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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33.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달란트: 장병의 시간에
knyoon

 

 

 

올 봄에 대학에 들어간 큰아이가 신입생은 누구나 받는 병영 집체훈련을 일주일 동안 받은 후 지난 토요일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입시 공부하느라 창백했던 얼굴이 검붉게 건강색을 띈 것을 보니 눈물이 나게 반가왔습니다. 보이스카웃 활동을 여러 해 동안 했고 지난 겨울 내내 운동을 한 덕분인지 처음 받는 군사훈련이지만 재미 있게 지냈다고 합니다.


옆자리의 뚱뚱이 친구와 홀쭉이인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그 중대에서 간첩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벌점도 많이 받고 익살도 꽤 부린 모양이에요.
어려웠던 일은 야영훈련보다도 내무훈련과 분, 초를 다투는 시간의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서 이 훈련을 받게 될 동생이 걱정인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으며 동생에게 훈련 받을 때 주의할 점을 일일이 알려 줍니다. 보이스카웃 활동을 싫어하고 늘 운동부족인 동생에게, 군사훈련 뿐만 아니라 대학생활을 이겨내려면 체력단련 밖에 없다고 다시 한 번 운동에 흥미 갖기를 권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형! 난 군대에 들어가면 무얼 배울까? 3년 동안 외국어 한 가지만 하긴 아깝고, 무전을 배워서 세계 햄의 타이틀을 딸까?” 하고 물었습니다. 얘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형도 김이 빠지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퉁명스런 대답을 던집니다.
“맘대로 해라. 그때쯤이면 난 우주선에 앉아 있을 테니까, 심심하거든 그리로 통신이나 보내렴!” 
그러나 동생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먼 훗날 군대 복무 중에 할 일을 계산해 보기에 바쁩니다.
“외삼촌은 양평에서 복무할 때 3년 내내 영어공부만 하더니 토플시험에 합격했지. 제대하고 석달 만에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돌아왔고…. 이모부는 야간 보초를 도맡아 하면서 남들이 자는 시간에 공부하여 제대 후 바로 사법고시에 붙었겠다. 3년이란 세월이 뭔가 만들어 주긴 하는 모양이야….”


어려선 너무나 활달하고 씩씩해서 엄마를 괴롭힐 지경이던 아이가 이제 벌써 고3이라는 핼쓱한 간판을 쓰고, 진저리 나는 고통의 훈련을 값진 것으로 바꾸려 애쓰는 것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마태의 복음서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은 적이 있으시지요?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가며 종들을 불러 각기 가진 능력대로 재산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은 5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겐 2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겐 한 달란트를. 5달란트 받은 사람과 2달란트 받은 사람은 곧 그 돈을 활용하여 배의 이익을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하자, 배의 이익을 남긴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라 칭찬하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고 하였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내민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욕하면서,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 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장로인 나의 남편은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 비유를 잘 해줍니다. 어젯밤에도 우리집에서 구역예배를 인도하면서 그 이야기를 또 했지요,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이며 영어로는 탤런트, 즉 재능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하나님의 적절한 탤런트를 받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얼만큼 자신의 노력으로 갈고 닦고 늘리느냐에 따라서 나의 탤런트는 축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이 달란트의 비유를 들으며, 나는 일선에서 혹은 후방에서 복무하고 있는 장병 여러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군인>이란 직업을 선택한 사람 외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각기 다른 탤런트를 발휘하게 되지요. 그 복무기간이 사회참여를 위한 준비기간이 될 것이라면 이 기간동안 나의 탤런트를 앞으로 어떻게 갈고 빛내며 늘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기간으로 삼는다면 어떨런지요.
고통스런 작업과 훈련도 나의 탤런트를 값지게 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장미를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34.  죽음을 꿈꾸는 나이

꿈 속의 일이었다. 나는 오른쪽 귀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진료와 검사를 마치더니, 내 귀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내 목숨은 올해 12월까지 밖엔 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놀랐으나 충격을 감추고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나는 좀더 좋은 약을 써서 12월을 지나 더 오래 살런 지도 몰라요. 그리고 설혹 낫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내 의지의 힘을 가지고 다가오는 내 마지막 날을 받아들이겠어요!” 하고. 생각지도 않던 말을 술술 하는 내가 퍽 가상하게 느껴지는데 문득 잠이 깨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듯 눈물이 나게 다행스러웠다. 이 꿈만이 아니라, 나는 지하의 미로를 헤매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일도 이따금 되풀이해 꿈꾸었다.
30대엔 중년부인이란 말이 제일 듣기 싫었는데, 이제 50대에 들어서자 노년기라는 낱말이 심심찮게 내 눈앞을 오락가락한다. 아무리 피하려고 몸부림해도 달랑 들어 올리면 끝나는 죽음의 고리를 밀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기왕이면 어떻게 아프지 않고도 값 있게 그 고리에 끼워지느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재작년에만 해도 밀라노에서 암부로스 교회의 지하묘실에 화려하고 자랑스럽게 안치된 암부로스 성인의 유해조차 외면하고 싶었는데, 그 다음 해 로마의 카타콤에서 받은 감동과 충격이 커서인지, 여행하는 곳마다 카타콤을 둘러보며 마치 죽음의 도시를 걷는 듯 짜릿함과 흥미마저 느꼈고, 잘 정돈된 공원묘지의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오기도 했다.
그 중에도 로마의 카나콤은 지상의 웅대한 콜로세움보다 더 깊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그곳 지하 속에서의 기독교인들이 드린 예배, 지하 속에서 피어난 예술, 지하 곳곳에 이룩된 삶들이 몇백 년을 이어내려 오면서 죽음의 문화까지 전수해 준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하묘실의 벽면엔 크고 작은 네모난 구멍들이 관의 길이 만큼씩 뚫려 있다. 지상의 공원묘지도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덮여 있었지만,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세워 준 십자가가 차지한 공간은 반 평도 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묘역과 대조적이었다.

꿈 속에서도 느껴지는 아주 다른 세계를 요즘 자주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올해 3월부터 우리교회(安洞敎會) 지역선교를 위한 노인학교 프로그램을 맡았고, 갑자기 맡게 된 이 프로그램을 잘 진행시키기 위해 이화대학의 첫번 <노인대학> 강의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인문제에 대해 학문으로 체계를 세운 노년학회Gerontology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죽음에 이르는 자기실현의 과정 및 죽음과 함께 오는 자기완성의 단계, 즉 인간욕구의 단계설을 들을 때는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는 폴 트루니에가 쓴 <노년의 의미>을 책장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들춰보았다. 내가 아직 젊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정한 의사 친구가 선물로 주었는데, 난 아직 이런 책을 읽을 나이는 아니라고 화를 내며 처박아 두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것은 노년기에 읽을 책이 아니라 내가 아직 늙지 않았다고 느낀 바로 그때부터 읽었어야 할 책이었다. 트루니에는, 우리의 노년기와 여생을 황혼처럼 아름답고 값지게 보내려면, 사십 대나 오십 대에 이미 마음의 준비와 함께 실제적인 계획의 실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길어진 노년기에 비해 빨리 다가오는 은퇴 후의 심리적 충격을 줄이려면, 젊었을 때 일만 하는 훈련뿐 아니라 여가를 지내는 방법의 훈련도 쌓아야 한다는 것. 즐거운 놀이나 취미도 노년기에 시작하기엔 힘에 겨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를 나의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영생을 믿음을 고백한다고 해도, 죽음을 꿈꾸는 나의 <죽음 타령>이 재빨리 하느님나라 컴퓨터에 입력되는 건 원치 않는다.
<노인학교> 교실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늙는다는 것은 인간의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임을 깨우쳐 드리고, 불행감 대신 기쁨을 주는 마음의 꽃을 피우도록 도와드릴 나의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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