인가. 난산의 기억 때문이라지만 어쩌면 어미로서의 삶 자체를 거부하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하던 출산 기억이 어미 낙타의 속눈썹에 내려앉아 시야를 가렸는지, 아니면 막막한 사막에서 어미로 살아갈 내일이 버거운 것인지. 주위는 숨소리조차 삼킨 듯한 적요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어미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어미가 어린것에게 젖 물리기를 거부하는 위태로운 시간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지켜보는 나는 침이 마른다.

 

어미 낙타의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것 같다. 난산으로 내 아이를 얻은 시간은 무거웠다. 무슨 이유로 물 마시는 게 금지됐는지 몰라도 하루를 넘는 진통 시간 동안, 나무토막처럼 마른 혀가 입안에서 덜거덕거리던 기억은 꿈속에서도 갈증을 불렀다. 내 옆에 눕힌 아기 머리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뾰족했다. 그게 낯설어 나는 다른 산모들처럼 내 아이를 선뜻 받아 안지 못했다. 출산할 때 아기 머리가 보일 무렵 정신을 잃어서 아기를 흡입기로 뽑아냈다는 걸 며칠 지나서 알았다. 진통하는 시간의 터널을 같이 건너온 어린 생명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제 어미와 생사를 함께한 아기를 안고 마음 저리던 느낌은 세월에도 퇴색하지 않고 꿈틀거린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는 꿈을 버리지 못한 영혼처럼, 어미 낙타의 눈빛이 외롭게 흔들린다. 어미의 거부 의지가 저리 확고하면 머지않아 새끼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새끼를 살려야 하는 주인은 어미 낙타의 마음을 움직여줄 연주자를 부르기로 한다. 머리 부분이 말머리 모양이라서 마두금(馬頭琴)이라 불리는 악기는 자그마한 직사각형 울림통에 두 줄이 달린 유목민 전통 현악기다. 구슬픈 곡조가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고요한 사막에 울려 퍼진다. 모든 것이 지워진 공간에 하늘과 낙타와 음악 소리만 존재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미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낙타가, 울고 있다. 눈 아래 털을 적시며 흐르던 굵은 눈물방울이 모랫바닥으로 툭, 툭, 떨어져 내린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결코 우연일 수 없는 눈물이다. 애절한 음악에 감동하여 우는 동물을 보며 주인과 연주자가 내쉬는 안도의 숨이 다큐멘터리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하다. 은닉해 있던 어미 낙타의 모성이 음악과 교감하여 눈물로 승화한 것일까. 곁에서 남의 새끼가 굶어 죽어도 자기 젖을 내주지 않는 비정한 낙타라지만, 마두금 연주에 감동하면 눈물 흘리며 젖을 물린다니.

 

주인이 새끼 낙타를 데려온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어린것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눈물 떨구는 어미의 젖을 불안한 듯 두려운 듯 더듬어가며 문다. 어미는 젖은 눈으로 조용히 새끼를 받아들인다. 그토록 배타적이던 사랑과 화해하는 장면에, 나는 내 아이를 품에 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컥한다. 연주자의 손에서 풀려 나오는 악기 소리, 그건 해독할 수 없는 신비였다. 그 소리는, 동물의 감성을 어루만지던 영상 속의 시간마저 울리는 힘이 있었다.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사막은 침묵하며 모래바람을 부른다. 바람이 훑고 가는, 길 없는 길을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걸어갈 것이다. 어떤 이는 막막한 사막에서 모래바람의 노랫소리를 들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낙타의 눈물을 기억할 것이다. 구도승처럼 끝없이 걸으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낙타의 행보에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죽음에 드는 순간까지 저마다 숙명처럼 짊어진 삶의 하중을 견디면서 묵묵히 걷는 인간의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오늘처럼 내일도 낙타는 제 몸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걷는 일을 멈추지 않으리라. 모래바람이 불어와 어제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그곳 광활한 사막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기며 끊임없이 걸어갈 것이다. 인간도 낙타도, 그 뒤를 따르는 눈물로 키워낸 어린 생명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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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1538
10288
2024-01-11
시계의 숨소리가 들려

 

시계를 그린 화가가 있다. 화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시계 세계를 조용히 흔들고 있다.
정물화도 풍경화도 아닌 추상화, 아니면 그 세 가지를 합해 놓은 그림 같기도 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 ‘기억의 지속’을 보고 있다. 축 늘어져서 나뭇가지와 사물 위에 걸쳐 있는 구불구불한 타원형 시계는 섬뜩한 부드러움이다. 현실을 벗어난 그림 속의 황량하고 권태로운 시간마저 녹아내리게 하는 그 힘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림이라는 공간에 갇혀있는 시계를 구불거리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 자체일까. 어떤 형태로든 삶은 계속되듯이 시간의 흐름 또한 영속적이다. 의식의 시간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흐른다. 그림 속 시계들은 각자의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이미 시계로서의 의미를 잃은 기이한 이미지 안에, 축적된 삶의 기억이 일부는 편집되고 일부는 망각된 채로 존재한다. 감상해야 할 그림이 아니라 풀어야 할 수수께끼 같다. 정지된 시간을 은유하는 시곗바늘에서 나는 어찌 흐릿한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 것일까.
그의 그림은 지워버리고 싶던, 정지된 채 지나간 내 시간을 들춰내려는 듯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던 시간, 흐늘거리며 무너진 내 몸과 나의 정신마저 옭아맸던 시간의 원형이 그대로 그림에 재현되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몇 걸음 움직이다가 그것도 숨이 차서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어쩌면 더는 가지 못하고 그대로 영영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시간이 눌어붙은 형상처럼 보였다. 그건 아마 내게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담당 의사는 나에게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하며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고 다행히도 의사는 20초쯤 되었을 그 영겁 같던 시간을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눈빛 너머의 의미를 읽을 용기도 없었지만,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게 차라리 위안이 되었다. 막상 수술하는 날은 담담한 심정이었어도, 그것이 치료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내 삶 전체가 기우뚱하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 이어진 중력을 잃은 듯 부유하는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내 생의 페이지를 채워갔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도망치고 싶던 무렵, 녹아내리는 시계가 ‘기억의 지속’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타의에 의해 그림 속에 억류된 또 하나의 녹아내리는 시계였다. 내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나와 비슷한, 움직이지 못하는 시계들이 즐비했다. 세상에 고장 난 시계가 그리 많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 나는 처음 보는 낯선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 세계에 던져지던 순간 나는 내 목소리를 잃었다. 재깍거리며 활기차게 행보하던 내 안의 초침 소리가 멎은 것이다. 나의 모든 기억은 거기에서 멈췄고 더는 지속하지 않았다.
‘기억의 지속’이라는 그림 속에서, 나의 삶은 ‘지속’이 아니라 내가 관계 맺고 있던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의 힘이란 묘한 것이어서, 그 그림 속에 머무는 동안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의 풍경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언어를 익힐 수 있었다. 상흔이야 남겠지만 살아서 나오려면 그래야 했다.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마음을 당기는 내밀한 힘에 기대어, 언젠가는 그림 밖으로 나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나왔다.
내가 어떻게 그림 밖으로 나왔을까.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기어 나올 때 그림 안팎의 경계에 있던 다른 시계들은 숨죽이고 나를 지켜보았다. 침묵이라는 불안한 희망이 먼지처럼 떠다니는 그곳에서 그들이 보여준 독특한 반응이었다. 내가 그 세계를 떠난다는 것 그 이상을 그들은 알려고 들지 않았고 나도 알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그림 속의 공간을 벗어나면, 내 안의 시계가 재깍거리며 다시 규칙적인 숨을 쉬기 시작하리라는 것, 나는 그것을 희원하기도 벅찼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물리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심리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도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구불거리는 곡선이기 때문이다.
심리의 시계와 주관의 시계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느리게 또는 빠르게, 부드럽게 또는 날카롭게 흐르도록 조정한다.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할 때, 몸은 물론 정신의 허기와 갈증을 못 이겨 허덕거리던 시간이 유난히 더디고 둔탁하게 느껴졌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어지러우리만치 빨리 지나갈지도 모른다.
어두운 시간의 터널을 빠져 나오자 비로소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똑딱거리는 숨소리를 토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사라진 것 같던 정적에서 내가 정말 벗어났는지 확인하고 싶어 내가 없는 동안 달라졌을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 세상을 전보다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어두운 세상에 던져져서 비록 가슴 쥐고 아파하던 시간이었어도, 아픔 끝에 얻은 것도 있으니 그러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세상의 모든 아픈 시간은 그러면서 지나가는 것이라고. 이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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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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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아버지의 노래

 

 막상 송년회에 나가려니 설렜다. 송년 모임이라야 평소에 먹던 음식에 요리 몇 가지 더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고작인데 왜 가슴이 뛰는 걸까. 올해 마지막 모임이고 특별한 날 같아, 색다른 브로치로나마 변화를 주면서 혼자 웃었다. 수필 쓰는 문우들과 함께 웃고 울던 한 해를 보낸 후 맛보는 일탈을 기대했는지.

 음식 접시가 치워지고 커피가 나오자 달뜬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두꺼운 선곡집을 펼쳐 놓으니 막막했다. 내가 얼마나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는 걸까. 그동안의 내 삶이 그만큼 메말랐다는 의미 아닌지. 얼른 한 곡을 고르고 옆 사람에게 넘겨야 할 텐데. 이 많은 노래 중에 아는 제목 하나 못 찾나 싶었다.

 다른 이들의 노래를 듣다보니, '글이 곧 사람'이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부르는 노래들이 평소에 쓴 자신의 글을 닮은 것 같았다. 즐겨 듣거나 부르는 노래로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품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면 비약일까. 어떤 가수의 노래를 여러 곡 듣다 보면 그만의 성정을 엿볼 수 있듯이. 평소에 즐겨 보는 영화나 책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이 두어 곡씩 불렀다. 내가 선곡한 마지막 곡은 패티 페이지의 'Changing partners'였다. 앞에서들 팝송을 부르기에 나도 그래 볼까 싶어서 무심히 고른, 대학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였다. 그런데 그 곡을 부르면서, 그게 나의 친정아버지 노래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민 올 때 엄마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주문한 가구가 도착하지 않은 집은 앉을 의자 하나 없이 썰렁했다. 딸네 식구가 살게 될 집을 잠시 둘러보러 오신 아버지는 스산한 타국생활을 짐작하신 듯 별 말씀 없이 며칠 동안 뜨거운 커피만 연거푸 드셨다. 짐 정리할 때 지하실로 내려다 놓으려던 노래방 기기만 텅 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뭐냐?" 그리울 때 노래라도 우리말로 부르려고 한국서 사 온 것이라는 내 설명에, "그러냐, 그럼 어디 노래 한 곡 불러볼까?" 하셨다.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신다고? 엄마도 의외라는 얼굴이었고 남편은 코드를 꽂으면서도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다. 평소에 모였을 때 노래를 부른 적이 없던 우리에게 아버지의 그 제안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어떤 곡을 틀까요?" 아버지가 원하는 일본 노래는 선곡집에 들어있지 않았다. 일본 가요가 없다는 말에, 아버지 눈동자에 서운함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말보다 일본말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를 사셨으니 그 시절의 정서로만 풀어낼 수 있는,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내가 어떤 노래 좋아하는지 너, 알아?" 가슴이 뜨끔했다. 아버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던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서 듣고 부르는 데 익숙했지 다른 사람과 같이한 경우는 드물었다. 식구들이 몇 번 노래방에 다같이 가서 노래한 적은 있어도 그 기억의 공간에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본 가요가 없으면 패티 페이지 노래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다. 곡명은 'I went to your wedding'과 'Changing partners'. 그 노래를 부르신다고? 나도 가끔 듣던 노래여서 반가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곡을 좋아하신다는 걸 나는 어찌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이면에,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수한 내면이 어둠에 가려있었는지도 몰랐다. 가까이 살면서도 기나긴 세월 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무심했던 시간. 이제 와 그 사실을 알게 된들 어쩌라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자잘한 가시가 되어 마음을 연신 건드렸다.

 아버지는 두 곡을 차례로 불렀다. 여든을 바라보는 은발의 노인이 중저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잘 부르지는 못 해도 감미로웠다. 두 번째 곡을 부를 때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영화 같은 로맨스가 실제로 있던 게 아닐까 싶어 슬그머니 엄마 얼굴을 훔쳐보았다. 나는 필요 이상 감정이입이 되면서 감상에 젖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온 내가 아버지의 노래를 언제 또 들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그게 아버지가 들려준 마지막 노래가 아닐까 싶어서.

 우리 집에 다녀가신 지 석 달만에 아버지는 먼 길 떠나셨고, 정말로 그 노래는 아버지 생전에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가 되고 말았다. 'Changing partners'. 내가 오늘 송년 모임에서 그 노래를 부른 게 우연이었을까. 마치 꿈속에서처럼,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건 '아버지의' 음성으로 듣고 싶은 '아버지의' 노래였으니까. 그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천상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허공에서 그분을 만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김영수. 2002년 캐나다 이민, 2006년 캐나다한인문인협회 신춘문예 등단(수필), 수필집 <어느 물고기의 독백>외. 수필선집 <하얀 고무신>. 수상 현대수필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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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마음에도 청소를


                                                                             
 봄이 오면 토론토는 영락없는 쓰레기 천국으로 변한다. 흰 눈에 덮여 마냥 깨끗해 보이던 야트막한 언덕과 잔디가 눈이 녹으면서 초록빛이 돌기가 무섭게 쓰레기들이 얼굴을 내민다.    


 토론토 외곽에 있는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던 중 ‘지역사회 청소의 날’에 관한 안내문을 받았다.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정돈된 깨끗한 환경 속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는가 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시간에 맞춰 지정 장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미 공원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냥 각자 쓰레기를 주우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어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괜히 무언가 허전해서 멍하니 서 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럴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허전함,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원 한 가운데 자그마한 천막을 쳐놓고 자원 봉사자들이 장갑과 쓰레기 봉투를 나누어주고 있다. 비닐로 된 쓰레기 봉투는 생각보다 커서 바닥에 대고 들어보니 거의 내 가슴까지 올라온다. 다섯 동네가 동시에 치르는 행사에 봉투 1,000개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책로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은 우리가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길 양옆으로 이어진 풀섶 곳곳에 플라스틱 병과 종이컵, 과자 껍질 등 일회용품들이 숨어 있다. 저만치서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줍고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놀이나 하듯 밝은 표정들이다. 


 한 시간쯤 지나니 봉투 하나가 다 차서 지정 장소에 갖다 두고 이번에는 강 쪽으로 올라갔다. 강이 굽어지는 으슥한 곳에 쓰레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봉투가 모자랄 것 같아 우선 순위를 매겨보았다. 종이나 천 조각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썩겠지만 비닐과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100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썩지 않는 것부터 줍기로 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지정된 장소에 버리는 습관을 교육시키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면 일부러 시간과 인원을 들여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캐나다에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정에 도덕과목이 따로 없다는데 환경 교육은 어떻게 하는 걸까, 부모의 역량에 의존할 뿐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백발의 노부부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들 얼굴에 번지는 편안한 미소를 보자 솟아나던 의구심도 잠시 잊고 청소에 열중하게 된다.


 보이스카우트 아이들이 새로 조성된 언덕바지에 묘목을 심고 있다. 물 차가 와서 물을 공급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심은 나무에 물을 주며 땀을 식힌다.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고서야 나는 아까 공원에서 처음에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생각해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활동을 할 때면 늘 시작이 거창했다. 현수막이 걸리고 확성기가 동원되고 지역 인사들의 격려말씀에 이어 구호가 담긴 어깨띠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왁자지껄하게 흩어지며 활동을 시작하면 주최측에서는 실적을 보고하기 위해 현장을 따라 다니며 사진을 찍던, 그런 형식을 갖춘 행사가 내 뇌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절차가 없어서 그렇게 허전했나 보다.


 누가 어디서 얼마만큼 일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각자 흩어져 묵묵히 땀 흘리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거나 실적을 위한 요란한 행사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주최측은 일회용품이 아닌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참가자 모두에게 소리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봄이 들려주는 새 생명의 행진곡을 들으며 내 마음도 청소를 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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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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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잠시 만난 젊은 봄빛

 

 


                                                                 
세탁기가 돌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술렁거림을 지켜보고 있다. 젖은 옷들이 서로 붙어 엉긴 채 소용돌이친다.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날 듯 두 팔로 바지를 부둥켜 안고 뿌연 구정물 속에서 안간 힘을 쓰는 것이 보인다. 빙빙 도는 공간에서 함께 휘둘리던 바지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풍선처럼 부풀리더니 잔뜩 들러붙어 있던 셔츠의 가슴팍을 한쪽 바짓부리로 한 방 걷어찬다. 


 “저런!” 나는 깜짝 놀라 빨래들을 의인화시키며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생각지 못한 급습에 목 부분이 뒤로 꺾어질 듯 젖혀졌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셔츠의 모습이 느린 영상으로 전개된다. 젖어서 더 길어진 티셔츠의 팔이 매달릴 곳이라곤 바지자락밖에 없나 보다. 권투경기에서 몸이 휠 만큼 충격적인 강타를 당하고 나서 상대방 선수의 몸을 부둥켜 안는 것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장면을 닮았다. 폭력이나 피를 부르는 행동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졸였던 가슴을 풀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아예 세탁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다란 괴물의 눈알 같아 보이는 세탁기의 둥근 유리창 바깥에서 지켜보던 나는 마치 누군가의 팔이 내 다리를 꽉 끌어안고 있는 느낌에 불편해졌다. 내게까지 전염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끈적끈적함을 털어내려고 진저리를 치면서, 세탁기 속의 바지를 흉내 내어 한쪽 다리를 오므렸다 힘차게 뻗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 몸을 빼내지 못했다. 자유롭기에는, 내가 세탁기 세상에 너무 깊숙이 관여했나 보다.


‘세탁’에서 ‘헹굼’으로 바뀌면서 빨래들 사이에도 조금 여유가 생긴다. 탁한 구정물에서 맑은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악스럽게 무엇엔가 매달려야 했던 셔츠의 팔들이 넉넉한 물 흐름을 따라 제풀에 풀어져 흐늘흐늘 자유롭게 유영한다. 나의 호흡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지 한결 느리고 깊어진다. 소용돌이 후의 기진맥진함으로 빨래들은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있다.  

 
‘헹굼’에서 ‘탈수’로 이어진다. 헹굼보다 몇 배로 가속이 붙은 세탁기는 세상을 뒤집을 기세로 몸통을 요란스럽게 흔든다. 원심력에 몸을 내맡기고 현기증으로 의식을 놓은 듯한 건, 빨래나 지켜보는 나나 마찬가지다. 세탁기라는 세계의 중앙을 차지하고 유유자적하던 몸들이 탈수를 거치자 숨을 쉴 틈조차 없이 서로 밀착되어 가장자리로 밀려가 납작 엎드려있다. 비록 몸피를 줄여 왜소해 보이기는 해도 홀가분해진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빤 것 같아 상쾌해진 기분에 얼른 빨래들을 세탁기에서 꺼냈다. 요즈음은 해가 좋아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지 않고 빨래대에 널어서 말린다. 하나씩 집어서 털어 너는 과정에서 나는 좋든 싫든 빨래들과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서로 뒤엉켜 들러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며 때로는 묘한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남자 팬티가 보인다. 남편 것이다. 처음 세탁기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큰 소리치며 한껏 부풀어 있던 것이 탈수를 마치고 나오자 어린아이의 것처럼 쪼그라든 채 내 손바닥도 넓다는 듯 오롯이 앉아있다. 나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도 그 왜소함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무력함마저 읽은 것 같아 가슴이 짠해온다. 어쩌면 그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세탁’에서 ‘헹굼’을 지나 ‘탈수’를 거치는 삶과의 투쟁에서 그의 몸 속에 지녔던 기(氣)를 죄다 빼앗겨 저리 조그맣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러 팽팽하게 부풀리고 싶었을 자존감이, 세월이 들이댄 바늘 끝에 흐들흐들 무너져 작아진 것을 보고 나는 어쩌자고 순간적으로라도 간지러운 희열을 느꼈던가. 지칠 줄 모르고 언제까지라도 뿜어낼 것 같던 마력이 쇠진해버린 텅 빈 공허를 목격한 느낌, 아내인 내 마음인들 편할까마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쪼그라든 팬티를 탁탁 소리가 나게 털어 허겁지겁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려 놓는다. 두 손으로 양쪽 끝을 붙잡고 펼쳐보니 생각보다 커진다. 나는 몇 번 더 털어서 바람을 넣어 한껏 부풀린 채로 조심스럽게 널어놓는다. 빨래대 위에서 아직도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는 그것은, 본래보다 더 싱싱하고 튼실한 빛을 띠고 있다. 삶의 꿈결 같던 젊은 봄빛을 잠시 만나고 나니 비로소 마음 놓고 느긋한 웃음을 내놓게 된다.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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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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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기억의 꽃은 피고지고

 

 

 <Away From Her>는 기억력의 파괴로 차츰 인격을 내려놓게 되는 질병인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삼은 영화다. 캐나다의 겨울을 상징하는 끝없이 펼쳐진 눈밭에서 노부부가 스키를 타며 계절을 함께 보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부부로 정을 쌓아가는 일상을 담담한 스케치로 보여준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 속에 담긴 그들 삶의 모습이 지루하다기보다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아내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비정한 바람이 몰아치자 평화롭던 그림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면서, 기억의 꽃들은 마치 무지개를 헝클어놓은 듯 엉켜버린다. 영혼의 창을 밝히던 불들이 하나씩 꺼짐을 의식한 그녀가 자신을 전문 요양원에 맡겨 달라고 말할 때 망연히 굽어보던 남편의 눈동자를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요양원의 규정상 처음 한 달간 환자가 적응하는 기간에는 면회가 금지된다. 아내와 하루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그는, 그녀의 체취만 남은 텅 빈 집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기간이 아내가 남편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밀어낼 수도 있는 시간이었음을 누군들 짐작했을까. 


 놀랍게도 아내는 요양원에서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키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매일 찾아가 낯설어지는 아내를 지켜보는 그의 인내가 아슬아슬 위태롭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 병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아닌 ‘환자 자신에게도 고통이고 아픔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로 사귄 연인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함께하는 아내에게 때로는 소외감으로, 때로는 질투심으로 남편은 괴롭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던 책을 반복하여 읽어주고 이제는 퇴원한 ‘아내의 애인’을 다시 만나게끔 주선하는 남편의 초인적인 노력 앞에서도 병마는 거만한 웃음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병세가 깊어진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잠시 기억을 되찾아 “당신은 나를 버릴 수도 있었는데,” 라며 남편을 껴안는 것으로 아픈 사랑을 마무리한다. ‘당신을 만났던 첫 순간 당신의 손에서 전해지던 따스한 촉감을, 진정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 바로 어제의 일만 같아요’ 하는 ‘Only Yesterday’ 곡이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정을 키우고 그 못지 않은 운명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온 노부부. 아내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진 남편의 시각으로 전하는, 젊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아릿하다. 작가는 젊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젊은 사랑’에서 노부부의 ‘묵은 정’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사랑과, 관계와, 함께 가꿔온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만큼 차분한 톤으로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진 노부부의 삶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표현을 절제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있는 그대로를 겸허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운명과 맞서는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신적인 존재에 간절히 의지하기도 할 것이다. 의지로 운명을 꺾을 수 없다는 것쯤이야 모를 나이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년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했다. 


 쓸쓸함을 견디는 일, 그것이 노년이 아닌가 싶었다.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이나 고독은 조바심 치거나 엄살을 부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한없이 작기만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연하게 견디며 화해하는 길임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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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im3000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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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좋았을까



 제각기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특별히 맛있게 먹던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엄마의 손맛’ 하면 우거지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엄마는 요리가 아닌 늘 먹는 평범한 ‘반찬’을 만드셨고 ‘별미 요리’는 손수 요리하기를 좋아하신 아버지가 만드셨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어 내 차례가 올까 봐 마음을 졸였다. 


 기다리던 외식나들이가 엄마의 완강한 고집에 부딪히는 건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엄마는 내 반찬은 있으니 걱정 말고 나가서 맛있게 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반찬이란 별 것도 아닌, 별 것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모를,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는 우거지 찌개였다. 

 ‘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그렇게 좋았을까?’ 문득 의문이 생긴 건 결혼을 하고도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였다. 그날은 어쩌다 신 김치가 남아있어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가며 우거지 찌개를 만든 날이었다. 코를 틀어막고 이게 무슨 냄새냐며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찌개그릇을 밀쳐놓는데 문득, 어릴 적 밥상에서 천대받던 엄마의 우거지가 환영(幻影)처럼 떠오른 것이다.


 우거지는, 버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가난한 시대를 살며 어쩔 수 없이 터득하게 된 조리법일지 모른다. 요즈음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지만 우거지를 떠올리면 우중충한 색깔만큼이나 서글퍼지는 이유는 궁핍과 결핍의 소산물 같아서다. 그런데도 그 맛이 우물 속처럼 깊은 것은 아마 시린 추억과 곰삭은 세월의 맛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를 먹다먹다 시어터져 허연 골마지가 앉을 때쯤 며칠간 찬물에 우려낸 후 된장과 멸치가루를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끓이면 묘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웅숭깊은 맛을 내는 토속적인 우거지 찌개가 된다. 그 냄새 때문에 서로들 밥상에서 가장 먼 구석자리로 밀쳐놓으면 엄마는 말없이 가만히 당겨다 놓곤 하셨다. 그렇게 길들여진 식성 덕에 엄마의 솜씨 중에서도 가장 촌스럽고 냄새 나던 그것이 때로는 그렇게 그리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거지를 내 반찬이라며 외식나들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고등어를 구웠다. 세 식구가 먹기에는 한 마리면 충분했다. 삼등분한 고등어 토막을 앞에 놓고, 주저하며 선뜻 젓가락을 옮기지 못하고 망설였다. 남편과 아들 접시를 번갈아 보며 살이 가장 많은 가운데 토막을 어디에 놓을까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을 들여다보기나 한 듯 남편이 슬그머니 꼬리 쪽을 집어갔다. 아들 표정을 흘깃 바라다보았다. 의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니 뭐 그런 사소한 것에 그리 마음을 쓰냐는 듯한 무심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아들이 내 나이쯤 되어 누군가의 아비 자격으로 식탁에 앉은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가 그랬듯이, 제 아이의 숟가락에 토실한 살점을 얹어주고 저는 말없이 꽁지 부분을 집어가는 아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사랑은 그렇게 대물림 되어갈 것이다. 


 “엄마는 머리부분이 정말 맛있어요?” 하고 묻는 아들의 말에 나는 어릴 적 엄마와 앉았던 밥상머리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굴비를 구우면 대가리는 늘 엄마 차지였고 우리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굴비가 귀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밥상에 여러 마리가 놓여 있어 다음 끼니까지 먹게 되는 한이 있어도 엄마는 한사코 살점에는 손을 대지 않으셨다. 뼈까지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한 단물이 나온다며 살이라고는 없는 머리부분을 처량하리만치 알뜰히 드시던 기억에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놓고 만다.


 내가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온 가슴을 송두리째 내주던 우리 어머니 세대만큼 치열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 어머니의 흉내를 내보기는 해도 나는 입술로 사랑을 주는 ‘요즈음’ 엄마이고, 내 몸의 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받기만 하는 자식들에게 이유도 없이 고마워하고, 잘못한 것도 없이 다 ‘에미 탓’이라며 미안해 하는 그런 사랑을 요즈음 세상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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