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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하는 가당찮은 시도 가운데 하나는 예수를 믿겠다고 불쑥불쑥 나서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예수를 닮아가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몇몇 구절을 뽑아내 인생의 가르침으로 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등의 구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고민하고 큰 결심을 해서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 중에는 사람을 성질 나게 하는 대목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예수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악마의 자식’으로 취급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등 신학적 지식이 뛰어나고,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향해 지옥에 떨어져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으신 것이다.

 

그렇다고 유대교 지도자들이 순순히 수긍한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실 때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장로 등이 찾아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덤볐다. 누가복음 20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예수는 이에 직접적인 답을 피한 채 비유를 하나 들었다.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오랫동안 먼 나라로 떠났다. 추수할 시점에 종을 보내 세를 받아 오도록 했는데, 농부들은 출장을 오는 종마다 두들겨 패고 능욕을 해서 쫓아버렸다. 주인은 결국 아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이 대목에서 예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향해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고는, 농부들을 진멸할 것이라고 하셨다.

똑똑했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그 비유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고 답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예수께서는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고 반문하셨다. 이는 구약성경 시편 118편을 인용한 것이다.

 

포도원의 농부들이 주인에게 반기를 든 것은 포도원 주인행세를 하고 싶어서였다. 주인의 소유권을 찬탈하려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악마의 꼬임에 빠졌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다.

인간들의 종교를 대표하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농부들이 진멸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인간들이 버린 ‘돌’에 의한 심판을 예고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절대자 하나님을 배제하고 싶어한다. 이미 하나님을 삶의 경계 밖으로 밀어낸 채 살고 있다.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포도원을 차지하려던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세상에서 인간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성 건축이 그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들의 기술과 지혜를 짜내어 하늘에 닿자고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삶에 예수라는 돌은 필요가 없고, 단지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 그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을 고대하는 건축자들은 예수라는 반석을 버리는 것이다. 예외 없이, 인간들이 예수를 믿겠다는 덤비는 게 가당치 않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는 이 비유의 결말로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셨다. 깨어지거나 가루가 되는 것이 믿음조차 스스로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에게 닥친 현실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2017년께 ‘로마서 강해’라는 책을 냈다. 당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울 사상의 출발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나의 죄를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언급하면서 김용옥은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라고 해석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자기 죄를 객관화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혔으면 죄 사함을 얻고 부활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걸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옥은 “이 책을 쓴 이유는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 또한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끊임없이 부활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결론은 “그래서 십자가는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멸집, 무아와도 상통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은 동학의 개벽 사상과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성경을 강해한다고 책을 썼지만 복음과 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이것이 오늘날 인본주의가 기독교를 보는 시각이다. 아니 인본주의에 포로가 된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종교로서 기독교이며,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히겠다는 시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는 인간들의 집요한 죄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해석이다.

이런 기독교가 가짜인 이유는 자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대못을 때려 박았다는 인식을 뒤로 제쳐둔 채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리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점에서다.

 

성경은 인간들의 이 같은 ‘하나님처럼 되기’의 시도를 죄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라도 부활과 구원을 쟁취하겠다는 시도를 마귀의 짓이라고 선언한다. 내가 내놓은 어떤 행위, 예를 들면 회개나 말씀 지킴 등으로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 자신의 구원에 무엇인가를 보태겠다는 시도, 그것이 ‘다른 복음’이다.

 

이 같은 ‘다른 복음’은 당연하게도 창세 전에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지 않았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인간들의 노력으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십자가의 언약 밖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열심히 증거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한 언약 만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세상을 끌고 간다. 창세 전에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능력도 인간의 행실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예수를 향해 이를 박박 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과 애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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