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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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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HO
조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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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0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4)

 

JC칼럼- 213
 
(지난 호에 이어)

 

지난 달 초 직장으로부터 은퇴를 하게 된 필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향했지만 역시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며 여행을 아주 긴 여정으로 만들며 힘들게 했다. 은퇴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긴 시간을 비행하며 지난 50년이 넘는, 쉽지만은 않았던 이민생활이 머릿속에 영화 필름처럼 돌아갔다. 내가 원해서 살았던 삶의 순간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그 많던 순간들 중에 단 한 순간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의 인생은 실패와 후회, 고통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나의 오만한 욕심이 삶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나 높여 놓은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삶이 살아야 우리는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옛날 영국의 수상 Winston Churchill은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원할 거라 말했지만, 필자는 그것은 그분이 거짓을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삶은 고사하고, 다시 또 한번의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해도 또 하나의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너의 삶, 나의 삶, 그의 삶 모두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무 가치와 의미도, 또 즐거움도 목적도 없는 것이란 걸 우리 모두는 어제도 오늘도 이미 깨닫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조물주에 의해서 지어졌고, 또 그분에 뜻대로 분해될 우리들일 뿐 우리의 실체는 아예 없었고, 너도나도 이 세상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란 생각은 우리를 많이도 우울하게 만든다. 

 

이제 곧 성탄절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시간인데 우리들의 모국 대한민국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분열과 다툼 그리고 끝이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우매한 국민들을 좌우로 갈라놓고 언론사마다 사실과 진실 보다는 자기들의 욕심과 이익만을 위하여 보고와 보도를 하다 보니 사실과 진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좀 살만한가 했더니 또 한번 공 들여 쌓아온 성과를 남의 나라에게 바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이제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 탄핵인데, 그동안 탄핵을 통해서 나아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외 수많은 탄핵에 몰두하며 상대방이 잘한 것은 몽땅 묻어두고 못한 것만 찾는데 혈안이 된 국회는 민생은 고사하고 도대체 나랏일은 언제 하는 것일까? 
아마도 한국은 대통령이 적어도 300(국회의원 수)명은 되어야지 매주일 한 명씩 탄핵을 한다 해도 5년 대통령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미디어는 방송마다 온 국민이 탄핵을 기뻐하며 감격과 눈물까지 보이는 장면들을 쉽게 볼 수가 있는데 불과 2년 전 자기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의 탄핵이 저렇게 감격스럽고, 가슴이 설레고 또 그리도 기쁜 일이 되는 걸까? 
또 탄핵 후엔 누가 대통령을 할 것이며, 덕분에 망가지고 있는 나라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의문이다. 새로 뽑힐 대통령은 언제 또 누가 탄핵을 시킬 것인가? 거리에 또 국회 앞에 나와서 밤새 또 며칠씩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탄핵 농성을 하는 수십만의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이며 모두가 자기 돈으로 피켓 또는 싸인을 만들고 추운 날 많은 시간들을 투자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저들은 돈 많은 실업자들인가, 아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인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탄핵을 반대하는 무리의 사람들도 유튜브를 통해 볼 수가 있지만 주류 방송사에서는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언론의 힘이란 대단하고 정치를 하려면 언론을 등에 업고 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대로 흘러가고 또 순리대로 흘러가길 바라지만 다만 북한처럼 몇몇의 나쁜 사람들로 인하여 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한국 탄핵 사태를 보고 느낀 것이 많지만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의 갑자기 돌변한 행동의 진실이 뭔지는 몰라도 윤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고 믿던 이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이 나라에 지난 몇십 년을 살면서 한두 번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한 적이 있는데, 대게 남의 뒷통수를 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평상시에 아부와 아첨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며 막상 간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평생에 은인, 절대 은혜를 잊지 않을 것, 귀인을 만났다, 나의 팔자가 바뀌었다, 한없이 존경한다는 등 그야말로 간지러운 사람들이다. 직업상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런 부류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지만 막상 당하고 나면 억울하고 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보다 날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저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남을 배반하고 공갈, 협박, 모함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들의 처지가 참으로 치사하고 더럽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OHNCHO
조준상
166792
18284
2024-12-13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3)

 

JC칼럼- 212
 

(지난 호에 이어)
지난주에는 우리 모국 대한민국에 갑자기 계엄령이 선포돼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왜 그리고 후속대책도 없으면서 대통령과 참모진들이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저지른 것인지 의아하다. 이번 결정은 그렇지 않아도 항상 건수만 찾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엔 큰 구실과 호재가 되어 아마도 안타깝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진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거의 국정을 마비시키며 나라 살림을 방해하고, 범죄자에 대한 방탄만 하고 있는 민주당의 행동이 오죽이나 답답하고 미웠으면 그랬을까 이해도 되지만 그래도 이번 행동은 너무나 경솔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엔 터무니가 없는 행동이었다. 

 

벌써부터 국민에게 총칼을 휘둘렀다며 민주당의 전문인 탄핵을 집요하게도 들고 나선다. 다행히 1차 탄핵 시도는 국회 정족수 미달로 무산이 되긴 했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탄핵을 시키면 나라와 국민은 누가 돌보고 누가 행정을 책임진단 말인가? 다수당의 독선과 횡포 역시 민주주의의 큰 병폐인 것 같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지 이재명, 이준석, 조국 등 덩달아 신들이 나서 마치 남북통일이라도 된 것처럼 이구동성 난리도 아니다. 
이럴수록 나라의 안위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걱정해야 하는데 그저 자기 밥그릇이나 걱정하며 상대방의 실수와 질책 하기에만 정신들이 팔렸다면 과연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찌 되는 것일까?  물론 이번 계엄령 선포는 잘못된 결정이었고, 경솔하기 짝이 없으며 또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만이 답이 되는지 또 그담엔 어쩌자는 말일까? 또 대통령실엔 생각할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걸까? 윤 대통령 역시 사랑도 의리도 다 좋지만 이왕 5천만이 살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 나선 대통령인데 부인이 발목을 잡으면 과감하게 헤어지고 임기 후 다시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우선은 나라를 먼저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좀도둑을 보호하려다 큰 도둑을 놓치고 있는 처세가 참으로 답답하다. 이제 2년 좀 더 남은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평화롭게 정권이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넘어가야 되는데 그렇치 않아도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지구촌에서 저렇게 뾰족한 후속 대책도 없으면서 무조건 서로가 상대방 끌어 내리기에만 몰두를 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필자가 모르는 계엄을 선포했던 다른 진실이나 이유가 없다면 정말 이번 계엄 선포는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이해하기는 불가능이다. 이렇게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세월은 여전히 그리고 무심히 흘러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오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데 아직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식을 줄 모르고 이제 곧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전쟁 중의 두 나라 모두가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고 우선은 휴전을 하면서 일단 끝이 나겠지만 땅의 20%를 잃고 할 수 없이 따르는 우크라이나 역시 가만히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역시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 놓은 임시 평화일뿐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북한 김정은씨는 돈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팔고 본인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시 양국의 임시 휴전을 맞으며 아마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또 한번 당하지 않을까?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역시 우선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나겠지만 그 역시 임시의 평화일뿐 우리 인류의 역사를 비추어 볼때 우리 인간들의 종교와 사상이 하나로 변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평화는 유지 될 수가 없는 것이고 결국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쪽 나라들과는 영원한 적이 될 수밖엔 없고 또 따라서 분쟁은 또 시작이 될 것이고 우리 인류가 갈망하는 평화는 없다는 말이다. 응큼한 중국과 교활한 일본의 병들어 가는 경제와 또 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후유증은 전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으며 우리 모두가 심각한 경제공황을 맞이할지 아님 믿기도 안 믿기도 힘든 미국의 트럼프의 매직으로 세계경제가 다시 살아날지 정말 하루 앞도 내다볼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에 살고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또 하나는 필자가 이해가 이해도 하기 힘든 바로 비트코인인데 들어도 잘 모르겠고 작년 초엔 몇 천불 하던 것이 이젠 십만불을 넘나드니 실체도 없는 비트코인을 미국 새 대통령 트럼프가 그것을 육성화 한다 하니 어디 비트코인에 대한 코스라도 찾아봐야 할 것도 같다. 

 

언제나처럼 많은 경제학자들의 매년 말 떠들듯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긍정적 보다는 부정적으로 말하며 앞으로는 현금을 준비하라 말하는데 당장 코앞에 다가오는 을사년(乙巳年) 2025년도 우리의 삶은 불황이 연속일까 아님 그 반대일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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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HO
조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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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4
2024-12-06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2)

JC칼럼- 211

 

(지난 호에 이어)

 

지난달은 한국을 방문하느라 칼럼을 몇 주 동안 쓰지를 못했는데 이제 나의 고향 아닌 고향이 되어버린 캐나다에 돌아와보니 벌써 올 2024년의 마지막달인 12월이 되었다. 장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한국을 다녀오는 것도 옛날 같지 않아 이번 여행은 필자의 몸 상태가 별로다 보니 많이 힘든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우연히도 50-60년 만에 만난 친척과 친구들이 꽤나 많이 모였는데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헤어지면서 하는 말들이 서글펐다. “이제 저승에 가서 보자”는 인사들을 하면서 깊게 패인 주름들 속에 초점 없는 눈 언저리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이 나를 많이도 슬프게 하였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리고 곧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보단 나 역시도 가야 한다는 것이 더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나고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짧은 시간인데, 우리 인간의 역사나 또 현재를 바라볼 때 인류는 많이도 악하고 또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는 물론 종교인들까지도 모두가 위선과 이기와 무지, 미움의 미로 속에서 헤맨다. 서로를 미워하며 모함하고 또 서로를 죽이며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인생이든 아님 지식이나 학문이든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매일매일 배우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깨달으며 살다가 떠난다. 

 

필자의 경우엔 아들이 정치를 하고서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재미 없는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아들이 정치를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여기저기 돌고돌아 현재는 온타리오주정부에서 관광문화게임부 장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나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한 달에 한번 보는 게 쉽질 않다. 
각 나라마다 정치가의 입지와 처지와 대우가 다른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 캐나다의 정치가들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연금은커녕(주정부 경우) 본인의 받는 대가로선 한 가정이 살아가기도 힘이 들다보니 아직도 가족의 도움을 받는다면 누가 이해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 길은 아들이 좋아서 택한 일이니 계속하든 말든 그의 몫이긴 하지만 원래 투표를 즐겨 하지 않는 우리 한인동포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캐나다 정치계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 한인동포단체들은 물론 개개인이라도 이 나라 정부에 그랜트를 신청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민원에 대한 도움을 청할 때 투표하지 않는 한인 동포들의 이미지는 절대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정작 당장 나의 일이 아닌 것 같고. 또 나 하나쯤 투표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인 것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한인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와 동포사회를 위해 했던 일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들은 자세히 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온타리오 주정부 장관 31명 가운데 한인이 두 명이나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동포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정치인이 아닌 캐나다 정치인으로서 내놓고 한인들만을 위하여 무엇을 이루었다 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국민의 입장에선 이해가 될 수 없기에 한인동포들이 숨은 도움을 받았다 해도 쉽게 또 함부로 발표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치하는 아들의 애비가 되다 보니 남이 아는 것 보다 조금 더 알고, 하는 말이니 독자들의 아량과 이해를 바란다. 더구나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불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요즘은 당장 내년 온타리오주의회 선거가 돌아오다 보니 매달 한두 번씩 주말 토요일마다 다가올 선거 준비로 각 가정을 방문하며 현 정부를 선전하는 Canvassing을 Willowdale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매 선거 때마다 하는 사전선거운동으로,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Volunteer 를 하러 온다. 
그 중엔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학교나 직장에서 Volunteer Hour가 필요하기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또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각 학교 또는 교회나 다른 종교단체에서도 많이 참석을 한다. 
필자는 부모 입장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하여 얼마 전엔 어느 한인교회 청년부 예배 후에 Volunteer 신청서를 나누어 주려 한인교회 방문을 신청했다. 그런데 방문 전 갑자기 교회에서 전화가 걸려와 “우리 교회는 정치에 개입을 안 한다”며 마치 무슨 큰 건수나 잡은 것 모양 부산을 떨었다. 

 

아니 누가 정치에 개입하란 것도 아니고, 예배시간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인 본인이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치하는 아들을 둔 부모가 혹 청년들 중에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자원봉사 참여를 원할 수도 있기에 신청서를 전달하겠다는 것 뿐인데, 교회 당회원이란 사람이 전화를 하며 흥분을 하니 필자의 머리로선 영 이해가 어려웠다. 
필자 역시 신앙생활이 완전치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집사, 장로를 거치고 당회생활도 오래했다. 그럼에도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혹시나 그 교회 청년들 중에 정치에 꿈이 있다거나 아님Volunteer Hour가 필요한 학생들이 있을까 해서 신청서를 가져다 준다는데 그렇게까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 정치와 완전히 벽을 쌓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세상에는 종교적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교회 또한 그런 곳과 더불어 존재한다. 그런 영역들과 구분하고 지켜야 할 기본 진리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자원봉사 신청서 작성이 “정치에 개입을 안 한다”는 신념과 충돌하는지는 생각해 볼 부분이다.

 

다른 곳도 아닌 교회라는 곳에서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알아볼 생각은 않고, 무조건 문전박대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을까’ 기분이 씁쓸하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교회들이 정치가를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문전에서 배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저 매년 해오던 선교여행, 그리고 가끔씩 거리에 나가서 조금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해서 그 교회에 예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해인 것이다. 다른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들 심지어 개인들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하지는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육계 종사자나 기업가, 예술가 등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타국에 이민을 와서 살면서 한인 정치인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누구보다 한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주류사회에 직접 전달할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아들도 정치를 하면서 수 없는 한인사회 민원을 챙기고, 부탁을 받기도 한다. 해결을 하든 못하든 그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드러내 홍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곳 광역토론토만 해도 각 종교단체가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참고로 유태인, 인도, 이란 등 여러 나라들의 종교적 모임이 있는 곳에는 자기 나라의 출신의 정치인이 참석하고,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그저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종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 우리의 한인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하기야 필자 자신부터 지나온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이 부끄럽고 죄스럽게 살아왔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단점과 눈에 박힌 티를 바라보게 되며 꾸짖게 되니 이러는 나 역시 아직 멀었나 보다. 
그저 혼자 힘들어하는 정치를 하는 자식과 관계가 되다 보니 엉뚱한 독자들에게 쓸데없는 감정을 쏟아 냈으니 너그러운 용서와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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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120647
18284
2024-10-25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1)


JC칼럼- 210
 
(지난 호에 이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질 수밖엔 없는데 심신이 약해질수록 우리는 삶에 자신을 잃어가고 자꾸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내가 원했든 아니든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옛날 가난한 시절엔 자식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들 역시 매일의 생활이 힘들다 보니 옛날식의 효자효부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고, 어찌 보면 그것이 축복일 수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육체가 강해지고 정신이 더 맑아진다면 우리 모두가 교만과 독선에서 헤매다 죽을 것이라는 것이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늙어갈수록 누구나 심신의 병을 지니고 사는 것이 순리이고, 그야말로 인생은 태어나 살고 병들어 죽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그런데 그렇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며 살려 하고, 노인이 젊은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면 그런 것을 보고 우리는 망령이 들었다 말을 한다. 아무리 나의 생각이 아직도 젊고, 또 그런 생각과 꿈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것을 남에게 보여주거나 또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아름답게 늙어가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아닌 것이다.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다르다 보니 가끔씩 실수를 하고 주책을 부리다 보니 때로는 경솔하고 경망스런 행동과 말 때문에 내 자신을 싫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참으로 아름답게 늙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어찌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재산도 사랑도 권력도 지위도 친구도 가족도 모든 것을 비워가야 한다는 말이다. 원래 빈손으로 왔고 또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슬프고 허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본전이요 우리 인간의 갈 길이라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순순히 받아 들일 수밖엔 없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의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세편으로 나누어졌다. 그 중 제일 유명한 지옥편에서 지옥을 9층으로 나누어 표현을 했는데 이승에서 살 때 변욕, 음욕, 식탐, 탐욕,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배신의 죄를 지은 영혼들에 대한 심판 이야기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하는 지옥보다는 불교쪽에 더 가깝게 느껴지긴 하는데, 물론 책의 저자인 단테의 상상력에 의한 것일 뿐이지만 우리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 후에 다가오는 저승의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원죄부터 사는 동안 지은 죄들을 돌아보며 생각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무엇이 죄였고 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죄인지 판단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자기의 지은 죄가 잘 생각이 안 나면 그 역시 문제라는데, 치매 환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태어나면 부모님들의 보호와 사랑 안에서 크고, 성장을 한 후엔 결혼을 한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돌보다 늙으면 다시 남의 도움을 받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옛날 같으면 자식들의 도움을 받다 가지만 지금 세상은 저희들 살기도 바쁘다 보니 부모는 뒷전이 된다. 

 

우리 세대 역시 이렇게 살다가 얼마나 많은 세월과 사람들이 이 지구촌을 스쳐 지나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나긴 세월 중엔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이 만들며 하나의 짧은 순간을 장식하며 사라지고 있다. 
캐나다 동포 1세대들의 삶이야 거의 끝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가 만들어 놓은 2, 3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해갈까 걱정도 된다. 삶이 편해지려고 여러 분야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고 더 각박해지는 삶이다 보니 우리의 후세들의 삶이 더 나아질지 의심스럽다. 
K-pop으로 시작해서 여러 분야의 두각을 나타내며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지고 있지만 막상 한국을 가보면 편리해진 것도 많지만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꺼리는 옛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으니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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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98
18284
2024-10-1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80)

 

JC칼럼- 209

 

(지난 호에 이어)
코로나19 팩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힘들어졌다. 당시에 뿌려 놓은 많은 돈으로 인하여 생겨난 높은 인플레에 따른 물가 상승과 그것을 따라잡는다며 이자율을 계속 올리다 보니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따라서 불황의 조짐이 나타나니 이제 급하게 다시 은행 이자율을 내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인 것이 지난달 미국의 이자율 하향 조정에 이어 캐나다도 오는 23일 금융정책회의에서 이자율을 대폭 내릴(Big Cut, 0.5%)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부동산 침체가 올 때는 모든 산업이 멈추게 되고 경제가 엉망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언제나 변수는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캐나다 중앙은행이 오는 23일에 ‘Big Cut’을 발표하고, 이후에도 금리인하(Interest Down Trend)가 계속된다면 그동안 침체되어 왔던 부동산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내년 가을 마켓은 정상을 넘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장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쌓여온 이민자들의 수요가 급증을 할 것이고, 또 기다려왔던 Buyer들의 수요는 다시 한번 부동산 마켓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전쟁들은 사람들을 불안케 하지만 사람은 어딜 가도 살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그래도 안전한 좋은 피난처라는 캐나다의 주택 마켓은 여전히 상승세를 탈 수밖엔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캐나다에 이민자가 몰리고 경제가 나아지긴 하지만 따라서 각종 범죄가 늘고 힘들게 낸 세금이 낭비되는 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갑자기 이자율을 급히 내리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다가올 불황을 예측하기에”라며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자율의 하락은 우리 서민들에게는 좋은 소식일 수밖엔 없다는 말이다. 부디 이자율의 하락이 당분간 계속되고 경기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 인류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한 세대의 평균이 70-80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우리 지구촌의 역사가 몇 천년 아니 몇 억년이 되는 지는 몰라도 정말로 많은 세대와 영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을 스쳐 갔다. 그들이 살면서 만든 사연들, 그리고 사는 동안의 고뇌와 아픔들을 엮어서 줄로 이어 본다거나 아님 보따리에 쌓아본다면 얼마나 길고 또 많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건강하다 한들 결국 삶에 거의가 이런저런 고통과 사연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자신들은 물론 우리 조상들의 사연들과 고통, 켜켜이 쌓인 한을 재연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나의 건강이 사라지고 또 생명이 다할 때는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많이 들었고, 이미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도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의 걱정 속에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며 또 어디론가 사라진다. 
매일을 사는 것도 그렇지만 죽음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지 또 죽음 후엔 어디로 가는 건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언제나 불안한 걱정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끔씩 짜증도 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봐도 정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없기에 더 좌절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라는 것이 우리를 더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잃고 그 누구의 강의를 듣고 생각을 해 보고 또 해봐도 결국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왜 태어나고 또 살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신앙에 기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살 수가 있는 것 같다.

 

원래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했든, 아니든 누구나 계속 생겨나는 문제들 속에서 살고 있는데 한가지를 풀고 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기고 그것들을 평생 풀면서 살게 만들어져 있다. 재물, 자식들, 건강, 인간 관계들 어느 한 가지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즉 이것 아니면 저것일 뿐 그 누구도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며 그 문제들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평생 걱정을 하며 살다가 걱정을 하며 죽는 것인가 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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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3
나머지 시간들 (The rest of our journey)(79)


 
JC칼럼- 208
 


벌써 10월인 걸 생각하니 시간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정말 지독히도 빨리 가는 세월이 야속키만 하다.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이 걱정이 되면서 지난달 홍수로 생겨난 북한의 살아남은 이재민들은 올 겨울을 어떻게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 같은 그들은 빨리 전쟁이라도 일어나서 그 결과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음 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남과 북의 통일이 요원한 이유는 딱 두 나라 때문이란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 나라는 엉큼한 중국이고 또 다른 나라는 야비하고 잔인한 일본 때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 6.25전쟁 때 우리 대한민국의 통일을 막기 위해 오죽 급했으면 갑자기 100만이 훨씬 넘는 중공군을 투입한 나라이다. 2차 대전 패망 이후 경제난에 허덕이던 일본은 한국 6.25전쟁 덕분에 다시 나라를 신속히 재건할 수 있었던 일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통일은 전혀 원치 않고 영원히 갈라져 자기 나라의 방패막이가 되길 원하기에 북한을 그저 간신히 연명할 수 있도록 찔끔찔끔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이 우리 대한민국에 쉽게 풀 수 없는 가련한 운명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제 벌써 아침 저녁엔 쌀쌀한 바람이 불며 초겨울을 느끼게 되는데 못 사는 나라일수록 서민들에게 다가오는 겨울은 먹고 사는 일이 큰 문제가 된다. 
이곳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겨울이란 계절은 우리 모두를 움츠리게 만들고 또 나이가 들수록 더 걱정이다. 
이렇게 우리는 작게는 올 겨울엔 어디서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나 걱정을 하고, 크게는 전쟁과 살인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걱정한다.
그럼에도 주일날 교회를 가면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말씀들을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지만 워낙 미약한 인간이기에 세상에 나오면 역시 의심과 고민,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물론 모든 것이 평화롭게 또 잘 해결되길 기도하고 바라지만 이미 창조주께서 정해놓은 우리 인류의 종말의 길은 창조주 이외엔 인간의 노력과 기도로 바꾸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설교 말씀 중에 어느 한 교회 성도들이 교회 옆에 나이트 클럽이 생겨나 교회에 여러모로 피해를 주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나이트 클럽에 불이 나서 망해버렸고 성도들은 모두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나이트클럽 주인이 교회를 고소했는데, 그 이유가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해서 자기 나이트클럽에 불이 나고 망했으니 당연히 교회가 배상을 해야 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교회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방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성도들이 기도는 했지만 기도해서 무엇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누가 믿는 자이고, 누가 불신자일까? 

 

이제 벌써 골프장의 새벽녘엔 Frost Delay가 시작되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각 가정집들 앞엔 Halloween Deco들이 찬 바람에 춤을 추며 쇼핑물 마다 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Deco 상품들로 눈길을 모은다. 이제 곧 할로윈이 끝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어영부영 지나다 보면 어느 새 또 새해를 맞는다. 지난 2024년의 삶을 돌아보며 한숨을 짖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 폭탄과 총알이 번득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그리고 헤즈볼라 그리고 담엔 예맨의 후티 반군 또 담엔 이란이 될 것인가? 중동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현재 아주 불리한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한달 후에 치러질 미국대선에 따라서 운명이 정해지겠지만 그 결과야 누가 알 수 있을까 마는 이번 미국 대선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별로인 선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불법과 거짓과 허풍투성이인 트럼프도, 빈약하고 지도자로서 경험이 없는 해리스도 과연 미국이란 대국 그리고 또 세계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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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나머지 시간들 (The rest of our journey)(78)

 
JC칼럼- 207
 
(지난 호에 이어)

 


벌써 이번 주가 9월의 마지막인 걸 생각하니 뭐가 그리도 급한지 정말 지독하게도 빨리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이제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이 걱정이 되면서 지난달 홍수로 생겨난 북한의 살아남은 이재민들은 어찌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결과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요원한 이유는 딱 두 나라 때문이란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 나라는 엉큼한 중국이고, 또 한 나라는 야비하고 잔인한 일본 때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 6.25전쟁 때 우리 대한민국의 통일을 막기 위해 오죽 급했으면 갑자기 140만의 중공군을 투입한 나라다.
2차 대전 패망 이후 경제난에 허덕이던 일본은 한국전쟁 덕에 다시 나라를 신속히 재건했다.

 

이렇게 우리는 작게는 올 겨울엔 어디서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나 걱정을 하고, 크게는 희망과 미래가 없는 나라와 세계를 걱정하면서 산다.
하지만 주일날 교회를 가면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름 말씀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위로하려는 의도라고 이해는 하지만 워낙 미약한 인간이기에 세상에 나오면 역시 의심과 고민과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언제나 모든 것이 평화롭게, 또 잘 되길 기도하고 바라지만 이미 창조주께서 정해 놓은 우리 인류의 종말은 창조주 이외엔 인간의 노력과 기도로 바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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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7)

 

JC칼럼- 206
 
(지난 호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준 큰 변화 중 하나는 사람들의 모임을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직장 일도 집에서, 쇼핑도 집에서 하다 보니 서로 만나는 기회를 줄었는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팬데믹 시대가 완전히 끝났는지는 몰라도 그 여파로 집에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쇼핑도 모두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니 사람들이 만날 이유가 더욱 없어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무실 공실율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따라서 식당, 커피숍 등 많은 영업장이 문을 닫고 있다. 자연스레 그곳에서 일하던 종사자들 역시 직장을 잃게 되었고, 쇼핑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 주문을 하다 보니 쇼핑몰에도 이전 보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다. 쇼핑몰이 한산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일할 곳을 잃은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 세계가 어지럽고 위태한 와중에도 인류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하여 생겨난 Global Warming현상은 멈추지를 않는다. 매일매일 지구촌이 뜨거워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온 국민이 기아선상에 허덕이며 죽네 사네 하는 북한 정권은 자기네들의 권력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온갖 흑색 선전과 거짓을 동원한다. 그저 믿을 것은 핵뿐이라며 핵개발에만 온 국력을 쏟아 붓고 있다. 국민들이야 죽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북한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언제 어디서부터 터질 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엔 오로지 멸망뿐 아무 것도 아무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본인들 역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나 북한의 김정은은 수틀리면 언제든 핵버튼을 누르겠다는 식으로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 원래 뒷구멍 거래를 좋아하는 엉큼한 중국은 세계 질서를 망치고 있는 러시아나 이란을 몰래몰래 도와주며 마치 북한 역시 자기 소요인양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 예부터 중국 오랑캐 그리고 일본 왜놈들에게 당하기만 했던 우리 한국민족의 운명이 가련하기만 하다.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 세상엔 언제나 싸움과 전쟁뿐 희망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미국의 1년 예산이 거의 1경 원에 육박하고 있고, 이 돈은 한국 1년 예산 약650조원에 거의 13배가 된다. 하지만 세계의 국방을 거의 책임지다시피 하는 미국은 매년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며 지금 미국의 부채는 4경원이 넘으니 미국 역시 잘 사는 나라이긴 하지만 내부 문제가 복잡한 나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중국의 1년 예산은 현재 거의 7,000조다. 믿기 힘든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턱밑까지 따라붙은 것으로 언젠가는 미국을 따라잡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세계의 기축통화가 미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또 그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미국의 부채는 해결 방법이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러시아의 루블화나 중국의 위안화로 바뀐다면 미국은 바로 몰락의 길로 향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걱정은 네가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그것이 언제든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일이며, 내 걱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엔 미 대통령 후보 Debate를 보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짓말도 잘하지만 얼굴 역시 두껍다는 생각을 했는데 맞는말도 있긴 하지만 남 탓도 잘하는 그 역시 4년 전 집권당시 이루어 놓은 일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카멜라가 꼭 맘에 드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한국 정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트럼프는 한국의 범죄자 이xx씨와 많이도 닮은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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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6)

 

JC칼럼-205
 
(지난 호에 이어)

 

결국 '나'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우리 모두는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문제는 매일 같이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아니 자주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내가 진짜 나라고 착각을 하고 산다는 데 있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도 가면 속에 있는 자기를 잊고, 자기자신이 진정 위대한 인물 또는 지도자인 것으로 알고 살고 있다는 것이며, 필자 역시 내가 쓰고 있는 가면 아래 감춰진 진짜 나를 인식하지 못 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유토피아’란 책을 읽으며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설 유토피아를 저서한 토마스 무어는 신을 믿는 사람이었고, 또 나라에도 충실한 신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신임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왕실과 귀족들의 부정되고 부패한 삶을 반대하다 결국 영국왕 헨리 8세에 의해서 교수형을 받고 사라졌다.
책에는 당시의 정부와 귀족들의 생활을 비판하면서 본인이 꿈꾸던 이상적이고 공정하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완전한 세상을 구현하고 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무시했던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 욕구, 질투, 탐욕이 존재하는 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그 소설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도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책의 저자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쓴 책은 절대 아니고,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표현한 책일 뿐이며, 유토피아의 세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일 뿐이란 말을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과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마도 명작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가면 속에 숨겨진 나 자신을 모르고 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 남을 죽이고 학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진다는 말이다. 나는 원래부터 존재치도 않았고 또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고 나면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여러 개의 가면을 매일매일 바꾸어 쓰며 살고 있고, 또 쓰고 있는 가면이 마치 자기인줄 착각 속에 살아간다. 

 

착각이라고 하면 미켈 데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가 생각나는데, 그 역시 세상에 만연한 모든 악과 싸운다는 착각 속에서 행동하는 주인공을 그렸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코믹하기도 하면서 그 마음 속에 있는 진실과 가식 없는 무모한 행동이 귀엽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내가 진짜 누군지도 모르며 그렇게 착각 속에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 알게 또 모르게 유행가 가사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매일매일 이별을 맞이한다. 모든 것이 늘 곁에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친구도 사랑도 젊음도 추억마저도 우리를 떠나며 매일 이별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껴줄 수 있을 때, 사랑할 수 있을 때, 도와줄 수 있을 때를 미루지 말고, 이번 또 오늘이 마지막처럼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순간 순간을 잊고 지나가 버린다.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아마도 우리 조상들 역시 우리처럼 같은 마음과 생각을 하면서 살다가 결국 후회를 하면서 떠나지 않았을까? 

 

이제 벌써 아침이면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쌀쌀한 바람이 마치 곧 찬서리라도 내릴 듯 그리고 이미 노랗게 변해가는 뒷마당에 깻잎과 실하게도 영그는 깨꽃들은 왠지 필자의 마음을 깊이도 조여온다. 팬데믹이 지나고 이자가 오르면서 갑자기 불경기를 맞이하며 더욱 힘들어진 이민생활이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하고 또 지난 삶이 후회도 되는 마음이 들면서 왠지 오늘은 필자의 어린 국민학교 시절에 맑고도 깨끗한, 내가 태어난 고향 무심천 물속 모래사장에서 건져낸 올갱이(민물 소라)를 한 사발 잡아오면 어머니가 그것에 된장을 넣고 아욱국을 만들어 주셨던 때가 많이도 그리운 날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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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75)



JC칼럼- 204
 
(지난 호에 이어)

 

이제 세월이 또 흐르고 벌써 올 2024년 9월도 첫째 주가 되면서 날씨는 급격히 쌀쌀해지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한국에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고 말한다. 1년 동안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거두어 들인 곡식을 내년까지 먹기 위해서 저장을 한다. 1년 중 가장 먹을 것이 많은 풍요로운 계절이며 행복한 계절이란 말이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1년 내내 먹을 것이 차고도 넘치는 나라가 되었지만 아직도 먹을 것 또 입을 것이 없는 북한 땅, 또 가난한 나라들에겐 가을이란 추수의 계절은 여전히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지난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홍수의 피해는 또 한번 북한 주민들을 힘들게 만들 것이며, 이번 겨울 역시 힘든 시간이 될 것이 뻔하다. 

 

워낙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이기적으로 태어났고 또 그렇게 살고 있기에 먼 거리에서 그저 안 되었다는 마음은 있지만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한 남의 일과 처지엔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도로 넘어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 재물, 직장, 가정, 건강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매일매일 사는 것이 바쁘기에 남의 삶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그런 일상 생활을 영위하며 모두가 의미 없이 늙어가고 있다 보니 남은커녕 자기자신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없으니 자신이 누구이며, 뭘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남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살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필자 역시 바쁘게 또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내가 누구이며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모든 일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식구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면 ‘나 자신이 참으로 이기적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그랬고, 이래 저래 무심코 스치며 지나쳤던 사람들 그리고 또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렇게 지내왔다. 지금도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원래가 이기적이고 언제나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멈추지 않고 사는 동물이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 모든 행동을 자제하게 만들 뿐 마음은 여전히 이기, 시기, 질투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그래서 우린 바쁜 와중에서도 잠깐 멈추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산으로 또는 조용한 바다로 나아가 오랫동안 수행을 하면서 도를 닦고 또 깨달음을 찾으려 멀리 떠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모두가 나는 누구이며 왜, 어떻게 이곳에 있나 하는 즉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이란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고 판단력이 생길 때부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게 되는데 때와 장소 또는 일정, 처지에 따라서 가면을 바꾸며 살게 된다. 그것을 요즘 말로는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라 말을 한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 그리고 본능에 따라서 어떤 때는 악마, 또 때로는 천사가 되면서 여러 가면을 바꾸어 쓰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악마의 가면을 쓰고서 자기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다. 그리고는 금방 돌아서서 천사의 가면으로 바꾸어 쓰면서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남이 받은 상처가 어떻든 자기자신만을 위로하고 살고 있다.

 

직장에선 부장님으로, 가정에선 누구의 아빠로, 친구들 사이에선 XX로, 사회에선 좋은 놈 또는 나쁜 놈으로의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결국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렸던 사춘기 때는 적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라도 자주 하면서 고민도 했지만 성장을 해서 사회에 뛰어들어 먹고 사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그나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세월은 빠르게도 지나버리고 우리 모두는 지나간 뒤를 돌아보게 보며 한숨을 지으며 그동안 쓰고 살아왔던 모두의 가면들을 벗게 된다. 나의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의 인생은 막을 내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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