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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빨간나무와 같이 익어가기
jakim

 


방금 밖을 걷고 들어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밖으로 나선다. 오전에 7,500보를 걷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생활하면서 걷는 것과 합해 저녁 때가 되면 보통 1만1,000 보 정도를 걷게 된다. 걷고 나면 무릎이 좀 불편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꾸준히 걷고 있다. 골프를 치러 가도 그린피에 카트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항상 걷는다. 18홀을 끝내고 나면 평균 1만3,000~1만5,000보 정도를 걷게 된다.
오늘은 아침에 걸으며 공원 중간에서 조그마한 사슴 한 마리를 만났다. 아스팔트 길 위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처음 보는 사람인데, 선하게 생겼구만” 하는 모습이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이 공원을 수백 번 걸었는데 사슴을 본 건 처음이다. 너구리도 코요테도 간혹 봐 왔지만 사슴은 처음이라 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오늘따라 카메라 앱을 못 찾고 한참을 버벅거리다 간신히 찾았을 때에는 아뿔싸 사슴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스팔트 길 위에 있는 모습을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좋은 장면은 놓쳤다.

 

몇 년 전에 당뇨가 있다고 했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운동 삼아 매일 걷기 시작했는데 당 수치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다 하루, 이틀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자주 빼먹게 되었고 그러기를 석 달. 그러다 보니 당 수치가 상당히 높아졌다. 닥터가 “이제 어떻게 할거냐?”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보란다. 나의 Samsung Health 를 보여주며 “사실 걷는 것을 몇 개월 간 소홀히 해서 그렇다. 다시 열심히 걷겠다”고 약속했다.
당뇨가 있으면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데, 나나 아내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흰쌀밥, 빵과 과자 등을 좋아하니 먹는 것으로 당을 치료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걷기를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열심히 걷다 보니 얼굴이 마르고 주름이 생겨 더 늙어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아내는 내가 너무 많이 걷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늙은 남편과 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금 이때인데 가을이 익어가는 것을 하루하루 느낄 수가 있다. 초록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좀 더 있으면 공원 초입의 첫 번째 고개를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빨간나무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겠지. 작년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걸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3개월 거의 매일 열심히 걷다 피검사를 하고 닥터에게 갔다. 당 수치가 많이 좋아졌단다. 무엇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본다. 열심히 걸었다고 했더니 엄지척 보여주고 계속 그렇게 하란다. 그리고 또 3개월을 또 열심히 걷고 피 검사를 한 후 닥터에게 갔더니 별 진전이 없다고 한다. 걷기만으로는 효과가 거기까지니 음식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나만이 아니고 아내가 협조해야 하는데, 어쨌든 알겠다고만 하고 나왔다. 어떤 걸 먹든 바로 죽기야 하겠나.

 

살다 보니 내 나이도 이제 6학년 종점에 도착을 했고,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어떻게 살아왔냐고 하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별 성과는 못 보았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몸이 아파 한 1년간 투병생활도 했고, 스키 타다 팔이 부러져 고생도 좀 했지만 그 외에는 건강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웬 추레한 노인이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동영상을 찍어보면 내가 찍힌 부분을 통편집하게 된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한다. 맞다. 아무리 권력과 돈이 많아도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고 만사가 다 귀찮아 지는 것이다. 아직도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골프채 휘두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앞으로도 열심히 걸으며 공원의 빨간 나무처럼 아름답게 오랫동안 익어가고 싶다.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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