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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o
옥빌 가는 길/김정수/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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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이 깔린, 밤 아홉 시 갓 지난 Go 버스 정류장.
나는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옥빌(Oakville)행 버스에 오른다.

야경을 구경하려면 이층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내릴 때 불편할 듯해서 출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 잡는다. 평일 밤이어서 인지 제법 사람이 있는 편이다. 내일은 아들 며느리가 모두 출근하는 날이라 나 혼자 손녀의 스쿨버스 등하교를 도와줘야 한다. 게다가 퇴근 후에는 새 학기 전교생 학부모 미팅이 있기도 하여 내가 간단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짐 보따리가 더 늘어났다. 다행히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밤에 버스를 타면 차창 밖 어둠 속으로 빨려가는 기분이 든다. 1시간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기로 했으나 버스가 중간 정류소에 멈춰 설 때마다 눈이 절로 떠진다. 피어슨 공항을 경유하는 차량이라서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대체로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생기가 도는 데 비해 돌아오는 여행자들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엿보인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 아마도 고정관념 때문일지 모르겠다. 문득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한밤 유리창은 때론 거울보다 선명할 때가 있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에서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도. 그러나 엄마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지난 한국 방문 때 만난 작은 외숙모도,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엄마가 오는 줄 착각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엄마의 1주기 추모식에서 우리 삼남매가 기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달랐다. 남동생의 기억 속 엄마가 가장 정답고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집을 떠난 이후 엄마와 제대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던 나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을 때 뒤늦은 후회로 자책했었다.

 

엄마는 아버지 없는 삼십 년 남짓한 세월을 어떻게 살았을까?
초기 십 년은 내가 한국 땅에 같이 있었고 엄마가 친손주 육아로 바쁘게 보낼 즈음이었다. 이따금 우리 집을 방문하던 엄마는 올케언니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내게서 되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그때 한 번만이라도 무조건 엄마 편에 서서 당신 속을 후련하게 해 줄 걸, 왜 그리 빡빡하게 잘잘못을 따져 속상하게 만들었는지. 엄마는 내 앞에서 아버지가 옆에 없으니 외롭다는 소리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의절한 나와 아버지 사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면 내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이민 오기 직전에 엄마를 오빠네와 독립시켰다. 그것이 모두에게 평화롭다고 생각했으므로 우리 삼 남매는 합의했고 엄마 또한 동의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는 엄마를 신경 쓸 여유가 거의 없었다. 한두 달에 한 차례 하는 전화 통화에서도 통상적인 안부를 묻는 데만 그쳤을 뿐, 엄마가 길게 말하려고 할 때마다 내 쪽에서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곤 했다. 그때 엄마는 외롭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지내던 엄마가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시작한 것은, 외로움을 덜고 평온한 마음을 얻는 데 큰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엄마가 치매 말기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입소하고 난 뒤, 나는 주인 없는 엄마의 아파트에서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다.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사후를 정리하는 글귀 하나도 남기지 않았을까? 왜 나는 틈틈이 엄마에게 편지나 일기를 쓰도록 종용하지 않았을까? 살림살이와 가구 외에는 엄마의 숨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에 앉아서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과 공허감으로 숨죽여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얼굴에 초점 잃은 눈빛을 한 엄마를 요양원에 두고 캐나다로 떠나오는 발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코비드에 걸려 외로이 돌아가실 때도 나는 곁에 없었다.

 

어느덧 버스가 하이웨이를 벗어나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다. Stop 버튼을 누르고 짐 보따리를 챙긴다. 백팩을 매고 쇼핑백을 들고 출입구 쪽으로 뒤뚱대며 걷는 내 모습이 차창에 어른거린다.

버스에서 내리자,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반갑다.
“엄마,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근데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울 엄마가 어느새 이렇게
왜소해지고 늙었나 싶어 울컥했어요.”
촉촉해진 아들을 향해 나는 씩씩하게 외친다.
“밤이라서 그래. 그리고 흰머리가 많아서 그래.”
쌀쌀한 구월 중순의 밤공기를 호흡하며 아들 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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