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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사시는 엄마한테, 캐나다에 사는 딸네에 한번 오시라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영 대답이 없으시더니 갑자기 전화가 왔다. “너한테 갈란다.” 마음에 변동이 생겼는가 보다.

 

 엄마는 환갑이 되면서부터 허리, 무릎, 팔꿈치 등 관절이 늘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셨는데, 80이 훨씬 넘으신 나이에 다행이 대한항공의 휠체어 서비스를 받으며 14년 전 크리스마스 전날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하셨다.

 

 휠체어에 탄 엄마를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에게로부터 인계 받아 내가 준비해간 휠체어에 엄마를 태워 밀고 나오는 공항 대합실에서, “어머나, 캐나다는 냄새도 향기롭고 신선하구나.” 하셨다.

 

비행기타고 14시간 이상을 많이 지루하고 피곤했을 엄마의 첫 마디는 상쾌했다. 공항에서 빠져 나와 엄마를 내 차에 태우고 하이웨이를 운전하는데, “세상에 캐나다는 산도 없이 땅이 이렇게도 넓다니?” 하시며 보는 것마다 놀라시기만 했다. 제주도 말고는 해외에 처음 나온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여 동안 휠체어에 태워 밀고 다니면서, 가기만 면 젊어진다는 나이아가라 폭포며, 한국과는 다른 캐나다의 집들도 구경시켜 드리고, 서양의 생소한 음식들도 맛보시게 하니 “이게 이태리 국수 스파게티라는 거냐? 피자도 쫀득쫀득하니 맛있고 먹을 만하구나, 너는 맨날 이런 것만 먹니?”

 

“아니에요, 가끔 먹지만 주로 한국음식만 먹어요. 처음엔 빵만 먹어도 살 것 같았는데 결국엔 내 먹던 음식만 먹게 되더라고요.” 우린 김치, 된장, 고추장하며 하하하 웃었다.

 

 집에서 엄마가 좋아하실 한국음식을 해 드리면 “이게 천엽이냐? 이게 도가니탕이네, 참 맛있구나, 너는 묵도 잘 쑨다.” 하시며 즐겁게 지내시던 중, 어느 날 밤 소변을 보려고 일어서려다 그만 다리에 힘이 없어 옆으로 넘어지면서 엉덩이 옆 부분 자개미에 타박상을 입었다.

 

 가정의한테 자세히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하니 병원에 가봐야 특별한 방법이 없는 걸로 안다며, 많이 아프면 타이레놀과 어드빌 잡수시고, 집에서 칼슘이 많은 음식 잘 잡수시며 가만히 계셔야 금이 간 뼈가 속히 붙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얼마나 아프실까, 나이가 많으셔서 적어도 2-3개월 정도는 지나야 좋아지실 거라고 하며 자연요법을 찾아보라고 하니 난감할 뿐이었다.

 

 엄마는 아파서 꼼짝도 못하시겠다니 야단났다. 타이레놀은 필수, 파스를 붙이고 노란색 치자 떡을 해 붙이며 알음알음 수소문하여 침놓는 분을 모셔다가 침도 여러 번 놓아드리고, 한국인 마사지사도 불러서 마사지를 몇 번 해드렸으나 별 효험을 못 본 채, 누워서 대소변을 보게 되니 정신이 정상인 본인인들 어찌 괴롭지 않으시겠는가.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대구 생선전 좀 잡숴 보세요.” 하면 내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없이 어떤 음식도 안 드시겠다고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거절하시니 이 또한 큰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한 입 한 수저라도 잡수시게 할까? 달래고 사정하고 빌며 갓난아이 다루듯 갖은 재롱을 다 떨고 별 짓을 다해도 막무가내였다. 왜 이토록 거절하시는 걸까? 생각하니 누워서 대소변을 보게 되니 너무나 미안해서 안 잡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내 소원은 엄마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잡수시는 것이었다. “엄마, 누워서 대소변 보는 일 걱정 말고, 이 두유라도 좀 마셔보세요, 내 속을 이렇게 썩이면 좋아요? 엄마도 우리 낳아서 대소변 다 치워주셨잖아요? 나, 우리엄마 것 냄새 안나요, 걱정 마시고 미안해 하지 마세요. 제발 잡수셔야 속히 낫지요.”  

 

부드러운 이 음식 저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구해다가 드려도 손으로 입을 막고 안 잡수시니 애가 타서 내가 먼저 죽을 지경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부모님 속도 여러 번 썩혀드렸는데, 이때야 말로 엄마에게 효를 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물불을 안 가리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드리노라니, 근육이 다 빠진 엄마를 어린 아이 다루듯 유리그릇 다루듯 하는데 눈물만이 앞섰다.

 

아, 사람이 늙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 엄마도 피할 수 없는 이 길을 가고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 슬프도다.

 

 찾고 찾던 산삼을 구해 왔다. “이게 산삼이라니? 풀뿌리 같구나, 응 삼 냄새가 나네.” 생전 처음 보신다는 산삼, 산삼은 생으로 죽이 될 때까지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는데, 엄마는 치아가 안 좋으셔서 씹을 수가 없어 믹서에 갈아보니 믹서 안쪽 벽에 붙어 갈아지지도 않는다.

 

방법을 강구했다, 양치질을 깨끗이 하고 내 입으로 두 세 뿌리 하루에 한 두 번씩 꼭꼭 씹어서 꿀 조금과 엄마 입에 넣어 드리고, 소주에 웅담 풀어 조금씩 마시게 하고, 보약에 최선을 다하노라니 엄마는 “성자야, 너는 효조로구나, 나는 너한테서 안 받았다.” 고 하신다.

 

“안 받았다니 뭘 안 받았다는 거예요? 효조는 또 무슨 말?”

“안 받았다는 말은 자식을 낳아 베푼 은혜에 보답을 받았다는 말이란다.”

 

 엄마는 또 효조 까마귀 이야기를 하셨다. “까마귀는 새끼를 낳으면 60일, 즉 두 달 정도 먹이를 물어다 새끼에게 먹여 키우면 웬만큼 다 자란다. 그 후 새끼 까마귀는 자립할 수 있게 되어 어미 까마귀 품을 떠나게 되지, 그러다가 어미 까마귀가 늙어서 움직이기 힘들면 장성하여 떠났던 새끼 까마귀가 와서 먹이를 물어다가 어미 까마귀에게 보은한다. 그걸 ‘안 받는다.’ 하고 새 중에서도 까마귀를 효성이 있는 새라 하여 ‘효조’라 부른단다.”

 

 나는 엄마한테 해드린 것도 없는데 무슨 효조? 아무튼 나로서는 이 나이 먹도록 ‘효조’라는 말, ‘안 받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표준말이던데.

 

 캐나다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제발 이민만은 가지 말고 한국 땅에서 같이 살자고 애원하시던 모습을 뿌리치고, 나의 세 아이들만 소중하다고 품에 끼고 매정하게 떠났던 내가 아닌가.

 

이 불효자식을 어찌하여 효조니, 안 받았느니 하시는가.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엄마,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여 주세요. 하늘나라에 가서 두 분 꼭 모시고 영원히 살겠습니다. 다짐만은 굳세게 해보는 토론토의 초겨울 날이다.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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