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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와 지성으로 무장한 인간세계에 ‘선의(善意)’는 비틀어지고 헝클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재설정하는데 유용한 개념이긴 하지만, ‘선의’라는 말에는 냉정하고 잔혹한 측면도 도사리고 있다. 의도와는 다른 끔찍하고 잔혹한 결말이 초래됐을 때, 방어막을 치기 위해 동원되곤 하는 말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에 멸망당하고 2000년 가까이 ‘이방인(異邦人)’으로서 유럽과 아랍 전역에 흩어져 살다 옛 이스라엘 영토에 ‘유대인 국가’를 헌법에 새기며 세운 나라가 ‘현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국민뿐만이 아니라 국적은 미국·영국·독일·폴란드인데 ‘종교적 정체성’이 유대인인 이들까지 ‘이스라엘을 지키겠다’며 달려가는 것도 ‘나라를 또 잃을 순 없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치권이 이번에 ‘사법 파동’ ‘총리 비리’ 등 각종 이슈로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하마스 사태가 터지자 군(軍)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댄 것도 ‘안보(安保)가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절감하고 있어서일 테다.

 

 강한 이스라엘 군의 뿌리에는 정치적으로 좌(左)든 우(右)든 출신 지역이 어디든, 피부색이 어떻든 모두가 공유하는 국가관·역사관이 있다. 이스라엘 군은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세속적 정체성과 ‘유대인’이라는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하쇼아(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라는 역사적 정체성으로 무장해 있다. 같은 국민이라도 종교적 신앙, 역사적 의식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거나 양분화(兩分化)된 나라와는 달리 똘똘 뭉친 독특한 국민성을 지녔다.

 

 제1차 유대 로마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점령 이후 로마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유대인은 천혜의 절벽 요새 마사다에서 1만5000명의 로마군에 맞서 2년이나 버티며 항전(抗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인이나 외교관, 모사드 요원들은 ‘밝은 곳을 혼자 걷는 것보다 어둡더라도 친구랑 걷는 게 낫다’라는 속담을 자주 이야기한다. 전쟁과 외교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고대부터 예루살렘 등 요르단강 주변에서 왕국을 건설했지만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여러 외세의 침략을 받고 되찾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기원후 73년 저항군이 마사다 요새(要塞)에서 끝까지 싸우다 자결하면서 로마 제국에 패망했다.

 

 증오의 기폭제가 된 보복은 피아간(彼我間)에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점점 격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갈등이 뒤엉켜진 역사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Gaza strip)의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110만 주민들에게 소개령(疏開令)을 내리면서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엔 등 구호단체들도 이스라엘이 점령을 앞두고 그들의 명령에 따라 그처럼 급박하게 탈출하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인도주의적 참사와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제네바협약’에 196개 국가가 비준했다. ‘국제 인도법(人道法)’은 전쟁에서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살상을 금지하고 있다. 민간인은 물론 전투력을 잃은 군인도 포함된다. 전쟁으로 국제 경제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산유국(産油國)이 아니기에 원유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하마스로 인해 사우디와 이란 등 주변의 관계국이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할 테고 이란은 주요 원유 수출국이자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는 국가라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에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 유가의 폭등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유가는 물가 상승, 환율, 금리 등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요구를 감안할 때 이집트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직 식량과 물, 의약품만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고 “가자지구 남부의 민간인들에 대한 지원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에 공급되지 않는 한 허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을 통한 원조 물자 반입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 기습 공격 당시 납치한 인질을 석방하기 전까지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자체는 찬성하지만, 난민이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로 라파 통행로를 막고 있는 상태다. 현재 가자지구는 식량과 식수, 연료 부족으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의 이 같은 발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지원을 예고하고, 가자지구 내 병원 폭발 참사에 이스라엘의 책임이 없다고 발언한 가운데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의를 울부짖지 마십시오. 정의는 이뤄지게 돼 있습니다. 다만 이걸 명심하세요. 분노를 느끼되 분노가 집어삼키게 해선 안 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하마스 공격을 규탄하고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논의했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UN주재 미국 대사는 결의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自衛權) 언급이 없어 실망했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기울어진 인식과 잘못된 신념”이라고 서로가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가운데 지난 2014년 ‘50일 전쟁’당시 희생당한 이스라엘 소년들의 유가족이 통한(痛恨)의 가슴을 억눌러가며 “자식이 납치되어 살해당하는 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양측 모두 피의 보복을 멈춰야 한다! 보복은 어떤 형태로든 부당하고 잘못됐다.”며 입술을 깨물던 말이 되새겨진다. 전쟁과 부침으로 점철된 세계사는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반쯤 익은 상태”라지만, 아무렴 너나없이 나이가 들어가도 현명해지질 않는지 모를 일이다.

 

“洛人好種花 唯我好種竹 所好雖不同 其心亦自足/花止十日紅 竹能經歲綠 俱霑雨露恩 獨無霜雪辱”/- ‘낙양 사람은 꽃 심기를 좋아 하지만 /나만은 대나무 심기를 좋아하네. /좋아하는 바가 비록 같진 않지만 /그 마음은 또한 스스로 만족하네. /꽃은 열흘 붉음에 그치지만 /대나무는 한 해 내내 푸를 수 있지 /비와 이슬 적시는 은덕(恩德) 구비 했거니 /유독 서리와 눈(雪)의 욕(辱)됨이란 없다네.’ - [소옹(邵雍)/北宋, <걸적죽(乞笛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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