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칼럼- 211
(지난 호에 이어)
지난달은 한국을 방문하느라 칼럼을 몇 주 동안 쓰지를 못했는데 이제 나의 고향 아닌 고향이 되어버린 캐나다에 돌아와보니 벌써 올 2024년의 마지막달인 12월이 되었다. 장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한국을 다녀오는 것도 옛날 같지 않아 이번 여행은 필자의 몸 상태가 별로다 보니 많이 힘든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우연히도 50-60년 만에 만난 친척과 친구들이 꽤나 많이 모였는데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헤어지면서 하는 말들이 서글펐다. “이제 저승에 가서 보자”는 인사들을 하면서 깊게 패인 주름들 속에 초점 없는 눈 언저리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이 나를 많이도 슬프게 하였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리고 곧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보단 나 역시도 가야 한다는 것이 더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나고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짧은 시간인데, 우리 인간의 역사나 또 현재를 바라볼 때 인류는 많이도 악하고 또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는 물론 종교인들까지도 모두가 위선과 이기와 무지, 미움의 미로 속에서 헤맨다. 서로를 미워하며 모함하고 또 서로를 죽이며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인생이든 아님 지식이나 학문이든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매일매일 배우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깨달으며 살다가 떠난다.
필자의 경우엔 아들이 정치를 하고서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재미 없는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아들이 정치를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여기저기 돌고돌아 현재는 온타리오주정부에서 관광문화게임부 장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나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한 달에 한번 보는 게 쉽질 않다.
각 나라마다 정치가의 입지와 처지와 대우가 다른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 캐나다의 정치가들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연금은커녕(주정부 경우) 본인의 받는 대가로선 한 가정이 살아가기도 힘이 들다보니 아직도 가족의 도움을 받는다면 누가 이해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 길은 아들이 좋아서 택한 일이니 계속하든 말든 그의 몫이긴 하지만 원래 투표를 즐겨 하지 않는 우리 한인동포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캐나다 정치계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 한인동포단체들은 물론 개개인이라도 이 나라 정부에 그랜트를 신청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민원에 대한 도움을 청할 때 투표하지 않는 한인 동포들의 이미지는 절대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정작 당장 나의 일이 아닌 것 같고. 또 나 하나쯤 투표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인 것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한인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와 동포사회를 위해 했던 일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들은 자세히 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온타리오 주정부 장관 31명 가운데 한인이 두 명이나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동포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정치인이 아닌 캐나다 정치인으로서 내놓고 한인들만을 위하여 무엇을 이루었다 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국민의 입장에선 이해가 될 수 없기에 한인동포들이 숨은 도움을 받았다 해도 쉽게 또 함부로 발표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치하는 아들의 애비가 되다 보니 남이 아는 것 보다 조금 더 알고, 하는 말이니 독자들의 아량과 이해를 바란다. 더구나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불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요즘은 당장 내년 온타리오주의회 선거가 돌아오다 보니 매달 한두 번씩 주말 토요일마다 다가올 선거 준비로 각 가정을 방문하며 현 정부를 선전하는 Canvassing을 Willowdale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매 선거 때마다 하는 사전선거운동으로,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Volunteer 를 하러 온다.
그 중엔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학교나 직장에서 Volunteer Hour가 필요하기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또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각 학교 또는 교회나 다른 종교단체에서도 많이 참석을 한다.
필자는 부모 입장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하여 얼마 전엔 어느 한인교회 청년부 예배 후에 Volunteer 신청서를 나누어 주려 한인교회 방문을 신청했다. 그런데 방문 전 갑자기 교회에서 전화가 걸려와 “우리 교회는 정치에 개입을 안 한다”며 마치 무슨 큰 건수나 잡은 것 모양 부산을 떨었다.
아니 누가 정치에 개입하란 것도 아니고, 예배시간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인 본인이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치하는 아들을 둔 부모가 혹 청년들 중에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자원봉사 참여를 원할 수도 있기에 신청서를 전달하겠다는 것 뿐인데, 교회 당회원이란 사람이 전화를 하며 흥분을 하니 필자의 머리로선 영 이해가 어려웠다.
필자 역시 신앙생활이 완전치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집사, 장로를 거치고 당회생활도 오래했다. 그럼에도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혹시나 그 교회 청년들 중에 정치에 꿈이 있다거나 아님Volunteer Hour가 필요한 학생들이 있을까 해서 신청서를 가져다 준다는데 그렇게까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 정치와 완전히 벽을 쌓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세상에는 종교적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교회 또한 그런 곳과 더불어 존재한다. 그런 영역들과 구분하고 지켜야 할 기본 진리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자원봉사 신청서 작성이 “정치에 개입을 안 한다”는 신념과 충돌하는지는 생각해 볼 부분이다.
다른 곳도 아닌 교회라는 곳에서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알아볼 생각은 않고, 무조건 문전박대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을까’ 기분이 씁쓸하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교회들이 정치가를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문전에서 배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저 매년 해오던 선교여행, 그리고 가끔씩 거리에 나가서 조금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해서 그 교회에 예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해인 것이다. 다른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들 심지어 개인들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하지는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육계 종사자나 기업가, 예술가 등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타국에 이민을 와서 살면서 한인 정치인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누구보다 한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주류사회에 직접 전달할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아들도 정치를 하면서 수 없는 한인사회 민원을 챙기고, 부탁을 받기도 한다. 해결을 하든 못하든 그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드러내 홍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곳 광역토론토만 해도 각 종교단체가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참고로 유태인, 인도, 이란 등 여러 나라들의 종교적 모임이 있는 곳에는 자기 나라의 출신의 정치인이 참석하고,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그저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종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 우리의 한인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하기야 필자 자신부터 지나온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이 부끄럽고 죄스럽게 살아왔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단점과 눈에 박힌 티를 바라보게 되며 꾸짖게 되니 이러는 나 역시 아직 멀었나 보다.
그저 혼자 힘들어하는 정치를 하는 자식과 관계가 되다 보니 엉뚱한 독자들에게 쓸데없는 감정을 쏟아 냈으니 너그러운 용서와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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