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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2000
흔적을 찾아서(83)-카파도키아(1)-데린쿠유 지하도시
bs2000

 

영이 난무한다는 이고니온을 빠져 나와 카파도키아를 향하여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원전 257년~ 64년 동안 존재하였던 카파도키아 왕국의 이름을 아직도 그대로 사용해서 부르고 있는 지역인데, 아나톨리아에서도 동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기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기독교 박해시대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크리스천들의 피난처로도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바뀐 후에도 많은 수도사들이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수도하고자 찾았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공상을 하며 바라보던 창 밖의 산들이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더니 평야, 눈 끝이 닿지 않는 평야지대로 바뀌었습니다. 어쩜 땅이 그리도 넓고 반듯할까요? 아직 싹이 안 나서인지, 아님 경작을 쉬는 해여서 인지…

몇몇 밭은 새 싹이 파랗게 있는데 몇몇은 누런 황토색으로 이어집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고달픈 나그네 길이라 하지만 우리는 시원한 벤즈 버스에 앉아 여유롭게 가는 순례의 길이 아닌가요! 하나 그 길도 끝날 때가 가까워 오는 모양입니다.

끝 간데없이 넓기만 하던 평야가 슬금슬금 없어지더니 조금씩 야산들이 나타나며

시간 또한 점심시간이 되어 버스에서 내리니 야트막한 야산 위로 돌을 쌓은 탑이 보입니다. 야산 앞에 세운 정문에는 URANOS SARIKAYA 라 쓰여진 입구가 있는 동굴 식당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산 위로 보이는 탑은 아마도 굴뚝인 모양입니다.

깨끗한 입구로 들어서니 긴 동굴이 나오면서 점점 어두워집니다.

거기에 맞추어 우리들의 눈 또한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기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에 불편이 없고… 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 만들어 주시었습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필요에 따라 적응하게 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더니 바위를 파서 만든 식당 중앙에는 커다란 홀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으로 5개의 커다란 방들이 더 깊이 파여 있는데, 방 하나에 40~50명씩 들어갈 수 있도록 큰 방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커다란 관광버스 5대를 한번에 Serve할 수 있는 큰 규모였습니다.

우리가 안내된 방의 벽을 만져보니 다 돌이었습니다. 곡괭이로 판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하여 대리석처럼 번쩍이지는 않았지만 그 돌 자체에서 뿜어내는 색감과 조명이 어우러져 벽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습니다.

홀 가운데에서는 터키 악사가 앉아 한국의 거문고와 비슷한 터키 전통악기인 카눈(Qanun)을 뜯으며 분위기를 띄우는, 아주 분위기 만점인 식당입니다. 이 악기 역시 터키와 고구려의 유대를 의미하는 거문고가 발전한 악기가 아닐까요?

오늘의 주 메뉴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한 테스티 케밥(Testi Kebab), 우리 말로는 “항아리 케밥”이라고 합니다. 토기 단지에 고기와 약간의 야채를 넣어 2시간 정도 익혀 먹는 음식이라는 데, 잠시 앉아 있으니 요리사가 화덕에서 갓나온 뜨거운 항아리를 가지고 테이블 옆으로 와서 잘 익혀진 케밥을 꺼내 나누어 줍니다.

이 분위기와 맛을 보여주기 위하여 아침에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하였다는, 그 분위기와 그 음식! 또 한번 가고 싶고, 또 한번 먹고 싶은 맛이었습니다.

분위기가 좋다고 죽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또 볼 곳으로 가야지요. 이제는 식후이니까 기다리는 데린쿠유, 지하 도시로….

버스가 선 곳은 뭐 별볼일 없는 조그마한 교회당이 하나 서있는 주차장 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안내판에는 데린쿠유라고 쓰여 있고… 여기가 그 유명한 지하 도시인가 봅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쿠유는 1965년에 우연히 발견되었으나 우리가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10%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이지만 안전 때문에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는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깊이 내려가기를 허락하지 않으니….

걸어갈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미리 연락을 받아 준비한 마스크를 쓰고, 희미한 전등불 아래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니 1층과 2층에는 마구간과 지상에서 구멍을 통해 던진 포도를 밟아서 짓이기어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주 제조창, 포도주 저장고, 식당, 부엌, 학교 등이 있었습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 3층에 이르면 거주지, 교회, 체벌실, 병기고, 터널 등이 있고 그 외 지하감옥, 묘지, 식량 저장고, 우물 등이 있었습니다. 지하 감옥이라…? 아마도 방들 이름은 발견 이후에 붙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믿음을 위해서,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 중에서도 또 이렇게 감옥에 가야만 할 사람들이 생기는 모양이지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규약이 필요하고, 규약을 지키기 위한 공권력이 필요하기에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로 자연스레 구분이 지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지배하고픈 욕망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기도 하겠기에 좀 씁쓸하였지만 약 2만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이 지하도시는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지하 3층에는 긴급 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뚫려져 있었고, 터널은 꾸불꾸불하게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만약 적이 병기를 들고 들어왔을 때 마음대로 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지하 도시의 특징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돌로 만든 출입문이었습니다. 출입구가 있는 굴 중간 중간에는 55~65cm의 두께와 170~175cm의 높이로 만들어진 돌문이 있었습니다.

이 돌문은 둥근 맷돌 모양으로, 적이 침입했을 때 지하로 내려와 문을 닫음으로써 적의 공격을 차단하게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외부에서 이 돌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며, 안쪽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니 이 돌 하나가 아주 훌륭한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겨우 한 사람이 허리 굽혀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을 지나며 놀라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있을까요? 이 곳 지하도시에는 곳곳에 환기구멍이 교묘히 위장되게 만들어졌다는데, 낮은 층에서도 매우 쾌적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또한 사암으로 된 동굴이기 때문에 사암이 공기를 정화시켜 주기도 하기에 맨 밑바닥 층에서도 깨끗한 공기가 들어와, 지하 7층에서의 연기도 빠르게 빨려 나간다고 합니다.

미로 같은 굽은 길을 돌면 나타나는 커다란 공간이 있는가 하면 그 방들을 이어주는,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지하 도시.

우리는 이렇게 잠시 가이드를 따라 들어와 길을 안 잃어버리고, 설명도 들으면서 돌아 나오지만 그 옛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으로 피신 온 믿음의 선배들은 이 지하도시에 살면서 또 새로 영입되어 오는 믿음의 동지들을 위해서 더 넓게, 깊게 파 들어가기 위해 보낸 세월이 얼마였을까요?

지하에서 나온 엄청나게 많은 흙들은 어떻게 옮겼으며 어떻게 버렸을까요? 모두가 다 의문투성이요, 놀라운 장면이요 장관이었습니다.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오니 늦은 오후의 해가 따사롭게, 그리고 밝게 우리들의 눈을 부시게 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운 땅 아래의 세상을 보고 땅 위로 나온 것입니다. 태양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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