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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살고 있는 토론토 서쪽 동네를 걷다 보면 스포르팅이나 포르투 등 포르투갈의 유명 축구클럽 간판이 보인다. 아마 팬클럽일 게다. 이들 프로축구팀은 벤피카와 함께 포르투갈 리그를 대표하는 3대 명문클럽이다.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고국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서포터들이 한 자리에 모일 공간까지 만들었다는 데서 그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지난 7월1일 오후에는 포르투갈 축구팬들이 몰려나와 그 동네 주요도로가 마비됐다. 포르투갈 국기와 축구대표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드는 주민들이 차량 퍼레이드를 한 것이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렸고, 깃발을 펄럭이며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은 EURO2024 16강전 포르투갈 대 슬로베니아의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포르투갈은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8강에 진출했다. 그 기쁨을, 그렇게 강렬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2시간 넘게 길거리를 점령하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로 8강 진출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7월5일에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8강전 경기가 있었는데, 온 동네가 조용했다. 경기중계를 보지 않고도 포르투갈이 패하며 프랑스가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런 현상은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국가와 민족, 뿌리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국가공동체의 성취를 자신의 자부심으로 챙기려는 마음이다. 최근 벌어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도 결국은 이런 메커니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항상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축구대표팀이, 감독 선임조차도 투명한 절차대로 못해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보면서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데는 경계와 소속감만큼 강력한 매개도 없다.

 

구약성경 에스라 3장에는 바벨론에서 70년 포로생활을 하다 유대 땅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몰두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차례로 멸망했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 여호와의 능력으로 모세와 여호수아에 이끌려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이내 죄의 길로 빠져들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모두 패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역사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듯, 그들의 70년 포로생활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예언됐던 바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29장10절).

그리고 그의 예언은 실제로 성취됐다.

“바사와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으니”(에스라 1장1~2절).

 

유대 땅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7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모였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단을 만들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초막절 등 절기를 지키기 시작했다. 2년2개월 후에는 성전 건축도 시작했다.

제사와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구별 짓고, 한 데 묶는 매개체였다. 여호와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큰 소리로 즐거이 찬양했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 것은 3장 12~13절이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문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바벨론 군대가 무너뜨리기 전 화려했던 성전을 기억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새로 짓는 초라한 성전의 기초를 보고 통곡을 했다. 그러나 오매불망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귀환을 기다리며, 성전을 사모했던 다른 사람들은 드디어 성전건축을 시작한다는 기쁨에 함성을 질렀다.

그럼에도 이들의 환희에 찬 통곡과 절규하듯 쏟아낸 함성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포로 귀환 이후에도 이스라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또 다시 우상숭배를 업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민족, 공동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그런 행위는 가장 숭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런 애국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다른 민족이나 공동체의 침략이나 공격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실제로 수없이,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인간들의 공동체 사랑은 자신들 만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기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상대방과 구별 짓기의 현장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들끼리 하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테두리 만들기를 철저히 무시한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를 다시 드리기 시작한 행위가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것 자체에 인간을 구원할 힘이 없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니”(마태 24장9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환난에 넘겨 주고, 심지어 죽이는 일에는 ‘모든 민족’이 하나가 된다. 

또한 예수께서도 민족과 나라를 한 덩어리로 취급하신다.

“인자가 가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하여”(마태 25장31~32절).

그리고는 갑자기 새로운 구분 짓기의 경계를 설정하신다. 그리스도 앞에 모인 모든 민족을 흔들어 섞은 다음에 양과 염소로 나누신 것이다. 인간들의 행위나 혈통이 아닌 그리스도, 그분이 경계를 설정하는데 직접 뛰어드신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34절).

 

사도 바울은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라는 단어로 반복해서 표현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로새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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