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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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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해송(海松)
<계간 수필> 동인,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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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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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여동원 선생 영전에 올립니다


                                                             

지난 11월 벽두, 수필가 여동원 선생이 87세를 일기(一期)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비보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분의 중후한 성품과 격조 높은 글을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된 후학은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행운유수같이 살다 가신 선배님의 마지막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선생은 1937년생이라 저보다는 11년 앞서시고, 작품 활동의 연조로 보자면 30년쯤 선배가 되는 분입니다. 제가 이민살이를 시작한 그때 벌써 선배님은 수필 문을 발표하고 계셨지요. 실례의 말씀이오나 문학에 문외한이던 저는 “영어, 불어로 생활하는 캐나다에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는 분들이 꽤 있구나. 고국을 잊지 못하는 마음에서인가, 아니면 의리 때문인가?”라는 생각에 문인들의 수필 문을 읽으면서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지요.
“선한 마음, 착한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더라”는 뻔한 이치를 되씹으며, 마음고생이 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민 초기에 서쪽 2백 킬로미터의 L 시에서 가게를 할 때 사악한 건물주를 만나 경제적 봉변을 당한 데다, 토론토로 돌아와서는 겨우 60을 지나면서 수술로 인해 경제 활동조차 멈출 수밖에 없었지요. ‘인생, 그거 별것이 아니구나. 캐나다에선 건전한 상식도, 동포의 의리도, 종교의 가르침도, 법률가의 보호마저 기댈 게 못 되는구나. 인생의 의미 실현도 못 한 채 이대로 저물고 마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져 허탈했습니다.

 

그래도 ‘내 인생의 빈터는 꽃밭으로 가꾸어야 한다’란 식자로서의 의무감이 가슴에 남았던지, 저는 다시 ESL School에 등록하여 한동안 영어 공부에 힘썼습니다. 2014년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문예 교실’에 나아가, 생애에 처음으로 ‘문예 창작’을 수련했습니다. 그래서 2015년 초 문인협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계간수필>의 초회 추천, 그다음 해엔 완료 추천을 받아 한국 문단에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저는 이런 진척이 신문이나 문예지에 간간이 글 한 편씩 실을 승낙서를 받은 셈이라 여기며, 그동안 저를 이끌어준 글동무들과 보조를 맞추는 마음으로 몇 해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성품만큼이나 담담한 필치로 엮으신 선생의 수필 문은, 산 계곡을 굽이치며 재잘대는 개울물 소리 같은 맛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문화 현상에 즐겨 천착하셨는데, 특히 이민자가 잊고 지내는, 옛 풍습이나 한국 문화의 편린을 수필 문에 담아 소개하는 열정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선생의 글에선 도포 자락 날리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옛 선비를 떠올릴, 운치와 품격이 배어났었지요. 각박한 이민살이 중에도 선생의 글을 만나면 마음이 느긋해지던 기억이 나지만, 이 게으른 독자는 제대로 된 감사의 인사조차 못한 채 선생과 영별하게 되었으니, 오호통재! 슬프고도 죄송할 뿐입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선배님은 수필 반이 20여 년 이어오던 합평 교실을 찾으셨지요. “나도 힘을 내어 수필 모임에 나와야지”라시며, 당신의 마지막 저술이 된 <밖에서 모국 보기 50년>을 나눠주고 격려하시던 모습도 바로 어제 일 같습니다. “위장 절제 수술을 세 번이나 받는 바람에 내 위장이 다 사라졌다”고 하시며 저간의 투병 담도 들려주셨지요. 미욱한 저는 그때야, ‘아하! 선배님 특유의 부드럽고 담담한 수필 문은 육체적 고초를 삭히며 피워올린 고운 꽃송이구나’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그해 9월의 심코(Simco) 호숫가. ‘호반 문학제’가 열린 달 밝은 밤에 선생은 한복 두루마기, 통영갓에다 쥘부채를 펼치시며 <사철가> 시조창唱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호강시켜 주셨지요. 저는 세수 80의 선배님이 긴 시조를 온전히 들려주려고 얼마나 연습하셨을까 싶어 짠했습니다. 암송 중 멈칫하던 때면 이내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와 달아나던 선생의 총기聰氣를 붙들어주었던지, 결국 완창을 하셨지요. ‘문예의 정신’을 후학에 일깨워 주신 장면이요,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던 순간이었습니다.  
2018년 1월 27일 신춘 문예 시상식장에서 저를 보신 선배님이, “지난 연말에 상을 하나 받았던데? 축하해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라고 격려하셨지요. 협회에 회원이 많으나 따뜻한 ‘축하의 인사’를 건넨 분은 수필 반의 두세 분 선배 외에, L 교수, 여동원 선생뿐이었습니다. ‘그런 냉랭한 마음은 어디에 연유할까?’란 의문이 일었지만, 아둔한 머리로써는 헤아리기 어렵군요. 축하하는 데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나 봅니다. 수필은 ‘가슴으로 쓰는 정情의 문학’이라 했습니다. 자칫 인간성이 메마르기 쉬운 디지털 사회에서, 수필이 바로 그런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요. 여동원 선배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씨가, 그리워지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입니다 

 

2024년 12월 초, 후학 윤종호는 영전에 머리 숙여 절하며 선생과 함께했던 추억을 되살린 몇 자 글로써 뒤늦은 영결을 고하려 합니다. 인간적인 멋을 맘껏 보여주신 여동원 선생의 영혼이시여! 먼 길 평안히 가소서.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ohnnyyoon48
윤종호
12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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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우리’를 반추한다

 


자기나 자기편의 여러 사람을 가리킬 때 일컫는 말이 ‘우리’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학교, 우리 반, 우리 회사, 우리 사회, 우리 강산, 우리나라, 우리 조국, 우리 역사, 우리 노래, 우리 춤, 우리 옷, 우리 음식,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문화, 우리 풍습, 우리 애들,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우리 조상,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우리’가 참 다양하게도 쓰이는 데 새삼 놀란다.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 같은 말을 거부감 없이 쓰고 있음에랴.

 

심술궂은 이웃 종족들이 유사 이래 천 번이나 쳐들어와 우리의 생활 근거를 불 지르고, 약탈하고, 유린하던 수난 속에도 겨울 떠난 들판에 잔디가 푸르게 돋고 민들레가 샛노란 빛을 쏘아 올리듯 ‘우리’를 외치며 재기하여 삶을 이어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수천 년의 독특한 환경 속에 배태胚胎되어 생존을 위한 단합 구호처럼 응축된 소리가 아닐까.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당唐의 소정방이 눌러앉아 식민지 총독 구실을 하려 하자, 김유신은 ‘우리’라는 독특한 정서의 힘을 빌려, 당의 야욕을 분쇄했다. 고려의 강감찬은, 25년 동안 세 차례나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던 거란군을 쳐부수고 고려를 지켜낸 투혼을 발휘했다. 또한 조선의 수군 제독 이순신은 턱없이 부족한 병력과 피폐한 장비를 긁어모아, 막강 왜적을 상대한 마지막 해전에 대승함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그는 조선이 사라질 뻔한 7년여의 왜란을 종식한 ‘구국의 영웅’이다. 위의 대첩들은 ‘우리 가족, 우리 사회, 우리 문화, 우리나라를 지키자’는데 온 겨레가 합심해 성취한 대표적인 성과들이다.

 

사회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가 잦은 집단 참사를 부른다. 연례행사같이 발생하는 떼죽음에도 무덤덤한 지도자들이 낯설어 몸서리쳐진다. ‘이게 우리의 본모습인가?’ 이런 때 사회의 실권자들이, 자신의 태만과 무능을 감추며 뱉는 변명이란 게 “국론 분열을 획책한 좌익 무리의 소행…”이란 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하다. 영악한 인간들이 그 상투어를 70년도 넘게 쓰면서, 정작 치유를 위한 본론은 모르는 체한다. 인명의 대참사에도 책임지지 않고, ‘빨갱이 타령’으로 윽박지르며 넘어가니, 참 편리한 방식 같다. 이성도, 논의도, 반성도 없는 무례한 사회로 점점 빠져들 건만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적다.
갑론을박하는 논쟁가들은 자칫 편벽됨으로써 화합 단결을 버리고, 지리멸렬한 모습이 된다. 어느 한 편의 극단적인 주장은 점점 진실(또는 진리)에서 멀어져 자신의 정당성이나 도덕적 우위를 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이들이 침 튀기며 강조하는 반대편에 대한 비난은 그들 자신의 양심 부재, 이성의 마비, 질투심, 옹졸한 속내를 폭로하는 꼴이 된다. 당신은 얼마나 양심적이고, 얼마나 선하고, ‘우리’라는 집단 앞에 떳떳한가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논리가 궁한 사람들이 대체로 감정적 편벽 성을 강하게 띈다. 그럴 땐 그들의 높은 학력이나 유창한 언변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편벽되고 그악스럽게 씹어대다가, 무릎 꿇고 내세의 영원한 복락을 기원하는 그들의 행태를 신神인들 용납하겠는가. 그런 이치를 생각하면 말수를 줄이고 중도를 지키려고 담담한 마음을 갖기로 수양함이 오히려 현명할 것 같다.

 

‘우리’ 민족은 일제 40년간 모진 고난을 겪었다. 그로써 해방 후에 많은 분쟁이 일어났고, 해방 80년이 다가오는 데도 더 많은 내분에 휩싸인다. 친일로 돈벌이가 좋았던 집안의 자손들은 교육도 잘 받아, 일본 임금의 황은皇恩에 감읍한 모습이다. 숨죽여 살던 그들이 물질적 우위뿐 아니라, 이젠 명예도 차지하겠다고 하니, 공동체가 혼란스럽다. 그들은 이름도 근사한 ‘신자유주의’, ‘뉴라이트’ 등의 깃발을 쳐들고 목청을 드높인다. ‘내가(혹은 내 조상이)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든 말든 어쩌란 말인가. 잘 먹고 잘살자는데 수단 방법을 따질 게 무언가’고 역정을 낸다. 갖은 희생을 당해 쇠락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죽창가나 부르니까 뾰족한 수가 나던가?”고 비아냥댄다. 원수가 따로 없다.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파서 서로 간의 간극을 더 크게 하고,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합리화한다. 과거사 청산을 하지 않고 살아온 어리숙한 사회에 적반하장식 행태가 공공연히 빈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한다.

 


4년여 나치 점령기에 부역했다 하여,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 수만 명을 처단해 민족의 제단祭壇을 피로써 씻었다. ‘다시는 민족 배반자가 나올 수 없게 한다’는 결의를 무섭게 실천했다. 40년 동안 일제의 압제에 시달린 우리 민족인데, 이승만 정부는 단 하나의 배반자도 벌하지 않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했으니, 배알이 없는지 온정이 과한 건지 모르겠다. 이제 ‘과거사 사과 문제’, ‘독도 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강제 노역장 유네스코 등재 문제’에서 역사 퇴행적인 추문이 꼬리를 물어도, 누가 무슨 명분으로 이를 바로잡을 수 있으리오. 


10월10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우리’를 전율케 했다. 그녀의 저작물은 한국에서 ‘블랙 리스트’에 오른 지 이미 오래고, 도서관에 있던 한강의 저술들도 ‘불온 도서’라 하여 벌써 폐기가 됐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의 글을 교과서, 수업용 교재에 최소 34건이나 싣고선 저작권에 대한 보상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란 게 “한강의 주소를 몰라서”라나 뭐라나.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의 쪼잔한 작태가 ‘우리’를 창피스럽게 한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詐欺를 치는 자들이 2세 국민의 교과서, 교육자료를 주무르게 하다니, 2세 아이들이 무슨 본을 보라는지… 

 


한림원의 발표 직후부터, 국내에는 한강을 폄훼하는 속 좁고 못난 인간들이 설쳐댄다. 심사위원회가 “한강의 글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고 평가했다. 긴 세월 끽소리 못 하고 산 민족인데, 한강이 원통한 그 마음을 풀어내는 ‘해원解寃의 굿판’을 펼쳤다는 뜻이 아닐까. 그걸 나무라는 넌 누구냐? ‘우리’의 볼에 흐르는 눈물마저 틀어막으려는 넌, 도대체 누구냐? 넌 민족의 역사 앞에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냐? 그 입 다물라! 바깥세상이 ‘우리’의 깊은 슬픔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데 당신들만 배 아파하다니. (202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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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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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상식


<상식; Common Sense (1776. 1)>이라는 주장을 한 권의 책에 담아 펴낸 이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 1737~1809)이다. 
그는 영국 세관의 관리로 일하던 중에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게 운영되던 당시의 지배구조를 이 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때마침 들끓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가 결국 세관원이라는 ‘밥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재물과 권세를 거머쥔 기득권 세력은 그들이 누리는 ‘살기 좋은 이곳’에 근접하는 모든 존재를 지독한 의심과 혐의를 씌워 경원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군주제가 상식이 아니고 공화제가 상식이다”는 토머스 페인의 주장은 삶에 치어서 좀체 머리를 쳐들지 못하던, 신대륙의 거류민들을 깨우치는 촉매가 되었다. 그것은 ‘아메리카’라는 신천지에서 종교적 박해도 없고, 머리 위에 군림하면서 무위도식하는 ‘군주와 귀족 집단’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혁명적 깨우침이요, 자유인의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몸부림이었다. 
지금 보면 당연한 말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수천 년 지속되던 군주제 아래에서 펼친 그런 주장이, 당시의 통치 세력에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으로 인식되었을지 짐작은 된다.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아버지들은 신교의 박해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나아가서 모든 행위에서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인간 집단의 조직화한 규율과 질서유지에 관한 전례(前例)가 없었던 신대륙 위에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자유롭고 바람직한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궁리에 바빴다. 페인 자신은 새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한 사상(이론적 기조)을 제공한 게 빌미가 되어 말단 공직에서 쫓겨났지만, 그의 이론은 그 후 ‘아메리카의 독립’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주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북극성 같은 좌표가 되었다.

 

그로부터 248년이 흐른 2024년, ‘상식’을 기준으로 한국의 정국을 일별한다. 수만 리 먼 곳에 이민 보따리를 푼 처지에서 고국의 복잡다단한 사정을 시시콜콜 논하자는 게 아니지만, 이민 1 세대로서 아직도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자연스럽고 양식보다는 한식을 먹을 때 속이 더 편한 걸 어쩌리오.
빨라지는 교통, 통신 등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을, 더 쉽게 조국의 움직임에 연결 짓는 것까지 떨쳐낼 수는 없다. 그곳에서의 일들이 사리(事理)에 맞게 돌아간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만, 논쟁이 심한 일도 최소한 상식(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처리할 줄 아는 나라가 되면 다행이겠다는 소망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의 주권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권한을 부여해 뽑은 통치자이다.
그는 국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책무를 진 사람이다. 최근 여야 대치 정국에서 대통령이 직접 행하는 시행착오 중에서 두드러진 사건들을 보자.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아래로 헤매 돌자, 그는 KBS, MBC, YTN 등 공영 언론을 장악하여 자기를 칭송하는 나팔수로 만들려는 유혹에 빠졌나 보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동관, 김홍일을 추천했다가 실패하니, 이번엔 이진숙을 밀어붙이다가 중도에 멈춰 섰다. 그들의 인품이나 삶의 족적이 국민의 상식 기준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자들이었다.
취임 전부터 현재까지 정권, 아니 나라의 위신을 지저분하게 추락시키는 대통령 부인의 문제가 한국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녀의 남편은 거짓된 말로 둘러댈 뿐 실질적 개선에 노력하지도 않는다. 타국의 언론들이 모진 말로써 김 씨에게 창피를 주었고, 그것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한국인의 위신과 한국의 존엄성에 먹칠을 하는 데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그들 부부는 괜찮은지 몰라도 국민의 심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고, 거의 미칠 지경이다. 김 씨의 비위 사실은 몇 해 동안 소환 조사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한 번 했다는 것이 요상한 방식이었다. 세계의 모든 법률은 ‘이 법으로, 여당 측 거물이나 대통령 가족을 조사하는 경우를 예정해서 조사 방법 또는 장소를 예외적으로 임의 변경할 수 있다.’ 같은 부대조건을 지닌 조항이 없다. 법률이 만인이 평등하게 적용되는 일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법률을 특수적 불공평한 조건으로 적용한다면 그것은 법률의 자격을 포기한 문구요, 법이라 부를 수조차 없다는 건 상식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한 이래 수십 년간, 경제성장률에서 한국은 세계 최선두 그룹을 유지했다. 전두환 정부나 노태우 정부에서도 경제성장에 다소 기여는 했지만, 그들은 국민 입을 틀어막고, 양민을 살육했으며, 엄청난 금전적 부정을 저질러서 민주적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를 척결해 30년 군부 통치를 종식함으로써 정치의 권한을 국민의 손에 돌려주었다. 동시에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의 재산 등록을 법제화하여 민주주의와 선진 자본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대도(大道)를 활짝 열었다. 그의 “세계로 나가자!”는 호소에 군부 정권 추종자들이 “나라의 문을 성급히 열어젖혀서 큰일 났다”라며 계속 딴지를 걸었다.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질시한 서방 세력과 일본 투기꾼들이 합세해, 한국에 투자된 자금을 의도적으로 동시에 일본 증권시장으로 빼돌리며 몰매를 준 것이 IMF 외환 위기였다. 그러나 그네가 때려잡으려던 한국의 산업 능력은 이미 그들의 턱 밑에까지 이르렀고, 자력으로 민주 정치를 이룩한 한국 국민의 자존심과 애국심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있었음을 간과한 큰 실수를 범했다. 
외환 위기를 조기에 종식한 김대중 정부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급속히 개선하였고, IT산업을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개척하고, 문화예술의 세계 진출을 지원하여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게 하였다. 이에 한국인의 자부심, 자존감이 되살아났으며, 세계에 떨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앞의 지도자들은 한 때의 오해나 모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국가 사회를 고양(高揚)하려고 분골쇄신한 당당한 처신을 보였다. 그들이 큰 일을 하여 역사에 기록된 것은 자신의 영광이요, 동시에 국민의 행복이었다. 미국이 탄생하던 240여 년 전에 실시한 민주주의를 21C의 한국에서 시행하지 못하고 자꾸 후진하려는 잡음만 요란한 건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 싸움판을 지저분하게 끌어가는 집권 세력의 말과 행동이 몰상식하고, 무례하여 못 봐주겠다. 훗날 역사서에 그들의 이름 앞에 ‘조선조의 유자광 같은 간신배’ 따위의 칭호가 붙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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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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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과 중간평가


2024년 8월 20~23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미국의 미래상’에 대한 철학을 펼쳐 보인 대 토론장이었다.
연사들은 각 분야에서 갈고 닦은 특징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으나, 그들의 말은 진솔하고 정확한 데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면서 품격이 있어, 믿음과 감동을 주는 웅변이었다. 허풍과 과장이 심하고 거짓말투성이인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과 대조적이었다.
‘헤리스는 지난 4년간 아무런 역할도 한 게 없으니 무능한 게 틀림없다’, ‘그녀가 기자 간담회를 못 한 걸 보면 무식하기 때문이다.’ 등등 헤리스의 자질에 의구심을 표한 언론사가 많았다.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지던 분위기라 그랬던지, 언론사들도 그간 트럼프가 주입한 대로 따르는 논조였다. 그것은 해리스 부통령이 그간 튀는 언동을 하지 않은 데서 비롯한 것일 터였다. 그녀는 50년 동안 국가 공직에 봉사한 바이든 대통령의 경륜을 존중하여 조용히 보좌하던 입장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대선 후보로 나선 그녀를 트럼프 진영에서 약점을 따져 보려는데 자료가 부족하니, 조바심이 난다’는 뜻의 지분거림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푸틴, 시진핑, 김정은과 어울릴 적임자라고 떠벌린다. 국민의 안전권 자유권 평등권의 신장, 또는 평화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을 어떻게 지켜나갈 건지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치졸하게도 세계적 깡패들과 친구 되는 것으로써 자기 존재 의의를 과시하는 트럼프에겐 ‘북대서양조약기구’나 ‘한미방위동맹’은 거추장스러운 멍에인 듯하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을사늑약’(1905)은 미-일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1905. 1)으로 미국이 한국의 뒤통수를 친 직후에 일어난 일이요, 6.25 남침도 미국이 ‘애치슨 라인’(1949. 6)을 발표해 기회를 노리던 공산주의자들의 야욕에 불을 당긴 것이었으니, 한국은 결정적 순간마다 미국에 뒤통수를 맞으며 당한 참변을 잊지 못한다. 지금 트럼프는 그런 배신행위를 되풀이하겠다는 협박을 공공연히 한다. 폭군들에게 ‘아름답다’, ‘현명하다’ 같은 찬사로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그는, 우방국의 지도자인지 악마를 싸고도는 아첨꾼인지 종잡기 어렵다.

 

카멀라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대관식에 앞서, 미국의 최고 엘리트 연사들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천명하면서, 그녀를 옹립하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것은 해리스가 나아갈 길을 밝히고 그 길에 꽃가루를 뿌리며 축원하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빌 클린턴; “나는 지난 19일에 78회 생일을 맞은 노인이지만, 그래도 도널드 트럼프보다는 젊었어요. 트럼프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언제나 자기 걱정만 합니다. 그가 입만 열면 테너 가수처럼 “me, me, me”를 되풀이하잖아요. 언제나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그녀는 매일 “you, you, you”라는 말로 얘기할 겁니다.”

 

오프라 윈프리; “우린 인생의 불한당에 맞설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 곳에 살면서 인종차별, 성차별, 소득 불평등과 분열상을 보았고, 때때로 그 차별을 몸소 당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희망적으로 지켜온 자랑스러운 미국인들입니다. 트럼프와 큰 부자들만 특권적으로 누리는 음험하고 차별적인 나라가 아닌, 서민이 중산층의 꿈을 실현하는 기쁨을 맛보는 밝은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는 우리의 삶에 품위와 존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비상식보다 상식을, 거짓보다 진실을, 명예와 기쁨을 선택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를 선택합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쓴 선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78세 된 한 억만장자가 있어요. 그는 자기 문제에만 몰두해 징징거립니다. 그의 불평과 불만은 카멀라 해리스한테 질까 봐 더 심해졌어요.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자기 집회에 모인 사람이 더 많다고 자랑하는 이상한 집착까지 보이면서 말이죠. 우리는 그 허풍스러운 언행이 일으키는 혼란의 4년을 더 이상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린 껄렁한 영화를 이미 본 적이 있고, 속편은 보통 더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미국은 그것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펼칠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선한 힘이 될 의무는 있다고 봅니다. 세계의 분쟁을 막고,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고, 질병과 싸우고, 인권을 증진하고, 자유를 수호하고, 평화를 중재하는 근사한 나라말입니다. 이런 과업을 실행하자는 것이 이번 선거의 목적입니다. 앞으로 77일 동안,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가 옆집 문을 두드리고,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이웃의 말을 경청하면서 합심 노력하면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안전하고 더 정의롭고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운 미국을 건설합시다. 자 이제 각자의 역할을 시작합시다.”

 

미국의 거물들이 펼치는 장엄한 응원 속에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직 수락 연설을 했다.
“미합중국은 과거의 냉소주의, 분열적인 싸움을 넘어 새 길을 개척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진지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를 백악관에 다시 들여놓으면 가드레일이 없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의 권한을 자신의 유일한 고객인 ‘트럼프’를 위해서만 휘두를 겁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노동자, 중소기업 소유주, 대 기업가들과 힘을 합쳐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의료, 주거, 식료품 등의 생활물가를 낮추겠습니다. 자녀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저렴한 주택공급에 주력하며 서민의 사회 보장제도나 건강보험도 잘 챙기겠습니다. 의회가 여성의 ‘낙태 보장법안’을 통과시키게 노력하겠습니다. 전에 트럼프가 폐기한 초당적 ‘국경 안보법안’을 되살려서 법률로 제정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의 상속자들입니다. 그 특권과 자부심에 따르는 큰 책임감을 지키기 위해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바이든과의 대결에서 4~5% 앞서던 트럼프의 지지세는, 해리스의 지명 이후 역전되어 4~7%까지 뒤처지는 양상을 보인다. 선거자금도 해리스가 순식간에 트럼프보다 4배나 더 많이 확보했다.
공화당의 오랜 뿌리인 조지 부시, 밋 롬니, 존 매케인의 보좌진 200여 명이 연명으로 “트럼프의 재선은 미국에 재앙을 부를 것”이란 성명을 내고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를 천명했다. (2024.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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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진실과 거짓의 싸움

 

‘진실이 최선의 정책이다’란 격언이 있다. 얽힌 실타래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국면을 벗어날 궁리는 모든 사람이 하게 마련이다. 그때, 꼬일 대로 꼬인 국면에서 탈출하려고 콜럼버스의 지혜를 빌리는 일이 옳은 줄 알아도 범인(凡人)은 용기가 없어서 그리 못 하거나,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 정도를 가지 못하고, 거짓에다 거짓을 보태는 복잡다단한 상황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본다. 세상 사람들은 어느 것이 진실인가 혹은 누구 말이 거짓인가 설왕설래하지만, 그것을 밝히는 일이 단순하지 않을뿐더러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말을 하는 사람이 자기의 진솔한 속마음을 거짓 없이 고백한다면야 알기 쉽겠으나, 대개 100% 정직한 고백은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진실은 영원한 미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 논쟁거리가 된 발언에서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몇 가지 방법이 없지는 않다. 첫째, 그 주장으로써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군가를 따져본다. 둘째, 그 주장에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지를 확인한다. 셋째, 그런 주장이 논리나 상식에 맞는 일인 지도 짚어 본다. 넷째, ‘하나의 처세 수단으로써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 즉 인격을 믿기 곤란한 자의 발언인가?’를 따져보는 방법도 있다.

 

거짓말을 가볍게 내뱉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우리가 그 말의 진실 여부를 알아내려면 많은 노력이 든다. 바쁜 세상에서 ‘진실과 거짓을 밝히는 일이 무슨 뜻이 있겠는가?’ 하고 비웃는 사람에겐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가까운 친구들 간에, 스승과 제자 간에, 사업상 거래를 지속하는 사이에서, 신앙을 앞세운 집단의 구성원이 동료 간에 주고받는 말에서, 거짓이 판을 치고 진실이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거나, 아니면 연옥(煉獄)이라 불러도 과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구제하려고 좋은 교육을 하고, 법률을 다듬고, 제도를 잘 고치고, 종교적 가르침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등등의 이치를 헤아려 본다면, 당신의 잔꾀가 비록 조조(曹操)에게 견줄 만하다 싶어 안달이 나도 인격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까불지는 말 일이다.

 

왜냐고? 자신이 위에서 든 예에 해당되는 잘못을 쉽게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를 욕보이고, 나를 교육한 스승의 얼굴에 X칠하는 격이요, 내 인격을 믿고 교우관계를 지녀온 벗에 대한 배신이요, 종교적 모임에서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바탕으로 내세의 구원까지 바라는 아름다운 말들이, 사기성 어린 헛소리요 공염불이 되고 만다. 그래도 괜찮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캐나다에 살면서도 조국의 총선 소식에 귀가 크게 열리는 것은, 이민 1세대의 본능이다.

 

4월10일에 치르는 총선이 조국의 발전과 5천만 겨레의 운명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무리 먼 곳에 산다 해도 그것이 남의 일은 아니다. 지금 그곳에서 사생결단으로 대립하는 개념, 즉 언론사들이 멋대로 붙인 이분법적 명칭인 좌냐 우냐? 혹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구분법으로 그곳의 현상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좌-우, 진보-보수라는 명칭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 국민의 행복 증진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런 이분법적 갈라치기는 국민의 통합을 훼방 놓고, 홉스의 말마따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판’을 만들자는 소리로 들린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던 때 자주 쓴 수법이다.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자유민주주의적 행복을 갉아먹는 그런 말장난을 치는 쪽이 누군지 살펴보라. 악마의 마음을 지닌 자는 악마적 수법을 쓰면서 그 책임은 항상 상대편에 떠넘긴다. 이번 총선은 국민을 상대로 진실을 말하는 집단과 거짓말을 되풀이 하는 세력의 대결로서, 결국 진실을 설파하는 정당이 이기는 모습으로 굳혀지는 그림이 보이지 않는가.

 

윤석열 검사 정권이 나라를 운영한 2년간의 실적을 평가하는 선거이지만, 돌아보면 실적이라기보다는, 무도하고 무례하고 무책임한 보복 정치의 행태가 두드러져서 ‘정권 심판’ ‘검찰 정권 조기 종식’이란 야당의 구호가 호소력을 발휘하는 선거로 변했다. 제대로 된 실적이 없어서인지 대통령은 근래 20여 차례나 지방을 돌며 탈법적 선거 운동을 벌였고, 가는 곳마다 엄청난 개발 공약을 쏟아냈다. 그 총합이 약 1,000조 원이나 들어갈 뻥튀기 공약임이 드러나면서 그의 거짓말하는 규모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지율 30%에 턱걸이 하였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언행도 대통령의 판박이 수준이라, 날이 갈수록 여당이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정부 여당의 지휘부가 무슨 공약을 발표해도 믿는 국민이 별로 없는 눈치다.

그에 비해 3월3일 창당한 비례신당 ‘조국혁신당’은 11일 만에 당원 10만 명을 얻었고, 정국을 요리할 듯이 으스대던 ‘이준석 신당’ ‘이낙연 미래당’에 된서리를 안겼다.

 

‘조국혁신당’이 선거자금 모집을 위해 3월26일 ‘파란 불꽃 펀드’가 목표액 50억 원이라고 공표하자 불과 54분 만에 200억 원의 성금이 답지해서 급히 마감해야 했다. ‘국민의힘’, ‘민주당’에 마음을 줄 수 없어서 관망하던 중도층이 꿈틀거리며 믿음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런 국민들의 성원으로 ‘조국혁신당’의 지지세가 30%를 넘기는 이변이 한국 정치판의 앞길을 예고하는 바로미터 같다. 혼탁한 싸움 중에도, 진실한 부류가 힘겹게 이기는 모습이나,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응원을 바라보는 마음이 기껍다.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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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정치의 계절에 부치는 말

 

모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흙탕 개싸움이 한창이다. 요즘은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정치의 관행도, 헌법 정신도, 인간의 도리도 짓밟히는 모습에 놀란다. 이재명 야당 대표의 목을 칼로 찌른 테러범을 경찰 정부 여당이 싸고돌며 쉬쉬하고, 생명이 위태롭던 이재명을 되레 역공격하는 부류가 설쳐댔다. 중심을 잡고 세상을 계도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은 실종 상태이니,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할 한국사회의 능력마저 마비된 것 같다. 한국의 정치를 푸틴의 러시아 수준으로 단번에 끌어내린 그 사태는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해져, 부러움을 사던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당국자들은 이 역사적 죗값을 어찌 감당하려는지.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이 늘 뉴스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뉴스 콘텐츠도 온통 그들의 동정動靜이 도배한다. 지도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느 시장 바닥에서 떡볶이, 순대를 사 먹었는지. 시시껄렁한 이런 기사가 뉴스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의 운영권을 쥔 지도부가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들린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국민은 생활이 바빠서, 또는 행복한 삶에 취해서 통치자가 누군지 혹은 그가 나라를 잘 이끌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민이 현재 누리는 것이 오직 자신의 재주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요, 지도자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지난날 ‘땡전 뉴스’란 게 있었다. ‘80년 전두환이 국민을 겁박하던 5공화국 때 권정달, 허화평, 허문도, 이상재 등 간사한 재주꾼들이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반대되는 주장을 할 만한 언론인은 감옥이나 삼청교육대로 보내 매질로써 다스렸다. 살아남은 언론인 또는 언론사는 전두환 대통령의 시책에 순응할 뿐이었다. 9시 뉴스는 언제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이란 말로써 시작했다. 세상의 중요한 일, 큰일이 모두 (하느님 같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말미암고, 그가 있어서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는 분위기의 연출이었다.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신군부 집단의 폭압적 위세가 살기등등해서, 웬만한 용기로써는 말 한마디도 드러내 하질 못했다. 전두환이 온 국민을 노예처럼 비굴하게 만들어갔고, 또한 국민은 그렇게 취급 당하던 서글픈 시절이었다. 오늘 우리가 비웃는 북한 사회의 실상과도 견줄 만했던가 싶다.

 

군사 통치에 마침표를 찍게 한 사건이 ‘87년 6.10 시민항쟁이요, 6.29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이요, ‘87년 신헌법 체제의 등장이다. 그것은 인권을 극도로 억압하며 ‘긴급조치’를 남발한 박정희 정권 말의 유신 독재에 이어가던 전두환 신군부의 폭정을, 격이 높은 정치 체제로 바꾸게 한 변혁이었다. 긴 세월에 죽고 다치고 쫓겨난 사람들, 해직된 언론인들, 광주 5.18 항쟁 때 죽은 원혼들, 박종철. 이한열 등 많은 열사의 희생을 딛고 궐기한 학생 데모에 30~40대 넥타이부대가 합세하면서, 결국 독재자의 아집을 꺾은 승리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혁명의 과정과도 닮은 ‘민주주의 자력 쟁취’는 프랑스, 영국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사례로서, 우리 민족이 자긍심을 갖는 역사적 금자탑이다. 한국의 그 혁명은 경제 발전과 짝을 이룬 것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

 

선거철이 되니, 그간 역사적 과업에 목숨 던져 싸운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자들이 고개를 쳐든다. 그런 인간들의 비아냥인즉슨 “죽창가를 부르고 있네… 운동권 출신들이 평생 그 잘난 공적을 우려먹으려고…“ 등등.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운동권(반독재 투쟁) 세력 중 한두 명의 일탈적 행위를 콕 집어내고 그것으로 전체를 일반화하여 야권을 비꼬며 모욕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그런 표현은 수긍할 수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의 잘난 조상들이 일본에 팔아 넘긴 그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던진 투사가 놀림 받을 존재라는 말인가. 아니라면 자기 조상의 친일 매국을 그렇게라도 해서 미화하고 싶어선가. 또 누가 무슨 자격으로 민주투사를 폄훼하는가. 독재자의 사랑 속에 단물을 빨며 희희낙락하던 옛날이 그리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한국이 아무리 자유 천지가 되었다 한들 안중근. 윤봉길. 홍범도, 김좌진을 테러리스트라 칭하고, 이완용. 박제순.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을 충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은가. 근래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한국 지도자의 무능. 무정견을, 그리고 그 부인과 처가의 각종 범법 행위를 그런 잡소리로써 얼렁뚱땅 덮고 비껴가려 했다면, 꿈을 깨라.

 

대통령 참석의 행사장에서,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나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그것이 대통령 자신의 협량狹量을 폭로하는 줄도 모르는지? 또 정권 심판론이 이슈로 떠오른 이번 총선에서, 야당 지도자의 트집거리만 잡으며 싹수없는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여당 대표의 처신은, 경망스럽고 쪼잔하다. 그대가 정녕 나라의 큰 일꾼으로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이 기회에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당당한 경륜을 펼치라. 농담 따먹기 식의 궤변을 입에 달고 살면, 코미디언 이미지를 벗기는 어려울 테니, 그런 짓은 그만두라. 피 어린 투쟁으로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어떤 시도도, 헛된 화禍만 초래할 것임은 꼭 명심하고. (202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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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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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우리 민족사 이야기 (2/2)


                                                                             
 모든 종족은 제가 세상의 중심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싸고도는 행성行星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각 민족이 나름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지닌 까닭이다. 
한국사의 인식에서 주체적으로 살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조선 때는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을 숭상하더니,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엔 일제 총독부가 교육한 ‘식민사관’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으며 맹종한 자들에 관한 얘기다. ‘중화주의 사관’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여타의 나라는 중국에 복속시켜 세계의 질서를 이루게 한다.”는 사상이다. ‘식민사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일본의 영도領導 아래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루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정신적 문화적인 면을 중시한 ‘중화주의 사관’에 비해 일제의 ‘식민사관’은 이웃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폭압적으로 빼앗고, 그 위에서 군림하겠다는 궤변이다. 그런 이론은 강제로 먹이는 마약과도 같아서, 식민지 백성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그런 노예적 사고를 주입하는 자는 매국노 이완용에 버금갈 존재이므로, 정신이 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 간교한 수작을 배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식민사관의 추종 사학자에 이병도, 신석호, 이기백, 이인호 등이 대표적이다. 우두머리 격인 이병도는 이완용과 본관이 같은 우봉 이씨의 먼 친척으로서, 부친 이봉구는 이완용의 집사였다. 또한 그의 장인 조성근은 일본군 육군 중장과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고 하니, 그가 끈질기게 친일을 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서울대 대학원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등을 지내며 친일 행각을 이어간 그는, 영원히 이어질 민족의 역사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반反 민족적 사학자였다. 

 

이승만은, 부족한 그의 정치적 추종자를 늘리려는 정략에서 친일 부역배 처벌을 못하게 했다. 그런 세월에 이병도 등이 가르치는 식민사관은 ‘식민사학 카르텔’을 형성하였고, 민족에게 독립자존의 기상은커녕 노예적 사고를 지속해서 주입했다.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40년 통한의 세월을 보낸 것만도 억울한데, 해방 후 70년간 동족의 손으로 ‘식민사관’을 주입하다니, 배알이 없는 건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출을 두고도,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의 처리수는 안전하다’고 수산시장 등지에서 설레발 떠는 모습이, ‘식민사관’을 되뇌던 일제 추종 사학자들의 행태를 방불케 한다. 

 

정권은 길어야 5년, 그런 말을 하는 자도 15년~20년이면 지상에서 모두 사라진다. 핵 오염수 방출은 30년간 계속될지, 백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다는데 당국자가 무책임하게도 지껄이는 모습이다. 일본이 떠안긴 그 끔찍한 부담을 왜 한국 국민이 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일 어느 쪽 정부도 해명이라곤 없이 당연시하는 태도다. 그들에게서 죄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친일파들이 민족을 오도誤導하는 행태가 매양 이런 식이다. 저와 제 집안의 이익과 권세만 유지된다면, 민족 전체의 안전이나 생업이 위태로워져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너무 건방져서 역겹다. 

 

튀르키에 계통의 우리 혈족들은 중국사에서 돌궐, 거란, 선비, 몽골, 말갈, 숙신, 부여 등 수천 년간 중원을 위협한 야만족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도 바로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역사상 중원을 차지한 나라 중 절반은 중화 족이 일으켰으며, 나머지 절반은 바로 그 야만족(?)들이 세우고 통치한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중원이 오직 중화 족의 치세로 수천 년을 누리던 곳인 듯 으스대는 건 거짓말이다.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이다’는 중국인 특유의 위선이 되풀이해서 빚는 억지요, 오류誤謬다. 중국 공산정권이 혈안이 되어 추진하는 ‘동북공정’ 작업도 그런 식의 놀음이다. 다만 타민족과 각축하는 과정에 남의 장점을 배우고, 내 것과 결합해 세련된 문화로 계승 발전시킨 데 중국인의 저력이 두드러진 점은 눈여겨볼 일이다. 

 

불교가 들어온 것은 BC 372(고구려)~527(신라)년이었다. 그 새로운 종교는 원시적 습속 수준에 머물던 삼국시대 중엽의 정신세계를 일신했고, 민족정신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하여 삼국통일에도 이바지했다. 고려 때는 국교가 되어 나라의 통치 이념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과 풍습을 규율하는 기준이 되는 등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다. 조선 때는, 성리학의 서슬 퍼런 질서에 눌려 교세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민간의 신앙 습성과 지원에 힘입어, 오늘까지 불교의 선한 영향이 국민의 사고와 문화의 바탕을 이룬 것을 보면,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종교라 하겠다. 
각기 240년, 140년의 역사에 불과한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의 현재 사회적 역할은 상당하다. 유럽에선 신앙적 열의가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젊은(?) 한국의 기독 신앙은 국민의 가치관 형성에도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세계 각처에서 서로 다른 종교 간의 다툼으로 피 흘리는 때도, 한국에선 그런 불상사가 없었다. 신앙을 향한 우리 겨레의 마음이 그만큼 순수하며, 동시에 타인의 믿음을 존중하는 너그러움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은 천수백 년 동안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에 젖은 결과가 아닐는지? 

 

‘재림 예수’, ‘하느님’을 자처한 상업적 종교 꾼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평온한 가정을 깨뜨리고, 금품을 편취騙取하여 물의를 빚는 것 또한 한국 사회의 감출 수 없는 현상 같다. ‘자칭 하느님’이 빈번이 등장하는 곳, 종교 사업으로 쉽게 재미를 보는 나라로는 한국이 단연 으뜸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타인의 신앙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좋지만, 자유에 상응하는 자제력은 있어야 한다. 신도의 성을 착취하거나 타인의 금품을 편취하는 건, 종교의 본령에도 배치되어 규탄받을 일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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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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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우리 민족사 이야기(1)

 

인류의 발자취가 담긴 사연들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 역사로 불리지만, 구전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는 시원始原의 일들은 전설의 세계, 신화의 영역에 남겨진다. 작가 이병주 선생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은유적 표현이 때로는 본질을 베일처럼 둘러싸는 신화이지만, 그것도 인간사의 한 장면을 전하는 것이라, 인간적 욕구가 서려 있다.
우리 민족사의 첫머리는 단군신화가 장식한다. 그것은 “아득한 옛적 환인천제(桓因天帝: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생각이 간절하였는데, 마침내 부친의 허락을 받아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신하들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사연으로 시작된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와서 사람이 되고자 간청했다. 환웅은 “너희가 100날 동안 동굴에서 햇빛을 피하며 마늘과 쑥만 먹고 인내하면, 그 소원을 들어주마”고 했다.
호랑이는 중간에 뛰쳐나갔지만, 곰은 끝까지 버티어 여인으로 환생하고, 웅녀熊女가 된다.
웅녀는 환웅과 혼인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민족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단군은 서기 전 2333년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했다. 이웃한 중화 족의 요堯 임금이 나라를 연 때라 하여, 여고동시如高同時로 기록된다. 고高라 한 것은, 원래 요堯라고 해야 옳지만, 정종의 이름이 왕요王堯였으므로, 그것을 피해 비슷한 발음이 나는 글자인 고高를 택한 것이다.
단군신화는 1281년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대륙 세력의 침략을 받아 수난을 당하던 고려 충렬왕 때였다. ‘비록 우리가 고난 중에 있지만, 우리 민족은 다른 종족에 못지 않은 당당한 역사를 지녔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부당한 구박을 받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정신만은 비굴하거나 열등감에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곰과 호랑이 이야기에서, 곰 또는 호랑이를 숭배하는 두 부류의 원시 부족이 각축하다가 결국 ‘곰 부족’이 우세하여, 민족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유추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또한 우리 민족이 약으로, 음식 재료로 애용하는 쑥, 마늘과의 인연이 가히 오래되었음도 알게 한다.
우리말의 갈래를 우랄 알타이어족 중에서도 퉁구스어 계라 한다. 한반도에 정착한 부류의 후손인 우리는 이제 원시적 습속은 거의 벗어났지만, 알타이산맥 북쪽과 동쪽 즉 아무르강을 따라 시베리아 일대에 흩어진 토족들의 행태를 볼 때, 우리의 아득한 옛적 모습과 단군신화 속의 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엔 우리와 무척 닮은 얼굴의 주민들이 오늘날도 아무르강변을 따라 집단으로 거주한다. 그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곰을 사냥해서 요리할 때면, 고수레한 다음에 그 고기를 나눠 먹고, 곰 소리로 곡을 하고 곰 흉내를 낸 춤을 추는 의식을 치른다. 동구 밖에다 오색 천을 나무에 매달아 하늘에 소원을 비는 주술적 종교 행위도 옛 대로다. 한반도에서 불과 수십 년 전까지 관습적으로 행하던 토속신앙을 그들에게서 발견한다.
알타이산맥 서쪽의 평원은 1991년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카자흐스탄인데, 그들도 단군을 조상으로 모시며, 동쪽으로 5,000 km나 떨어진 코리아를 형제의 나라라고 친근하게 여긴다.
이웃에 살면서 군사軍事. 정치. 문화적으로 수천 년간 교류한 중화 족의 발성과 문법 체계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한국-만주- 몽골-알타이 공화국 -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튀르키예로 이어지는 아시아대륙 중부 지역의 언어는 한국어 문법구조와 닮은 점이 많고, 유사한 단어들도 많다. 우리의 혈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먼 서쪽 코카서스 지역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살았었고, 그 중 일부가 남하하여 한반도에 정착했음을 짐작케 한다.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 살던 일족 중 상당수는 알류샨 열도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에스키모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멕시코 중부에다 둥지를 튼 부류도 있었고, 계속 전진한 이들은 남미 대륙의 끝인 마젤란 해협에 이르렀다. 길도 없고, 변변한 도구나 연장도 없던 그 시절에 원시의 밀림을 지나고, 해충과 야생 동물들에 대항하고, 무더위와 역병을 이겨가면서 지구의 끝까지 나아가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캐나다와 미국의 서부 지역, 멕시코에서 발견되는 유적 중에는, 온돌 문화의 흔적이 보이며, 고대 벽화에서는 태극 문양, 상투, 갓, 두루마기, 한복 등을 발견하고선, 그들이 우리의 일족이었음을 확신한다. 그것은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바로 조선인의 고유한 생활 양상이다. 또한 우리가 세계에 뽐내는 한복의 아름다움이 천 년도 훨씬 넘는 세월 속에 다듬어진 맵시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암!, 세계인이 찬탄하는 한복의 예술미가 일조일석에 생겨날 순 없었으리라.
멕시코의 아스태가 고문서에 이르기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와서 그들(원주민)의 기원을 물었을 때, “맥이 족(중국에서 고구려를 지칭한 이름)은 820년경 아스땅(아사달?)을 떠나서 이곳에 왔고, 고리족은 그보다 수백 년 먼저 왔다”라고 대답하였다. 고구려 멸망 시기부터 시작해 발해 멸망 전후로, 시베리아와 북만주 일대에 살던 우리 민족의 한 줄기가 신대륙으로 이주했음을 밝혀주는 기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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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윤종호
109870
19314
2023-11-02
사상의 빈곤에 허덕이는 한국(2)

 

 “이게 나라냐? 우리는 금융위기를 이기고 선진 경제를 일으킨 국민이요, 피어린 투쟁으로 민권을 쟁취한 민주시민이다.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일으켰고, ‘세월호 참변’ 전염병 ‘메르스 사태’에서 국민의 생명과 자부심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런 대통령은 물러가라! 이는 민주 시민의 명령이다.”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 시위에 방화, 파괴, 도난 사고라고는 한 건도 없었다. 국민의 높은 자긍심과 품격을 알게 한다. 국회는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심판에서 대통령이 축출됐다. 그것은 독재에 시달리는 세계 피압박 인민들의 부러움을 산 한국판 명예혁명이었다.

 

박정희는 ‘가난 극복’을 민족의 숙원사업으로 삼았다. 그는 사회주의 방식을 과감히 차용한 4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행하여 큰 성과를 냈다. 그는 무엇보다 가난에 한숨짓던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정신을 심었다. 한국경제의 성공은 그의 실용주의적 사고思考, 창의적 기획력, 강한 추진력에 크게 힘입었다.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그를 본다면 역행한 점도 많았으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전두환은 광주 시위대 피의 진압, 삼청교육대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야권 인사에 대한 탄압, 부정 축재 등 선행보다는 폐해가 많았다. 부정한 재물 반환이나 광주 5.18 시위대 살상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단돈 29만 원으로 근근이 산다”던 그는, 떼로 몰려다니며 골프를 치고 호사 부리면서 여생을 누렸다.

 

노태우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그것이 동유럽의 공산주의 몰락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부정축재한 돈을 모두 반납했으며, 광주 진압에 대해 가족이 사죄와 위로를 전하게 하고 갔다.

 

‘호랑이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김영삼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큰일을 거침없이 해치웠다. 군부 카르텔 ‘하나회’를 숙청해 쿠데타 재발의 우려를 없애고, ’12.12 군사 반란의 수괴’ 전두환, 노태우를 법정에 세워 사형, 무기 징역형으로 징벌했다. 일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DJ가 집권하게 도와서 문민정부가 굳어지게 했다. 그는 재임 중 IMF 금융위기를 당해 평가절하 되기도 했지만, 서거한 직후 ‘민주주의를 완성한 대통령’이란 영예榮譽를 안았다.

 

김대중은,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하였고, 새로운 패러다임 즉 ‘IT(정보화)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섬으로써, 환란에 망연자실한 국민을 희망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학력, 경력이 미미한 노무현을 후계자로 낙점해, 진보적 개혁을 지속하고 남북 화해의 물결이 이어지게 한 것도 DJ의 혜안이 있어 가능했다.

 

법조와 보수언론의 훼방 속에 등장한 노무현은 대미, 대일 관계에 주체성을 보였으며, 남북회담을 했다. 지방분권 시대를 열었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민족의 자존감을 드높였다. 죽은 뒤에 인정받고 사랑도 받아, ‘사람 사는 세상’이란 그의 화두가 도드라졌다. 연인원 5백만 명이 운집한 국장 때, 힘없고 소외된 이웃의 옹호자로 살아온 그의 투박한 인간성, 뜨거운 진정성을 확인한 서민 대중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국민을 부자 되게 하겠다”던 이명박은, 그 자신의 부만 불법적으로 늘려서 실망감을 주었다. 재임 중, 은퇴 후에도 돈 관련 스캔들은 이어졌다. ‘대운하 사업’, ‘언론 장악 시도’, ‘국정원 조직을 동원한 여론 조작’ 등을 꾀했으나 실패했고, 퇴임 후 구금된다.

부친의 후광을 입어 옹립된 박근혜는 무식, 무위, 무능 그 자체였다. 충언에 귀 닫은 대통령은 육군 대장들과 검사들에 싸인 채 공주놀이에 푹 빠졌다. 서민의 눈물을 외면하던 그녀는 결국 서민의 원성에 밀려 탄핵되고, 영어의 신세가 된다.

 

문재인은 촛불혁명이 불러온 검찰개혁의 호기를 흘려 보냈다. 오호라, 문재인의 졸렬한 인사人事가 국민이 30여 년간 피어린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마저 퇴보하게 할 줄이야! 정치검사들과 합세한 보수언론의 반격으로 그의 5년 성과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도, 소심하고 비굴한 그의 인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윤석열은 일제日帝 강점을 정당화하고, 항일 독립투사를 모독했으며, 국민 84%가 반대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를 두둔한 굴종적 친일파다. 그는 ‘자유, 공정 상식’을 읊으며, ”공산, 전체주의자들의 농간을 물리치자”고 외친다. 그의 뜬금없는 이념 타령은 어설픈 언어유희다. 1년 반 동안 야당과는 물론 국민과도 대화하지 않았다. ’10.29 이태원’, ‘궁평2지하차도’, ‘예천 산사태’ 참사에 희생자가 많았어도 위로, 사과, 책임자 문책이라곤 없었다. 조국, 이재명, 송영길과 그 주변을 수백 번 압수수색해,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검찰권 사유화’ 작태만 일삼았다. 그런 공산당식 수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돌아보면 업적을 세운 지도자들은 먼저 본인의 정치철학을 당당히 밝히고, 그 비전의 실현에 진력했다. 이명박부터 지금까지 평가할 만한 사상을 품은 대통령이 없는 건 나라의 불행이다. ‘국정 현안이나 철학을 국민께 호소, 설득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도 그들의 공통점이다. 대화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매번 대통령으로 뽑는 국민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국민도 그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혼돈 상황을 떨치고 전진할 길이 열릴 것이다.(202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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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윤종호
109110
19314
2023-10-05
사상의 빈곤에 허덕이는 한국(1)

 

‘87년 6월 29일 노태우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은 새 시대를 여는 팡파르였다. ‘72년 ‘10월 유신維新’ 때 독재자에게 빼앗긴 ‘대통령 직접 선출권’이 15년 만에 국민의 손에 돌아왔다.

 

그간 많은 희생과 곡절을 겪었지만,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학생 데모에 30대, 40대의 서울시민이 가세한 ‘6.10 시민항쟁’이었다. 그로써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직을 차지하거나, ‘국정자문단’ 같은 조직으로 후임 대통령을 조종하려던 전두환의 음모는 분쇄됐다. 깨어 있던 시민이 독재자의 끝없는 야욕을 꺾은 것이다.

 

그 이후 한국의 헌정 질서는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실시로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 합의 위에 선 소위 ‘87년 체제’ 또는 ‘87년 패러다임’이라 한다.

‘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15만 표 차이로 신승했을 때 한국은 전란 후 10년도 채 못 된 터라, 참으로 가난했다. 넉넉한 것이라곤 사람뿐이었다. 제사 문화와 남존여비 사상만은 확고하여, 간혹 부유한 집에서 딸만 여럿 낳은 경우에도 단산할 생각은 못 하고, 사손(祀孫; 제사를 모실 아들)을 볼 때까지 계속 낳다 보면 7명, 8명의 딸을 낳은 후에야 아들을 보기도 했다. 부잣집이야 7공주든 8공주든, 먹이고 입히고 기른 후 재산을 기울여 시집 보내기도 하련만, 형편이 딱하면 자식을 내다 버리기도 했던지라, 미국, 유럽 등지로 자식들(특히 딸들)이 팔려나가는 경우도 흔했다.

 

전쟁고아를, 미국이나 유럽의 여유로운 가정으로 보낸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쟁 끝난 후 40년, 50년이 지나 인구가 줄어드는 판국에도 한국은 여전히 고아 수출국 1~2위에 랭크되곤 했으니, 자식을 버려 다른 나라에 양육의 짐을 지운 것이 꼭 빈곤 때문만은 아님이 밝혀지면서, 낯을 붉히게 된다. 민족의 자존감이나, 타국의 입방아에 오를 조국의 품격이 염려돼서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에 애타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하늘의 징벌인지도 모르겠다.

 

민족의 기질이 좋고 싫음의 양극단을 격하게 오가는 다혈질이라, 표변하는 성정을 보일 때가 많다. 지난날 가난한 생활 중에도 중용지도中庸之道의 가치를 강조하던 유교식 훈육이라도 있었건만… 인구는 줄어드는데, 출산율은 회복될 기미조차 없다. 후진국의 인력을 데려와서야 산업을 유지하니, 격세지감이 있다. ‘60만 국군 장병’ 운운했는데, 요즘은 ‘50만 장병이 어떻고…’ 하니,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용병으로써 휴전선을 지켜야 할 날이 올 것만 같아, 조국을 떠난 지 오래된 처지임에도 슬며시 걱정스럽다.

 

박정희 정권은 ‘72년 10월, ‘유신’이란 살벌한 강권 통치로 변질되어 ‘긴급조치’를 남발했다. 그의 사후, 이어지던 전두환 깡패 정권 말기에 발생한 ‘87년 6.10 시민항쟁으로부터도 어언 36년이 흘렀다. 그간 시대가 바뀌었고, 경제 사회상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만은 ‘87년 당시에 지녔던 사고의 틀에 갇혀 시대의 변화를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한편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보수당’(아니 태극기만 흔들어 대는 ‘수구당’이라 함이 정확할 듯.)으로서 자기편에게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 ‘좌익분자’ 또는 ‘빨갱이 집단’이라는 욕설로 매도한다.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야권을 대하는 데 비아냥거리거나 상스러운 말투가 일반적이다. 반대편에 도사린 민주화 투쟁 경력을 지닌 진보 성향의 인사들 또한, 감옥을 한두 번 들락거린 것을 훈장으로 여겨 평생 정치판의 기득권 행세를 하려고 한다. 그들의 행태가 캐나다 시민의 눈에는, 좌익분자라기보다 이곳의 자유당과 닮은 중도 우파 성향 정도로 보인다.

 

공산 종주국 소련이 그 이념의 깃발을 거둔 지도 30년이 지났다. 국정의 상대를 ‘빨갱이’ ‘전체주의자’로 매도하는 자들은 무식한無識漢, 무뢰한無賴漢을 자임하는 것이니, 민주정치를 논할 자질이 없다. 말과 행동은 사람의 지식, 생각, 인격을 담은 그릇인데, 그런 소음을 일으키는 무리가 민족의 명운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다니… 그것이 바로 한국이 지닌 불행의 씨앗이 아닌가.

 

양대 계파 중, 보수 정당은 무엇을 어떻게 보수保守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적도 없다. 맹목적인 지지자가 항시 받쳐줄 것이란 믿음이 있어 그러나 보다. 국방 의무를 회피한 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함에도 보수당의 앞에 서서 ‘국가 안보가 어떻고…’ ‘북한을 무력으로 압도해야…’ 등등 안보 전문가인 양 전쟁을 부채질한다. ‘국방의 의무는 남들이 지게 하고, 나는 꿀만 빨면 된다’는 그런 태도는 모든 위선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의 전형典型이다. 지도자에게 ‘솔선수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건 동서고금의 상식인데도 한국에서만은 그렇지 않으니, 국민 정신이 뭔가 큰 착각 속에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공산주의도 세습하는 건가? 북쪽의 폭압적 집단은 이제 공산주의자라 할 수도 없다. “봉건 왕조를 무너뜨리고 만민 평등을 기한다”는 공산주의라며 선전하더니, 자기의 기본적 원칙에 배치된 짓을 하고 있다. 북쪽에는 3대째 세습한 ‘김 씨 봉건 왕조’와 그 신민이 있을 뿐이다.  (2023.  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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