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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서재(書齋)에 앉아-나만의 사색공간
ywlee

 

 

 

    
 시골(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하숙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대학생활을 할 때 나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는 나만의 사색공간인 서재(書齋)와, 책을 넉넉히 꽂을 수 있는 깔끔한 책장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하숙집에서는 대개 너절한 이불 위에 누워 책을 보니 산만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꽂이도 변변찮아 책들을 그냥 책상이나 방바닥에 되는대로 쌓아 놓았다.    

   
졸업 후 한때 출판사에 근무할 당시, 외부에 원고청탁할 일이 많아 교수들의 연구실이나 자택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그 중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원로 영문학자인 고 장왕록 교수님 댁을 방문했던 일이다. 


 원고를 받으러 마포에 있는 교수님 댁에 들렀는데, 그리 크지 않은 한옥에 아늑한 서재가 꾸며져 있고 책장엔 각종 책들로 들어차 있었다. 고서(古書)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서재의 창가에 놓인 고색창연한 책상 위에도 책과 원고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당시도 지금 같은 가을녘이었는데 창밖엔 노란 은행잎 낙엽이 뒹굴고 있었고, 커피 한잔을 들면서 교수님과 담소를 나누던 기억이 아련하다. 교수님은 저명한 학자였으나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해맑고 순수하셨다. 


 지금도 그때 서재 생각을 하면 은은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다. 교수님은 이런 인연으로 나의 결혼식 주례까지 서게 됐으나, 수년 후 동해안  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시다 뜻하지 않은 익사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교수님의 따님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역시 영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던 장영희 교수도 만났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아버지에 이어 따님까지 필자로 인연을 맺게 됐고, 나는 다시 그녀가 재직 중인 서강대로 원고를 받으러 다녔다. 그녀의 연구실 역시 온갖 문학 서적으로 꽉 차있어 보기만 해도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장영희 교수는 포근하고 섬세한 수필과 영시(英詩) 해설로 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몹쓸 암과 투병하다 10년 전 5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녀가 재직하던 캠퍼스 연구실은 지금 누가 주인이 돼있을까…     


0…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하니 작으나마 나만의 서재를 갖게는 됐으나 장 교수님 부녀(父女)와 같은   고고한 분위기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특히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조용히 앉아서 책 볼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점점 책과는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동안 사두었던 책들은 좀처럼 버리기가 아까워, 서너번 이사를 하면서도 죽어라고 싸들고 다녔다. 이민 올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무거운 책들을 박스에 채곡채곡 쌓아왔다.     


 그러다 언젠가 집수리를 하면서 그동안 별로 읽지 않았던 책들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마침 대형 쓰레기 수거용 빈(bin)도 있길래 주섬주섬 헌책들을 보아보니 사과상자로 5개 정도가 됐다. 개중엔 대학시절의 영문시선집(anthology)에서부터 ‘창비’(창작과 비평) 전집, 대하소설류, 각종 문학전집 등이 있었다. 또한 ‘운동권 서적’도 꽤 남아있다. 이런 책들은 평소 손에 들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이다. 나의 청춘시절 고뇌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헌책들을 버리다 보니 문득 장왕록 교수께서 친필 사인을 해주신 수필집도 있도,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한국에서 친히 보내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눈에 띄었다. 이 책들을 보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이들 부녀 학자는 비록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들이 남긴 따스한 문향(文香)의 작품들은 두고두고 읽힐 것이다.    

     
 커피 한잔을 들며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서재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행복한 삶일 터이다. 서재라는 공간은 책과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적(知的)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곳임에 틀림없다. 오롯이 나만의 사색공간인 서재.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보금자리일 것이다.


0…책은 인생에서 삶의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치유해준다. 다만 책은 이사할 때 가장 큰 두통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다니자니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버리기는 아깝다.


 나는 누구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주인장의 책장부터 살피는 습관이 있다. 서재와 책장을 보면 대략 그 사람의 지식수준과 취향 등을 어느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중엔 서재와 책장을 일종의 전시용 공간으로 꾸며놓은 사람도 있다. 고급 서재와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혀있다 해도 그것이 정작 읽힌 것인지, 아니면 그냥 허세로 그리한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깨끗한 장서류 같은 것은 십중팔구 전시용이기 쉽다.


 한해도 저물어가는 이 우수(憂愁)의 계절에 마음에 양식을 주는 좋은 책을 접하며 고고한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을 것이다. 다만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겠다.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채우려 하지 말기/있는 것 중 덜어내기/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높이만큼 쌓이는 고통/기쁜 눈물로 덜어내기…’ (이무원 시인 ‘가벼워지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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