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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전서 1장1~2절)

베드로가 인식하는 성도의 정체성은 ‘나그네’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신 거룩한 무리, 곧 성도들은 이 세상의 삶을 나그네 신분으로 통과하게 된다. 그들이 나그네가 된 이유는, 또한 택하심을 받은 유일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다.

나그네는 정착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떠나온 그리고 돌아가야 할 본향뿐이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을 나그네로 만드신 분의 손길이다. 성령께서 그들을 순종의 자리로, 거룩으로 끌고 가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1장3절)

하나님의 미리 아심, 즉 택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의 결말은 거듭남이다. 다시 태어남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성도의 거듭남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 오면 자칭 성도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 가운데 일부는 실망할 수 있다. ‘그럼 내 신앙은 뭐가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데, 모든 일의 근원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수의 피에 있다고 해버리면, 그 기독교의 복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싫어진다. 내 실력으로 산 소망을 쟁취할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쓴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1장5절)

거듭난 성도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다. 그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졌는데,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이다. 더구나 나그네 된 성도들은 이 세상의 삶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러티브는 철저하게 제3자 입장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그 작동원리를 한 발 떨어진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한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하시는 내용을 반복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베드로전서 1장6절)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으려 애쓰는 소위 ‘기독교인’과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가 된’ 베드로의 정체성은 여기서 갈라진다.

성령이 오시기 전 베드로의 삶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는 한때 멋진 신앙고백을 내놓아 칭찬을 받았고, 4복음서에 기록된 중요한 순간마다 베드로는 현장을 지켰다.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용감하게 대제사장 무리에게 맞섰으며,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확신에 찬 어조로 부인했다. 그 모든 순간이 베드로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체는 십자가 앞에 서는 순간 발가벗겨졌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었다. 그는 예수를 부인하고 달아났다.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도 고기를 잡으려 떠나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는 희한한 고백을 내놓는다. 그의 삶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 때문에 근심하고 고민했으나, 결국 그 결말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심지어 예수를 부인하고 달아났던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택하심이 증명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성령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점수를 매길 필요가 없어졌으며, 그저 삶의 순간순간 작동했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이끄심, 그에 따른 구원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1장8~9절)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 가운데 예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이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를 사랑하게 된다. 왜냐 하면 그들 안에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완성된 구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함이 완전히 배제된, 성령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믿음이 구원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1장10~11절)

이런 구원의 이야기는 베드로가 고안하거나 연구해서 정립한 이론이 아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기록한 성경이 바로 이 구원을 설명한다. 선지자들이 했던 유일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실 것과 부활을 통해 영광을 얻으실 것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구약의 선지자들 안에 이미 그리스도의 영이 활동하시며, 구원의 메커니즘을 가르치고 계셨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복음 5장39절)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결론은 이것이다. 성도들의 신앙고백도 마찬가지다.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됐고, 십자가에서 실제 나타난 그리스도 예수의 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베드로전서 1장18~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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