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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고 이진수 한인회장을 그리며
ywlee

 


▲고 이진수 토론토한인회장

 

*다음은 2015년 4이진수 토론토한인회장이 2임기를 마치고 이임할 즈음에 글입니다. 회장을 그리며 6전의 글을 조금 수정해 다시 올립니다.-필자   

 

0…사람은 때가 되면 떠나게 돼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종착지이든, 살아 생전의 인간사회든… 영원히 늙지 않고 지휘봉을 잡으실 것 같던 안병원 선생도 밀려오는 세월 따라 떠나셨습니다. 이제 동포행사 때 누가 ‘우리의 소원’ 합창을 지휘할 것인지.

 

 오늘은 이진수 토론토한인회장 얘기입니다. 그도 이제 곧 물러갑니다. 그는 4년 전 한인회장 선거에서 승리한 이래, 2기 연속 한인회장을 지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초급장교로 전방근무를 하던 중 지뢰사고를 당합니다. 이 때문에 20대 중반의 나이에 조기전역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후배가 됩니다. 저도 육사를 1년 다녔는데 사석에서 만나면 선배님이라 부릅니다. 

 

 그가 군에서 당한 사고로 한쪽 다리가 의족(義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의 보행자세가 불편해 보인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가 동포행사 때 한인회관 단상에서 연설을 하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조마조마합니다. 동포들 앞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지난 신년하례식 때 참석자들에게 큰절을 올리는데 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겉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골프도 잘 칩니다.

 

 그는 사실 사관학교 입교가 늦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육사에 입학했습니다. 때문에 육사 동기들에 비해 2살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업성적과 체력이 우수한 생도만 뽑는 축구부에서 활동하는 등 앞날이 유망한 생도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동갑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25기), 남재준 전 국정원장(25기)을 비롯해, 육사 동기인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27기, 주중대사) 등, 전-현 정부의 실세들과 두터운 친분도 갖고 있습니다. 그도 군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별을 달고 승승장구했을지 모릅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야심차게 군생활을 시작한 청년장교가 치명적 사고를 당했으니 앞날이 얼마나 캄캄했겠습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생을 자포자기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기업체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다 47세의 나이에 이민 와 컴퓨터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가 동년배들에 비해 컴퓨터를 잘하는 것은 이런 경력 때문입니다. 

 

 그가 한인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구동포들에 비해 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원만하고 겸손한 태도, 신중한 언행으로 주변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재향군인회장을 지낸 후 한인회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돼 부이사장을 맡았고, 민주평통 간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인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굵직한 일을 많이 해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요란하지 않게, 치밀하게 이루어냈습니다. 특히 한인사 편찬사업은 가장 소중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재임 중 이런저런 갈등의 소지들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고비마다 슬기롭게 극복해나갔습니다. 솔직히 그 전만 해도 한인회는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잔잔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은 그런 분란이 없었습니다.

 

 그는 말수가 적되 사려 깊고 사회경험이 풍부해 조직관리도 잘했습니다. 영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합니다. 그는 온종일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보수는 없었습니다. 그에게 급료를 주었더라면 수십만 달러는 지급했어야 했습니다. 3년 전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토론토를 다녀가면서 개인적 친분에서 촌지를 건넸으나 이 회장은 이마저도 한인회 계좌에 입급시켰습니다.        

 

 그는 임기 막판에도 한인회관 엘리베이터 공사를 위해 동포사회에 십시일반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일을 하는데 무엇하러 20만 달러나 들이느냐, 한인회관은 결국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될텐데… 등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2층 이상 공공건물에 장애인용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한 온타리오 법에 의한 것입니다.

 

 이 회장이 한인회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내조 덕도 큽니다. 남편만큼이나 말수가 적은 부인은 한인회 행사가 있을 때면 언제나 조용히 뒤에서 궂은 일을 처리합니다. 최근 퇴근길에 노스욕 거리에서 이 회장 부부가 나란히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회장은 말년에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하루종일 일했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시간을 내 점심이라도 한끼 대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실수라도 보이면 가차없는 공격을 날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워 보였습니다.               

 

 누구나 떠나는 모습은 쓸쓸합니다. 또한 떠나고 나면 뒷말이 많은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래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진수 회장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가 앞으로 더욱 건강해 동포사회를 위해 일조해주길 기대합니다.

 

0…이상이 6년 전 이진수 회장에 대해 쓴 글인데, 지금 생각하니 회한(悔恨)이 많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런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후 다시 2년을 더 동포사회를 위해 헌신하다 바톤을 넘기자마자 홀연히 떠나신 거목. 그 그늘 아래 많은 분들이 행복했습니다. 부디 근심걱정 없는 세상에서 참된 평화 누리시길 빕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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