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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다시 만나니 반가움과 함께 웃음이 번져 나왔다. 오래 전, 서울에서 재외국민한글학교 교사초청연수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한 여름에 정장을 한 탓인지 얼굴에 솟은 땀을 연신 닦으며 반 뛰는 걸음으로 들어온 그는 걷는 대로 웃음이 튀는 듯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척 낙천적이고 소탈한 모습이셨다.

강의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딱 하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동료시인과 셋이 금강산을 여행한 일화이다. 기암절벽 그 오묘한 금강산의 절경은 참으로 시인 세 분의 넋을 다 뺏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각자 금강산 즉흥시 한 수를 짓기로 하였는데 시어(詩語)가 다 달아나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꼭 들어맞는 어구(語句)를 찾아 고심하던 그는 산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쳐들고 “금 강 사~안~!” 소리 높여 외마디 걸작명시를 읊었다.

시는 작가의 느낌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니까 기본을 갖춘 시라고 하였다.

미국, 독일, 뉴질랜드, 브라질, 필리핀, 대부분 전업시인이 아닌 교사들은 속이 후련해지는 희열을 느끼며 박수갈채로 환호하였다. 시종 웃음소리에 쌓여 시간을 잊고 몰입한 즐거운 특강시간이었다. 한글 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라 좀더 흥미를 유발하는 시청각 교육방법과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한 명강의였다.

외국에서 살면서 후손들에게 한글을 잊지 않도록 애쓰는 한글교사들의 노고를 극구 칭찬하시던 시인님의 만년 어린이 같은 웃음소리가 귀에 울린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후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었는데 뜻밖에 한 문우의 글에서 그를 발견한 것이다. 새롭게 그의 현황을 찾아보았다.

황금찬(1918년 8월 10일~2017년 4월 8일. 속초시).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황금 찬(黃金 讚)이라 고쳐 읽으니 누런 황금덩이가 눈에 어린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98세의 춘추로 돌아가신 그가 시 세계에 비친 서광은 황금빛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꽃의 말’

말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 의미를 부여 해 준 후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 아니면 좋은 마음이 있기에 말을 예쁘게 하는 걸까//.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 같이 하리라 사람아”

“말이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시 문학은 사실을 미적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캐나다한글학교 창립시의 목표는 한글교육과 한인 정체성 확립이었다. 60여 개 종족이 함께 모자이크 문화를 형성하고 사는 다민족사회에서 문화민족의 우월성을 유지하고, 말은 유창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자부심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통상적으로 학교나 이웃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공원에서 태극기와 캐나다기를 세우고 만국기 휘날리며 시 교육관과 유지들을 초대하여 운동회를 하였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만국기처럼 어린이들의 기가 심신으로 훨훨 날리는 신나는 행사였다. 지역주민이 다 구경 나오는 명물이었다. 태권도, 고전 무용 등을 가르치고 한글날엔 글짓기대회, 우리말 잘하기 대회와 연극을 하였다.

외국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사회적, 정서적 환경이 다름으로 한국에서 보내오는 교과서는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부허용 시간은 주당 2시간 반 정도여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선생님들은 현지사정에 맞게 교재를 다시 만들어 언어교육의 세 가지 요소 즉 읽기, 쓰기, 말하기를 가르쳐야 했는데 이중 제일 어려운 것이 말하기였다.

경우에 맞는 존대어 사용법을 가려서 짧은 시간에 가르치려니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무척 힘이 들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미풍양속은 단연 어른공경의 예의범절과 공손한 말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심 끝에 일단 말하기는 존대어로 시작하기로 하였었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글을 써 온지 20여 년이 된다.

말이 먼저일까 / 마음이 먼저일까/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 의미를 부여 해 준 후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다시 생각해 본다.

의미를 부여해 주기 전에 부르는 이름은 존재의 구별을 나타내는 도구이지만 의미를 부여해 주면 주체의 의미만큼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예쁜 마음에서 예쁜 말이 나온다면 예쁜 의미에서 예쁜 존재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마음과 의미는 똑같이 사물을 미적으로 바꾸는 문학 작업의 기본요소가 아닐까. 교수님께 한번 여쭈어 보고 싶은 화두이다.

 문학작품은 나의 맘속 느낌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인지, 독자나 세상을 미화시키는 것이 최종목표인지. 심령을 감동시키는 데는 단 한마디면 족하리라는 나의 설익은 의견에도 ‘화안한’ 웃음으로 응답해 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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