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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포토에세이)<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서문-(2)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그리스도의 영겁의 날개 밑에 돌아온 어거스틴은, 그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전기적인 참회의 ‘고백록’(401년)을 썼고, 15년에 걸쳐 ‘삼위일체론’(400~415)을,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 속에서 영원한 평화와 성스러운 안식을 동일시한 ‘신국론’(413~426)과 ‘하느님의 도성’ 등을 남겼다. 성자 어거스틴에게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그의 새로운 삶의 원천이 되었다.

 

밀라노에 다시 한번 오게 된다면, 5월4일에 열리는 모니카 기념예배에 참석해서 위대한 여성이며 대지와 같은 어머니 모니카의 모습을 꼭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가서 성자 어거스틴을 탄생시킨 타가스테의 산과 냇물을 바라보면서 그가 연구하고 이룩해 놓은 하느님 나라의 개념을 더욱 알고 싶다.

어거스틴을 생각하는 짧은 시간의 교류가 아쉬워 문밖에 나와 더 오래 서성이며 어거스틴이 성자 암부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는 반달모양의 모자이크 그림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다시금 느끼면서.

 

 

 

 

***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정의채 신부 씀- 길-1984.3.)

 

354년 타가스테에서 출생

380~381년 [미와 적합론] 저술

386~387년 [아카데미아 학파의 논박], [행복한 생활], [질서론], [독백] 저술

387년  개종

391년 수도회 창설하고 [하느님의 종들을 위한 수도규칙]을 냄

396년 히포의 주교로 선출

401년 [고백록] 저술: 어둠과 빛, 선과 악, 육과 영, 죄와 은총, 혼란과 평온의         처절한 갈등의 자서전적 표현.        

400~415년 [삼위일체론] 저술

413~426년 [신국론; 하느님의 도성] 저술: 어거스틴의 사상의 정화(精華). 그의 풍부한 신학적 내용을 담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넓고 깊은 문화사적 역사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희랍철학과 인간문화를 그 역사적 과정에서 파악하며 이로 정연하게 내면을 투시하여 그 한계를 제시하고 자연스럽게 역사신학과 합체시켜 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즉 역사 안에 이룩된 고귀한 인지(人智)의 발전을 계시 안에 원숙시켜 간다. 이 책 안의  어거스틴의 사상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는 아득한 흐름의 지평에 시간과 영원의 합체를 보며 영원 안에 시간이 흡수되어 감을 봄으로서 종말론적 세계관을 피력한다.

인류사의 같은 행적을 더 넓은 시야에서 묘사한 것. 즉, 신국의 요인인 지상도읍과 천상도읍의 발생, 성장, 종국으로 표현 됨.

어거스틴은 인간이란 본래 영육을 막론하고 허약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제시함. 그는 현대의 실존철학자들을 훨씬 앞지른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영육의 한계를 명쾌하게 그리고 체험적으로 제시하며,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가능성 즉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을 제시한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기에 우리 마음이 당신께 쉬기까지 안정치 못하더이다.”

어거스틴은 죽음에서 인간의 숙명적인 비극을 보는 데 있어 현대인들을 앞지른다. 그는 욥 성인의 성구 “이 지상의 삶은 시련이 아닌가?”(욥7:1)라는 말씀을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죽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도는 달리 없고 오직 그리스도교의 신앙만이 큰 위안과 극복의 길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교의 죽음관과 이교세계에서 가장 고상한 윤리관을 갖고 있다는 스토아파의 죽음관(자살 예찬설)을 대비시킨다.

어거스틴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사람에게 절제덕, 용기덕 즉 강의덕, 정의덕 등이 필요함을 역설하여 희랍 윤리사에 흐르고 있는 사원덕(四元德) 사상을 답습하고 있으나 무엇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의가 실천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정의가 결여될 때 로마 제국의 정복이라는 것을 산적행위로 몰아세운다

정의 문제의 일화; 붙잡힌 해적과 알렉산델 대왕과의 대화이다. 대왕이 그 해적에게 그렇게 바다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하자, “그것은 왕이 세계에 대해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작은 배로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큰 함대로 하기 때문에 황제라 불리운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의는 각 사람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빼앗는 것이 아니라)이라고 정의함.

어거스틴의 ‘전쟁과 평화론’; 전쟁의 참상도 인간의 모든 불안. 소란도 결국은 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화의 희구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발로, 인간생존의 근본요인이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도 승리를 통한 영원한 평화에 도달하려는 것이지 평화를 통해 전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전쟁 없는 평화는 성립되지만 평화 없는 전쟁은 성립되지 못한다.

또한 평화는 질서에 성립된다. 사물의 평화는 사물의 평온이다. 인간사회의 평화는 정의의 질서의 요청이다. 이런 정의 질서의 요청은 벌과 상의 변증법적 프로세스로 나타난다. 이 요청은 이 지상에서 충족되지 않으므로, 지상의 평화는 즉 여기의 평화는 불완전한 평화이며 그것은 하느님께 근거하는 저기의 평화, 인류정복(淨福)을 내포하는 평화를 지향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지배하는 정의 위에 이루어지는 평화이며 즐거움이 충만한 평화이다. 이런 정복의 평화 혹은 평화의 정복은 인간의 모든 바람을 세우는 최고선이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은 인간 삶의 종국 목적인 최고선과 평화를 연결시킨다. 행복과 평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

어거스틴은 희랍사상의 중심개념인 최고선을 그리스도교적 관념으로 승화시키며 모든 존재의 근거 존재인 하느님 안에서 최고선과 정복, 영원한 평화, 영원하고 성스러운 안식을 일치시키면서 신국론의 대단원을 내린다.

430년 힙포의 주교로서 사망하기까지 주교로서의 사목직무에 열성적이었고 시민들의 상담역인 시민법관도 담당했다.

(이 외에도 그의 젊은 시절의 사념들을 사로 잡았던 사상들에 대한 반박과 호교론적인 저술들이 있다.)[마니케이즘에 대한 논박], [도나스타파에 대한 논박], [펠라니안파에 대한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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