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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knyoon


116.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세 자녀가 결혼해서 나간 텅 빈 둥지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상징 같은 세 개의 알을 다시 품고 사는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주의 기도’를 함께 드린다.
예수님은 참으로 그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고 영성의 지혜를
주시는 천재 시인이시다. 아무리 멋진 표현으로 중언부언 아뢰어 봤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를 따를 만한 기도문은 없으리라.
 
나는 가끔 ‘주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 내 필요에 따라 강조하는 문장의 부분이 있다. 몸이 아플 때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는 부분에 액센트를 주며 엄살을 부리느라 다음 기도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일 많이 힘을 주어 기도하는 부분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이다.
 
이십 여 년 전에 한국에서 제1회 노인학교연합 체육대회 할 때, 참가하는  분들을 위해 큰 의류점에서 1천 점의 빨간 티셔츠를 기증받아 참가한 교회에 나누어 주었는데, 예상밖에 인원이 초과해서 셔츠가 모자랐다.
한 전도사님이 내게 뛰어 와서 ‘권사님, 몇 벌만 더 주셔요. 나 지금 시험에 들려고 해요”해서 막 웃던 생각이 난다.
 
지난 주일저녁에는 오웬사운드의 채트워즈 연합교회에서 6교파가 함께 성탄연합음악회를 할 예정이었다. 오후 3시쯤부터 죠지안 베이 부근의 모든 마을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자, 저녁 모임이 취소 되고 남편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오웬 사운드로 향했는데 구름 속에 다니는 듯 흰 눈 천지였다. 그 동안 내린 눈이 길가에 산더미로 쌓여 있고, 남편 민 장로는 차를 자꾸 그 위에 들이박는다. 소금이 섞인 회색물이 차창을 덮어 간신히 쓸어내려도 앞이 안보이게 눈이 쏟아진다. 핸들을 돌려 제 길로 들어서는 순간 어디서 도깨비 같이 나타났는지 큰 밴과 마주 부딪혔다. 민 장로가 마주 오는 차를 향해 중앙선을 넘어선 것이다. 밴에서 넥타이의 정장 신사가 차에서 내려왔다. 이 시골에 웬 신사? 했더니 그분도 교회 음악회가 취소되어 막데일까지 먼 길을 가는 중이란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양쪽 차의 범퍼와 거울들이 떨어져 나가고 차문이 긁혔다.
 
 집에 오는 동안 나는 옛날에 부르던 찬송가 생각이 나서, 몇 번씩 되풀이해 부르며 떨리는 속을 달래었다. 
제자들; “주여, 광풍 일어나서 큰 물결이 뛰놀며 온 하늘이 어두워지고 피할 곳 없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 돌아 봅니까?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때 주무시려 합니까?”
예수님; “큰 풍파 내 뜻 복종하리라, 잔잔해…다 순히 날 복종하리니, 잔잔해… 잔잔해… 잔잔하라!”
 
우리가 사는 동네에 그때 그 갈릴리 바다를 휘몰아 치던 라이랍스 같은 돌풍으로 맹렬한 폭설이 날려 자동차도 사람도 눈 속에 파묻혀도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다니요.
더구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음악회도 못 하고 이 고생! 오, 그러나 주님, 제발 하느님을 원망하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폭설이 지나고 닷새 후에 우리 집에 놀러 온 딸네 식구들이 이틀 밤을 자고 떠난 날 저녁은 1년에 한 두 번 나타나는 신선 같은 안개가 자욱했다.
 
오웬 사운드의 해리슨 파크 골짜기에서 토론토까지 이어진 안개 속을 아이들은 하늘에 생명을 맡기고 운행의 모험을 했다.
 
  어제 주일 저녁엔 지난 주에 연기한 연합음악회에 민 장로가 독창하는 ‘오 홀리 나잍’을 들으러라도 가야 하는데, 이번엔 시속 100킬로미터에 가까운 광풍이 불어댄다.
나는 ‘주여 광풍 또 일어납니다…’ 노래하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한 덕분인지,  저녁녘에 ‘잔잔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광풍이 조용해져서 멋진 성탄연합음악회를 예정대로 열고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6세기의 관상수도회를 이끌어 간 예수의 데레사 수녀가 ‘주의 기도’를 풀이하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자는 이야기가 생각 난다.
 
‘악마는 우리가 덕이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듭니다. 여러분에게 덕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들랑 스스로 속지 않을까 두려워하십시오.
   정말로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기의 덕을 의심하는 법이고, 매양 남에게서 발견하는 덕을 더 뚜렷하고 값지게 알아주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기 보다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에 더 열중하고 즐거워 한 건 아닐까? 반성도 해 본다.
 
지금 창 밖엔 친정에 찾아오는 정다운 딸의 발걸음인양 가볍게 포근하게 흰 눈꽃송이들이 창 문을 스치며 흩날리고 있다. 폭설과 폭우 속에서, 안개와 광풍 가운데서도 우리를 건져주신 주님은 새해에 또 닥칠 모든 재난에서도 이겨내게 해주시리라는 이 믿음을 의심하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117. 세족목요일에 생각나는 사람들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49일 추모미사가 끝나고(4월5일) 그의 새로운 신드롬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는 인사와 사후 장기기증으로 이어질 모양이다. 하늘나라로 떠나면서도 한국인들에게 좋은 선풍을 일으킨 것은 본 받을만한 일이다.
 

 

 

그와 비슷한 분으로 오늘 세족목요일에 생각나는 분은, 눈의 안구뿐만 아니라 몸의 전신을 사후에 의과대학에 기증한 일본사회복지의 기수인 하세가와 다모스 장로부부이다. 
나는 그분의 생전에 한번, 사후에 또 한번 만났다. 처음엔 우리 부부가 일본 세이레이복지사업단의 창시자인 하세가와 장로를 방문 했을 때 한국의 노인복지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두 번째 만남은 한국의 은빛계절대학 프로그램으로 그곳에 갔을 때였다. 바쁜 일정 속에서, 나는 간신히 그곳 임원의 안내로 하마마쓰 국립의과대학 유골표본실에 들어섰다.

 

 하세가와 장로 부부는 그들이 세운 이 하마마쓰 국립의대에서 해부용 시신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유체를 의과대학에 헌납하기로 한 기증자 1호, 2호이다. 그들의 유해가 의대에서 해부실습을 끝낸 후 시신을 황산에 용해하여 실습용 유골표본을 만들면, 죽은 다음에도 쓸모 있는 헌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유해는 유리표본실 안에 가로누워 있지 않고, 씩씩하던 생전의 하세가와 장로님답게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보는 듯해 깜짝 놀랐다. 나는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그분의 앙상한 손과 악수할 듯이 마주 대보며 인사 했다.

 

“장로님, 몇 해전에 우리 한국의 노인복지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이젠 우리 샬롬노인문화원의 은빛학생들이 이곳에 실습 하려 방문했답니다. 계속해서 기도해 주셔야 해요.” 하면서 눈물대신 미소를 보여드리고 나왔다. 
 돌아서 나오는 현관 정면에, 영국화가 마독스 브라운이 그린 유화를 일본 화가이며 예수회회원 아사코씨가 기증한 큰 그림이 눈에 띄었다. 예수께서 십자가 형을 받기 전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신 다음 제자의 발을 씻겨 주면서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요한복음 13장)고 말씀하시는 그림이었다.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종으로 살다 가면서 다음 세대의 종으로 거듭난 하세가와 다모쓰 장로에게 꼭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하세가와 다모쓰 장로는 병과 전쟁으로, 혹은 늙어서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중의원에 재선된 1952년에 일본 최초의 ‘사회복지사업법’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선 분이다. ‘교육. 의료. 복지’를 신앙이 구체화된 사랑의 세 가지 형태라 보고, 예수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종’이 되어 무소유, 무보수로 일생을 바쳤다. 
이런 큰 뜻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를 영혼의 빛처럼 받아들여 결혼한 야에꼬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젊은이들이 모였던 하마마쓰 전도소에서 만난 성경공부 동지였다.
두 분은 63년이란 긴 세월을 가장 멋진 파트너로 함께 해로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아가페 사랑의 표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일구어, 일본에 백여 지부를 세운 일본 세이레이 노인복지사업단의 이름이 거룩한 종, 聖隸, 세이레이에서 따온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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