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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여호수아 11장20절)

 

언젠가 한국의 지하철 역에서 시선을 끄는 광고 문구를 봤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자.”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순간 어느 교회의 신앙표어쯤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른 종교의 광고였다.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고, 특히나 갚을 수도 없을 만큼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인생은 속된 말로,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의 핵심 단어 가운데 하나는 ‘은혜’다.

 

여호수아 11장은 이집트(애굽)을 탈출해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벌였던 정복전쟁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 설명에 ‘은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1장20절을 새번역성경 버전으로 읽어보면 의미가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여호수아가 이들 원주민을 조금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친 까닭은, 주님께서 그 원주민들이 고집을 부리게 하시고,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전멸시킨 것이다.”

전쟁을 벌인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지만, 배후에서 움직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설명이다.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고집을 부리게 만들었고, 싸우다가 망하도록 하셨으며, 또한 여호수아가 그들을 조금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전멸시키도록 조치하셨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런 운명을 맞이했던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이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쓰인 히브리어 ‘테힌나’는 사전을 보면 ‘호의’ ‘인자함’ ‘자비’ 등의 뜻을 담고 있다. 가나안 족속들에게 호의나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인물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앞서 여호수아 11장 6절에는 가나안 연합군과의 구체적인 전투 예상도가 나온다.

“그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일 이 맘 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다 죽이겠다.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태워라.”

마치 전쟁의 주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주님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독교에 적대감을 갖고, 또 어떤 이들은 여호와라는 신을 향해 ‘깡패 XX”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왜냐 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족속이나 가나안 족속이나 그다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향해 뭘 그리 대단한 종교적 열심이나 충성을 보인 적이 없다. 그들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계약을 수시로 어겼으나, 우상을 섬기는데 있어 결코 가나안 족속보다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나안 족속과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대우는 천지차이다. ‘은혜’라는 단어는 그래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면 타당하다.

 

성경의 이런 기류는 신약에서도 흐른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다. 요한복음 17장은 기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몇 구절만 읽어봐도 예수의 기도 속에는 지독한 배타성이 드러난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는 세상 가운데서 어떤 무리들만을 특정해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배척을 당했던 것처럼, 세상에 속하지 않은 어떤 무리들이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기도한다. 미움을 받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14절)

이는 마치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참뜻을 17장에서 펼치고 있는 듯하다. 17장에 등장하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아닌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예수의 출생을 이야기하는 마태복음에도 등장한다. 1장21절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에서도 설명한다.

 

남은 질문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것이다. 반드시 이런 질문이 따라 붙어야 한다. ‘자기 백성’이라는 말을 썼다면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인가 하고 물어야 한다.

대답은 사도행전 13장에서 풀이된다. 13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식일에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들어가 성경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바울은 구약 역사와 예수의 탄생, 그분의 사역과 십자가 고난을 설명한다.

그때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했다”.(45절) 그러나 놀랍게도 듣는 무리 가운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48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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