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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휴가를 갔다 돌아온 날, 아내가 부엌에서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머머머, 담장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네요.” 창으로 내다보니 나무로 된 담장이 옆집 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26일 오전에 눈이 온다고 비행기 일정이 하루 연기가 되었다. 그때 온 그 눈 때문인가 보다.

밖으로 나가 담장을 바라 보았다. 눈이 오다 좀 녹았는데 그 습기가 눈에 더해져 무거워지니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부분이 옆집으로 넘어져 있었다. 내가 살았던 동안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고 단언컨대 담장이 지어진 이래로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을 거다.

캘리포니아 휴가 때 조카가 자기 SUV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차가 SUV 중에서는 대형에 속했다. 나는 맨 앞에 타고, 바로 뒤에 큰 처형과 둘째 처형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 셋째 처형과 아내가 탔다. 관광을 왔으니 차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그런데 차를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여자들이라 가진 핸드백이 있으니 우선 핸드백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고, 내리려면 뭔가를 잡아야 했다. 맨 뒷줄에 탄 사람들은 젖힌 의자 사이로 나와 차를 내리려니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한발을 차에 두고 다른 발로 내리려다 여의치 않으면 다리를 바꾸기도 해야 했다. 차가 크니 높이가 더 높았고 노인들이 한번에 발을 땅에 딛기는 좀 무리가 가는 것이었다. 좀 실랑이 하다 결국은 모두 오르내렸지만.

담장을 바라보다 쓰러진 담장을 세우기도 해야 하지만 그 담장이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애처로웠다. 그래서 작대기를 들고 담장에 있는 눈을 치우는데 눈이 부서지거나 날리는 것보다는 케잌처럼 쪼개지는 것이었다. 눈이 녹으면서 그 습기가 눈에 스며들어 케잌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무게가 상당할 테고 그걸 지고 있던 나무가 그만 쓰러져버린 것이 아닌가. 전에는 더 심한 눈발도 견디던 나의 담장 울타리,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눈이 많이 왔을 텐데 잘 견디던 담장이 이제 넘어졌다.

담장의 눈을 치운다고 열심히 작대기로 눈 있는 곳을 내려치는데 한 열 번 정도 치고 나니 내 팔에 힘이 빠지면서 내가 헐떡대기 시작했다. 좀 쉬면서 숨을 고르고 다시 작대기를 휘둘렀는데 또 열 번 정도 치고 나니 이번에는 머리가 띵하면서 맥이 탁 빠졌다. 한참을 쉬었다 다시 하기를 반복하는데 눈을 반도 못 치우고 기진맥진 기권하고 말았다.

우리 처형들도 그까짓 SUV 그렇게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이제 80줄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70대 중후반이니 그만큼 몸의 기력이 떨어지고 순발력이 무뎌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니기가 힘드니 젊을 때 다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 여행도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떨릴 때 가는 것이다.

내가 이 집에 산지 21년째, 이 집이 지어진지 56년째. 내가 이 집을 살 때부터 담장은 있었고, 아마도 집을 지을 때부터 있었을 거다. 그 오랜 세월을 아무 문제없이 견뎌낸 우리 집 담장, 여름이면 우리에게 푸르름을 선사해주던 우리 담장, 이제 나이가 50중반이 넘으니 예전에는 쉽게 감당하던 눈 무게가 이제 기껏 25Cm의 눈에 무릎을 꿇은 거다. 한참 때는 50Cm의 눈도, 아니 그 이상의 눈도 그리고 십여 년 전에 무자비하게 온 얼음비도 다 무사히 감당했었는데 이제는 몸의 기력이 떨어져 겨우 25Cm의 눈에 굴복을 했다.

나도 예전 같으면 그깟 작대기 몇 번 휘두른다고 그렇게 쉽게 헐떡대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한참 때는 골프연습장에서 큰 바스켓 하나를 쉬지도 않고 휘둘렀었는데, 어떨 때는 36홀도 무난히 치곤 했었는데…이제는 모두 늙은 거다, 우리집 담장도, 처형들도 그리고 나도.

내가 나의 한계를 깨달았으니 그 한계 내에서 또 열심히 살 것이다. 담장아, 너도 올 한해 푸르름을 보여줄 수 있겠지? (20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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