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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우리 시대의 비극

 현대사회를 일컬어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한다. 손바닥 안에 있는 전화기에 몇 자를 처넣기만 하면 세상의 온갖 지식과 정보들이 금방 쏟아져 나온다. 그 조그마한 기계 속에 웬만한 도서관보다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사전이나 지도책, 전화번호부는 물론이고 수만 권의 장서도 필요가 없어졌다. 불과 1-2십 년 전까지도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인터넷과 유튜브 덕분에 누구나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이다.

 요즘 나는 중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중국계 캐나다인 잰 웡이 쓴 ‘레드 차이나 블루스(Red China Blues)’란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맥길대학을 다니던 1972년 모택동 사상에 매료되어 중국 당국에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마침내 비자를 받아 공산화된 중국에 유학한 최초의 서방국가 출신 학생 두 명 중 한 명이다.

한창 감수성과 지적 욕구가 강하면서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인 대학 초년생이었던 열아홉 살의 저자가 ‘사회주의 천국’에 대한 환상에 젖어 마침내 그 ‘천국’으로 직접 들어가서 노동자계급 ‘동무’들과 같이 섞여서 땀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며 자신 속에 마지막 남아 있는 브르죠아 근성을 말끔히 씻어낼 기회를 잡았다고 흥분해서 여행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이 후 북경대학에서 유학 중에 겪었던 일들과 나중에 신문사 특파원으로서 목격한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자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접시물보다도 얕은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스스로 대단한 지성인인 듯한 착각에 빠져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 같은 책들을 가슴 두근거리는 충격을 안고 읽어 내려갔던 대학 초년생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 그 책 내용 중에는 서방 언론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있었다. 북경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자기의 꿈같은 북경 생활을 자기 혼자 누릴 게 아니라 서방세계에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잰은 미국의 대표 신문사 세 군데와 캐나다의 한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북경대학에서의 생활을 알리는 기사를 써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중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신문사에서는 기사를 보내주면 수정 없이 실어주겠다고 바로 답이 왔다.

이어서 뉴욕에 있는 신문사에서도 답이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건 내용의 정확성입니다. 절대적으로 편견도 없고, 당국의 검열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지도 못 하고, 당신의 신뢰성에 대해 더 조사해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을 더 이상 진행하기는 곤란합니다.”

워싱턴과 캐나다 신문사에서는 아예 답이 오지 않았다. 뉴욕에서 날아온 답장에 기분이 상했던 잰은 결국 아무 매체에도 기사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소련과 중국을 각각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라 부를 정도로 공산권 국가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장막 내부에 직접 들어가 살고 있는 서방국가 출신 대학생이 보내오는 생생한 스토리는 누가 보더라도 대형 특종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신문사는 그 내용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그렇게 거절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4년 3월 12일 뉴욕 맨해튼에서 대형 아파트 폭발 붕괴사고가 터졌다. 사고가 나자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매체 웹사이트들은 시시각각 올라오는 속보와 긴급 뉴스들로 도배질이 되었다. 사고가 난 아파트는 위에서 언급한 뉴욕 소재 신문사의 본사에서 채 20분이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언론사인 이 신문은 사고가 발생한 즉시 20여 명의 취재인력을 투입해 취재에 나섰다.

그럼에도 이 신문이 ‘뉴스속보’란 이름으로 건물 붕괴 소식을 처음 전한 건 사고 발생 후 1시간 45분이나 지난 이 날 오전 11시 16분이었다. 오후 들어서도 관련기사는 3개가 고작이었고, 저녁에 다섯 개로 늘었다. 그 즈음에는 이미 한국 언론들조차 웹사이트에 관련기사를 3-6개씩 올려놓은 뒤였다. 당시 이 신문의 편집국장 질 에이브럼슨은 거의 사흘 밤낮을 회사에 머물며 정확하게 확인된 기사만 내보냈다. 덕분에 속보경쟁속에서 몇 건씩 오보를 내보냈던 대부분의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이 신문은 한 건의 오보도 내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디에서나 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론매체를 통해서 파악하고 이해한다. 요즘은 신문, 방송, 잡지 등 전통적인 형태의 언론매체 외에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예전에는 신문 한 두개만 읽으면 대충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었는데,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게 되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다 못해 쓰나미로 밀려들지만 정작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정확하고 믿을만한지 판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다 보니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가짜와 진짜를 가릴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 소스들만 골라서 보게 되고, 그런 확증편향적인 성향은 점점 더 한 쪽으로만 쏠리게 되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 몇 해전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칼럼 글을 많이 썼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시사칼럼 쓰기를 중단하고 말았다. 칼럼의 소재가 되는 사건, 사고,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실체 파악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한국 내 뉴스와 관련해서 더욱 두드러졌다.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위에 언급한 신문과 유사한 노력을 하는 매체는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동안 한국 정치와 사회에 관한 시사칼럼을 꽤 많이 써왔으면서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나는 단 한 줄도 쓴 적이 없다. 아직도 온갖 주장들만 난무할 뿐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살, 대통령 탄핵, 4대강 녹조 논쟁, 여객선 침몰사고에서부터 최근의 JTBC 사장 과천 접촉사고, 조국 관련 뉴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정보가 혼란스럽지 않은 게 없다. 실체를 파악하려고 깊이 들여다 보면 볼수록 진실은 점점 더 흐릿해져서 안갯속을 헤매게 된다.

? 이런 경향은 근래 들어 점점 더 심하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영향력이 큰 사건이나 사고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똑 같은 사안을 놓고 한 쪽에서는 “이 것은 누가 보더라도 A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 것이 B인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명명백백함에도. ”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의 뇌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저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서로 상대편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둘 중 어느 편도 아닌 사람이 그 사안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양쪽 얘기를 들어서 대충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A나 B 중 하나는 진실이 아님이 명백하다’는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한 건전한 토론은 고사하고,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합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전한 비판도, 토론도 불가능하다. 오직 핏발 어린 주장과 우격다짐과 상대방을 향한 증오와 경멸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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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우리는 왜 그럴까?(2)

 

한국인의 정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恨)의 정서’이다. 근대화 이전 왕조시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서민들은 다 핍박 받으며 고달프게 살았지만, 한국인들 머리 속에는 “부모를 잘 못 타고나서 그렇지 내가 너보다 못 할 게 없는데…”하는 생각이 유난히 강하다 보니, 똑같이 핍박 받고 수난을 당하더라도 속으로 느끼는 억울한 생각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같아야 할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게 보이니 늘 현실이 불만스럽고, 삶 자체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 억울한 마음이 속으로 쌓이고 쌓여 응어리진 것이 바로 ‘한국인의 한’이다.


평등의식이 강하다 보니 “네가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하는 마음에서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행이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서도 남들보다 처지는 걸 참을 수 없어 너도나도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리니 성형천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질적으로 남이 나보다 잘 났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으니 사촌이 나는 못 사는 논을 사면 배알이 꼬이고 속이 불편하다. 


평균적으로 아무리 잘 살아도 ‘나보다 잘 난 게 없는 남’이 나보다 더 누리고 사는 걸 참을 수가 없으니 늘 불만족스럽고, 온 나라가 지옥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평등해야 할 삶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이를 극복할 길도 보이지 않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어쩌다 기차나 버스가 지나가면 동네아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길가에 나와서 승객들을 향해서 쑥떡을 먹이곤 했다. 자유당시절 미국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시골길을 지날 때 예외 없이 쑥떡을 먹였는데, 이 걸 보고 미 대통령이 “저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통역관이 민망하여 아이들이 환영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커지고 말았다.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 대통령이 한국식 인사를 한답시고 이 대통령에게 쑥떡을 먹여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아이들은 왜 그렇게 외지인이 지나가기만 하면 쑥떡을 먹였을까? 시골아이들이 보기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뭔지 모르게 자기들보다는 좀 잘나 보이니까 ‘니들이 뭐가 그리 잘 났냐?’하는 심리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즉, 무의식 중에 핏속에 흐르는 평등의식이 발동해서 나타난 본능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항간에 유행하는 유머에 ‘x도 모르는 게 면장’ 시리즈가 있다. 유머도 시대를 따라 변해간다. 70년대 ‘최불암 시리즈’에서부터 맹구, 아줌마… 등을 거쳐서 최근에는 ‘아재개그’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면장’시리즈는 수십 년이 지나도 약간씩 버전을 달리 해가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나 몇 번씩은 들어서 아는 내용인데, 어느 시골면장이 길을 가다가 꼬마아이의 고추를 가리키며 짓궂게 “이 게 뭐야?” 했더니 나중에 그 아이가 뒤돌아 가면서 “x도 모르는 게 면장이라고…” 했다는 게 원전(?)이다. 이 유머가 최근에는 “개x도 모르는 것들이 정치를 한다고…”라는 버전으로 변해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길…) 


이런 류의 유머가 대중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도 높은 자리에 앉아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을 ‘뭣도 모르는 자들’ 즉, 나보다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자들로 치부하려는 내면심리와 잘 맞아 떨어져 본능적으로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우리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태생적으로 이런 평등의식이 깊이 박혀 있다. 이런 유별난 평등의식은 우리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의식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므로, 이런 우리의 특성이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발현되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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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우리는 왜 그럴까? (1)

 

나는 평소에 다른 민족에 비해 한국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이한 행태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 특이한 행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곤 한다. 


흔히들 얘기하는 한국인의 특이한 점을 나열해 보면, 


1.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미국(60%대)이나 영국과 독일(40%대) 등 어느 선진국과 비교를 하더라도 월등히 높다.


2. 한국은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기간에 왕조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변신에 성공한 나라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나면,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누가 이기든 뭔가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당선자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4. 무슨 단체든 분열이 잘 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의 모임인 한인회나 실업인협회, 노인회 등을 봐도 회장선거의 후유증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 늘 부정이 있었다거나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이유를 들어 승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5. 한국인들은 좀처럼 같은 한국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특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의 경우에는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존경을 받기 힘들다.


6. 한국인들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 살았던 서민들 치고 지배계층에 억눌리고 시달리며 고달프게 살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유독 한이 많다고 한다.


7. 한국인들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8. 한국에서는 뭐든지 유행을 타기시작하면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 그래서, 패션이든 문화현상이든 정치든 일단 ‘바람’이 한번 일어나면, 삽시간에 들불 번지듯 퍼져나간다. 

 

9.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 한국은 어느 선진국 못지 않게 풍족하게 누리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헬조선’이라고 아우성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고 있는 듯이 불평을 한다.


10. 세계에서 자살률이 최고로 높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럴까? 위에 열거한 현상들은 각각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이겠지만, 일견 서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런 현상들의 배경에는 뭔가 공통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내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한국인들의 유별난 평등의식’이 이런 현상들의 이면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옆집 아이가 대학을 가는데 우리 애가 대학을 가지 않는 걸 참을 수가 없다.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는 말이다. 비록 대학을 못 갔더라도 명문대학에 입학한 아이보다 결코 능력이 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못 한 게 없다는 평등의식이 태생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기를 쓰고 대학을 가서 나도 대학출신대열에 들어서 평등해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한국은 엄격한 계급사회인 왕조체제를 과거 수천년 동안 유지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수십년만에 계급의식과 왕조체제의 잔재를 완벽하게 없애고 선거에 의한 민주정치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이는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인의 핏속에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평등의식이 이미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선거후에는 늘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선거를 치를 때도 내가 (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상대방보다 못할게 없다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평등의식이 내가 남에게 밀리거나 졌다는 사실을 용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드니 웬만해서는 누구를 존경하기도 어렵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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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시인의 말

 
  

유난히 춥고 눈이 자주 내려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이 겨울에 지쳐가던 어느날 밤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며 늘 하던 버릇대로 무심코 창을 열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갑자기 한 여인의 얼굴이 창너머에서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주 낯익은 얼굴의 그 여인을 나는 금방 알아보지 못 했지만 분명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구더라…??? 한 동안 그 얼굴을 살피며 골똘히 생각하던 내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젊은 시절 나는 등대가 바라보이는 해변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도서관 구석에서, 어두침침한 지하다방에서, 쉰 막걸리냄새가 풀풀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로 어느 찻집에서, 늦은 밤 퀴퀴한 하숙방에서 그녀를 만나곤 했다. 무시로 그렇게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터같은 가슴에 대책없이 알코올을 쏟아 붓곤 했다.


그리곤 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찌꺼기들을 토해 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슬며시 나를 떠나고 말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던 그녀가 이 을씨년스런 겨울밤에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생일이 이 맘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아이가 셋 딸린 마망인과 재혼하여 자녀를 넷 두었는데 그녀는 그 중 셋째였다. 겨우 여섯살이 되었을 때부터 의붓오빠로부터 성추행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열세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다시 의붓오빠의 성적학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평생 성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서른 살에 그녀의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해할 만큼 헌신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조건의 하나가 ‘평생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니 어린 시절 성적 학대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정신질환증세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쉰 아홉 되던 해에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녀가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사라졌다가 그 날 저녁 그렇게 불쑥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낸 후 줄곧 그 깊고 슬픈 눈망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등대를 찾아 가려던 참이었다. 


토할 뻔 했다. 먹은 음식이 입으로 도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느낀 건 수십년전 세상모르고 철없던 시절 어줍잖게 시대의 울분을 토하면서 폭음을 했을 때 이 후 처음인 것 같다.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서 한국식품점에서 집어온 한국신문을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 했다고 생각한다. 뉘우친다.”


‘괴물’ 시인은 그렇게 읊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심한 욕지기를 느껴 숫가락을 내려 놓고 말았다. 그의 고약한 손버릇과 행적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인터넷을 도배질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속으로 제발 그의 입에서 닳아빠진 정치인을 닮은 변명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젊은 여인만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고 했더라면 그렇게 역겹지는 않았을 테다.


시인의 언어는 늘 경이로운 충격으로 다가 오곤 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김영랑) 그렇게 봄은 우리곁으로 다가왔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은 그렇게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유치환) “내 고장 칠월은 청포고가 익어가는 시절/ 이 고장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육사)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서정주), “시몬! 나뭇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은가 낙엽 밟는 발자욱 소리가…”(구르몽) 가을은 또 그렇게 깊어가곤 했다.

 

“어느 머언 곳의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 /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 추운 겨울은 그렇게 따뜻해졌다. 


시인의 입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우리의 영혼을 울리고 감성을 일깨우는 경이로운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인들의 영혼은 모두 그렇게 맑고 순수한 줄만 알았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거룩하고 고결해 보이던 시어들이 결국 한갓 얄팍한 말장난에 불과했단 말인가? “…없었지만,…된다면…고 생각한다.” 시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내 속에 쌓여 있던 모든 시어들을 게워내게 했다. 못 볼걸 보고야 말았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 그 X덩어리” 


시인은 그렇게 시를 날려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시를 마음으로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말장난이 재미있어서 볼지는 몰라도.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박인환)


암울한 시절을 살아야 했던 시인은 이렇게 그녀의 생애를 기억하고 아파했건만, 이 시대의 글쟁이들은 그녀를 기억하기나 하는 건지… 어쩌자고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는지…


그녀의 슬픈 눈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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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이상한 나라의 얼리스(3)-공부 못하게 하는 나라


 

정부가 나서서 또 국민들이 공부하지 못 하게 막을 궁리를 짜느라 고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나 학교수업이 끝난 후 영어수업을 못 하게 막으며 ‘영어공부억제정책’을 밀어붙이던 한국정부가 발표3주만에 국민들의 반대여론에 밀려 “일단 초등학교의 방과후 영어수업만 금지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고 한다.


이달 초 한국의 영어교육전문기업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정부가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3학년 전까지 사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국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더 시키려고 애를 쓰고,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들이 공부를 하지 못 하도록 막느라 고심하는 이런 모습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 9월에는 ‘공교육정상화’방안의 일환으로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 선행학습의 시기는 더 빨라지고 그 범위는 더 넓어졌다는 게 교육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초등 때 중등 완성, 중등 때 고등 완성’은 더 이상 교육열이 높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정부와 국민들간에는 애초에 이 법에 대한 인식부터 달랐다. 정부는 국민들의 과도한 사교육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과후 과정 등을 못 하게 막음으로써, 공교육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로 <공교육 정상화 촉진법>으로 입법했지만, 국민들은 자발적인 공부를 막는 <선행학습 금지법>으로 인식했다. 


저 법의 원래 취지는 학교 밖에서 미리 배울 필요가 없도록 학교가 교육과정에 맞게 수업하고 그 교육과정의 수준을 지켜 출제, 평가하라는 것이며, 고입?대입시험에서도 이런 원칙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교육을 정상화 하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왜 굳이 따로 법을 만들어 강제로 시행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우리 교육 현실, 우리 학생들이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국민들이 과도하게 교육에 매달리는 현상을 법으로 틀어막고 금지시켜서 해결해 보려는 시도는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다. 세상의 온갖 교육제도를 다 동원하며 시행된 수많은 법들이 제대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 하는 이유는 뭘까? 새로운 법이 시행될 때마다 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 하고 단순히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대증요법식으로 처방을 했기 때문이다. 


저 법이 시행될 당시 어떤 이들은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독일같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여름날 풀밭의 메뚜기가 폴짝 뛰고 웃을 일이다. 왜 선행학습을 하는지, 왜 경쟁이 이처럼 치열한지, 왜 모든 국민이 대학졸업자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는지, 그 근본원인을 분석하고 없애려고는 하지 않고 나타난 현상만 보고 입법만능주의에 빠져 틀어막으려고만 하면 공무원들에게 '또 하나의 규제권한'만 안겨줄 뿐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의 과열교육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병폐는 워낙 복잡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배경과 특유의 민족성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단숨에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내 생각에 그 첫 출발점은 대학 정원과 대학교 수를 지금의 반으로 줄이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 중 대학졸업자수가 절반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대졸자가 '국민의 80% 이상'이란 사실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 사회적 재앙의 뿌리이다. 대졸자가 80% 이상인 사회에서 대학을 못 나오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 또는 '등신' 취급을 받을 게 뻔하지만, 대학을 못 가는 사람이 50%를 넘으면, 대학은 '공부에 취미가 있는 애들이 가는 곳',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즉, 우리 애만 못 간 게 아니고, 반 이상이 못 갔으니까 아주 창피한 일도 아니고 이상할 게 없는 일로 인식될 것이다. 사회적 성취욕이 대단히 강한 우리나라에서 대학 정원을 줄여서 대학을 들어가기가 더 힘들어지면, 처음엔 사회적 저항이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면, 사회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수술에 따른 고통을 겪지 않고 병을 고칠 수는 없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한국사람들은 원래 워낙 성취욕과 경쟁심이 높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과외, 선행학습도 하겠지만, 지금같이 심각한 사회문제는 안 될 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적어도 하위 30-40%는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확산될 테고, 또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을 테니까 위안이 되어 지금처럼 그렇게 창피한 일도 아니게 될 테니까. 국민 대부분을 대졸자로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는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앞당겨서 남들보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법으로 막겠다는 발상이 제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가 없다.


 문제의 발단은 수십 년 전에 실시한 "졸업 정원제"라는 제도에서 시작되었다. 일단 대학 정원을 늘려서 우선 대입경쟁을 다소 줄여보겠다는 너무나 단기적이고 대증요법적인 발상에서 나온 제도였다. 결국은 "졸업 정원"은 허울뿐이고 들어가면 다들 어떻게든 졸업시키고, 신규 대학들을 우후죽순 격으로 허가해 주어 결국은 거의 전 국민을 대졸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이제 대학 못 간 사람은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이 돼버린 세상이 되었다. 이런 사회적 구조가 그렇지 않아도 유달리 성취욕이 강한 민족성과 맞물려 온갖 사회적 문재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학 못 간 사람"이 "대학 간 사람"수와 비슷한 사회를 만들어야 대학을 못 간 게 그렇게 특별하거나 '창피한 일'이 아니게 되고, 그래야 모두들 미친 듯이 대학에 목을 매달지 않게 될 것이다. 


대학정원을 줄이는 일은 상당한 국민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므로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정치인들이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저항 없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는 임신의 불편함과 산고를 겪지 않고 귀여운 아기를 갖고 싶다는 바람만큼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시도된 온갖 기발한 정책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실패할 게 뻔한 또 다른 비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요즘들어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돈다. 


"'정신나간 미친 짓'의 정의는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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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3
정치엔 관심 없다고요?

 

흔히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할 때 피해야 할 주제 중 가장 먼저 얘기되는 것이 정치와 종교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건 잘 모르는 사이건 간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임에 가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자리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화제가 슬며시 정치얘기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가급적이면 피해야 할 주제임을 알면서도 술이 좀 들어가고 기분이 다소 풀어지기 시작하면 슬며시 정치얘기가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싫든 좋든 정치는 그만큼 우리생활 가까이에 있고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언급을 피하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거기에 관심이 쏠려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정치얘기에 열을 올리는 경우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개 그 주제가 한국이나 미국정치에 관한 얘기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나 온타리오의 정치에 관한 얘기가 화제에 오르는 경우보다는 트럼프나 오바마 등 미국정치인 또는 한국의 특정정치인에 대한 얘기를 화제로 삼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이런 점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정치가 자기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이라기보다 젊은이들이 연예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즐겨 화제로 삼듯이 그저 심심풀이 가십거리로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살든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한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아마존밀림에서 세속문명과 동떨어져 살더라도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 곳에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정책과 개발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참여에 소극적으로 되어간다. 사람들이 정치참여에 점점 더 소극적으로 되어가는 이유는 대체로 정치인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서,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저들의 게임이니까, 내가 안 해도 딴 사람이 할 거니까, 나 한 사람이 움직인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보이든 말든 상관없이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뿔뿔이 각자도생으로 살아가지 않고 군집을 이뤄 사는 한 여전히 정치는 존재하고, 그 정치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정치가 우리 생활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위에 열거한 다양한 이유로 정치에서 멀어져 가는 데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왜냐하면, 정치란 그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여러 이슈들을 다루는 일인데, 그 “이슈들”은 말 그대로 그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이슈가 될 것이고, 그 해결방향이 설사 꼭 내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더라도 사실상 내 개인생활에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얘기는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캐나다사람이 캐나다에서 살 때에만 타당한 얘기이다. 즉, 그 사회의 주류계층을 이루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주류사회사람들은 그들대로 공통의 관심사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어차피 그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찾아 가기 마련이다. 그 해결방향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주류사회와 떨어져 있는 우리 같은 소수자들은 저들과는 전혀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이슈들이 있다. 이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들이다. 이런 이슈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궁화양로원’, ‘편의점주류판매’, ‘블루어거리 자전거전용도로’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들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정치적 무관심”에 절대로 휩쓸려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니라도 딴 사람들이 하겠지 하고 살 일이 아니다. 소수자들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대신 나서줄 ‘딴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누구도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땅에 고개를 박고 있는 타조처럼 정치를 외면한다고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는 ‘필수’이지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 내가 중뿔나게 나서지 않아도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알다시피 정치인들은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세상 모든 문제를 알아낼 수 있는 전지 전능한 사람도, 그렇게 착한 사람들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영악한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정치인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리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아예 내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얘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정치무대에 많이 내보내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마침 우리 한인 사회에서 젊고 믿음직한 일꾼이 우릴 위해 힘찬 목소리를 내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모처럼 맞은 이 황금기회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아야겠다. 투표 한번으로 백번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흘려버리지 말자.


“나는 정치엔 관심이 없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고 하지 말자. 심드렁하게 팔짱끼고 굿을 보고 있으면 아무도 당신에게 ‘떡’을 주지 않는다. 저들끼리 나눠 먹는 떡을 그저 화난 얼굴로 침 흘리며 바라봐야 할 뿐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이제 안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고 있지만 말고, 제대로 한 번 울어보자. 그래서 우리 몫의 ‘젖’을 제대로 챙기자. 


“My fellow Koreans! Let’s stand for 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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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이상한 나라의 얼리스(2)-생각하는 힘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한다. 인간이 수많은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영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 말하는 ‘생각’이란 단순한 ‘지각’이나 ‘기억’을 통한 정보처리와 판단을 포함하는 본능적인 두뇌활동을 넘어선 이성적인 사유(思惟)를 말한다. 사람이 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면 단순히 본능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나 다를 게 없다.


내가 생각다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중학교1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때까지만 해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고 하면 으레 동화책이나 소설류의 ‘이야기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마음에서 그랬던지 이야기책이 아닌 무슨 철학 책 같은 걸 빌려서 읽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칸트의 철학 책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책의 제목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은 그 날 이후 지금껏 내 머리에 남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책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다.

말 그대로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것이 그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었다. 


지금 내 앞에 빨간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자를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없이 빨간 상자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그 상자를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바라 보았을 때 갖게 되는 생각이고 믿음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본건 그 상자의 한 쪽 면에 불과하다. 그 상자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그 상자가 빨간색이라고 굳게 믿기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한 쪽은 파란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즉, 그 책의 저자는 “사람이 어떤 물체의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람은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의 겉모습만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어 늘 ‘본질’과 ‘진실’을 놓치기 쉽다는 이 깨우침은 당시 나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동물과는 다른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실 갓 태어났을 때는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가 없이 ‘동물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회현상들을 바라보노라면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점점 더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국민들의 거의 80% 가까운 인구가 대학교육을 받을 만큼 교육열이 높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남이 해놓은 생각들을 단순히 암기하는 데만 교육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남이 해놓은 생각들을 열심히 암기했다가 그걸 ‘기억해 내는’ 걸 ‘생각하는’ 걸로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많이 보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가 암기한 내용들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우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르니 건전한 토론이나 논쟁이 힘들다.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장만 할 뿐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따라 자기주장을 수정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억지 주장과 싸움만 난무할 뿐 건전한 결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일방적인 지식만 머리에 가득하고 이성적인 사고력이 부족하니 사회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다각도로 생각할 줄을 모르고 한 쪽 측면만 크게 부각하여 보게 된다. 비록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어느 한 쪽 측면을 강조한 허구의 산물일 뿐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며 그 걸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21세기를 살면서 전근대적인 ‘극장의 우상’에 휘둘리는 미개인의 행태를 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자기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니 자기가 보지 못하는 면을 지적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적으로 간주하고 분노하며 증오한다. 대화를 해도 늘 일방적인 주장들만 난무하고 타협이나 절충이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암기한 지식들은 이성적인 사고의 밑거름으로 사용되지 못 하고 화석처럼 굳은 아집이 될 뿐이다. 지성과 이성이 결여된 지식은 잘못된 신념과 독선이 되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반목만 키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지배하지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상황에 끌려 다니며 상황의 지배를 받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부르제)는 말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흔히 한국사람을 가리켜 ‘동양의 유태인’이라고 한다. 머리가 명석하면서 악착같이 돈벌이에 매달리고 교육열이 유난히 높은 점도 그렇고, 미국을 비롯한 이민자 사회에서도 청과물상 등 유태인들이 초기에 많이 했던 사업들을 한국인들이 많이 물려 받는 현상을 봐도 일견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두 민족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유태인들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민족이고, 한국인들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민족이다. 유태인들은 어느 시대 어느 땅에서 살든 변하지 않는 세계관과 인생관을 수천 년 동안 간직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 왔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속이 없이 헛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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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이상한 나라의 ‘얼리스’(1)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었다. … 그때, 갑자기 분홍 빛 눈의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가까이 뛰어왔다. . 호기심에 불타서 토끼를 쫓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 앨리스는 도대체 어떻게 다시 빠져 나올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토끼를 쫓아 굴로 뛰어들었다. … 일곱살 소녀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한 나라로의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찍이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수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도 하고, “동방의 등불”이라고도 한다고 은근히 뿌듯해 하며 지금도 스스로 이 말을 즐겨 쓰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1882년 미국인 그리피스(W.E. Griffis)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붙어 있는 이 나라를 소개하는 책 <은자의 나라, 코리아> (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당시 국호인 <조선(朝鮮)>을 영어로 풀어서 “The Land of Morning Calm”이라고 번역하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朝鮮의 영역은 “Beautiful(or Fresh) Morning”이 더 정확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고울 선(鮮)”을 “고요할 선(禪)”으로 슬쩍 바꿔서 “Morning Calm”으로 번역한 듯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이 후 여러 사람이 이 나라를 소개하는 책의 표제로 사용함으로써, 이 나라의 별칭으로 굳어졌다. 


이 번역은 얼핏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책 내용을 자세히 읽어 가면서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Sunrise Kingdom)” 일본과 대비되어 “조용히 맥없이 잠자고 있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를 눈치채고 나면 뒷맛이 썩 개운치 않다. 또 다른 책에 나오는 “…이 국호(조선)는 매우 시적인데, 현재의 조선사람들에게 알맞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그들의 선조인 고구려의 정열과 힘을 전적으로 상실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나면 스스로 이 말을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던 1929년 3월 28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인도 시인 타고르가 우연히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그는 기자의 한국방문 요청에 일정상 방문이 어렵다고 하면서 네 줄짜리 메시지를 전했는데, 그 첫 부분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코리아는 그 등불을 밝혀 든 나라 중 하나였다(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로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서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이 아니라 “그 중 하나” 즉, ‘아시아의 여러 문명선도국 중 하나’라고 한 것이다. 


이 시라고도 하기 힘든 짧은 메모에 저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의 다른 시(그의 시집 <기탄잘리> 35번째 작품)의 내용을 슬쩍 바꿔서 짜깁기한 누군가의 창작품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저 “동방의 등불”의 원시(原詩)이다. 이런 내막을 알고 나면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동방의 등불”이란 말을 쓸 수 없으련만 저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저 왜곡 조작된 시가 한 때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실렸으니 말이다. 


알고 보면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지만, 저들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그 말들이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나왔으며, 무얼 뜻하는지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 할 뿐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상한 건 비단 이 것만이 아니다.


1559년부터 13년간에 걸쳐 이퇴계와 기대승간 편지왕래를 통해서 이뤄졌던 ‘사단칠정론’논쟁은 이 나라 학술사에 유례없는 논쟁이었다. 논쟁의 기간과 치열함도 그렇거니와 ‘장유유서’의 삼강오륜이 지상최고의 가치로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에 당대 최고의 원로학자와 26살이나 어린 젊은 학자간에 서로를 존중하며 이뤄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훌륭한 전통을 가진 저들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양의 최신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역사이래 가장 발전된 모습을 구가하면서도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청산할 대상으로 여기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도 내용이 힘 있는 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내용을 삭제하게 하고 벌을 준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아무렇지 않게 국회에 제출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그들이 생각해서 머리에 넣어준 주장만 주문처럼 외우면서 박수를 친다.


 저들은 유사이래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뤄 풍족하게 잘 살면서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헬조선’을 외친다. 누군가가 “너희는 불행한 거야.”라고 하면 “나는 불행해!”라고 할 뿐 “정말 그런가?”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난 토끼처럼 늘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따라 배워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도 저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며 온 나라가 분노와 증오로 가득하다. 


일찍이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이 훌륭한 문자를 가졌지만, 그 후 500여 년이 지나도록 그 문자를 업신여기며 통용하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말과 글을 금지 당하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난 후 남의 힘으로 겨우 나라를 되찾고서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지 겨우 7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들은 자기 말을 버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말도 채 익히기 전에 남의 말을 가르치지 못해 안달이다. 간판들도, 회사이름도, 쓰는 말도 온통 남의 말로 넘쳐난다. ‘말’은 ‘얼’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버리면 얼도 따라서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저들은 모르는 듯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건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이 해놓은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저들은 이제 남들이 잘 짜맞춰서 머릿속에 넣어준 생각의 틀 안에서만 생각할 뿐 스스로 생각하는 ‘얼’이 없는 인간들을 손오공이 털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내듯 대량으로 복제하는데 성공하여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를 내며 같이 움직인다. 나그네 쥐가 앞선 쥐를 따라가듯… 자기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너흰 그냥 카드 한 벌일 뿐이야.” 그러자 카드들이 모두 일어서더니 공중으로 솟구쳐 앨리스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앨리스는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비명을 지르며 그것들을 떨쳐내려 하였다. 그 순간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 자기가 언니의 무릎을 베고 강둑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는 앨리스의 얼굴에서 한 두개씩 떨어져 내린 나뭇잎을 부드럽게 치워주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저 이상한 나라의 ‘얼리스’들은 언제나 저 깊은 미몽에서 깨어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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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한반도기(旗)라니?!

 

 

평창겨울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왔다. 불과 한 달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더니 그 선수단이 들고 들어갈 국기가 ‘한반도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왜 하필 한반도기인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존의 국기를 사용하기 어렵다면 "Korea"나 "Corea"라고 쓴 깃발을 들어도 될 걸 굳이 지도를 그려 넣은 정체불명의 기를 드는 무신경이 통탄스럽다.


언제부터 한민족의 땅이 한반도 끝자락에 고착되었던가? 한민족의 국토는 역사를 따라 늘 변해 왔고 변해간다. 힘이 강할 때는 넓어지기도 하고, 약할 때는 좁아지기도 한다. 아주 약할 때는 없어지기도 한다. 


21세기초반인 현재 지구상에서 한민족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은 한반도와 그 북쪽에 위치한 연변지역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한민족은 유사이래로 계속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왔던 건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듯이 어느 민족이든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그들이 차지하고 사는 땅은 늘 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 유전과학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민족은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부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빙하기가 닥치면서 몽골리안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바이칼호부근에서 살다가 해빙기를 맞아 남하해 요하문명을 일구었고, 뒤에 동이족의 중심지역도 남하하여 홍산문명지역에 다다랐다. 이 지역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건 약 1만1천년 전쯤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들이 조선족과 흉노족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후에 조선족은 한반도 북쪽에 고조선을 세웠고, 이 후 역사는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는 대로이다.


 땅이란 본질적으로 그걸 차지하고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태초에 누군가가 지구상의 각 종족들에게 특정 지역을 정해주고 거기서 살라고 한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자기가 차지하고 살던 땅이 자기 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남의 땅을 차지하기도 하고 자기 땅을 빼앗기기도 하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 상태로 살고 있지만, 현재상태가 결코 최종적인 것도 아니고 영구적일 리도 없다.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사거나, 힘으로 빼앗거나,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거나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런데, 위의 방법 외에도 주인이 버젓이 있는 땅을 거저 차지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우리 민법 제 245조에는 “점유취득시효”와 “등기취득시효”란 게 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소유가 아닌 땅을 차지하고(또는 등기를 하고) 주인행세를 하면서 일정기간 이상을 살면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몇 가지 충족되어야 하는 요건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단순화시켜서 기본개념만 얘기하자면, 그 땅이 비록 법적으로 남의 소유일지라도 그런 식으로 합법적으로 소유권을 얻어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단 원래 주인이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나가라거나 세를 내라고 하는 등 주인행세를 전혀 하지 않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한 국가가 차지하고 지배하는 국토의 개념도 기본적으로는 개인차원의 토지소유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현재 그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땅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 국제법상 그 나라 땅이 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 그 땅을 누가 실제적으로 차지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실효적 지배’와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들이다.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 한 나라가 한 때는 차지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지금은 그 나라가 지배하고 있지 못한 땅의 경우 나중에 사정이 허락할 때 그 땅을 되찾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그 기록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류역사상 가장 찬란하게 문명이 꽃 핀 21세기 현재에도 국제사회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평온한 듯 보이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땅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댄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역사적 근거도 없는 억지에 불과한 주장들을 저들은 왜 계속하고 있을까?


중국은 2002년 초부터 중국 동북3성에서 일어난 과거 역사에 대한 조직적인 학술연구와 한국사왜곡작업인 이른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주로 현재 중국지역을 포함하는 발해와 고구려사를 대상으로 하며 신라와 백제도 포함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근원적으로 고구려와 고려의 연결고리를 끊고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있으며 나아가 장차 남북이 통일될 경우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내 한민족들의 동요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이나 정부당국자들은 과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무지해서 저런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양국의 연구인력으로 보나 확보하고 있는 자료로 보나 아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자료를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기에 억지주장을 하는 건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긴 역사적 안목에서 그들 국가의 이익을 늘 머릿속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록 지금은 자기들이 지배하고 있더라도(또는 지배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장래에 상황이 바뀌었을 때를 대비해서 장기포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주인이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기 땅도 잃어버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수천년 전에 중앙아시아대륙 바이칼호근처에서 출발해 수천년이 지난 지금은 한반도 끝자락에 발붙이고 살듯이 향후 수백년, 수천년 후에는 유럽 땅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하와이 어디쯤에 살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21세기 초에 불과 백년도 못 살고 가는 우리가 무슨 근거로, 무슨 권리로, 과거 역사도 팽개친 채 한민족의 땅을 한반도 끝자락에 가두어 버리는가? 일본의 저 지긋지긋한 독도공세를 당하고도, 중국의 저 음흉한 꿍꿍이를 보면서도 어찌 그리 털끝만큼의 깨우침도 얻지 못하는가? 언제까지 일장기를 불 태우며 시위나 하고, 대마도도 우리땅이란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광개토대왕 드라마나 넋 놓고 보고 있을 것인가? 


한반도기(旗)는 단순히 "태극기를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한민족의 땅을 한반도 끝자락에 영원히 가둬버리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어찌하여 세계만방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여놓고, 그 앞에서 한민족을 영원히 반도끝자락에 가두어 대못을 박아 버리려는 저 얼빠진 짓거리를 바라보는 남북의 8천만 동포 중에 이를 질타하는 이 한 사람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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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7
디오게네스를 아시나요?

 

고대 그리스에 온갖 기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있었다. 어느 날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 왔다. 알렉산더가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지금 그대가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 주시겠소?”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옷 한 벌만 입고 통속에서 개처럼 살았으니 경제적으로 철저한 서민층 무산계급에 속했고, 대부분의 유력인사들이 앞다퉈 찾아가서 만나고 경의를 표했던 절대권력 알렉산더의 권위를 철저히 무시하는 반체제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보수주의자일까 진보주의자일까?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어느 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를 물어보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을 보수냐 진보냐로 나누느냐?”고 비난했다. 어떤 정치인은 “자기는 보수니 진보니에는 관심이 없고 ‘실용주의’로 가겠다”고 하기도 했었다. 어떤 정당은 보수우파를 표방하면서 “모든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도 했고,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보수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하루 아침에 훌쩍 당적을 옮기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보수나 진보가 그 사람의 인생관, 세계관과 직결된 삶의 철학이요 신념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편을 선택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인문학자를 자처하며 진보적 성향의 글을 많이 쓰는 어느 분은 신문 칼럼에 “기성세대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고, 지금은 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자기 위치와 동떨어진 생각에 사로 잡혀서 계급배반적인 투표가 횡행한다.”고 썼다. 


말하자면, 투표는 각자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계급에 따라 자기편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급이 아니라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들을 자기 처지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우매한 찌질이들로 치부하고 있다. 비단 이 분뿐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이 드신 분들의 보수성향을 조롱하면서 비난하는 글들을 지금껏 수없이 많이 봐 왔다.


 어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냐 진보냐로 구분하는 건 단순히 정치적 편가르기나 현 체제유지냐 변화와 개혁지향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먼 옛날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자연계의 모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태어나서 자연법칙에 따라 각자 능력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동으로 이용하는 마을 길도 생겨나고 마을 사람이 모이는 장소도 필요하게 되는 등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디까지를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하고 어디서부터 공동으로 관리할 것이며, 그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여기서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지가 않으니 다양한 의견들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놓은 게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의 시작이요 본질이다.


보수는 통상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지키자는 쪽으로 전통을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를 싫어한다. 반면 진보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항하면서 변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보수는 권위적, 체제순응적이고, 진보는 탈권위적/평등지향적, 체제반항적이다. 보수는 모든 면에서 국가개입 최소화를 지향하고, 진보는 국가적극개입을 지향한다. 보수는 자본가, 대기업, 기득권층 편이고, 진보는 노동자, 중소기업, 서민 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진보정권이 노동자?서민에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며, 보수정권이 반드시 이들에게 나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보수?진보는 어느 편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한 개념이 아닐 뿐 아니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는 분배를 중시한다. 보수와 진보는 본질적으로 상호 적대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성장이 없다면 분배를 논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나라가 균형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교대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국가나 정치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보수나 진보 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정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하거나 부패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념 그 자체의 문제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정치인들은 이런 속성을 더욱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보수는 우파적이고, 진보는 좌파적이다. 그런데, 좌우파란 개념은 원래 계급투쟁사관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가 등장하면서 나온 개념이므로 기본적으로 국가경영이념적 성격보다는 편가르기의 성격이 더 강하다. 보수와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그 정책방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선을 넘어 상대편에 대해 심한 적대감과 증오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디오게네스는 보수주의자일까 진보주의자일까? 만약 그가 극빈민층에 속했고, 탈권위주의적이었으며, 철저히 반체제적인 태도를 보인 점으로 미루어 진보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보수와 진보를 이념의 차원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편가르기 차원에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디오게네스는 개인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철저히 거부하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갈 테니 국가가 나서서 뭘 해주겠다고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철저히 보수자유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진보좌파적 생각을 가졌다면, “나같이 지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이렇게 평생 노숙자생활을 하게 내버려 둔다면 이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국가는 제가 기거할 집을 마련해 주고 매월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제발 이제 사람들이 저 이념이란 괴물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서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막무가내로 선동질해대는 저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대책없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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