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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

 

1944년, 7월7일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지 7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중국 서주의 ‘쯔가다 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장준하와 그의 동료 학도지원병 3명은 일본군이 지나전쟁(중일전쟁) 7주년을 맞아 기념회식을 하느라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이용해 목숨을 건 탈출을 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상당의 팔로군이 합동으로 일본군과 대치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때였다. 물론 그들, 젊은 사자들의 1차적인 꿈은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로 합류하여 독립군이 되는 것이었으나 일단은 일본군의 점령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목숨을 건 탈영에만 성공하면 국민당 군대든 심지어 모택동의 팔로군이라 할지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한 독립군으로서 활약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염원이 없던 절박한 시점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고등교육을 받은 학도병들은 일본 진영에 남아 일본군으로서 연합군과 해방 전까지 전투를 하게 된다.

 

장준하 선생이 소속되어 있던 쯔가다 부대에도 150여 명의 한국인 학도병이 있었으나 극소수의 대한 남아만이 탈출에 성공하여 중경의 임시정부 독립군 대열에 참가하게 된다.

 

지난 9월22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연방총리의 안내로 오타와 국회의사당을 찾게 된다. 어딘가 쌀쌀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던 미국 방문 후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이 방청석에 앉아 있던 우크라이나 참전용사를 영웅이라고 치켜 세웠다가 유대인 단체를 비롯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다.

 

 

금년 98세인 ‘야고 슬라브훈카’( 사진 )가 그 문제의 참전용사인데 밝혀진 진실은 그가 나치에 부역해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던 부대의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갈리시아부대로 더 잘 알려진 나치 치하 우크라이나인들이 꾸민 의용부대에, 제14 나치 친위대(Waffen-SS) 돌격분대가 있다. 이 부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전 부대명칭을 재빨리 바꿔 많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전범재판도 받지 않고 많은 대원들이 캐나다 등으로 피신하게 된다.(온타리오주 옥빌과 앨버타주 에드먼턴에는 추모비까지 현존해 있다)

 

로타 하원의장은 관중석의 그를 지칭하며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며, 캐나다의 영웅이다. 우리 모두 그의 헌신적인 봉사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뤼도 총리 곁에 있던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의사당 안의 모든 사람이 기립박수를 하게 된다.

 

지난해 2월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나치 옹호세력의 척결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수천 명의 우크라인들이 나치 편에서 전투에 참여한 반면,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스탈린의 소비에트군에 가담하여 무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 침략의 명분을 나치 옹호세력을 무력화시키려 하였다는 푸틴의 주장은 근거가 없게 된다.

 

인구 4천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 가운데 78%가량이 우크라인이고, 17%, 그리고 기타 5%가 타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 부리바’, ‘외투’ 등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익숙한 작가 고골리가 우크라인이지만 대부분은 그를 러시아 작가로 알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어 있어 제대로의 독립국가를 형성하지 못하였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 후 끊임 없는 전쟁의 혼란 속에 1917년 민족국가를 형성했으나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합병된다. 1923년, 소비에트 헌법의 적용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이름의 구성국으로 존재했던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냉전의 종식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소비에트 연방주도의 공산주의가 패배했다는 의미였다. 그 잃어버린 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이 푸틴의 야심이며 그 첫 단추가 우크라이나였다.

 

 

대한민국은 비록 우크라이나와 비슷하게 중국, 일본 등 주변국가에 시련을 받았지만 경술국치 전까지는 정체성이 있는 주권국가였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인을 일본화하기 위하여 내선일체의 명목 아래 창씨개명, 일본어 강요, 신사참배 등 한국인을 앞세워 ‘대동아 공영’의 길잡이로 이용하려 하였다.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은 매국노를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 하였다.

역사는 앞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뒤로 이해된다. (2023년 10월7일.)

 

참고: ‘대동아 공영권’은 대동아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권역이라는 뜻으로, 일본제국의 영토확장 정책의 선전구호이다. 1940년 ‘마쓰오 카요스케’ 외상의 담화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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