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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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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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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24-12-19
아내의 웃음

 


아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걸으려고 집을 나섰다.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혹독한 추위가 내려온 거다. 얼굴은 암만 추워도 다른 부위에 비해 추위에 강하다. 문제는 목덜미로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으니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때 안방에서 내려온 아내의 웃음을 본 거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만 이민 초기에는 나도 한식 외에는 거의 먹지 못 했었다. 직장 다닐 때는 어머니께서 샌드위치를 양상추를 넣고 맛있게 만들어 주셨어도 밀가루 냄새가 싫어 몇 입 먹질 못 했다. 일 끝나고 와서야 밥을 국에 말아 한 그릇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혹시 어디 양식당에 가서 스테이크라도 먹으면 집에 와서 꼭 라면을 끓여서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음식은 문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문화가 발달된 나라는 세상에 별로 없을 거다. 그 좁은 나라에 동네마다 자랑하는 음식이 다르다. 해운대갈비, 춘천닭갈비, 청진동해장국, 안동칼국수, 전주비빔밥, 제주도 흑돼지, 부산돼지국밥 등등. 동네마다 문화가 다르다. 해운대 갈비가 유명하다면 ‘해운대갈비집’ 간판 옆에, ‘진짜해운대갈비집’, 길 건너에 ‘원조해운대갈비집’ 등등 기상천외한 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TV를 틀면 온통 먹는 방송이거나 음식 만드는 방송이다. 한국인들이 음식 먹는 방송을 보면 그 음식을 정말로 먹고 싶어진다. 한 여름날에 뜨거운 삼계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모습에 침이 입 안에서 호수를 이룬다. 해변가 마을에서 생선구어 먹는 방송을 보면 당장에 한국도 가고 싶다.
지난번 남대문시장에서 먹은 갈치조림과 생선구이 싸고 맛있었지.

 

음식을 만드는 방송을 한 번 보자. 음식 만드는 요리사가 있고,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패널들이 있다. 깔끔하게 셋업된 부엌에 여러 재료들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방송을 이어나가며 음식을 만든다. 음식이 다 되면 패널들에게 닭 모이 주듯 조금씩 먹여준다. 아,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나를 패널로 좀 쓰면 안되나? 맛있는 것도 먹고, 돈도 좀 받으면 인생 말년에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텐데. 
무엇보다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잭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너의 모습을 보면 난 정말 행복하단다”고 이야기 했던 필리핀 여인 지니의 말이 지금도 귓속에 맴돈다. 음식을 했는데 너무 맛있게 먹어 주니 정말 좋단다.

 

캐나다의 TV는 스포츠나 다큐멘터리, 연속극 등 외에 음식방송, 소위 ‘먹방’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캐나다의 음식은 토론토, 밴쿠버, 에드먼튼, 핵리팩스 등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 닭고기, 스테이크, 랍스터, 햄버거 등등 무엇을 먹었네, 어디서 먹었네 하는 차이는 있지만 ‘어디 가서 특별한 무엇을 먹었다’고 하는 일은 없다. 
캐나다인들에게 먹는 것은 단지 살기 위해 먹는 거다,
토론토에서 한국을 방문하러 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번에 가서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와야지.” 굶주리던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먹는 것이 남아 돌아가는 캐나다에서 무언가 실컷 먹으러 한국에 간다? 좀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저급문화에서 고급문화를 탐방한다면 이해가 될 거다.

 

한국인들은 아침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점심 때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한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오늘 저녁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 관심을 둔다.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으면서는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나는지 논의를 한다. 한국인들은 먹기 위해 산다.
나도 캐나다에서 살기 위해 먹고 살면서 식성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밥을 하루에 한 술도 안 뜰 때가 많고, 김치도 며칠 안 먹어도 견딜 만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에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넣고 샌드위치 만들어 먹거나, 계란 후라이에 스프나 한 캔 따서 데워 먹거나, 코스코에서 사온 치킨을 먹고 만다. 저녁도 대충대충 때우는 날이 많다. 내 식성이 변하니 아내가 편하다.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고 대충 줘도 탱큐하고 먹는다. 내가 대충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면 몸이 편하니 좋겠지.
아내의 웃음을 보기 위해 내 식성이 바뀌었나 보다. 2024.12.17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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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24-12-04
노란 단풍나무

 


12월이다. 밖에 나가보니 빨간 단풍들은 다 떨어진 지 오래고 이제 노란 단풍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폭설이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토론토에는 눈이 피해갔고, 북쪽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토론토에 첫 발을 디뎠을 때의 그 엄청난 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눈은 가장 멋있을 때가 펑펑 내릴 때이고, 아름다울 때가 산야에 수북하게 쌓여 평온함을 줄 때이다.
거기에 동물이나 사람들의 발자국 몇 개가 찍혔을 때는 그야말로 우리의 존재감도 나타나고, 평화를 읊을 만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도 많은 발자국들이 엉켜지며 거기에 흙탕물이 튄 데다 쓰레기마저 섞이면 아름다움과 평화는 지저분함과 무질서로 변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흰색은 줄어들고 지저분한 색들이 더욱 짙어간다. 아름다운 눈이 무질서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삶이고 투쟁의 역사이다. 깨끗한 상태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는 더욱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정초부터 알던 분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돌아가셨고, 여름에도 안 좋은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을이 되니 더욱 많은 분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의 부고 소식도 들었지만, 나보다 약간 위 연배거나 같은 나이의 분들도 꽤 많이 타계하셨다. 
같이 단체 활동을 하셨던 분들도, 동포사회에 많이 알려진 분들도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추억 속의 인물들이 되었다.

 

골프시즌이 끝나갈 때쯤, 아는 선배와 골프를 치고 있었다. 요 몇 달 사이에 자기가 아는 후배 3명이 유명을 달리 했단다. 그런데 그 3명을 나도 나름 잘 아는 분들이었다. 
“야, 이거 뭐, 올해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야?”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나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 모두가 점점 ‘죽음의 연령대’에 진입을 한 거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오래 전에 이민 와서 과일가게에, 컨비니언스에,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열심히 열심히 살아왔다. 열심히 살다가 집도 장만했고 이제 골프나 치며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만 몹쓸 병마가 덮쳐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며칠 전 그날따라 열심히 일하다 집에 돌아오니 바깥에 불이 환하다. 둘이 사니 바깥에 불을 켜 놓을 이유가 없는데, 어쩐 일일까? 
주차장에는 아내 차 밖에 없는데, 누가 왔나? 하며 들어가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건 작은 손녀 라이언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게 왠 떡이냐, 뜻밖에 손녀를 다 보다니.
큰 손녀가 댄스 클라스에 간 사이에 작은 손녀를 할머니에게 잠깐 동안 맡겨 놓은 거다. 잠시 후에 딸이 큰손녀와 같이 와 작은 손녀를 데리고 갔다. 
가기 전에 내 뺨에 뽀뽀 한번씩 해 주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힘든 하루가 다 녹는 것 같았다. 찰나 동안 손녀들을 봤고 그들이 떠났는데도 집안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래 맞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커 나가는 것은 눈이 펑펑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과 같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하나, 둘 알아가고 지식을 채워 가는 것은, 산야에 깔린 눈 위에 하나 둘씩 발자국이 찍혀가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발자국이 점점 많아지며, 흙탕물마저 섞이는 것은 우리가 이 험난한
삶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거다. 하얀 눈이 녹으며 지저분한 것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과도한 욕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다 낙엽처럼 지는 게 우리네 인생인데…

 

눈처럼 아름답게 왔다가 지저분한 상태로 소멸하는 우리네 인생.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 중 이 순간까지 돌아가신 분들은 낙엽으로 떨어진 빨간 단풍이라면, 이제 남아 있는 우리는 노란단풍들이다. 
불리우는 그날까지 남은 인생 열심히 살다가 후회없이 세상을 떠나야 할 텐데.
노란 단풍나무야, 아직 우리를 놓지 말아다오. 2024.12.0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121299
8045
2024-11-19
현충일 그리고 공산당

 

지난 한 주는 여기저기 행사 다니느라 바빴다. 캐나다의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였고 낙엽이 완전히 떨어진 것이 아니고 일부는 나무에, 상당수는 길에 떨어져 세차게 부는 바람에, 달리는 차에 휩쓸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가을의 풍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역시 캐나다는 가을이 너무 아름답다.  

 

지난 11월 9일, 토요일 오전 무궁화사랑모임(회장 이정훈)이 제임스공원에서 주최한 현충일(Remembrance day)행사에 다녀왔다. 
6.25 한국전쟁때 희생되신 캐나다군 516명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무궁화나무에 516개의 예쁜 리본을 달며 그분들의 희생을 추억하는 자리였다. 햇볕은 쨍쨍나고 기온도 좋아 행사 치르기에 더 없이 좋았다. 많은 낙엽이 깔려 있어 아름다운 캐나다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도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앞으로 6.25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그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본한인교회로 달려갔는데 거기서는 북한인권협의회(회장 이경복)가 주최하는 인다만(인차 다시 만나요) 행사에 참여했다. 인차는 북한 말로 곧이라는 뜻인데, 북한의 감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는 그만 그 약속이 못 이루어지는 슬픈 탈북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11일, 월요일 OK노인대학(학장 강신봉)으로 달려가 현충일기념식과 박정희대통령 탄신 10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왔다. 
16일, 토요일 토론토한인회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회장 유건인)가 주최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자유평화통일 대토론회’에 참석했다. 
네 행사 모두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YouTube 에서 ‘토론토김재기’를 치면 다 나온다. 
현충일은 1918년 11월 11일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기념으로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기억하며 전쟁의 참혹상을 알리자는 데 있다. 1차 세계대전은 공산국과의 싸움은 아니였는데, 이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의 전쟁은 거의 자유민주국가와 공산국가의 대결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처럼. 그러므로 위의 모든 행사가 공산국가와 관련이 있는 행사다. 특히나 미치광이 공산국가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 한국에게는 모든 행사가 공산당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며칠 전 뜻밖의 글을 보았다. H신문의 Twitter 에 선가? 언뜻 보고 깜짝 놀랐다. 내용인즉 “왜 공산당을 죽여야 한단 말이냐. 4.3사태 때 공산당을 왜 죽였는가? 일본을 보라, 공산당 가만 나둬도 국회의석 단 몇개 얻었을 뿐 그 나라가 망했는가?” 
이거 웬 정신 나간 소리인가. 4.3사태가 끝난지 1년도 안 되어 김일성이의 불법남침으로 대한민국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그야말로 퐁전등화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우방국들의 신속한 도움으로 전세를 뒤집어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무려 300만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천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는데, 6.25전쟁의 시작은 공산당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이다. 일본이 공산당에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우리 한국도 공산당을 놔둬야 한다고? 그럼 지금 대한민국이 이고 있는 핵폭탄은 공산당이 아닌 누가 가지고 있단 말인가. 북한 2500만을 굶주리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한반도 반절을 망하게한 김정은이 일파는 공산당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사람은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설을 신봉하는가?
공산당을 찬양하거나 공산당이 좋은 사람은 공산진영에 가서 살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절대로 그곳에 가서 살 생각이 없다는 거다. 일본의 조총련의 경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뽑아 북한에 보내면서도 간부 지들은 북한에 안 간다고 한다. 마치 반미주의자가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이민 보내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다.
그들도 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굶어죽인다는 것을. 1930~40년대에 소련의 공산당은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수의 자기 국민을 굶어 죽였으며, 1950~60년대에 중공은 대약진운동 때 4천만 명 정도를 굶겨죽였고, 북한은 1990년대에 300만 명 정도가 굶어 죽였다. 
공산당을 안 죽이면 내 국민이 죽는다. 공산당은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 삼아 싸운다. 그들 틈에 끼어 국민들은 죽던말던 비열하게 그 안에서 싸우기 때문에 민간인의 희생이 늘어난다. 그걸 싸우는 상대편에 뒤집어 씌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무찌르가 공산당, 멸공만이 살길이다.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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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21129
8045
2024-11-13
내가 조심했던 3가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보았고, 많은 것을 접했다. 과거에는 무슨 예시를 들면 그것이 내가 행하는 쪽의 나이였는데, 어느 날 보니 이제는 당하는 쪽의 나이가 되었다.
과거에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내 자식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되는 나이가 되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거창한 일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러나 그것이 한 개인이나 그 가족에게 파멸을 줄 수 있어 내가 살면서 특별히 조심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내 자녀들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 이야기들이다.

 

첫째는 마약 즉 Drug 이다. 어릴 때 연속극에서도 많이 보아온 장면이 일제시대 때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돌아왔을 때는 아편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공부는 많이 했으나, 일제가 다스리는 나라의 식민지 청년이니 출세하기도 힘들고 해서 그 도피 행각으로 마약을 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때부터 나는 마약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역사에서 아편전쟁이 있다. 어릴 때 읽은 어떤 소설에서 그 당시 중국의 아편가게를 묘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멀쩡한 사람들이 와서 돈 내고 아편을 하고, 한 방에서 추욱 늘어져 잔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눈은 퀭하고 침은 질질 흘리고… 그걸 보면서 정말로 마약은 개인의 파멸뿐 아니라 나라도 파멸로 이끄는 아주 무서운 병기임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에서도 마약이 무서운 속도로 퍼진다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다행히 내 주위에서 마약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도박 즉 Gambling 이다. 나도 신혼 초까지는 도박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도박을 딱 끊었고, 그 후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위에 도박으로 패가 망신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고 목숨을 버린 사람도 많다.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 때는 도박으로 돈을 좀 따면 형편이 필 것 같으나, 따기도 힘들뿐더러 한번 딴다고 해서 구조적인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번 따기도 힘든데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딴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일이다.
요즈음 Youtube를 보면 일명 타짜라는 사람들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뻔히 눈 뜨고 있으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과 겨뤄봤자 절대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기계와 하는 것도 마찬가지. 기계는 내가 넣은 돈의 반 정도만 상금으로 내어주니 일시적으로 딸 수는 있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돈이 그리로 흘러가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카지노의 운영자금이며 그 많은 직원들의 인건비며 정부의 수익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적은 돈으로 복권을 사는 건 애교로 봐줄 수가 있지만 적극적인 노름은 개인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뿐이다. 오죽하면 난봉꾼은 사위로 맞이할 수 있지만, 노름꾼은 사위로 맞이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심심풀이 오락으로도 카지노 출입은 하지 않았다.

 

셋째는 음주운전 즉 Drinking driving 이다. 내가 리치몬힐에서 가게할 때 나보다 약간 위 연배의 남자 손님이 하나 있었다. 퇴근 때가 되면 가게에 들려 필요한 식품을 매일 사갔다. 항상 혼자서 걸어서 왔고 걸어서 갔다. 그러기를 한 2년? 그가 어느 날 차를 타고 가게를 들렀다. 반갑게 맞이하며 “너 운전하는 것 처음 본다” 하고 말했더니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술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몇 년 후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음주운전에 걸렸단다. 면허정지를 2년 먹었고 자동차 메커닉인데 직장이 뉴마켓이고 운전을 못하니 얼마동안 출근을 못했다고 한다. 수입이 끊기고 나니 부인이 집을 나가면서 이혼을 했고, 자기의 인생은 거기서 종쳤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끊었고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어제 정지가 풀려 처음으로 운전을 한다면서 아주 속상한 표정이었다. “I ruined my whole life.” 그가 했던 말이다. 나도 가끔은 모임에서 약간의 술을 마시고 운전할 때가 있다. 극도로 조심해서 최소한만 마시려고 노력했다.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약간의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서 내 삶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가 있다. 잠시 동안만 참으면 될 일인데 그걸 못 참고 일을 저질러 인생을 종치지 안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행동을 해왔다.
올해에도 그러고 앞으로도 별 일 없이 한해, 한 해를 보내고 싶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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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20933
8045
2024-11-06
아마추어와 프로- 월드시리즈 5차전을 보고


정말 어처구니없이 끝났다. 지난주 월드시리즈 5차전은 마치 프로와 아마추어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즈, 세기의 스타 쇼헤이 오타니와 아론 져지, LA 다저스가 아무리 강호라고 해도 미국 프로야구의 대명사는 뉴욕 양키즈다. 그런데 그들은 아마추어도 잘 하지 않는 실수로 다 이긴 게임을 말아먹고 말았다.
필자도 야구를 무척 좋아했었고, 80년대 동포사회에는 OB 소프트볼 리그가 있었다. 운동은 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팀이 없어 몇 명이 팀을 만들어 출전한 적도 있었다. 팀의 유니폼을 양키즈와 같이 줄무늬 유니폼으로 맞추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아는 후배가 야구협회장을 할 때 자문위원을 맡아 달라고 해서 맡은 적이 있었다. ‘김재기 부동산’ 어린이야구단을 창단해 한 1년 정도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지속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 야구에 소홀하게 됐고, 이제 다시 야구에 취미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올해는 뭐니뭐니해도 오타니 쇼헤이의 50-50달성으로 야구계가 바짝 달아올랐고, 아론
져지 또한 아메리칸리그의 홈런왕으로, 이들의 대결에서 여러 가지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두 번째 게임부터 TV 앞에 앉았다. 2차전 게임은 LA에서 열린 일방적인 LA 의 승리였다. 업치락뒤치락 하며, 베이스를 훔치고 상대편의 빈틈을 파고드는 뭐 이런 재미 요소는 모두 삭제된 그래서 괜히 잠도 못 자고 이걸 보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뉴욕에서 열린 세 번째 게임도 LA 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나 뉴욕으로써는 이제 세 게임을 연속으로 졌으니 한 게임만 더 지면 그냥 떨어지는 판국이었다. 4차전 게임은 LA 의 투수진이 부족해 포기한 경기로 뉴욕이 가져왔다는 데 나는 게임 도중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래도 뉴욕이 1승을 챙겼으니 다섯 번째 게임을 보기로 하고 TV 앞에 앉았다.
시작하자마자 홈런 세 방으로 5대 0으로 달아나는 뉴욕,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양키즈인데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다’라고 생각했다. 야구는 확률게임이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첫 3게임을 연속으로 진 팀이 2게임을 내리 이겨서 6번째 게임까지 간 적이 없단다. 그러면 뉴욕이 질 확률이 100%다. 
그런데 양키즈의 투수 게릿 콜은 자기팀 타자들이 4점 이상 득점을 해주면 이기는 확률이 98% 라고 한다. 지금 100% 의 확률과 98%의 확률이 대척점에 서 있고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니까 다저스가 이길 확률이 100%, 뉴욕이 이길 확률이 98%. 나는 양키즈를 응원했다. Game 6, 7을 보기 위해서.
4회 초 아론 져지가 거의 홈런이 될 뻔한, 최소 2루타는 확실한 타구를 높이 점프해 펜스에 부딪히면서 받아내는 멋진 플레이로 온 야구장이 난리가 났다. 우리 인간은 바로 한치 앞도 못보니까.
이제 어처구니 없는 5회로 가보자.
5회 초 평범한 플라이볼을 져지가 놓쳐버린 것이다. 이런 실수는 아마추어도 잘 하지 않는다. 바로 전 회의 그 멋진 점프를 지워버리는 큰 실수였고, 다음 장면은 타자가 친 땅볼을 잡은 유격수가 3루 송구를 땅바닥으로 던져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양키즈 투수의 멋진 투구로 투 스트라이크 아웃이 됐다.
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2사 만루에서 타자가 친 땅볼을 1루수가 잡았는데 투수가 베이스커버를 하지 않아 점수를 주었고, 바로 2루타 두 방을 맞아 순식간에 동점을 내줬다. 단 한 회에 실수를 3개나 해버린 것이다. 한 게임에 에러가 3개면 많은 것인데 한 회에 3개나 해 버렸으니, 어렵게 얻은 5점을 바로 헌납했다.

 

뒤에 나온 양키즈 투수는 타자를 상대하지 않고 주자 신경을 쓰다 몇 개의 볼넷으로 만루를 만들기도 했고, 주자에게 견제구는 두 개 밖에 못 던지는데 3개를 던져 1루 주자에게 2루를 허용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 아마추어인 내가 봤을 때 쓸데 없는 실수 다섯 개로 다 이겨놓은 게임을 말아먹었다. 100%의 확률이 98%의 확률을 눌렀다. 양키즈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했고, 다저스는 진정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 게임이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로 힘들게 이룬 것을 날리기도 한다. 조금만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손쉽게 지나갈 일을 어렵게 만들고 꼬이기도 한다. 조그만 더 전력 질주 했더라면,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더라면 LA 에서의 6번째 게임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더 눈을 크게 뜨고, 더 열심히 마무리를 해야겠다. 
그나저나 이제는 뭘로 소일할거나.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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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20599
8045
2024-10-23
빨간나무와 같이 익어가기

 


방금 밖을 걷고 들어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밖으로 나선다. 오전에 7,500보를 걷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생활하면서 걷는 것과 합해 저녁 때가 되면 보통 1만1,000 보 정도를 걷게 된다. 걷고 나면 무릎이 좀 불편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꾸준히 걷고 있다. 골프를 치러 가도 그린피에 카트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항상 걷는다. 18홀을 끝내고 나면 평균 1만3,000~1만5,000보 정도를 걷게 된다.
오늘은 아침에 걸으며 공원 중간에서 조그마한 사슴 한 마리를 만났다. 아스팔트 길 위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처음 보는 사람인데, 선하게 생겼구만” 하는 모습이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이 공원을 수백 번 걸었는데 사슴을 본 건 처음이다. 너구리도 코요테도 간혹 봐 왔지만 사슴은 처음이라 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오늘따라 카메라 앱을 못 찾고 한참을 버벅거리다 간신히 찾았을 때에는 아뿔싸 사슴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스팔트 길 위에 있는 모습을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좋은 장면은 놓쳤다.

 

몇 년 전에 당뇨가 있다고 했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운동 삼아 매일 걷기 시작했는데 당 수치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다 하루, 이틀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자주 빼먹게 되었고 그러기를 석 달. 그러다 보니 당 수치가 상당히 높아졌다. 닥터가 “이제 어떻게 할거냐?”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보란다. 나의 Samsung Health 를 보여주며 “사실 걷는 것을 몇 개월 간 소홀히 해서 그렇다. 다시 열심히 걷겠다”고 약속했다.
당뇨가 있으면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데, 나나 아내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흰쌀밥, 빵과 과자 등을 좋아하니 먹는 것으로 당을 치료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걷기를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열심히 걷다 보니 얼굴이 마르고 주름이 생겨 더 늙어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아내는 내가 너무 많이 걷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늙은 남편과 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금 이때인데 가을이 익어가는 것을 하루하루 느낄 수가 있다. 초록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좀 더 있으면 공원 초입의 첫 번째 고개를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빨간나무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겠지. 작년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걸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3개월 거의 매일 열심히 걷다 피검사를 하고 닥터에게 갔다. 당 수치가 많이 좋아졌단다. 무엇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본다. 열심히 걸었다고 했더니 엄지척 보여주고 계속 그렇게 하란다. 그리고 또 3개월을 또 열심히 걷고 피 검사를 한 후 닥터에게 갔더니 별 진전이 없다고 한다. 걷기만으로는 효과가 거기까지니 음식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나만이 아니고 아내가 협조해야 하는데, 어쨌든 알겠다고만 하고 나왔다. 어떤 걸 먹든 바로 죽기야 하겠나.

 

살다 보니 내 나이도 이제 6학년 종점에 도착을 했고,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어떻게 살아왔냐고 하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별 성과는 못 보았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몸이 아파 한 1년간 투병생활도 했고, 스키 타다 팔이 부러져 고생도 좀 했지만 그 외에는 건강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웬 추레한 노인이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동영상을 찍어보면 내가 찍힌 부분을 통편집하게 된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한다. 맞다. 아무리 권력과 돈이 많아도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고 만사가 다 귀찮아 지는 것이다. 아직도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골프채 휘두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앞으로도 열심히 걸으며 공원의 빨간 나무처럼 아름답게 오랫동안 익어가고 싶다.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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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2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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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7
손주들과 아폴로



어제 저녁 집에 잘 도착했다. 쓰레기통은 고맙게도 누가 집 안쪽으로 조금 밀어놨고 문을 열면서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집은 내가 지난주 놓고 간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이제는 서서히 기력이 달리는구나.
지난 9월 29일은 손녀딸의 돌이었다. 며느리가 몇 장의 돌잔치 사진을 보내주었다. 잔치라기 보다는 자기들끼리 생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자리였다. 아내의 골프 스케줄이 정리 되고 지난주 일요일 새벽에 집을 떠나 공항에 갔는데 웬일로 Air Canada 정시에 출발, 순조롭게 에드먼튼에 도착했다.
아들이 마중 나와 H-Mart에 들러 점심을 먹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갔다.

 

차고에서 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데 아폴로가 집 밖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어, 뭐지?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더니 잠시 후에 알아보고 껑충껑충 뛰고 난리가 났다. 한번 번쩍 뛰었다가 저쪽으로 뛰어가고 돌아와서는 또 번쩍 뛰었다가 이쪽으로 뛰어가길 두어 번 그때 아내가 차고에서 나오는걸 발견하고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뤘다. 누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반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보다 앞장을 서서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반겼다. 지난 7월보다 꽤 많이 컸구나. 너희들은 지금이 제일 쑥쑥 자랄 때지. 우리는 천천히 늙었으면 좋겠다. 짐을 풀고 올라가니 손자가 가만히 나에게 오더니 내 다리를 잡고 포옹을 한다. 지난 여름 우리집에 왔을 때는 나를 보고 가까이 오지 않더니 이제 ‘우리 할아버지인가?’ 라고 인식 되나 보다. 그래 이제 세상은 우리를 거쳐 너희 부모에게로 넘어갔고 너희는 이제부터 너희 부모에게서 세상을 제대로 받을 궁리를 해야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어찌될지 모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

 

손녀딸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전혀 낮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돌이 바로 지났으니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나 다니기는 하는데, 적극적으로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기를 안고 거실에 있는 거울을 보니 손녀는 뽀얀 피부에 눈도 큼직한 것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는데 내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손주가 넷인 할아버지’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손주가 넷… 철없던 재기가 손주가 넷이라면 우리 어머니가 웃으실 텐데…
아내의 고교동창 미현씨네가 초대를 해줘 그 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옛이야기들을 했다. 우리는 1981년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에드먼튼으로 왔었다. 친구네 집에서 한 이틀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손님도 초대해 잔치도 베풀어주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차를 빌려 캘거리와 록키마운틴을 관광한 후 에드먼튼으로 돌아와 토론토로 복귀했다.

 

미현씨네가 우리 리치몬힐 살 때 온 가족이 우리집에 한 일주일 왔다가 돌아간 적 있었고, 우리가 에드먼튼에 갈 때면 공항픽업도 해주고, 작년에는 같이 자스퍼도 놀러 갔다 오곤 했다. 아내의 50년지기 친구 덕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다.
나는 매일 동네를 걷는데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아주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다. 단풍은 토론토보다 더 들었고, 떨어진 낙엽도 상당하다. 매우 평화로운 모습인데 그와는 달리 에드먼튼은
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도시다. 게다가 홈리스 셀터가 아들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겨 아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 범죄가 있고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니 어찌하겠나, 다만 더욱 조심을 할 뿐이지.

 

 

밖을 돌아다니다 집 앞에 내려 창문을 보니 아폴로가 창문에서 햇볕을 쬐며 자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창문을 톡톡 두드리니, 그래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그래서 두드리는 강도를 좀 높이고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벌떡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컹컹 짖었었는데… 한참을 두드리니 부시시 일어나서는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래 이제 아폴로도 늙은 거다. 2012년 10월 8일 생이니 12살, 인간 나이로는 12x7=84살이니 이제 잘 듣지를 못하는 거겠지. 뿐만 아니라 걷는 것도 귀찮아서 안 걸으려고 한다. 삶의 의욕이 많이 빠졌다. 내 손주들은 활기차게 커가고 있으니 너와 나는 곱게 서서히 늙어가자꾸나. 우리가 가방 싸 들고 나가니 씨무룩하게 쳐다봐 마음이 짠 했는데 ‘그래. 다음에 볼 때까지 우리 잘 지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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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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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극적인 드라마-제 1회 토론토라인댄스 마라톤대회

 

 

제 1회 토론토라인댄스 마라톤 대회를 잘 마쳤다. 첫 회이니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고 그날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전하려고 한다. 금요일 오후에 몇몇 이사들과 장내 정리를 다 마치고 토요일 오전에 한인회관으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몇몇 선수들과 접수처에 사람들이 붐볐다. 한인회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출장을 갔다고 나보고 꼭 사진을 놓치지 말고 찍으라는 회장님의 부탁이 있었기에 동영상도 좋지만 중요한 장면의 사진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인사회에 라인댄스하는 팀이 여럿이 있는데 이번에 출전하는 팀은 주로 한인회관에서 수업하는 비비안윤팀과 박영주라인댄스 팀에서 많이 출전을 했다. 나는 한인회관의 비비안 윤선생한테 배우고 있다.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이번에 출전 안 하세요?”하는데 나의 배 나온 모습에 뒤뚱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알아야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세 명의 라인댄스 강사인데 두 명은 중국계, 한 명은 한인이다. 사회자의 개회선언과 국민의례에 이어 한인회장의 인사말 그리고 (사)대한라인댄스연맹 회장의 축하영상 그리고 선수선서 후 바로 시합에 들어갔다.

첫 번째 팀은 다섯 곡을 연달아 치는데 모든 스텝을 다 외우는 것도 어렵지만 중간중간에 Tag 이라고 해서 특별한 동작을 해야 하는 곳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어떤 춤은 Restart 라고 해서 스텝중간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초보자인 나로서는 찾아내기가 어렵다.

춤을 제대로 추다가도 잠깐 딴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면 영락없이 스텝이 꼬인다. 왔다갔다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 보니 순식간에 다섯 곡이 다 끝났다. 제법 관중 또는 응원단도 꽤 왔다. 많은 박수소리에 환호성까지 들렸다.

두 번째 팀은 열 곡을 추는데 앞 팀에서 춘 다섯 곡에 또 다섯 곡을 더 춘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빗속의 여인과 Amor Fati(아모르 파티)도 포함되었는데 빤짝빤짝 의상을 입은 사람도 꽤 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응원단의 응원도 아주 신이 났다.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데 한 여학생이 나를 부르면서 “우리 엄마 잘 추시죠?” “어, 엄마가 누군데” ”1233번요” 그래서 돌아보니 무대중앙에서 검은색 의상을 입은 1233번의 여인이 아주 열심히 추고 있었다. 그날 응원상이 있었더라면 그 팀에게 돌아갈 것은 뻔했다. 플랑카드도 두 장이나 준비했으니…

두 번째 팀도 열 곡을 다 추었고 이날의 하이라이트 15곡 팀이 무대로 나왔다. 아무래도 메인이벤트 성격이라 그런지 양팀의 에이스들이 총출동 된 것 같다. 앞에서 들었던 그 열 곡을 다 추고 다섯 곡을 더 추가로 추어야 한다. 이제 비장감 마저 들었다. 가만히 계산해보니 이 사람들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 드신 분도 출전을 하셨는데 아무래도 젊은이들과 경쟁하려니 좀 힘겨울 텐데 그 용기가 대단하다. 한 시간의 Performance 끝에 마지막 스텝을 마치자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마무리할 동안 두 강사의 Line Dance 워크샵이 있었고 잠시 후에 수상자발표가 있었다. 우선 다섯 곡을 춘 팀에서는 성국희님, 라인댄스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는데 참가를 목적으로 했을 뿐인데 우승까지 하게 되었다고 울먹울먹 했다. 상금 $150.

열 곡을 춘 팀의 우승자는 1233번 신재현님. 어릴 때 무용과를 지원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못 이룬 꿈을 라인댄스로 이루었다고. 상금 $300. 두 사람 다 박영주팀이다.

사회자가 15곡을 춘 팀에는 3명이 동점이 나왔다고 한다. 번호를 부르는데 두 명은 비비안윤팀 그리고 한 명은 박영주팀. 그래서 이 세 사람이 마지막 두 곡을 더 추기로 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결승진출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내가 힐끗 바라보니 두 선생은 속이 타는 모양이다.

박영주 선생은 앞의 두 개를 이겼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것이 상금($1000)으로 보면 메인이벤트의 성격이 있으니 꼭 이기고 싶고, 비비안윤 선생은 이번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못 타면 그야말로 영패가 아닌가. 안절부절 못하며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분주해졌다. 다 모여 한참을 논의하더니 셋 중에 한 명을 호명한다. 우승자는 Ally Lee, 선수선서를 했던, 언니와 같이 출전한 비비안윤 선생 팀이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비비안윤선생팀에서 난리다.

내가 Youtube를 만들면서 몇 번을 보니 셋 다 깔끔하게 잘 췄다. 다만 선수들의 스타일이 다 조금씩 다르다. 심사위원들도 각자가 뽑은 선수들이 다 달랐다고 한다. 이 어찌 극적인 드라마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선 우승자 성국희님, 신재현님, Ally Lee 그리고 연장전을 치른 클레어 김 그리고 김수현님께 축하의 박수를 드리고, 첫 대회를 멋지게 잘 치른 한인회 관계자들께 치하를 드립니다. 앞으로 한인사회에 라인댄스 열풍이 불어 골 아픈 정치이야기는 그만하고 음악과 춤으로 흥얼대는 신명나는 동포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https://youtu.be/k3E4jxvmRGg

https://www.youtube.com/watch?v=qTWWR7gqshc

(20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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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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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미국의 저력

 

지난주 9일간 일정으로 플로리다를 다녀왔다. 친구들과 골프 여행 겸 Tampa 를 다녀왔는데 골프를 치는 틈틈이 Sunshine Sky Bridge 넘어 St. Petersburg 그리고 Sarasota 와 Clearwater Beach 등 플로리다의 관광지 등을 돌아보았다. Sarasota 에서 Blue Jays 의 Grapefruit League 개막전도 보고 왔다.

1월에는 처형들이 캘리포니아에 살아 방문하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가면 항상 집에서 고스톱이나 치고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여러 곳 관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 정식이가 LA 근교와 샌디에고 등을 안내해주었고, 처형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와 페블비치, 카멜 등을 구경하였다.

팬데믹 전에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했고 작년 5월 시카고 누님댁에 며칠 동안 다녀왔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주로 관광지거나 아니면 지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미국의 크기와 저력이다.

지난번 친구 정식이를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캐나다는 고속도로가 레인도 몇 개 안되고 작더라” 하길래 은근히 자존심이 생겨 그렇지 않다고 Hwy 401 같은 경우는 6차선 정도 된다고 이야기 했다. 한쪽 길이 6차선이면 상당히 넓다고 생각했는데 LA 근교에서 며칠 그의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다니는데 그 동네는Highway가 한쪽길이 8차선이었고 어디를 가나 길이 무척 넓었다.

Tampa에서도 천지 사방으로 뚫려있는 Highway도 널찍널찍했지만 준 Highway 격인 Local 도로도 한쪽이 보통 4차선이나 3차선 가운데에 좌회전하는 길이 있으니 걸어서 길 한번 건너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사실 온타리오에서는 토론토 밖에만 나가도 Hwy 7 이나 Hwy 2 등도 왕복 2차선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엄청 넓은 거다.

게다가 내가 간 곳은 고층빌딩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땅이 무척 넓었다. 한번 나들이했다 하면 행선지가 보통 35마일, 50마일 이러니 움직이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길이 좋아 막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쇼핑을 가보면 물건도 무척 다양하고 물건의 재고도 상당히 많다. 미국에 가면 토론토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티셔츠 몇 장 정도 사 가지고 온다. 하루는 그곳에 많은 가게를 거느리고 있는 식품점에 갔다. 우리가 아침 일찍 가기도 했지만 과일을 진열했는데 이건 예술이었다. 사과며 오랜지며 줄을 딱딱 맞춰져 있는데 마치 북한군 열병식 하듯이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유튜브 만들어 선전해 주려고 사진을 찍자 메니져가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나…안 찍으면 너네 손해지 뭐.

또 계산대에는 화면이 캐시어가 보는 화면이 있고 고객도 볼 수 있는 같은 크기의 화면이 보기 쉬운 자리에 놓여 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차에 싣기 전에 영수증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하면서 확인하게 되니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확실히 캐나다보다 미국이 한발 앞서가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흑백갈등, 은근히 깔보는 백인들의 우월주의 그리고 심한 빈부격차, 수없이 거론되는 대형 총기사고 등등. 하루는 우리도 골프를 치면서 가끔 마주치는 앞 조에게 “Hi” 했더니 대꾸도 없이 가버린 돼지 같은 놈도 있었다.

바구니 안의 사과가 모두 맛있고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미국도 100% 좋은 나라만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세계 모든 나라와 비교했을 때 분명 높은 점수를 받을 나라다. 한 나라 안에 같은 시기에 4계절이 있는 나라, 태평양, 대서양 그리고 북극해까지 끼고 있는 나라, 세계의 경찰로 많은 대륙에 군인을 파견한 나라, 그 미국의 저력을 나는 보았다.

좋고 저력이 있는 나라기는 하지만 나는 캐네디언으로 캐나다에서 살 거다. 세계 최강도 좋고, 저력도 좋지만 밤에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고, 차 속에 물건이 있어도 주차하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낯선 곳에서도 별로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캐나다가 내가 생을 마감할 곳이다. 미국은 가끔 놀러 가는 걸로 해야겠다.

나의 나라는 역시 캐나다. (202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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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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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비행기가 골프공처럼 착륙하다

 

지난달 탬파로 여행 갔을 때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침 일찍 비행기를 탔으니 오전에 비행기가 착륙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창가에 앉아 내가 가게 되는 곳의 경치를 보는 것이 낙인데, 나의 자리는 통로라 그럴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땅으로 내려갈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얼굴 앞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비행기를 자주 타지는 않지만 좀 급하게 착륙하는 것 같았다. 속도도 각도도 좀 급하다 했는데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는 소리가 좀 거칠게 났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좀 심하게 난다고 생각했다. 어~어~어~어~

그런데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다시 창공을 박차고 올라갔다. 공중에 다 올라가자 기장의 멘트가 나왔고 비행기는 공중을 한바퀴 선회하고 12분 후 다시 착륙했다. 두 번째 착륙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내려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제대로 착륙하자 앞자리의 몇 명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 찾으러 가면서 몇몇 놀란 승객들과 대화를 해보니 자기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물론 우리 일행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고 그날 비행기 안은 꽉 차 있던데 한 이삼백 명의 목숨이 기장의 실수로 위험에 빠졌다가 또 기장의 기지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만약에 그때 기장이 착륙을 강행하다 제어장치가 파열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하마터면 큰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만해도 식은 땀이 흘렀다.

요즈음은 비행기 사고가 그리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비행기를 거의 안타던 70년대에는 사고가 더 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비행기가 주요 운송수단이 되면서 그리 많은 사고가 나는 건 아닌 것 같다. 몇 십 년 전에는 아무래도 현대 과학이 아직 덜 발달되었기에 비행기에 결함이 더욱 많았지 않았을까?

70년대나 80년대에는 날씨가 추운 날에는 여기저기 움직이지 못하는 차가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기도 했지만 길거리에 고장난 차를 보기 힘들다. 차는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고장난 차는 훨씬 적으니 그것은 그만큼 차를 그때보다 훨씬 잘 만드는 거다. 비행기도 예전보다 훨씬 잘 만드니 고장이 적고 사고가 덜 날수 밖에.

지금은 비행기가 기장이 없어도 운행을 할 정도고 많은 안전장치가 2중, 3중으로 설치되어있기에 그만큼 사고를 줄일 거다. 하지만 100% 모든 것을 기계에만 맡길 수 없고 어떨 때는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도 기계도 실수할 수 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1100백만 분의 1일라고 하니 아마도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이 아닐까 한다. 한번 사고가 나면 많은 인명이 희생되니 신문에 방송에 도배가 되니까 사고 숫자에 비해서 더욱 사람들에게 공포증을 주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산맥들을 넘어갈 때는 Turbulence 를 만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때는 그 시간이 장시간 이어질 때가 있다. 공포의 시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눈감고 더욱 절실히 그분을 찾는 수밖에. 지난번 에드먼튼 가는 길에 만난 Turbulence 는 상당히 긴 공포를 나에게 주었다.

비행기 사고는 이륙 후 3분, 착륙 후 8분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마의 11분이라고 한다나? 우리도 거의 사고에 근접했다 무사히 착륙한 경우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아 잘 다녀왔다’고 회상하면서 여행을 복기하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친구들과 잘 다녀왔고 많은 추억을 쌓았고 몇 편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다시는 절대로 비행기가 골프공처럼 착륙하면 안된다. (20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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