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도강 작전을 선두 지휘하는 워싱턴 총 사령관(트렌튼 전투)
I will die on Foot before I will live on my Knees. (George Washington)
(786호에 이어)
10월 29일 미연합상원은 벤자민 프랭클린을 프랑스 특사로 파견하였다. 프랑스인들에게 잘 알려진 프랭클린은 프랑스의 귀족들을 접근하여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군사원조를 받는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12월 25일 밤 불굴의 명장 워싱턴은 해가 바뀌기 전에 공격을 결심하고 함께 죽음을 각오한 선발대 2400명을 선두 지휘하여 크리스마스 밤에 얼어붙은 위험한 델라웨어강을 건너 26일 오전 8시경 트렌튼 전투에서 1500명의 독일 헤씨안 용병 중 1000명을 사로 잡았다.
원래 새벽 5시 이전에 야간습격을 계획했으나 도강 후 얼음비로 변한 강추위에 군장화도 없어 헝겁으로 발을 싸고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대포를 끌어가야 했던 민병들의 발걸음이 늦어 동이 튼 다음 트렌튼에 도착했다.
밝은 아침에 적군과 서로 노출되었지만 워싱턴은 주저하지 않고 총공격을 감행했다. 말 위에서 총격을 받고 27일 사망한 요한 랄 독일 사령관은 거의 굶주리고 헐벗은 워싱턴 패잔병들이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 얼어붙는 강을 넘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민병대는 독일용병들로부터 군 병기, 군 장화 및 군복을 포함한 전리품을 획득하여 쾌거를 올렸다. 이 트렌튼 전투는 미국을 승리로 이끌게 한 미 독립전투사에 장식되어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어린이들의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2월 31일 워싱턴은 트렌튼에 민병 5천을 결집하고 콘월리스의 영국 정예병8천명을 유인하는 작전을 폈다.
1777년
1월 2일 콘월리스의 지휘하에 5500명의 정예군이 프린스턴에서 트렌튼으로 향했다. 12마일의 행군 중 민병들의 저격을 받아 상당수의 장교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콘월리스는 트렌튼의 워싱턴 민병을 독 안에 든 쥐로 생각하고 다음날 포위작전을 세우기로 하고 야영으로 피로를 풀었다.
1월 3일 워싱턴은 500명의 민병만 트렌튼에 남기고 야밤을 통해 4500명의 민병과 대포를 끌고 소리를 죽이며 프린스턴으로 향했다. 남은 500명은 야밤에 불을 지피고 소음으로 허장성세를 보여주었다.
동이 튼 후 워싱턴과 민병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콘월리스는 프린스턴에서 워싱턴 민병의 영국군 후미공격으로 참패를 당하고 뉴 브런스윅으로 후퇴했다. 전리품을 챙기고 포로를 처리한 뒤 워싱턴은 뉴저지의 모리스 타운으로 행군하여 진을 쳤다.
프린스턴 전투는 영국군과 미연합군의 전면전투로 기록되었다. 승리로 이끈 워싱턴의 위용은 물론 개척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미 연합군의 응집을 확실하게 하였다. 한 민병은 백마를 타고 적군 사이를 휘젓는 워싱턴이 총격을 받을까 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 전투에서 포병으로 활약을 했다. 이후 콘월리스는 워싱턴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여 워싱턴의 민병대가 지칠 대로 지쳤지만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6월 14일 영국의 존 버고인 장군은 8천명의 영국군을 지휘하여 캐나다 퀘벡을 떠나 남쪽으로 행군하여 7월 5일 티콘더로가를 점령하고 서서히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워싱턴은 베네딕트 아놀드와 다니엘 모건 민병대를 호레이쇼 게이트 민병 지휘관에게 보내 게이트의 군사력을 보강하였다. 8월 16일 버고인 지휘하에 있던 600명의 헤씨안 독일 용병이 민병에 투항했고, 8월 22일 영국과 함께 싸우던 인디언의 탈퇴로 이어졌다.
9월 19일 버고인은 프리맨 농장전투에서 승리했지만 6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탈영병이 계속 늘어 원군을 기다리며 수세에 몰렸다. 클린턴과 하우의 원군이 도착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받고 공급이 끊어져 절망상태에 들어갔다.
10월 7일 퇴로를 찾으려던 버고인의 영국 정찰대가 민병대에 타격을 받고 10월 13일 민병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에서 10월 17일 버고인은 6222명의 영국군과 함께 민병대에 투항하여 사라토가 전투의 막을 내렸다.
사라토가 전투는 영국과 적대심을 가진 유럽제국들에 알려져 영국의 경각심을 일으켰다. 특히 미 독립전쟁을 지켜보던 프랑스가 미국독립 인정을 하게 되어 미 연합국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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