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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3
캐나다 난민제도 악용사례를 보며/이승연/세계유학&교육 대표


올해 9월 기준 14,000명의 국제학생이 난민자격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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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한인들이 캐나다 영주권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영어점수를 올리고, 자격 요건에 맞는 직종과 스폰서를 찾아 노력하는 동안, 이란, 파키스탄, 인도 등 많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은 영주권을 비교적 쉽게 얻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로 캐나다에 입국한 후 난민 신청을 하는 방법입니다.
필자가 근무하던 사립고등학교에서도 이란 출신 학생들이 난민 신청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본국에서 대저택과 기사, 가정부를 두고 살았던 부유한 학생이나, 대대로 부유한 의사 집안임을 자랑하던 학생들조차 난민 자격을 취득한 경우였습니다. 일시불 현금으로 구입했다는 억 단위 새 차를 타고 와서 난민신청을 했다고 자랑하는 학생을 봤을 때는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학생들은 난민 신청만으로도 매달 800달러 이상의 현금을 지원받고, 의료 혜택이 포함된 헬스카드를 제공받으며, 공립학교에서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난민자격을 인정받게 되면 대학 학비는 국제학생의 1/4로 줄어들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자로서 입시에도 유리한 혜택을 받게 됩니다.

 

2024년 9월 통계 기준, 9개월 동안 난민 신청 한 국제학생은 약 14,000명에 이릅니다. 이들이 모두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간의 심사 기간 동안 보조금을 받고 캐나다에 거주하며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관광비자로 입국해 모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난민으로 승인 받기 위한 주요 요령은 성정체성이나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들며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평범한 학생이, 자신은 동성애자라고 주장하거나, 본인의 종교는 사실 무슬림이면서 캐나다 교회에 다니며 인증샷을 남기는 등 부적절한 요령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난민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인도주의적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전쟁이나 박해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며, 난민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공교육 혜택과 국내 학비 기준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재정적 부담을 덜고,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난민들은 캐나다의 노동시장에 합류하여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최근 난민 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설정된 목표에 따르면 2025년에는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부여 받는난민 수가 작년에 수립된 계획에 비해 14,400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보호 대상자와 해외에 거주하는 부양가족의 경우 감소 폭이 더 크며, 정부의 이전 계획에 비해 3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캐나다 난민 협의회를 포함한 이민자 단체의 비난을 샀습니다.

 

하지만 난민 수용 인구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난민 신청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학생 비자를 통해 입국한 이들은 난민 심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스스로 자립적으로 재정을 부담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스터디퍼밋을 승인 받는 핵심 기준 중 하나가 바로 학생이 캐나다 체류기간 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검증이었기 때문에 재정적 자립 유도가 무리한 요구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캐나다의 난민 정책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포용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진정한 필요를 가진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작동하려면, 철저한 검증과 투명한 관리를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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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예열 시간/김정수/문협회원

 

구수한 빵 냄새로 에워싸인 오후의 집안은 느긋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며칠 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여고 선배가 코비드 진단을 받았다. 최소 10일간 집 밖을 나올 수 없게 되어 오래전 잡힌 여고 동창 모임이 취소되었다. 그는 평소 내가 힘들 때 여러모로 도움을 준 고마운 선배이다. 이번 기회에 자그마하게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 몸보신이 될 만한 삼계탕 두 팩을 한국 식품점에서 사 왔다. 요리라고 내세울 게 없는 내 입장에서 정성 들여 해 줄 수 있는 건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어김없는 결과물이 나오는 음식뿐이다. 그나마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옥수수빵이라도 만들어 곁들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재료를 준비했다. 오븐을 예열하는 동안 잽싸게 빵 반죽을 서둘렀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가져다주면 따끈한 옥수수빵과 차를 곁들여 선배가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빵틀에 반죽을 담고 준비를 마쳤는데 아직도 예열 중이었다. 화씨 350도까지 오븐 온도를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예열 시간이 끝나 빵틀을 오븐에 넣을 수 있었다. 

 

교통이 좋은 클락과 영의 교차로에 위치한 우리 집은, 오가는 지인들이 들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코비드가 끝나면 마음 맞고 뜻이 통하는 사람들을 우리 집에 수시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걸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 전 예열 시간이 꽤 필요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초대하면 집부터 청소해야 하고 대접할 음식도 충분히 마련해 두어야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가끔 지인이 예고 없이 찾아올 경우, 집이 엉망이거나 먹을 게 아무것도 없으면 적잖이 당황스럽다. 남편은 사람들이 근처에 온 김에 우리가 보고 싶어서 들르는 것인데,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지 않냐고 하면서 나의 이런 강박을 안타깝게 여긴다. 항상 청결한 집안을 유지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먹거리도 준비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는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려는 배려심도 있겠지만 타인에게 나를 품위 있게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해서가 아닌가 싶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과 나눈 대화 시간이고 어느 것도 그 시간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시험 전에도 그랬다. 공부하기 위해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아 바로 시작하지 못했다. 시험 직전까지 어떤 과목부터 먼저 할 것인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할 것인지 전체 계획부터 세워야 했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 주변 정리를 하고 책상을 최상의 환경으로 말끔히 구비해야 했다.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막상 책을 펼쳐 들고 공부를 시작할 때는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벼운 책도 읽고 멍하니 앉아 공상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정작 본 공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쳐 잠이 들곤 한 적이 많았다. 예열 시간이 너무 길었었다. 그 때문에 어느 시험이고 만족할 만큼 공부하고 치렀던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런 습관을 고치기는커녕 내가 단지 끈기가 부족하여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가정주부로 지내다 40세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등단한 것은, 많은 작가 지망생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은근히 품고 살았으니 말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습작 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박완서 작가처럼 소설 한 편이 뚝딱 나올 걸로 착각하고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몇 년이던가. 하지만 수필로 간신히 등단하여, 한 달에 한 편 쓰는 데도 헉헉거리는 자신을 돌아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라 제한이 많다고 불평하며 기필코 소설을 쓰겠다고 작심한 세월 또한 몇 년이 지나버렸다. 이제는 비대면 모임으로 문인들을 만나다 보니 공연히 문학에 대한 열정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변명까지 덧붙이곤 한다. 여전히 예열 중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어쩌면 자신도 알고 싶지 않은 능력의 한계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이처럼 예열 시간을 늘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열 시간. 어떤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다. 빵을 보기 좋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오븐의 예열 시간이 필요하듯 무슨 일을 할 때 대부분 요구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시간 운용 능력이 서툰 탓이었는지 게으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능력 부족이었는지 일상생활에서 순기능을 한 적이 제대로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가 어떤 일을 행하는데 적절한 예열 시간인지 아직도 가늠되지 않을 때가 많다. 

빵이 다 구워졌다는 소리가 울린다. 레시피가 요구하는 예열 시간을 충족시키고 난 뒤 베이킹을 했으니 분명 맛있는 옥수수빵이 만들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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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재외국민 특례입학 전형? 의대-입학도 서류로만 평가한다?

 


이승연 대표
세계유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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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goworldstudy.com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특례입학 전형은 외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국내 대학 입학의 문을 열어주는 특별한 전형입니다. 이 제도의 목적은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모국과 연결될 기회를 제공하고, 글로벌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학생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해외에서 성장하며 한국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국내 대학 진학의 문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러한 환경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재외국민 특례입학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인재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실질적 통로를 제공합니다.

또한, 해외 한인 학생들이 한국 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외국대학으로 유출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인재 손실로 간주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외국민 특별전형은 대학별 정원의 2% 이내를 이러한 학생들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적 필요와 학생 개개인의 기회를 고려한 제도는 국내외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례입학의 지원 자격과 전형 방식

3년 특례입학 전형 (정원의 2%이내 선발)
-자격요건: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포함하여 중•고교 과정 중 최소 3년을 해외에서 근무한 부모와 함께 거주한 학생.
-제출서류: 부모의 해외 취업증명, 학생과 부모의 출입국 기록 등.

 

12년 특례입학 전형 (정원 외 선발)
-자격요건: 초•중•고 전 과정을 해외에서 이수한 학생.
-특징: 부모와의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학생 본인의 학업 이력만으로 지원 가능.

 

이들 전형에서는 시험이나 면접 등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대다수의 대학이 SAT, AP, IB 등의 표준학력지표 점수와 영어공인성적 점수, 진로역량, 공동체역량 등을 서류로만 평가하여 합격증을 주는 서류평가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학업능력과 액티비티 경험, 수상경력 등을 잘 갖추고 있다면 충분히 대한민국의 최상위권 대학에도 도전이 가능합니다. 
단,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합격 후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있으니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이 전형이 본인에게 맞는 것인지를 잘 고민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재외국민특별전형이 매력적인 또 한가지 이유는 한국의 대부분의 탑 대학들의 다양한 전공들뿐 아니라 의학계열 지원에도 이 전형이 활용되며, 재외국민 특례입학 전형을 통해 서류전형만으로 의대 입학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의대 과정은 북미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의과대학에서 의예과(2년) 의학과(4년)을 포함한 6년의 정규 과정을 이수한 뒤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통해 전문의가 됩니다. 
반면,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학부 4년을 졸업한 후 별도의 메디컬스쿨(Medical School) 입학을 준비해야 하며, 이는 대체로 높은 경쟁률과 긴 준비 기간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진로를 조기에 결정하고 학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한국의 의대가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특히 대학 입학 초기부터 의사로서의 진로를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은 학생과 부모들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기회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적합합니다. 한국어 능력이 충분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할 자신이 있다면, 이 전형을 통해 한국 의대에 입학하는 것은 북미의 메디컬스쿨 입학의 높은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도 한국 대학 졸업은 취업 계획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재외국민 특례입학 전형은 단순히 해외 한인 학생들에게 한국 대학 진학의 문을 여는 것을 넘어, 이들이 국내에서 학문적 성장과 함께 미래의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합니다. 특히, 모든 대학과 학과가 동일한 입학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대학들이 의대를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서류전형만으로 입학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한국어 능력과 한국 내 생활 적응력을 충분히 갖춘 학생이라면, 재외국민 전형은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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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2
애매모호/김용출/문협회장

 

 

七十生子非吾子 財産與之? 他人勿犯

칠십생자비오자 재산여지서 타인물범

 

이 문장의 첫째 해석은 ‘칠십 노인이 아들을 얻었다. 칠십에 낳은 아들이니 그의 아들이 아니다. 재산을 사위에게 전하니 타인은 손대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사위의 해석이었다.

다른 해석은 ‘칠십에 낳은 아들이라고 어찌 아들이 아니랴, 재산을 전하니 사위는 타인이라,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성장한 아들의 해석이었다.

어느 해석이 맞을까. 사건은 원님에게 올라갔고, 원님의 해석은 아들 편이었다. 원님은 칠십에 낳았어도 아들이라 인정하고 재산을 아들이 받도록 판결했다. 이런 경우를 말해서 ‘이현령비현령’이라 하기도 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아전인수’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글이나 말이 본래 말한 사람의 의도대로 해석되고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해석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릇 글이나 말은 그 뜻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읽는 쪽에서도 자기의 주관적 생각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경에도 방언에 대해 말하면서, 방언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이므로 가능하다면 예언을 할 일이지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교훈한다.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니라’ 하였다.

 

시인 유안진의 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의 내용 가운데 경술국치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남 유림대표로 참석한 심 씨가 조일합방의 가부를 묻는 자리에서 ‘불가불가’라고 써내었다. 그런데 왜인들이 그것을 ‘불가불 가’로 해석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 씨는 찬성하는 쪽이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영남 유림에서는 이런 회색분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에 들끓어 처벌을 논하게 되었다. 심 씨 자기는 ‘불가불가’를 두 번 써내었다고 변명을 했다는 것이다. 즉 절대로 불가하다고 강조해서 쓴 것이 ‘불가불가’였다고.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심 씨는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였고, 유림에서는 분풀이로 심 씨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 왜인들의 교활함과 심 씨의 경박함이 심 씨 문중을 망치고 만 셈이었다. 망국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애매모호, 정말 반대할 뜻이었다면 불가라고 한 번만 쓰던지 아니면 ‘불가’를 띄어서 두 번 써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띄우지 않고 ‘불가불가’라고 했으니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불가불 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심 씨의 속뜻을 누가 알랴. 영남유림을 대표해서 갔으니 당연히 불가가 되어야 옳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회의의 위압적 분위기에 눌려 자기신변의 위험을 감지한 심 씨가 감히 불가를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불가불 가’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랴. 말을 잘못하는 데서 오는 설화도, 글을 잘못 쓰는 데서 오는 필화도 알고 보면 너무 과격하거나 또는 애매모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무슨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너무 되바라지게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함으로 인간관계가 경색되기도 하고 화목에 금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꼭 시비를 가려야 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때는 애매모호가 문제가 된다.

 

크든 작든 한 단체나 사회 혹은 나라의 지도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경우에 최종판단을 지도자 혼자서 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외롭다. 굳이 헤리 트루만이 말했다는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거창한 용어를 동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말이다.

 

때로는 지도자의 결정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예는 허다하다. 그럴 때 지도자는 개인적 이권 문제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가 속한 사회나 나라의 먼 장래를 볼 수 있는 혜안과 비전, 용기가 필요하다. 정직성, 창의성, 희생정신, 솔선수범은 모두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개인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그러한 덕목들을 총동원해서 올바른 결정을 할 때 그 결과는 좋은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해서 나라가 패망한 일, 또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른 결정을 함으로 나라가 흥한 일들은 많다. 이렇게 전체가 흥하느냐 퇴보하느냐의 문제가 지도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지도자의 결정이 때로는 반대와 반발을 불러 올 수도 있다. 공명정대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지도자는 사익을 떠나 올바른 결정을 했을 때 그 결과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필부들조차도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가족을 고생시키고 자신이 고생을 한다. 애매모호가 무난한 삶을 보장해주는 방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이와 함께 요즘 나의 노년의 삶이 참 애매모호하다. 사는 것인지, 안 사는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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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다?/이승연

한국과 서구권 대학의 교육 시스템 차이

 

 

이승연 대표

세계유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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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능시험을 마친 한국에 있는 학생 여러분과 그동안 곁에서 응원하며 함께 노력하신 학부모님들께 따뜻한 격려의 인사를 전합니다. 수능 준비라는 긴 여정을 마치신 것만으로도 모두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이제 곧 성적 발표를 앞두고 어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깊으실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대학 입시와 서구권 대학 교육 시스템의 차이를 살펴보며, 특히 캐나다의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적 가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현재 캐나다에서 자녀를 키우고 계신 독자들께는 자부심을, 한국에 계신 학부모님들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대학 입학은 ‘전쟁’, 졸업은 ‘평화’

한국에서는 대학 입학이 일종의 ‘전쟁’으로 비유될 만큼 치열한 경쟁 과정입니다. 수능, 내신, 수시와 정시 등 복잡한 입시 제도를 뚫기 위해 학생들은 수년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학부모님들 역시 아낌없는 지원을 하십니다. 한국의 명문대 입학은 성적뿐 아니라 전인적인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입학 후 상황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많은 대학이 비교적 관대한 학점 기준을 적용하며, 학생들은 졸업보다는 취업 준비나 인턴십, 대외 활동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녔던 대학 이름이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여겨지며, 상위권 대학 ‘입학’ 자체가 개인의 능력을 이미 증명했다고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서구권: ‘열린 입학’, 그러나 ‘좁은 문’의 졸업

반면, 미국과 캐나다 같은 서구권에서는 대학 입학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SAT나 ACT 같은 표준화 시험과 고등학교 성적 외에도 동아리 활동, 에세이, 추천서 등 학생의 전반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입학제도를 채택합니다. 이는 성적 중심으로 평가 받는 한국의 입시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단순히 시험 성적만으로 평가 받지 않고, 다양한 배경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졸업 과정에서는 높은 학문적 기준을 충족해야 하므로,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졸업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일반 대학에서는 졸업자 비율이 평균 50%를 밑도는 경우도 많습니다.

졸업까지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실질적 응용력을 쌓게 되며, 이는 졸업 후의 경쟁력을 크게 높여줍니다.

서구권 대학에서는 학생 스스로 학업을 관리하는 자율적인 학습 문화가 강합니다. 교수는 수업 중 핵심 개념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세부적인 학습은 학생의 몫입니다. 과제,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등이 꾸준히 주어지며, 이를 성실히 따라가지 않으면 졸업에 도달하기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이는 자녀가 대학 기간 동안 자기주도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학부모님들께 특히 적합한 환경입니다.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인

이러한 차이는 각국의 교육 철학과 사회적 가치관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은 입시에서의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며, ‘입학’ 자체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한다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서구권은 과정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며, ‘졸업’은 그 노력의 결실로 여겨집니다.

또한 경제적 요인도 차이를 만듭니다. 서구권 대학은 등록금이 높은 편이어서 이는 학생들에게 학업에 대한 높은 동기부여를 제공합니다. 많은 비용을 투자한 만큼, 졸업장을 얻기 위해서는 학업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부심과 새로운 가능성

캐나다에서 자녀를 키우며 서구권 대학 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계신 학부모님들께서는 이미 현명한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단순히 졸업장을 넘어 진정한 학문적 성장과 자기주도적 역량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한국의 학부모님들께도 이런 교육의 가치를 고민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캐나다 대학은 단순히 졸업을 목표로 하는 곳이 아니라, 자녀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만약 자녀의 유학이나 서구권 대학 입학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이곳의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큰 행복 중 하나입니다. 캐나다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만들어갈 자녀의 더 넓은 가능성을 기대하며, 이 글이 독자님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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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소풍/허정희/문협회원

 

 

한여름이라 도시락을 김밥 대신 초밥으로 바꾸었다. 여름의 열기가 도시락을 뚫고 들어와 도시락 속에 담긴 음식을 변하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열기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식초를 많이 넣어 초밥을 준비했다. 아침부터 들뜬 93세 시아버님의 시내 여행 날이다.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 소풍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시장에 나왔다. 그때만 해도 양은으로 만든 도시락이 대부분이었고, 양은 도시락은 조금만 부딪혀도 울퉁불퉁해지고, 뚜껑이 꼭 닫히지 않아 가방 속에 수많은 자국을 남겼다. 자국은 냄새와 함께 기억 속에 남았고, 가방을 열 때마다 나를 얼룩 추억 속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9남매를 두셨음에도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하나만 사 오셨다. 그것은 당연히 큰언니 것이었다. 4남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위로는 오빠 둘, 언니가 있었고, 밑으로는 여동생 셋, 남동생 둘이었다. 아버지 머리카락까지 닮은 언니는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언니를 따라 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옷과 새 가방은 언니 것이었다. 둘째 딸인 나는 언니의 쓰던 가방과 옷을 물려받았고, 내가 쓴 것은 여동생에게까지 가기도 전에 닳아버려 동생에게는 늘 새 것을 사주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인 것이 속상했고,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얄미웠다. 자라면서 언니의 새것에 대해 부러움과 궁금함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쌓여갔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서열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집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도록 크게 들렸다. 
9남매 중 넷째인 나의 관심은 늘 밖으로 향했고, 동네길 골목에서 온종일 지냈다. 아침에 나가 해 질 녘에 돌아와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들의 아침 시간은 전쟁 같았고, 각자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도시락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도시락을 가방에 넣을 때마다 언니의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점심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부러움에 내 양은 도시락이 점점 쭈그려져 갔다. 
6학년 소풍이었다. 전날 밤부터 설레는 마음을 참느라 어둠을 끌어안고 뒹굴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고, 소풍 가방을 열었다 닫기를 수십 번도 더 했다. 아침을 먹으며 나의 눈길은 자꾸 김밥으로 향했고, 쌓아 올린 김밥이 부푼 내 마음보다 크게 쌓여갔다. 6학년 소풍은 먼 곳으로 떠났고, 햇볕이 내리쬐는 지루한 길은 부풀었던 설렘을 녹여버렸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다. 가방 속에 담긴 도시락을 잡는 순간 묵직함을 느꼈고, 꺼내 보니 그토록 바라던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김밥이 줄을 지어 쌓여 있었다. 김밥보다 더 예쁜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햇볕에 반사되어 찡하고 번뜩이며 눈을 가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이 담긴 도시락이 반짝반짝 빛났다. 김밥 속 동그란 밥 알갱이가 웃고 있는 엄마 얼굴을 닮아있었다. 
이민 와서 아이들의 소풍 날이면 김밥을 싸주었고, 흰쌀밥을 주걱으로 휘저어 섞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생각나 다칠까 봐 살살 뒤집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장기 자랑 시간이 되었고, 친구들의 노래에 들뜬 내 마음이 숲속을 채웠고, 흥분된 도시락이 춤을 추었다. 친구들의 환호성에 나는 하늘 끝까지 날아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소풍 가방에 손을 넣으니 빈 가방이었다. 순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고, 혼날지 두려워 저녁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기도는 기도일 뿐 나는 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가야 했고, 꾹 닫힌 아버지의 입술은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으로 방 안 가득 채웠다. 정적 사이로 밀려오는 서러움이 눈물로 터져 나와, 잃어버린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떨어졌다. 울음은 서열에 대한 반항이었고, 남은 형제들을 대신해서 아버지 앞에서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는 잃어버린 도시락보다 더 단단했고, 한참 동안 그 방에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울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아버님이 시내 여행에서 돌아왔다. 점심시간에 준비해 간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았지만, 생소한 초밥에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섭섭함을 느낀 시아버님은 식사도 거른 채 도시락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서로 나눌 수 없는 이질감이 더운 여름의 열기와 뒤섞여 주름진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식탁 위에 돌아앉은 초밥을 보면서 열기에도 변하지 말라고 듬뿍 뿌린 식초가 원망스러웠다. 변해야 어울릴 수 있고, 어울릴 수 있어야 적응이 되는 것을. 
다시는 여행 가지 않겠다는 시아버님을 달래며, 어릴 적 친정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날 밤 친정아버지는 왜 아무 말 없이 그 방에 앉아 있었는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었던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신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무언의 침묵이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무의 중심을 잡기 위해 포기한 것들, 그리고 혼자서 버티어 낸 외로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어 온다. 소리를 내 말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친정아버지의 진한 사랑을 더듬는다. 복받쳐 오르는 그리움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울어본다. 먼 길로 소풍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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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BLESS EVERY HOME 운동 제안서

임재량 목사(CMCA 대표)

 

다문화주의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는 광활한 영토와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특징지어집니다. 이민자와 국제 유학생과 난민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는 이민국가로서 캐나다는 사회 통합을 위해 모자이크 다문화주의를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계속적인 인구 유입과 함께 캐나다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통합을 위해서 문화간 이해와 교류 증진을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해져 가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서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함께 힘을 모아 지역 사회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도록 각 지역을 섬기는 이들이 필요합니다.

 

BLESS EVERY HOME 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로 고백하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의 이웃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복이 그 가정에 베풀어지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실천입니다. 성경(창세기 1 장 28 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BLESS)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거듭되는 범죄와 타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복 주시려는 그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신 것도, 그 부름 받고 선택 받은 한 사람을 통해 온 땅의 모든 가정이 복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성경(창세기 12 장 1-3 절)은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을 “먼저 전한 복음(갈라디아서 3 장 8 절)”이라고 풀이합니다. 교회가 전해야 할 복음은 결코 전도로만 축소될 수 없고, 온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삶의 실천이어야 함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삶을 어떻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었고, 예수님은 그 일을 이 땅에서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7 장 4 절). 예수님께서 문제 많은 이 세상에 우리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보내시는 이유는 평강의 영이신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그 삶을 우리로 살아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요한복음 20 장 21 절).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신 바 모든 민족, 모든 가정에게 복이 되는 삶은, 신약의 4 복음서를 통해 B.L.E.S.S.의 5 가지 실천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만나셨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하셨던 것이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로서 이 땅의 교회가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삶의 실천들입니다.

 

첫째, B – Begin with Prayer. 기도로 시작하기입니다. 하루 하루를 먼저 하나님과 함께 기도로 시작하는 실천입니다. 그날 하루 만날 사람, 갈 곳을 품고 먼저 하나님의 복 주심을 구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Bless Every Home 운동을 통해 입양한 우리 이웃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로 이들을 축복하는 선교적 실천입니다.
둘째, L – Listen with Care. 경청하기입니다. 매일 혹은 매 주 시간을 따로 떼어 놓고 우리 이웃들에게로 다가가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좋은 질문들을 던지고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실천입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마음의 열정과 아픔과 기쁨을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경청이야 말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우리가 복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선교적 실천입니다.

 

셋째, E – Eat together. 함께 먹기입니다. 하루 세 끼를 먹고 일주일에 스물 한 끼를 먹는 일상의 습관은 한 사람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놀라운 섬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복이 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끼 정도를 따로 떼어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실천입니다. 함께 음식을 나눌 때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지고 그 친밀함이야말로 누군가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이 될 수 있는 기초입니다. 
집에 초대하여 식사하는 것이 부담이 되면 음식점에서 대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사를 나누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가벼운 차나 커피를 나누는 것도 훌륭한 선교적 실천입니다.
넷째, S – Serve with Love. 사랑으로 섬기기입니다. 기도하고 경청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다 보면 우리는 각 사람의 필요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들을 섬기는 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강력한 선교적 실천이 됩니다. 사람들의 전인적 필요를 채우려는 총체적인 선교 접근은 공동체가 팀을 이루어 한 사람 한 사람씩, 한 가정 한 가정씩 섬기는 것을 요청합니다.
공동체적인 사랑의 섬김을 통해 지역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로 계속 자라가게 됩니다.

 

다섯째, S – Share Stories.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삶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관계와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 친밀함을 토대로 우리는 이웃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복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이웃을 하나님의 구원에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말로 복음을 나누기 전에 먼저 우리가 그 복음의 사람이 됨으로써 우리는 이웃들을 복음에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BLESS EVERY HOME 운동은, 미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이웃을 더 잘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전도 및 교회 성장을 위한 맵핑 센터를 통해 Chris 와 Karen Cooper 에 의해 1997 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18,000 개 이상의 지역 교회에서 Bless Every Home 운동에 참여하여 수 백만의 이웃 가정을 위해 축복하고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최근에는 시카고 지역에서 왕성한 교회 개척 운동(NewThing)을 일으켜 온, B.L.E.S.S.: 5 Everyday Ways to Love Your Neighbor and Change the World 의 저자이기도 한 Community Christian Church 의 Dave 와 Jon Ferguson 을 통해 The BLESS 로 이름이 바뀌어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The BLESS 의 모든 서비스는 현재 미국 내의 주소로 등록을 해야만 사용이 가능하고, 미국 외의 다른 국가로 확장할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북미 교단 가운데는 The Evangelical Covenant Church 가 Dave 와 Jon Ferguson 의 B.L.E.S.S.를 교단 산하 전체 교회의 캠페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CMCA 에서는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주교재로 하여 보다 넓은 개념으로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돕는 Life As Mission 스쿨(8 주 과정)과 함께, 성도들이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삶을 실천하도록 구체적으로 돕기 위한 Life As Mission Basic 스쿨(6 주 과정)을 통해 B.L.E.S.S.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와 기관들이 www.blesseveryhome.com 와 The BLESS 앱을 참조해 자체 개발하여 Bless Every Home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법률 자문위원으로는 강찬영 장로(YWAM 장막장이사역)를, 실무행정위원으로는 허인희 장로(토론토 소망교회), 실무기술위원으로는 이호규 형제(미션 토론토)를 위촉해 현재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와 성도들이 캐나다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정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이웃들에게 복이 되는 선교적인 삶을 실천하는 B.L.E.S.S. Every Home 운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 운동이 각 지역 가운데 일으켜지기를 기대합니다. 이 일에 모든 한인 교회와 선교 단체가 함께 협력하고 헌신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캐나다 사회 안에 하나님의 부흥과 선교 부흥이 견인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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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캐나다 유학생 수 제한의 진짜 현실

5천만달러 적자 모학칼리지의 정리해고 계획을 보며

 

 

이승연 대표

세계유학&교육
www.goworldstudy.com
647-762-9939
master@goworldstudy.com


캐나다에서 유학생들은 현지 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학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학비는 캐나다인 학생보다 5~6배에 달하는 경우가 흔하며, 이는 캐나다 교육기관과 지역 경제에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정부는 국내 거주자들의 주거와 교육 기회를 보호하기 위해 유학생 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결정이 캐나다인들의 삶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 영향이 예상 외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유학생 감소가 불러온 재정 위기
2024년 10월 18일, Steve Orsini 온타리오 대학협의회(Council of Ontario Universities) 회장 겸 CEO가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캐나다정부의 유학생 비자 정책 변경으로 인해 온타리오 대학들은 2024-25년도에 3억 달러 이상의 재정 손실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다음 해에는 손실이 6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나, 2년간 총 1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온타리오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타리오주의 모학칼리지(Mohawk College)는 국내학생 학비가 1년에 약 $2,708인데 비해 국제학생 학비는 $14,817로 무려 5.5배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모학칼리지는 올해 유학생 수 감소로 인해 내년에는 약 5천만 달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직원 정리 해고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이 줄어들면서 수익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운영 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모학칼리지 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역의 많은 교육기관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유학생 수가 감소하면, 해당 기관은 프로그램 축소, 직원 감축, 서비스 질 하락 등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유학생 감소의 파급 효과
유학생들은 단지 교육기관의 수익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캐나다 전역의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산업에 걸쳐 노동력과 경제 활동을 촉진해 왔습니다. 유학생들은 학비 외에도 생활비, 식비, 주거비 등을 지출하며 지역 상권을 활성화합니다. 특히, 유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아파트 임대료가 유학생 수에 따라 변동되며, 상점과 음식점 등 소상공인들도 이들의 소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학생 수가 줄어들면 지역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의 역효과
유학생 수 제한을 통해 캐나다 거주자들의 혜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캐나다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산 부족으로 인해 교육 기관들이 직원 수를 줄이게 되면, 이는 곧 캐나다인들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집니다. 또한, 프로그램 축소와 같은 교육 질 하락 문제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이는 캐나다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결국, 캐나다인들이 유학생 제한 정책을 통해 얻으려던 이익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캐나다인의 삶에 예상치 못한 영향들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유학생 유치를 위한 새로운 접근
캐나다는 유학생 수 제한보다는 그들이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학생비자 규정을 강화해 비자가 편법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거나, 기숙사 시설을 확충해 주택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학생들이 졸업 후 캐나다 내에서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이들의 장기적인 경제 기여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역사회와 경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캐나다의 인재 유출을 막는 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결론: 유학생과 캐나다인의 상생을 위한 방향
유학생들은 캐나다 경제와 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으며, 유학생 수 제한이 가져오는 경제적 충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학생들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닌, 캐나다 경제의 중요한 일부이며, 그들이 캐나다에 머무르며 더욱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캐나다의 유학생 정책은 단기적인 관점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유학생과 캐나다인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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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
“오랜 문우, 길 위에 남겨진 이야기”/박정순

 


박정순(한카문화예술원 대표)
 

 

生死路隱(생사로진) 삶과 죽음의 길은 따로 있어
去此彼方(거차피방) 여기서 저기로 가는 것이로다
 

가을에는 문득 월명사의 <제망매가>의 싯구가 떠 오릅니다. 이별을 생각하기에 더욱 적절한 11월의 초입에서, 낙하하는 낙엽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듯, 김대억 목사님의 비보를 듣게 참으로 허망하였습니다.
이민자로서 목사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무형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목회 중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셔서 맥마스트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수료까지 하셨습니다.  법정통역관으로서 목도한 교민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 목회자로서의 성서 속의 여인들 등을 집필하시고, 문학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민사회 운동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여러 권의 옥저를 남기셨습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은 90년대 저의 이민 초기, 백지문학회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문학회 회장이었던 저는 <캐나다 교민 자녀들의 교육 이야기> 교민들의 원고를 모아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의 원고 청탁 전화에 두말없이 기꺼이 기고해 주셔서 이민생활에서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문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독도사랑협의회>를 함께 결성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문학으로 알리는데 앞장서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오랜 세월 법정통역관으로 활동하시며, 한인 사회의 그늘진 구석구석을 보듬고 소외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한인 사회가 안고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아픔을 목사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당신의 손길을 내 밀어 주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들려줄 우리들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애국지사기념사업회>를 통해 출판해 오셨습니다. 이 발걸음은 우리 한인 사회가 조국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지키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수 많은 봉사를 하셨던 목사님께서는 당연히 한인 사회에서 존경 받으셔야 하고 한인사회에 어른으로서 가만히 계셔도 될 위치이셨지만 ‘애국지사기념사업회’ 고충을 털어 놓으실 땐, 마음 한 켠이 늘 숙연해지며 송구스러웠습니다.  지난해 애국지사기념사업회 이사님들과 함께 대통령 훈장 추서를 위해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목사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어 많이 속상했습니다. 대신 훈장보다 더 훈훈한 저희들 마음을 담은 노란 국화를 영전에 놓겠습니다. 목사님의 한인 사회와 조국을 향한 사랑의 흔적의 발자취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국화향기처럼 은은하게 퍼질 것입니다.
목사님,
이제 버거운 일들 모두 손에 놓으시고 돌아보시지 마시고 길 떠나십시오. 혹여 천상에서 애국지사들과 만나 유쾌한 농도 나누시구요.  그동안 이 땅에서 수고 많으셨고 정말 감사합니다.  
뜻밖의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분들께도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편안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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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
꿈 꾸는 사람/ 최문애숙/문협광장

 

최문애숙/문협회원

 

세상에는 꿈꾸는 사람이 참 많아 살 만한 곳이다.
나는 3살 반 때 일어났던 몇 가지 일을 분명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셨던 아버지께서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삶에서 사라지셨기 때문이다. “곧 돌아오실 게다”라며 어머니께서 위로를 주셨지만, 나는 이해가 안 돼서 자꾸 보채다가 결국 울보가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고막을 쳤던 폭격기와 사이렌 소리가 아직도 귀에 경보음처럼 쟁쟁하다. 동생을 등에 둘러메고 엄마는 나의 등을 밀치며 깜깜한 동굴 속으로 데려가서 숨겼다. 그래서 우박처럼 쏟아지던 폭탄에 엄마의 잽싼 기지로 우리 식구는 모두 살았다. 밤이 오면 빨간 완장을 두른 옆집 아저씨가 무서운 얼굴로 ‘네 아방 어데 갔네! 빨리 내 노우라야’ 고함을 치며 부릅떴던 그 눈을 기억한다. 한두 해가 지나서 5살이 되었을 때쯤 비로소 아버지가 왜 우리를 남겨두고 급히 남한으로 피신했어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밤이었던가! 어마무시한 큰 불꽃놀이가 앞산에서 벌어졌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면서 연합군이 철수하기 직전에 탄약고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단다. 

 

그리고 며칠 뒤에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우리를 구하시러 2년 만에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려오시어 훌쩍이는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가친척에게 남한으로 피신해야 산다고 설득하셨다. 그리고 간단히 짐을 꾸려 정든 집과 조상이 묻힌 산천에서 죽겠다며 설득이 안 되셨던 할머니를 남겨놓고 우리는 떠났다. 한 손에 동생을, 다른 한 손에 나를 잡고 우리는 대동강 다리가 폭파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극적으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사선은 넘었으나 남한은 참으로 눈비 바람 피할 곳 하나 없는 차디찬 곳이었다. 또한 따뜻한 음식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암담하고 생소한 그런 곳이었다. 우리가 남가주에 처음 학생으로 왔을 때 느꼈던 그런 막막함이 한동안 우리를 숨 막히게 했었다. 같은 처지의 피난민들이 공터에 천막을 치고 모여 살았다. 주일이 되면 근처에 있던 피난민 교회에 참석하여 소망의 말씀으로 위안을 받곤 했었다. 행여 동향 사람이라도 만나면 피난 오다 잃어버린 식구라도 찾을까 하여 한동안 헛된 희망에 들뜨곤 했었다. 서로 재능과 관습 그리고 사투리가 달라도 같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노래하고, 위로받으며,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해 가는 유용한 시간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사는 북미주에 옮겨 심은 나무처럼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세기 전에 비해 지금은 한국인의 위상이 좀 높아졌다 해도 동서양의 언어나 문화 및 생활 습관 등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서 어떤 이에게는 적응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어떤 친구는 아예 이곳의 삶을 포기하고 역이민하는 일도 종종 보았다. 따지고 보면 어떤 인종이든지 인간이란 공통점과 그리고 같은 종교인이라는 믿음 안에 언어소통이라도 원활하면 문화적 차이는 별문제 없이 해결되었다. 함께 어울리다 보면 우리가 이 땅에서 꼭 알아야 할 예의범절이나 규칙 등 생활 규범까지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공동체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서 우리가 필요한 멘토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때로 그들의 역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해 주었다. 이들 대부분은 미래지향적 성향을 보여서 현재 시각에 미래의 관점을 도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부분 멘토는 활기가 넘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꿈 꾸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미대륙이란 미래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서는 올 수 없는 곳 같다. 꿈꾸는 사람들이 이룩한 이곳에 우리는 모두 꿈을 꾸며 산다. 나의 아버지도 나도 항상 미래의 꿈을 꾸며 살았다. 아무리 어려운 때를 만나도 곧 지나가리란 긍정적 확신을 가졌다. 
헬렌 켈러의 말처럼, “앞을 못 보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냥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을 꾸셨다.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의 말대로, “미래 마인드”로 사셨다. 북한에 사는 식구들을 남한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밤낮으로 꿈꾸고 계획하셨다.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일생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오자마자 바로 용감히 실천에 옮기셨다. 맥아더 장군의 성공 확률 5000:1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북괴군을 38선 이북으로 밀어낼 때 군인도 아닌 민간인이셨던 아버지는 통역자로 합류하여 자연스럽게 평양까지 우리를 구하러 오셨다. 꿈이란 그냥 마음에 있다고 하면, 생생한 꿈이란 자신이 스스로 꿈과 하나가 되어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일을 성취하여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미래는 오직 꿈꾸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면 너무 무리인가!

 

 코비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나는 노인들이 쉬어 가는 공간을 십수년간 운영해 왔다.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많은 노인들이 참석하여 좋은 혜택을 얻었다. 그때 그곳에는 연세가 80에서 90이 넘는 노인분들이 열심히 참석했다. 아마 지금은 대부분 사망하셨겠지만, 이분들은 여러 자손이 함께 살기를 원해도 홀로 독립하여 사는 것이 꿈이었다. 또한 규칙이 엄한 요양원 생활보다 외롭지만, 꿈꾸어 온대로 혼자서 멋지게 사는 삶을 선호하셨던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이런 노인들에게 재밌는 소일거리를 만들어 주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은 큰 보람이었다. 더욱이 이들의 영적 생활을 도우려고 90이 넘은 노구의 L이라는 목사님은 90이 되어오는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왕복 3시간이 넘는 먼 길을 사명감을 느끼며 오셨다 가셨다. 평생 헌신적인 삶을 꿈꾸어 오셨던 이분의 삶은 인생의 경주가 끝나는 그 날까지 쉼이 없었다. 흰 수염과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호탕한 유머로 멋진 삶을 사시고는 다음 달 눈 오는 날 조용히 영면하셨다. 
 세상에는 이렇게 멋지고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 정말로 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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