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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텃밭 농부로 지낸 나는 매일 아침 눈 뜨면 열무 싹이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름 내내 잡초와 달팽이와 집게벌레 같은 것들과 싸우며 지냈다. 얼마 전에 토마토를 걷어낸 자리에 열무씨를 심었다. 올 여름은 예년 같지 않게 비도 많이 오고 선선하더니 뒤늦게 날씨가 한여름보다 더 더워서 씨앗에게는 마침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우연히 재미난 글을 읽었는데, 어느 시골학교 동문들의 가을 운동회 개회식에서 내빈 축사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대부분 60대 여자노인들인 참석자들이 땡볕에 서있는 게 안쓰러워 모두들 앉게 했다고 한다. 개회식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군데군데 풀 무더기가 쌓여있었다고 한다. 모였던 자리가 마침 잔디구장이었기에 할머니들은 앉은 자리에서 무심코 조금씩 움직여 가며 잡초를 뽑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본 농촌 다큐멘터리 프로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돈부인들이 만나서 인사하자마자 털썩 땅바닥에 앉아 김매기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잡초만 보면 본능적으로 뽑고 싶어지는 김매기 본능이 바로 그것이다. 텃밭 농부인 나 역시 언제부턴가 잡초만 보면 뽑고 싶어지는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기둥 아래 납작 엎드려 있는 잡초를 발견하곤 “ 저걸 그냥 카터로 한방이면 되는데…” 하고 아쉬워 하다가 며칠 후에 지나다 보니 지름이 1미터는 될 듯 퍼져 있어서 속으로 안타깝기까지 했다. 비상용으로 칼을 갖고 다닐 수도 없고 온동네 다 뽑고 다닐 처지도 아니고. 자고 나면 성큼 자라 우거지는 잡초. 잡초는 생명력이 지독하리만큼 강하니까 심고 가꾸지 않아도 번식한다.


 최근에는 꾀를 부려 보느라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부직포 덮개로 땅을 덮은 위에 채소모종을 심어보는데 그래도 잡초는 끈질기다. 손으로 잡아 뜯다 보면 얼마나 힘이 센지 뒤로 나가 넘어질 정도가 되기도 하고 모르고 무심코 맨손으로 뽑다가 손에 독이 올라 한동안 고생하기도 한다. 한동안 여름만 되면 왜 눈병이 잘 나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잡초를 뽑다가 흙이 눈에 튀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 후론 언제나 모자에 고글에 장갑에 긴 팔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잡초와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드라이브웨이의 잡초 역시 고민거리이다. 벽돌 사이로 헤집고 올라오는 민들레, 질경이, 땅강아지, 쇠비름, 돼지풀, 또 이름도 모르는 것들. 이들과 싸우다가 손가락에 관절염까지 생길 지경이다.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고 눈 녹이는 소금물을 풀어 붓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리 잡초라 해도 저도 생명이 있는 몸. 죽느냐 사느냐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는데 무슨 삼대멸족할 중죄인이라고 발본색원 능지처참하려 드는가. 모기에 물리더라도 제 까짓 게 먹어봐야  한 컵이나 먹겠냐고 너그럽게 봐주라는 사람도 있는데.


 올해 나는 신나는 방법 하나를 전해 들었다. 흔히들 카터라고 부르는 칼 하나면 너무도 쉽게 잡초가 제거되었다. 물론 뿌리가 있으니 다시 나오기는 하지만 나올 때까지는 깨끗하니까 허리 아픈 것도 잊고 새치 뽑듯 김매는 재미에 빠져든다.


 비록 잡초일지라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씨가 맺힌다.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이다.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완전 동격이다. 잡초를 뽑다가 과연 나는 잡초만 하기는 한가 하는 깊은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 끈질김에 있어서, 그 세심함에 있어서, 그 완벽함에 있어서, 때로는 그 위장술하며 그 친화력과 적응력에 있어서, 보기에 하찮다고 감히 잡초라 부르다니 겨울이 오면 모두 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존재들인 것을… 점점 더 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느 날 산책길에 길섶의 작은 풀꽃들이 예뻐서 몇 개 뽑아 집에 와서 가지런히 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하얀꽃 노란꽃 분홍색꽃 보라색꽃 아주 작아 잘 보이지 않던 꽃들이다. 나태주시인의 예쁜 시 <풀꽃>이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잡초만 보면 발동하는 김매기 본능이 이럴 때는 살그머니 고개를 숙이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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