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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자기 존재 증명을 향한 욕구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정치권력이든, 재력이든, 종교적 권위든, 명예욕이든 사람들은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 애를 쓴다. 시기와 경쟁이 여기에서 촉발된다. 심지어 교회 일각에서도 ‘고지론’이라는 이름으로, 원대한 목표를 가지라고 젊은이들을 부추긴다. 물론 ‘세상의 왕’으로 살고 싶은 음흉한 욕심은 쏙 뺀다. 대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고 슬며시 포장한다. 실상 사람들이 성경을 싫어하고, 예수를 욕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

성경은 인간 군상을 ‘아담의 후손’ 즉, ‘죄인’으로 단죄하면서 출발한다. 창세기 초반부터 인간의 마음이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고 선언해 버린다. 결국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쐐기를 박고, 계시록에 가서는 인간들이 자기존재 증명으로 힘껏 쌓아 올린 문명,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9장 초반에는 꽤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나온다. 기세 등등한 이세벨과 잔뜩 겁을 먹은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이다. 고대 북이스라엘 아합 임금의 아내였던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만약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신들로부터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겁을 집어먹고 남유다로 도망을 갔다.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하고 기도한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가 황당한 것은 앞선 18장의 갈멜산 에피소드 때문이다.

아합왕과 이세벨 당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푹 절어 있었다. 갈멜산에서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선지자 850명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가 대결을 펼쳤다.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고, 각자 신의 이름을 불러 어느 제단에 불이 내리는지 백성들 앞에서 증명해 보이자는 것이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친 듯이 소리를 치고, 심지어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고, 피를 흘리면서 신의 이름을 죽자고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엘리야는 양동이에 물을 길어 번제물과 제단 주변에 세 번이나 부었다. 제단 주변이 흠뻑 젖은 것을 확인한 뒤 기도했다. 순식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엘리야는 그 장면을 목격한 백성들과 함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근처 시냇가로 끌고가 모조리 죽여버렸다.

엘리야는 거짓선지자를 모조리 처단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살아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증명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일 후에 오히려 길길이 날뛴 것은 이세벨이었고, 엘리야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는 것을 알고도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세벨을 향해 ‘너는 정말 답이 없구나’ 하고 지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엘리야에게 ‘이런 찌질하고 못난 놈’이라고 꿀밤을 쥐어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눈앞에서 펼쳐진 기상천외한 기적의 장면을 목격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결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한복음 9장에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예수께서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하필 그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셨다. 그리고는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실제로 가서 씻었더니 눈이 떠졌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사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맹인은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고 대답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맹인을 쫓아버렸다.

 

사도 요한은 이런 내러티브를 소개하며, 진짜 눈이 먼 사람은 누구인지 말하고 있다. 모세, 즉 율법의 제자임을 자처하며 맹인을 ‘죄 가운데 태어난 놈’이라고 몰아세우는 바리새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이 먼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육신의 눈은 멀어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맹인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예수께서 결론을 말씀 하셨다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장41절)고 하셨다.

이름을 남기고, 자신을 세상의 왕으로 세워 존재를 증명하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심판 이야기를 꺼내신다. 심판의 내용은 어떤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맹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심판이 선포될 때 바리새인들은 ‘감히 우리를 맹인 취급하냐’고 대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달아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 먹을 떡과 마실 물을 공급하셨다. 힘을 얻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40일을 걸어갔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을 세우고, 선지자 엘리사를 세우라는 말씀을 듣는다. “선지자들이 다 죽고 나만 남았다”고 불평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닌한 자 칠천 명이 있다”고 하신다.

인간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자기 증명을 향한 탐욕과 찌질함의 바닥까지 긁어 내시는 분, 세상에서 가장 괄시 받는 존재로 살게 하시는 분, 그럼에도 그들을 끝까지 찾아가 건져내시는 열심, 이것이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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