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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곧 그리스도 예수다. 그분께서 창세 전에 하신 약속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이 복음이다. 
저주의 상징, 십자가의 죽음이 복음인 것은 그 사건을 통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겠다”는 언약을 성취하셨다는 점 때문이다. 십자가의 보혈, 그 단번에 흘리신 피 이외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방법은 없다.

 

이 복음 성취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그분께서는 그분 마음대로, 그분 계획대로, 어떤 누구와 상의 없이 창세 전 언약에 따라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섭리하고 계시며, 십자가 사건까지도 그분 단독으로 이루셨다. 
하나님의 주도권은 구속의 사건에 있어 인간의 역할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인 인간들의 행위가 구속 사건에 끼어들 틈을 원천 봉쇄하신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분은 ‘율법 외의 한 의’를 복음으로 드러내신다. 그 의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확보하셨다. 때문에 십자가 앞에 선 인간을 비롯해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정당성에 의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분께서 온 세상 가운데서 선택하신 무리 만을 구원하신다 해도 그것에 시비를 걸 자격이 있는 피조물이 없다. 그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악하다거나 편파적이고 불의하다고 대들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그곳에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인 것은 아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대적 역할을 한 악마의 무리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아니 세상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그럼에도 죄인인 인간들에게 가장 큰 복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점이다. 그분은 전능하시며, 거룩하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죄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신다.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으면 인간의 삶은 그분 앞에서 죄인으로 판결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어긴 자로 판정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어떤 인간이 그 기준에 맞출 수 있을까. 인간이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자기백성 만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약속대로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 사탄의 머리를 깨버리셨다. 그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 자신이 죄의 종이었음을 처절하게 자각하는 사람만,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살아난 자들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복음은 자아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종교성은 필연적으로 자아 성취를 추구하는 방향을 내달리지만 십자가는 목숨을 잃어버리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죽음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한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것은 시제다. ‘못 박혔다’는 과거의 일이다. 성도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다. 성도의 죽음은 자신의 불가능함, 처절한 죄의 자각에서 비롯된다. 날마다 삶의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자신의 죄성에 대해 절망할 때 그 죽음의 세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체험하게 된다. 성도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며,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자각할 때 이 죽음,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가장 뜨거운 감격을 쏟아내도록 하는 복음이 된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펼치신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침노한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다. 그분의 나라는 이 역사 속에 이미 뚫고 들어와 있다. 집주인을 결박하고 세간을 늑탈하는 방식이다.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아직 역사 속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재림의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성도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즐기는 자들이다.

 

불행히도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가장 조롱 당하는 복음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재림을 믿지 않는 분위기는 편만해져 있다. 그분이 다시 오시더라도 나중에, 먼 미래에 일어날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 개인에게 어떤 면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다. 성도 안에 성령이 와 계시면서, 성도가 성령에 이끌려 이미 이 땅으로 침노해 온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다면, 그분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갔다면 그곳은 바로 재림의 현장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언약,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게 된다.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성령께서 이끄신다. 그럴 때 그들은 삶에 닥치는 고난마저 즐거워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설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지혜를 구하고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와 십자가 만을 전해야 한다. 
설교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조언이 아니다. 자존심을 높여주고, 훌륭한 인격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작업이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 빠져 자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삶에서 벗어나, 시선을 돌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향하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주목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복음 만을 선포하는 교회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런 시대의 징조조차 읽어내는 이들이 드물다. “과연 그러하리라”(누가 12장)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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