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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평화로운 촌락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타인” 아닌 “친구”로 대하는 인정이 담뿍 담긴 곳이었다.

 

이 곳에 코 흘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마을 전체가 구릉지대로서 산으로 들러 싸였고, 한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있어 마을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고, 거기엔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 작은 천국과 같은 어린이 놀이터에서 소년과 소녀는 손에 손을 잡고 뛰노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들 사이엔 “네 것과 내 것”이 없었다. 그들은 미움과 적대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그들은 평화의 동산과 같은 마을에서 서로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맑고 구김 없이 자라났다.

 

그들의 나이기 10살이 되었을 때 소년과 소녀의 부모들은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각기 먼 도시로 떠나갔다. 그래서 두 아이는 이별의 의미조차 모르는 채 헤어져야 했다.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살던 두 아이가 오염된 도시의 공기를 호흡하며, 문명의 이기가 생산해내는 온갖 소음들을 들으며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를 향한 인정이나 배려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고 대도시의 사람들 틈에서 산골 마을에서 누리던 평화와 화평과는 거리가 먼 갈등과 분쟁을 맛보며 살아야 한다는 건 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처럼 너와 나의 구분이 너무도 뚜렷한 삶의 현장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떠나온 그들의 낙원을 그리워했다.

 

그러든 어느 날 이제는 성숙한 신사 숙녀가 된 두 사람에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약속된 날, 먼 길을 달려 시이소 공원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그 한가하고 평화스럽기만 했던 놀이터에서 옛날의 자취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원 가운데로 흐르던 맑은 냇물은 흙탕물로 변했고, 그네와 시소와 미끄럼틀 외에 여러 가지 놀이 기구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인지 낡고 더러웠으며, 그 주위에서 노는 아이들도 낮 설어서 그런지 귀여워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그 옛날 소꿉동무를 찾기 시작했다. 서로의 분신 같던 그 따뜻한 손을 잡고,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실망한 마음에 위로를 찾고자.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리던 그 동무를 찾을 수 없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공원을 빠져나가다 그들은 마주쳤다. “톰!”, “메리!” 마주 부르는 그들이 목소리엔 어색함이 깃들어 있었고, 마주 보는 눈길에서 당황함이 교차되었다. 톰이 찾고 있던 메리나, 메리가 찾고 있던 톰은 성인 아닌 10살 난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때 난 20년 전 헤어진 친구를 만나러 온 그들이 어째서 아이들 사이를 헤매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난 그들이 진정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흐르는 세월 따라 자신이 장성했듯이 상대도 어른이 되었을 것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고 싶었던 친구는 아직도 천진난만한 소년 톰과 소녀 메리였던 것이다. 허리를 굽히고 꼬마들 틈을 헤치며 어린 시절의 동무를 찾아 다니는 톰과 메리를 보며 난 디오게네스를 생각했다. 2,300여 년 전,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 아테네 거리를 헤매던 그 철학자를 말이다.

 

우리들도 참되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절실하게 의롭고, 성실하고,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도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동포사회에 조건 없이 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어린 톰과 메리 같은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옳은 일이나 마땅해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처럼 값지고 보람된 일도 없을 것이다.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일”은 성인군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땅한 의무임을 깨달아 행할 수 있는 날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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