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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만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보다. 나무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다시 교정에 들어설 때면 나무들이 성큼 웃자라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학이라고 산뜻하게 이발한 학생들과는 반대로 더부룩한 모습이다. 그래도 그 동안에 훌쩍 커버린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운동장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들은 “함께 모여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합창하는 것도 같다.


 본관에서 신관으로 가노라면 화단 오른쪽에 멋진 커다란 후박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곧 3층까지도 닿을 듯 했다. 잎새가 고무나무처럼 두텁고 예쁜 모습이어서 어느 가을에는 거기다가 우표를 붙여서 친구들에게 진짜 나뭇잎 엽서를 띄운 적도 있었다. 주먹만한 열매는 처음에는 초록색이다가 나중에는 점점 붉은 자줏빛으로 변하는데 마치 아보카도와도 같았다. 


 나무의 늠름한 자태가 좋아서 사람도 저렇게 늠름하게 잘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매시간 학생들에게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앉으라고 당부를 하곤 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본관에 있는 교무실에서 신관의 교실로 오가면서 때로는 씩씩한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모습을, 때로는 위엄 있고 당당한 이순신장군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느새 방학이 지나고 와서 보니 그 동안 운동장 공사를 하느라고 신관 앞의 화단이 몽땅 없어져 버리고 작은 관목들만 몇 그루 남이 있었다. 그때의 서운함이라니…


 못내 아쉬워하며 지내던 어느날, 대입 체력장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턱걸이 검사 요원으로 차출되었는데 마침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저 아래 운동장이 시험장이었다. 철봉대가 있는 아래쪽으로 가고 있을 때 운동장 구석 쓰레기 소각장 옆에 가지가 다 잘린 채 외롭게 서있는 키 큰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내가 좋아하던 바로 그 나무였다. 몰골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옮겨와서 살아있어 준 것만도 고마웠다. 수업 중에도 어쩌다 창문 너머로 멀리 서 있는 그 나무에게로 시선이 가면 가슴이 아팠다. 어느날 드디어 나는 담임 반 아이들에게 그 나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열 다섯 살 소년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나 보다. 몇 명이 제안하여 나무 살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래서 두 명씩 조가 되어 아침 저녁으로 물을 두 양동이씩 부어주기로 하였다. 소년들은 열심히 물을 주었다. 나보다 먼저 오는 학생들이라서 출근 길에 멀찍이서 보아도 땅이 젖어있는 걸로 보아 벌써 당번이 자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고 방학이 되었다. 겨울 동안엔 나무도 쉴 거라고 생각했다.
 봄이 되고 다시 아이들이 모여왔다. 한 학년 진급한 아이들 중엔 반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나무에 물을 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만 되면 일부러 산보 삼아 나무한테까지 걸어가서 나무기둥을 쓰다듬으면서 “제발 살아나다오.” 라고 말하곤 했다. 나무에 새 잎새가 돋는 듯했지만 시원치가 않았다.


 다시 또 방학이 되고 개학이 되었을 때 운동장 한 귀퉁이에 커다란 나무뿌리 하나가 덩그라니 거꾸로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목공예에 조예가 깊었던 체육선생님이 가져다가 모양을 살려서 티테이블을 만들 거라고 했다. 아마도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 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흔적으로 남아있어 달라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눌렀지만 가슴 한 켠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지금도 꼿꼿하게 자세가 바르고 훤칠한 남자를 보면 그때 그 후박나무가 떠오르고 나무와 함꼐 양동이로 물주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2013)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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