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가을, 집안에서 미끄러지며 뒤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였다. 응급실에 입원하여 몸 전체를 검사한 결과 등뼈에 크게 금이 가 있고, 여기저기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일주일 동안 약물치료를 받으며 의사들의 소견을 듣던 중 일반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으로 옮길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모든 수속을 마친 후 구급차에 실려 새로운 병원에 도착하여 3층에 배정된 나의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두 여인이 있었다. 침상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백인 여성과 그녀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건장한 체구의 흑인 여성이었는데 그들의 소개에 따라 환자와 개인이 고용한 간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피부가 희고 서글서글한 눈매가 호감이 가는 메리는 긴 머리를 묶어 한쪽으로 늘어뜨렸는데 환자답지 않게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창가 쪽에 위치한 그녀의 침상과 출입구 쪽에 자리 잡은 내 침상 사이로 각자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커튼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이 활짝 열려 있어서 병실이 환하고 넓어 보였다 입구 쪽의 사람도 창밖을 볼 수 있게 하려는 메리의 배려였던 것이다.
덕분에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들과 날아다니는 새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평화스럽고 한가한 오후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멈춰 섰던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마음이 놓이며 가슴 한편이 따듯해 옴을 느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한 번도 창밖을 보지 못하였다. 칸칸이 커튼으로 가려진 좁은 방에서 의사를 기다리며 누워 있어야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는 환자들의 비명을 듣고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며 진저리를 쳤다. 불쾌한 냄새를 품은 탁한 공기에 숨이 막혀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고생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보냈던 어두운 시간을 뒤로하고 성큼 다가온 밝고 따듯한 현실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새삼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오후 5시가 되자 간병인이 퇴근하고 메리와 나는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좀더 구체적으로 자기소개를 주고 받았다. 나보다 몇 살은 적으리라는 예측을 깨고 그녀는 같은 해 같은 달 4일 간격을 두고 캐나다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이탈리안이었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고생하던 남편과 2년 전에 사별한 후 간병하느라 심신이 지쳐있던 그녀는 몸의 균형감각을 잃었고 힘없이 넘어지는 낙상 사고를 세 번씩이나 당했다고 한다. 허리 수술을 하였으나 실패하여 8개월 후에 잡혀 있는 재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불운이 닥친 것이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단 하나뿐인 혈육인 여동생이 살고 있는 토론토 근교로 임시거처를 정하고 이 병원에 4개월째 입원 중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1년 반 전에 남편을 잃고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던 중 갑자기 넘어져서 등뼈에 크게 금이 갔고 3, 4개월은 지나야 회복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인생의 황혼 길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불행을 안고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을 많은 대화를 통하여 크게 공감하며 아파했다. 비슷한 처지여서 그랬을까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의사 표현이 매끄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알아듣고 이해하며 나의 편에 서주는 그녀의 인품이 돋보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신기할 정도로 그녀와 나는 뜻이 잘 통하고 생각이나 느낌에 공통점이 많았다. 종교적인 관념이나 빛깔을 넘어서 진실된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참으로 편안하고 투명하며 향기로웠다.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흘러가며 변하는 이치를 깨달아가면서 언젠가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허망한 육신에 집착하지 말자고 서로를 달랬다. 늦은 밤 바람을 동반한 빗소리가 유리창을 흔드는데 우리 두 사람은 소리를 죽이며 눈물을 쏟았다.
병실에서 움튼 우정의 새싹에 눈물이 단비가 되어 촉촉이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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