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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면 토론토는 영락없는 쓰레기 천국으로 변한다. 흰 눈에 덮여 마냥 깨끗해 보이던 야트막한 언덕과 잔디가 눈이 녹으면서 초록빛이 돌기가 무섭게 쓰레기들이 얼굴을 내민다.    


 토론토 외곽에 있는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던 중 ‘지역사회 청소의 날’에 관한 안내문을 받았다.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정돈된 깨끗한 환경 속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는가 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시간에 맞춰 지정 장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미 공원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냥 각자 쓰레기를 주우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어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괜히 무언가 허전해서 멍하니 서 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럴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허전함,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원 한 가운데 자그마한 천막을 쳐놓고 자원 봉사자들이 장갑과 쓰레기 봉투를 나누어주고 있다. 비닐로 된 쓰레기 봉투는 생각보다 커서 바닥에 대고 들어보니 거의 내 가슴까지 올라온다. 다섯 동네가 동시에 치르는 행사에 봉투 1,000개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책로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은 우리가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길 양옆으로 이어진 풀섶 곳곳에 플라스틱 병과 종이컵, 과자 껍질 등 일회용품들이 숨어 있다. 저만치서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줍고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놀이나 하듯 밝은 표정들이다. 


 한 시간쯤 지나니 봉투 하나가 다 차서 지정 장소에 갖다 두고 이번에는 강 쪽으로 올라갔다. 강이 굽어지는 으슥한 곳에 쓰레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봉투가 모자랄 것 같아 우선 순위를 매겨보았다. 종이나 천 조각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썩겠지만 비닐과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100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썩지 않는 것부터 줍기로 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지정된 장소에 버리는 습관을 교육시키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면 일부러 시간과 인원을 들여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캐나다에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정에 도덕과목이 따로 없다는데 환경 교육은 어떻게 하는 걸까, 부모의 역량에 의존할 뿐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백발의 노부부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들 얼굴에 번지는 편안한 미소를 보자 솟아나던 의구심도 잠시 잊고 청소에 열중하게 된다.


 보이스카우트 아이들이 새로 조성된 언덕바지에 묘목을 심고 있다. 물 차가 와서 물을 공급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심은 나무에 물을 주며 땀을 식힌다.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고서야 나는 아까 공원에서 처음에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생각해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활동을 할 때면 늘 시작이 거창했다. 현수막이 걸리고 확성기가 동원되고 지역 인사들의 격려말씀에 이어 구호가 담긴 어깨띠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왁자지껄하게 흩어지며 활동을 시작하면 주최측에서는 실적을 보고하기 위해 현장을 따라 다니며 사진을 찍던, 그런 형식을 갖춘 행사가 내 뇌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절차가 없어서 그렇게 허전했나 보다.


 누가 어디서 얼마만큼 일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각자 흩어져 묵묵히 땀 흘리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거나 실적을 위한 요란한 행사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주최측은 일회용품이 아닌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참가자 모두에게 소리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봄이 들려주는 새 생명의 행진곡을 들으며 내 마음도 청소를 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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