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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가을아침이다.

구름에 가려 우중충하던 나무들이 햇살에 투영되어 부서진 색깔로 눈부시게 찬란하다. 숲은 온통 빨강, 노랑, 갈색의 꽃길이 되었다. 아름답다!

말문이 막힌 가슴 속으로 대강만 기억나는 오랜 시구 몇 줄이 스쳤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가을 날’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잠시 그의 위대한 여름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다가 지난여름 2년만의 뉴브런즈윅 여행과 엽서가 떠 오른 것이다.

한적한 거리는 휴양지라기보다 어느 조용한 산간 마을 같았다. 2차 백신 증명서와 뉴브런즈윅 주정부의 여행 허가를 받아야 하고, 아직도 거리두기와 공공장소의 마스크 착용이 의무이던 때여서 카페나 기념품 상가는 쓸쓸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반강제로 억류 생활을 한 몸과 마음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무조건 활개 치도록 들뜨고 시원하기만 하였다.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카페 앞 파라솔 밑에 손님들이 서넛씩 앉아 웃으며 떠들고 비스듬히 마주 보이는 곳에 우체국 건물이 있었다. 불현듯 시골 작은 우체국의 스탬프가 찍힌 엽서를 보내면 좋을 듯하였다.

기념품점에서 그림엽서를 둘러보니 코로나로 물품 조달이 안 된 진열대에는 조잡한 잉여 물품뿐인데다 가격은 2, 3배나 올라있었다. 우표만 몇 장 사려고 들어간 우체국에서 한정 특별 세일의 그림 엽서를 만나게 되었다.

우표가 이미 붙어있고 우체국 스탬프가 찍힌 멋진 ‘플라워 팟’(Flower Pots)과 '하트랜드 유개 교'(Hartland Covered Bridge), 그림엽서 두 장을 사가지고 나왔다.

호프웰 케이프(Hopewell Cape)에 있는 ‘플라워 폿’은 조수와 바람,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이지만 하트랜드 유개 교는 인간이 만든 세계에서 제일 긴 지붕 있는 다리이다.

길이 390.75m이고, 19세기 초에 건립된 다리는 목재로 탈장 대(Truss. 다리 받힘 기둥)를 만들고 탈장대의 부식을 막으려고 지붕을 씌우게 되었다고 한다. 1921년에 쇠붙이 탈장대로 바꾸고 1945년에는 다리 곁에 보도(sideway)를 지었는데 코로나로 통행금지가 되어 있었다.

 단순하고 순진하기까지 한 낭만적 발상이 깊은 상념에 젖게 만든 것은 호텔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주소를 아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과 셀 폰으로 연결된 인간관계는 거대한 거미줄에 얽힌 거미와 날벌레의 생태 굴레를 상기시키고 내 삶에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요점만 간단하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삶에서 속 깊은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시간의 틀에 갇혀 맴돌면서 보낸 만큼 돌아오는 소리와 문자에 휘둘리면서도 우리는 항상 바쁘다고 허둥댄다. 그렇게 어제가 가고 오늘이 되고 내일이 오는 것일까.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외로운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지낼 것입니다.

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가을 날’ 중에서)

 

마침 딸에게 속달을 부치느라 주소를 받은 것이 셀폰에 남아 있었다. 한 장 남은 것을 놓고 궁리하다가 기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나에게 띄우기로 한 것이다.

……우리 드디어 여기 왔네요. 이 시간 이곳에 있게 해준 모든 이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쓰다 문득 가끔은 나도 칭찬을 받아야만 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과 사회생활을 양팔에 끌어안고 오늘까지 살아내느라 겪은 모든 암초들을 극복하지 않았는가.

. 우리 집에 도착하면 마중하라고 오늘 보내요.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가을은 제 이의 봄이라 한다. 뒤 이어 오는 하얀 눈의 계절은 밤이 길어 좋은 위대한 계절이다. 코로나는 우리가 방에 콕 박혀있어도 감내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길러 주었다.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며 좀 더 부드럽고 신실함을 담은 길고 긴 편지를 써야겠다.

가을은 자연이 상을 받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인생이 여물어 가는 계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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