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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집에 잘 도착했다. 쓰레기통은 고맙게도 누가 집 안쪽으로 조금 밀어놨고 문을 열면서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집은 내가 지난주 놓고 간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이제는 서서히 기력이 달리는구나.
지난 9월 29일은 손녀딸의 돌이었다. 며느리가 몇 장의 돌잔치 사진을 보내주었다. 잔치라기 보다는 자기들끼리 생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자리였다. 아내의 골프 스케줄이 정리 되고 지난주 일요일 새벽에 집을 떠나 공항에 갔는데 웬일로 Air Canada 정시에 출발, 순조롭게 에드먼튼에 도착했다.
아들이 마중 나와 H-Mart에 들러 점심을 먹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갔다.

 

차고에서 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데 아폴로가 집 밖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어, 뭐지?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더니 잠시 후에 알아보고 껑충껑충 뛰고 난리가 났다. 한번 번쩍 뛰었다가 저쪽으로 뛰어가고 돌아와서는 또 번쩍 뛰었다가 이쪽으로 뛰어가길 두어 번 그때 아내가 차고에서 나오는걸 발견하고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뤘다. 누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반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보다 앞장을 서서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반겼다. 지난 7월보다 꽤 많이 컸구나. 너희들은 지금이 제일 쑥쑥 자랄 때지. 우리는 천천히 늙었으면 좋겠다. 짐을 풀고 올라가니 손자가 가만히 나에게 오더니 내 다리를 잡고 포옹을 한다. 지난 여름 우리집에 왔을 때는 나를 보고 가까이 오지 않더니 이제 ‘우리 할아버지인가?’ 라고 인식 되나 보다. 그래 이제 세상은 우리를 거쳐 너희 부모에게로 넘어갔고 너희는 이제부터 너희 부모에게서 세상을 제대로 받을 궁리를 해야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어찌될지 모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

 

손녀딸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전혀 낮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돌이 바로 지났으니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나 다니기는 하는데, 적극적으로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기를 안고 거실에 있는 거울을 보니 손녀는 뽀얀 피부에 눈도 큼직한 것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는데 내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손주가 넷인 할아버지’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손주가 넷… 철없던 재기가 손주가 넷이라면 우리 어머니가 웃으실 텐데…
아내의 고교동창 미현씨네가 초대를 해줘 그 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옛이야기들을 했다. 우리는 1981년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에드먼튼으로 왔었다. 친구네 집에서 한 이틀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손님도 초대해 잔치도 베풀어주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차를 빌려 캘거리와 록키마운틴을 관광한 후 에드먼튼으로 돌아와 토론토로 복귀했다.

 

미현씨네가 우리 리치몬힐 살 때 온 가족이 우리집에 한 일주일 왔다가 돌아간 적 있었고, 우리가 에드먼튼에 갈 때면 공항픽업도 해주고, 작년에는 같이 자스퍼도 놀러 갔다 오곤 했다. 아내의 50년지기 친구 덕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다.
나는 매일 동네를 걷는데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아주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다. 단풍은 토론토보다 더 들었고, 떨어진 낙엽도 상당하다. 매우 평화로운 모습인데 그와는 달리 에드먼튼은
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도시다. 게다가 홈리스 셀터가 아들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겨 아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 범죄가 있고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니 어찌하겠나, 다만 더욱 조심을 할 뿐이지.

 

 

밖을 돌아다니다 집 앞에 내려 창문을 보니 아폴로가 창문에서 햇볕을 쬐며 자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창문을 톡톡 두드리니, 그래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그래서 두드리는 강도를 좀 높이고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벌떡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컹컹 짖었었는데… 한참을 두드리니 부시시 일어나서는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래 이제 아폴로도 늙은 거다. 2012년 10월 8일 생이니 12살, 인간 나이로는 12x7=84살이니 이제 잘 듣지를 못하는 거겠지. 뿐만 아니라 걷는 것도 귀찮아서 안 걸으려고 한다. 삶의 의욕이 많이 빠졌다. 내 손주들은 활기차게 커가고 있으니 너와 나는 곱게 서서히 늙어가자꾸나. 우리가 가방 싸 들고 나가니 씨무룩하게 쳐다봐 마음이 짠 했는데 ‘그래. 다음에 볼 때까지 우리 잘 지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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