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입는 토론토... 이제까지 없던 스마트시티가 온다
글 입는 토론토... 이제까지 없던 스마트시티가 온다
지난 9월 13일(현지 시각)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호수 지구 서쪽 지역. 고층 빌딩과 콘도 건립 공사가 한창인 이 곳에서 수변 도로를 따라 동쪽 방향으로 약 1.5㎞를 이동하자 회색빛 민낯을 드러낸 폐건물과 웅덩이뿐인 황무지가 펼쳐졌다.
토론토는 서쪽이 동쪽보다 개발이 더딘 편이다. 이곳은 1990년대 초 주택을 조성하는 개발 사업이 추진됐다가 개발이 좌초됐고, 2008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경마장과 기자촌 등을 짓는 구상이 나왔으나 또 백지화됐다. 결국 산업쓰레기 폐기장으로 쓰이며 오랫동안 방치됐다.
근처에서 만난 직장인 윤 박씨(32)는 "평소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이 넓은 땅을 왜 내버려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이 확정됐다는 뉴스를 보고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허허벌판인 이 곳에 최근 캐나다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캐나다 당국은 지난달 말 구글(Google)의 지주회사 알파벳(Alphabet)과 손잡고 이곳에 지금까지 없던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 기반의 스마트시티(Smart City)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지 앞에는 알파벳이 세운 도시개발 자회사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가 둥지를 틀었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 스마트시티는 첫삽을 뜨게 된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 올림픽 유치를 두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해 결국 약 50년간 방치됐던 이 땅이 정보기술(IT)로 작동하는 미래형 도시로 바뀌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 길가다 비오면 가림막이 스르륵
"우리는 이미 기존 도시들이 해왔던 뻔한 것(도시재생)을 이곳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본 알리(Habon Ali) 사이드워크랩스 정책·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은 "낙후된 지역에 고층 빌딩과 아파트, 콘도 시설들을 지어올리는 식의 기존 도시재생 방식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첨단 기술로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하고,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를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토 시와 온타리오 주 정부, 캐나다 연방정부는 2001년 퀘이사이드(Quayside) 및 포트랜드(Port Lands)에 50년간 방치돼 있던 약 809만3713㎡·244만8000여평) 일대의 도시재생을 위해 정부기관인 ‘워터프론트 토론토(Waterfront Toronto)’를 세웠다.
워터프론트 토론토는 2017년 초 여러 기업들의 사업제안서를 받아 그해 10월 사이드워크랩스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사이드워크랩스는 대상 부지 중 12에이커(4만8562㎡)를 우선 개발하고, 이후 800에이커(323만7485㎡)로 스마트시티 개발 지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이드워크랩스가 발표한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은 무려 1500장의 분량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사무소 1층에 설치된 도시 모형도 앞으로 기자를 이끈 마리 마가렛 맥마흔 사이드워크랩스 커뮤니티 담당 임원은 "이곳에는 약 60개의 첨단기술이 적용된다"고 소개했다.
그들이 제시한 스마트 시티의 모습은 이렇다. 우선 지역 곳곳에 인터넷과 연결된 무수히 많은 센서가 설치된다. 기온과 대기오염, 소음부터 쓰레기 배출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광대역 고성능 통신망으로 전송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로 이를 분석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과 자전거의 움직임까지 감지하는 교통 체계를 구현할 수 있다. 화물 수송은 지하터널에서 로봇으로 한다. 지상에서 트럭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 맥마흔 씨는 "토론토는 교통 체증이 심하고 대중 교통망도 잘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면서 "기술로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불편도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드워크랩스는 겨울이 길어지고 폭우가 잦아진 자연환경의 변화까지 기술로 해결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건물 외벽과 길 사이에 특수 제작된 대형 가림막이 설치된다. 눈이나 비가 오면 자동으로 펼쳐져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한다.
빅데이터로 폭우를 예측하고 분석해 건물 옥상에서 빗물을 모았다 적절한 시기에 바깥 조경 등으로 흘려 보내는 기능도 갖춘다. 이런 아이디어는 지역 주민 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맥마흔 씨는 "토론토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잘 하지 않는다"면서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폐기물을 사물인터넷 등 기술로 분석하고, 분리수거 실천율에 따른 인센티브(가점)제도를 도입해 이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스마트시티 계획이 완성되면 이 지역 온실가스 배출량의 73%, 식수 소비량의 65%, 매립 폐기물 발생량의 90%쯤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예상이다. 맥마흔 씨는 "스마트시티 계획을 세우고 토론토 지역사회와 협력하는데만 지금까지 5000만 달러(약 580억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사이드워크랩스는 스마트시티 조성에 약 4조56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 정보유출 걱정하는 시민사회 불신 넘어야
청사진은 밝아 보이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방대한 데이터 수집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다.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사생활 침해 및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센서 데이터 수집을 반대하는 상황이다. 캐나다자유인권협회(CCLA)는 사이드워크랩스의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정부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캐나다는 커뮤니티의 지지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곳이다. 이런 현실은 앞으로 스마트시티 조성을 추진하려는 또다른 국가, 도시들이 겪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 인프라 계획 및 재무 분야 연구위원장을 역임한 매티 시마이아티키(Matti Siemiatycki·사진) 토론토대학 도시학과 교수는 "워터프론트 프로젝트는 50년동안 개발 없이 방치됐던 땅을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 3개 정부가 최초로 협업해 긴 호흡으로 개발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찬반 논쟁이 붙어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려가 커진 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Facebook)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한몫을 했다. 거기에 정권 교체와 워터프론트 이사회 교체 시기가 맞물리면서 일부 세력이 정쟁화하려는 정치적 요소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데이터 수집 우려에 대해서 사이드워크랩스 측은 "수집한 개인 정보를 판매하거나 광고용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 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러한 데이터가 지역사회와 공공을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지 지역 주민 모두가 다 알 수 있게 공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시티가 조성되면 토론토가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시마이아티키 교수는 "토론토에 스마트시티가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도시는 첨단 기술로 작동하는 테크 생태계가 된다"면서 "이곳으로 전세계 인재와 자본이 집중되며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스마트 기술은 커뮤니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기술 개발을 하기 위한 커뮤니티(스마트시티)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이드워크랩스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전략 자문 역할을 해온 어반스트레티지(Urban Strategies)의 인거 스콰이어스(Inger Squires) 도시계획가는 "도시재생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낮에도 밤에도 사람이 많아야 하고(유령도시나 베드타운은 실패), 나이와 소득에 상관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다양성),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드워크랩스는 지난 10월 31일 토론토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논쟁이 됐던 사이드워크랩스의 데이터 사용과 범위에 대해 일정 부분 합의점을 찾은 셈이다. 추가적인 평가 및 협의를 진행하고 내년 3월 말 워터프론트 토론토의 표결을 거쳐 최종적인 사업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대니얼 닥터로프 사이드워크랩스 CEO는 "중대한 이슈에 대해 합의를 이루게 돼 기쁘다"면서 "워터프론트 토론토와 캐나다 정부와 함께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도시를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