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오후, 차 한대가 우리집으로 들어선다. 조카 마이클이 엄마(나의 여동생)와 자녀 둘을 데리고 왔다. 곧 뒤따라 딸네가 들어서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제법 눈도 많이 쌓였고 날씨도 쌀쌀해 성탄절 기분은 난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조카 마이클의 기도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내의 수고가 가득 들어간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못 만났던 사촌들 끼리끼리 뭉쳐 앉는다. 좁은 집안이 19명의 사람들로 꽉 찼다.
노인의 고독사가 한국에서 큰 사회문제라고 한다. 젊었을 때는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도 많아 고독할 틈이 별로 없다. 이제 골목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노인들이다. 딱히 할 일도 없지, 불러주는 데도 없으니 지하철 공짜로 타며, 공원들도 공짜 입장이 가능하니 돌아다니고 있다.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차가운 밥 한 덩이를 먹고는 할 일이 없다. 이제 밥도 한번 하면 너댓끼 정도를 먹는다. 아내가 있었을 때는 밥도 금방 한 따뜻한 밥을 먹었었는데 혼자 살면서는 아무래도 혼자 먹다 보니 입맛도 없어 2인분을 해도 너댓끼를 먹게 된다. 반찬도 장에서 사온 반찬 몇 가지 놓고 먹게 되고, 아무래도 귀찮으니 빵이나 치킨 등 있는 것으로 대충 먹게 된다.
예전에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하던 생각, 뒷뜰에서 식구들끼리 바베큐하던 생각, 아내와 함께 여행지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 등 지난날 아무리 새겨봐야 현실에서 벗어나는 데는 아무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내를 보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니 아들도 딸도 들여다 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은퇴자금이 좀 있었을 때는 아들도 딸도 가끔씩 들여다 보았고, 명절 때는 옷가지 등등을 사오기도 했었는데 그 후 돈이 떨어지자 점점 왕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 전화 통화마저 힘들어졌다.
오랜만에 전화를 한다고 해도, 하도 이야기한 지가 오래되어 잘 있었냐? 외에는 별로 할말이 없어 통화가 짧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통화를 꺼리는 것 같았다. 가끔 전화하면 바쁘다며 다음에 전화주겠다고 하고는 감감무 소식이다. 나와의 통화를 꺼린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마지막 전화통화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고 내가 그냥 한국에 있는 노인들의 실상을 상상해 본 거다.
성탄절날 우리집에 모인 19명의 연령대 분포는 다음과 같다. 3~7살까지 꼬마들 5명, 10대 청소년
2명, 30후반~50대 중반까지 중년 7명, 60대 중반 이상 노년 5명. 식사가 끝나고 끼리끼리 모여서 담소를 하는데 나는 낄 데가 없었다. 꼬마들은 지들끼리 뛰어노느라 바쁘고, 처조카네 가족은 자기들끼리 앉아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조카들인 중년층은 지들끼리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뭔 할말들이 많은지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노년층은 여자분만 4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집주인인 나는 그야말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과거에는 남자들도 몇 있었는데 몇 년 새 다 돌아가시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내 집에서 집주인인 나는 여기저기 떠도는 떠돌이가 되었다.
멋쩍으니 괜히 카메라 들고 애기들 뛰어 노는 동영상이나 찍는 척, 나도 바쁜 척 하고 있었다.
말동무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느낀 하루였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나?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나는 어울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홀로
고독함을 느낀다는 거지. 성탄절날 우리집에서 있던 디너 모임에 내가 느꼈던 것이 바로 군중속의 고독이었다. 그 군중들이 나의 혈육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독을 느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와 즐겁게 놀았고, 서로서로 선물을 하며 훈훈한 모습에 마음이 따듯한 하루였다. 딸이 사준 따뜻한 셔츠를 입어보곤 그저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고독 따위는 가라, 나에게도 셔츠를 사주는 딸이 있다.
그래 얘들아, 군중 속에서 외로워도 좋으니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는 우리집에서 하자꾸나. 열심히
잘 살아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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