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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 당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17장은 그 원인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931년 솔로몬 왕이 죽은 뒤 남왕국 유다와 분열되며 세워진 나라다. 200년 조금 넘게 지속된 북이스라엘에는 19명의 왕이 통치했다. 이들 왕은 하나 같이 악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나마 약간이라도 긍정평가를 받는 왕이라면 열왕기하 9~10장의 예후 정도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의 권세를 쫓다 결국 멸망한 것이다.
반면 남왕국 유다에는 아사(열왕기상 15장), 여호사밧(열왕기상 22장), 히스기야(열왕기하 18~20장) 등 선하다고 평가 받는 왕들이 가끔 등장했다. 유다왕국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통치했던 마지막 왕은 요시야다. 그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100년쯤 지났을 때 즉위했다.

 

요시야는 18세에 왕이 되고, 31년간 남유다를 다스렸다. 열왕기하 22장에 따르면 그는 왕에 오른 지 18년째 되던 해에 율법책을 발견하고 옷을 찢으며 회개한 뒤 백성들과 함께 율법의 언약을 따르기로 다짐했다.(23장 3절) 
요시야의 개혁에 대해 성경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5절)고 기록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라는 구절은 모세가 신명기 6장에서 유대민족에게 율법으로 명령했던 것이며,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22장에서 ‘큰 계명’으로 정의한 대목이다. 모세와 예수를 관통하고 있는 율법의 명령을 요시야 왕이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려 애썼고, 실제로 지켰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시야 왕 때 활동했던 선지자 가운데 예레미야가 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1장2절). 
그런데 희한한 것은 예레미야가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전달된 여호와의 말씀은 이미 망해 없어진 북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남유다에 대한 심판까지 선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3장11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 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라는 구절은 독자들을 심히 당혹스럽게 만든다. 새번역성경에는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였다고 하지만, 신실하지 못한 유다 보다는 낫다’”고 해석했다. 

 

이스라엘을 설명할 때는 헬라어 ‘디카이오오’ 즉 ‘의롭다고 간주하다’는 단어를, 유다에는 ‘아쉰데토스’, ‘계약을 어긴’이라는 단어를 썼다. 속된 말로 ‘뒤로 호박씨를 까는’ 남유다의 행위 보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른 북이스라엘의 배교가 차라리 의롭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하나씩 평행저울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일평생 그 저울을 애지중지 가지고 논다. 세상의 모든 일을 저울 쟁반에 올려 놓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평가한다. 그 재미로 일생을 살아간다.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도 비슷하다. 이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사도 평행저울에 올려져 있다. 무게 추는 이미 남유다 쪽으로 기울었다. 요시야 왕에서 보는 것처럼 그나마 남쪽이 더 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레이먀 3장11절이 당혹스런 것은 그런 이유다. 사람들의 기대와 생각을 벗어난 것이다.
걱정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선지자 예레미야도 비슷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4장10절) 하고 항변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속였다니. 물론 이 대목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심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기 민족을 향한 연민과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한 예레미야 6장에서 등장하는 “평안하다, 평안하다”는 거짓선지자들의 말에 깜빡 속은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윤리, 도덕, 종교까지도 평행저울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보다 훌륭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한다. 그곳에서 비교의식이 둥지를 튼다. 
그러나 성경의 메시지는 평행저울의 원리를 거부한다. 예레미야 3장11절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저울대에 올려 비교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성경의 포커스는 이스라엘이 유다 보다 차라리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예레미야 당시 유대민족의 역사는 창세 전에 이미 선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우상을 깨부수고 율법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요시야 왕과 남유다 백성들이나, 이미 여호와께 반역을 일삼다 망해버린 이스라엘이나 멸망 당해 마땅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실상 이들은 모두 인간의 죄악과 십자가를 증거하는 도구들이다.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물줄기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시나리오 대로 십자가를 드러낼 뿐이다.

 

왜냐 하면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 3장23절)에 있다. 요시야 왕이든, 극도로 패역했던 이스라엘의 왕들이든,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야고보서 2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이 제시된다. 여호와께서 “언약을 수시로 깨뜨리는” 그분의 백성들과 다시 언약을 맺으신다. 율법 자체를 아예 백성들의 마음에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성된다.(누가복음 22장20절)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이들은 새 언약의 일꾼, 그들은 오직 예수,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고린도후서 3장)가 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새 언약’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실패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롭게 제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새 언약 자체는 창세 전에 이미 역사 가운데 선 십자가로 수렴된다. 하나님의 언약이 역사 속에서 하나씩 선명하게 드러나는 과정에서 그저 ‘새 언약’이란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평행저울에서 번쩍 들어올려져 자신도 모르게 은혜 속으로 빨려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과정에서 여전히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평행저울을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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