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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부터 딸애가 미장원에 다녀오라고 한다. 한복에 어울리는 머리로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미리 요금까지 내고 왔단다. 미용사는 아주 정성 들여서 올린 머리를 해주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을 찍기로 예약을 했으니 준비하고 가자는 거였다. 엄마 한국에 오실 때 가족사진을 찍을 테니 한복을 좀 챙겨오라던 딸애의 말이 있었다. 


 은혼식, 금혼식도 아니고 회혼례도 아닌 결혼 40주년은 별로 기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도 오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그냥 한복 차려 입고 가족사진 한 장 찍자는 것이었다. 남산에 있다는 사진관으로 향하는 길에 딸은 미리 주문한 꽃다발도 찾았다. 차는 마침 토요일인데도 밀리지 않고 잘 빠져간다. 거의 다다르자 사진사가 야외에서 기다리니 야외촬영을 먼저 하자고 한다. 


 “무슨 야외 촬영씩이나? 그만 둬.” “그래도 사진사가 밖에서 기다리는데요. 저는 주차하고 올 테니 모두들 오른쪽으로 해서 조금만 올라가세요.” 작은 딸애는 언니가 시키는 대로 잠자코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손주들 손잡고 한옥마을에 들어서서 걸어 올라가는데 갓 혼례를 치른 신랑신부로 보이는 커플과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는 것을 보니 여기서 결혼식도 하는 모양이었다. 두리번 두리번 사진사를 찾고 있는데 민씨 집이라는 한옥 대문이 보이고 한쪽 기둥 앞에 방이 붙어있다. 가까이 가 보니 신랑 아무개 신부 아무개 라고 씌어 있다. 자세히 보니 우리 부부의 이름이었다. 


 순간 기절초풍. 놀라서 두발이 얼어붙어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게 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딸애들이 깜짝쇼를 벌인 게로구나 그제서야 사태를 짐작하였다. 대청에는 시동생이 한복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어머나. 여긴 웬일이세요?” 또 한번 깜짝 놀라는 내게 시침 뚝 따고 싱글싱글이다.


 그때부터 신랑이 된 남편과 신부가 된 나는 각기 다른 방으로 인도되어 분장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뭉클해지더니 눈물이 맺힌다. 아이들이 우릴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동안 몰래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눈물 방울이 톡 다홍치마 위로 떨어진다.


 옷을 갈아 입히고 연지곤지 찍고 쪽도리까지 씌워주었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원삼 당의가 어색하다. 옆에서 시중드는 수모는 조곤 조곤 신부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두 손을 모아 눈 위로 높이 올리고 발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세요. 절할 때는 오른 무릎 먼저 굽히고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천천히 많이 숙이세요.” 라며 절 연습도 시켜주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자 대청을 지나 차일이 쳐지고 멍석이 펼쳐져 있는 마당으로 내려간다. 조심조심 떨리는 마음은 흡사 진짜 어린 새 신부가 된 심정이었다. 내리 깔은 눈으로 긴치마를 밟을까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는 버선발.


“앞에 문턱이 있어요. 자, 마루로 나갑니다. 그리고 고무신을 신으세요.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초례상엔 청색 홍색 촛불이 켜져 있고 밤 대추랑 음식들이 놓여있다. 주례가 시키는 대로 서로 절도 하고 갖다 주는 대로 한 모금 술잔도 입에 댄다. 나중에 보니 시동생은 신랑에게 기러기를 안겨주는 기럭아범 역할이었다. 옥색도포 차림의 주례는 40년 된 부부의 주례를 맡으니 감개무량하고 흥분된다며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테지만 앞으로도 일편단심 잘 살라고 의미있는 주례사까지 한다. 6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흥겨운 가락의 음악도 흐르고 있다. 


 그런데 모여있는 마당에 가득한 축하객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제서야 수줍은 신부는 조그맣게 옆에서 시중드는 수모에게 물어보았다.  “좀 봐도 되나요?”  “살짝 보셔도 되요.” 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이마 위의 두 손을 조금 내리고 흘끗 훔쳐보니 앞에 백 명도 넘어 보이는 하객들 맨 앞자리에 시누이 부부와 시동생 부부가 앉아있다. 아니 저분들은 언제 또 알고 왔을까? 


 나중에 나온 사진을 보니 신랑에 앞장서 청사초롱을 들고 엄숙하게 식장으로 들어온 다섯 살, 세 살 손녀 손자가 귀여워 모여든 관광객들의 감탄의 시선을 모았나 보다. 역시 처음엔 놀랐던 남편도 시종 싱글벙글하고 있는 늙은 새신랑이었다. 


 이렇게 식이 끝나고 모두 열 두 명의 식구들이 모여 조촐한 식사를 하였다. 그 이상은 딸애들의 호주머니가 넉넉지 못할 것이었다. 식당 창 밖으로 우리가 처음 만나던 세종호텔이 멀리 보였다.


 그러고 보니 40년 세월이 어느새 바람처럼 지나갔던가.


 <…그날 둘이는 명동으로 가서 일식 집에서 식사를 했었지. 난 위대하다며 체면 차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지. 그이는 왠지 친근한 인상이었어.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명동거리는 북적거렸고 동생 먼저 혼인한 노총각의 마음은 아마도 조급하기도 했겠지. 그 이듬해 봄이 되자 결혼식을 하고 수돗물이 찔끔거리는 기자촌 산꼭대기 동네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지. 아이 셋 낳을 때까지 거기서 살다가 이사 일곱 번. 나중엔 바다 건너 이주까지 하고…애들 결혼하고 손주가 4명이나 되었고… 나는 성공하고 싶었어. 적어도 실패한 결혼이 아닌 것이 결혼의 성공이라고 믿었어. 내 아이들도 그걸 인정해 줄까? 사십 년 세월. 그 동안 눈물 한 방울도 없었을까. 좋기만 한 세월이었을까.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를 굳게 사랑하고 살라던 주례의 말을 지키려고 서로 충실 하려고 노력해온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만하니 건강하게 살아온 것만해도 행복이 아닐까…> 


 휘익하고 재빠르게 필름들이 지나간다. 허락해 주신다면 치매에 걸리지 않고 금혼식에 회혼례까지 할 수 있도록 욕심을 부려 볼까. 다시 시작한다면 알콩 달콩 재미있게 살아볼까나. 다시 태교부터 제대로 하고 아이들도 더 잘 길러볼까. 다시 또 그 고생과 기쁨과 눈물로 점철된 아름다운 무늬의 옷감을 짜는 베틀 앞에 앉아 볼 수 있을까. 


 풀어내어 다시 짜기는 정녕 힘들 테고 앞으로 남은 무늬만이라도 아름답게 짜보아야 할 것이다. 이생 삼생이란 말은 없고 일생이란 단어만 있는 이유도 알 것만 같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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