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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yoo
미국의 캐나다침략(17)-1812년 전쟁 전후(7)
donyoo

(지난 호에 이어)

 

스토니 크리크전투(1813년 6월 5일)

나이아가라 강이 흘러나오는 온태리오호수 서쪽 끝에 차지한 조오지요새는 잔 빈센트 영군 준장이 약1,000명의 군대로 수비하고 있었다. 요오크(토론토)를 초토화시킨 디어본은 5월 27일 3,000명의 미군을 이끌고 조오지요새를 공격하여 손쉽게 점령했다.

조오지요새 전투에서 숫자로 밀린 빈센트는 벌링턴 고지로 도피했다. 승리 도취감에 빠진 디어본은 빈센트가 군을 재정비하여 1,600명의 영군을 징집하여 다음 공격작전을 세울 때까지 추격을 게을리하고 군 3,400명을 이끌고 나이아가라 근처 스토니 크리크에 진영을 치고 있었다.

빈센트는 잔 하비 중령이 이끄는 정찰대로부터 미군의 진영이 흐트러져 있고 야간에 보초병도 몇 명 되지 않고 군기가 빠져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빈센트는 야간기습을 단행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6월 5일 11시 30분에 하비가 700명의 영군을 이끌고 미군진영을 접근하게 하였다.

하비는 뇌관을 뺀 장총에 총검을 꽂아 보초병을 하나씩 제거하고 미군진영에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은 미군들이 잠자는 막사에 들어가서 총검으로 항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간 근무하는 미군 식당당번에게 발각되어 깨어난 미군들의 역공을 받아 총포를 쏘는 미군들과 45분간 격렬한 야간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동이 트고 거센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하비는 열세의 숫자를 가진 영군의 실체를 감추기 위해 영군을 숲 속으로 후퇴시키고 멀리서 미군의 동태를 살폈다. 영군의 숫자를 파악하지 못한 미군은 재빨리 군을 정비하고 포티 마일 크리크(현재 그림스비)로 후퇴하였다. 결국 속임수로 디어본을 격퇴시킨 빈센트는 스토니 크리크의 미국 진영을 접수하여 전리품을 획득했다.

스토니 크리크 전투로 미군은 63명, 영군은 214명의 사상자 및 실종자를 내었고 빈센트는 야간전투 중 낙마부상으로 혼자 헤매다가 영군에 구조되었다.

6월 10일 조오지 요새로 퇴각하는 미군은 영군의 추격을 받아 230여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스토니 크리크에 가면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스토니 크리크 전투기념비를 볼 수 있다.

 

비버 댐스 전투(1813년 6월 24일)

스토니 크리크에서 영군의 추격을 받고 조오지요새로 퇴각한 디어본은 600여명을 선발하여 영군 격퇴를 위한 기습공격전략을 세웠다. 보슬러 대령이 이끄는 선발대는 6월 22일부터 온태리오주 쿠인스톤에 집결하였다. 그 중 일부 장교들은 제임스 세코드 캐나다 민병대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세코드는 1년 전 쿠인스 고지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가택요양 중이었는데 숙박하던 미군장교들의 작전을 엿들을 수 있었다. 작전계획은 미군이 온태리오주 쏘롤드에 위치한 비버 댐스의 드쿠진영 영군을 24일 기습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영군에 알리기 위해 제임스 세코드의 부인 로라 세코드는 22일 영군진영을 향해 32 KM가 되는 숲속의 험악한 장거리를 걸어 나섰다. 다행히 모학 원주민을 만나 비버 댐스의 드쿠 영국진영까지 도착해 군사기밀을 알릴 수 있었다.

보고를 받은 제임스 피츠기븐 대위는 모학 원주민 전사 100여명을 숲속에 잠복시키고 자신은 350여명과 함께 지원군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6월 24일 찰스 보슬러 대령은 미군을 인솔하여 비버 댐스의 드쿠 영군진영을 향하고 있었다. 숲속에 잠복하던 모학 원주민의 공격을 받고 반격을 가했으나 피츠기본의 지원군에 포위되었다.

피츠기븐은 숫자적으로 우세한 영 연합군에 항복하지 않으면 원주민들에게 두피를 벗겨질 것이라는 허위협박을 했다. 실제로 영군은 450명 미군은 600여명이었다. 이 공갈에 넘어간 보슬러는 미군 450여명과 함께 전투도 하지 않고 항복해 버렸다.

영군은 40명, 미군은 75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450여명의 미군이 포로가 되었다. 정보입수에 취약한 디어본은 승전기회를 계속 놓치고 조오지 요새를 수비하다 1813년말 미국으로 퇴각했다.

 

로라 세코드 초콜렛과 산행길

1913년 캔디상을 하는 프랭크 오커너는 로라 세코드의 애국심을 찬양하기 위해 캐나다산 최고의 초콜렛 상품을 개발하여 로라 세코드초콜렛을 선보였다. 아직도 로라 세코드초콜렛과 아이스크림은 국내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2013년 6월 22일 로라 세코드의 애국역사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코드의 6대 후손인 케럴린 메코맥은 부르스트레일의 일부가 되는 길에 로라 세코드트레일을 표시하고 매년 6월 로라 세코드 기념산행을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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