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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저녁에 숙영소에 도착하면 그곳 지도원은 모두를 가까운 개울이나 강에 달려가 30분 안으로 발과 허벅지까지 냉수마찰을 하고 오게 한다. 강과 개울이 어디에 있는지 각자 알아서 찾아가야 하며 30분 안에 숙영소까지 돌아와야 한다. 저녁 시간은 온갖 장기자랑으로 문화오락 시간을 보내는 데 중대마다 경쟁률이 높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들리는 숙영소들은 밥이 참 맛있게 나온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밥과 반찬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그 귀한 명태와 가자미, 정어리, 고등어, 어쩌다 가끔은 삶은 계란도 준다. 정말 밥은 배고프지 않게 많이 먹었다. 그때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였고 1980년대까지는 식량 사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전천 숙영소에 머무를 때였는데 숙영소 지도원은 너무 재미난 사람이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락시간이 돌아왔다. 당연히 무슨 노래자랑이나 할 줄 알았는데 그날은 글짓기 경연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30분 만에 작품을 완성하여 발표를 할 것이라고 한다. 주제는 바로 배움, 광복의 천리길에 대한 것으로 1, 2, 3등까지 가른다고 한다. 우리는 배낭을 벗어 던지고 발을 씻자마자 빨리 글을 지어야 했다. 내가 문학 소조에 다녔기 때문에 중대장 선생은 나를 따로 불러냈다.

 “솜씨를 한번 발휘해봐. 학교 명예가 달렸는데 무조건 1등은 해야지? ㅇㅇ선생님 딸이니 당연히 잘하겠지” 그는 괜히 엄포를 놓으며 부담을 줬다. 그렇지만 엄마와 나의 명예를 걸고 등수 안에는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없으므로 나는 짧은 동요 형태의 시를 짓기로 하였다. 짧고 간결하면서 내용을 함축시킬 수 있는 동시가 제일 좋은 것 같았다. 총 3절까지 지었는데 1, 2절만 기억나고 3절은 사상적인 표현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잊어버렸다.

 

동시 “우리의 마음은 하나”

떠나온 곳 가는 곳은 서로 달라도/ 얼굴도 이름도 서로 몰라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지요/ 김일성 원수님 발자취 따라/ 우리는 모두가 “천리길 대원들”/ 행군길에 서로가 마주칠 때면/ 손 흔들며 나누는 인사도 하나/ “잘 가라 안녕히 다시 만나자!”/ 우리 모두 함께 가는 혁명의 천리길/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지요.

 각 팀에서 3명씩 총 6명이 발표를 했는데 나 혼자 동시를 지었고 나머지 애들은 평론, 기행문, 수기, 서정시, 등등 읽는데 시간이 필요한 작품들을 지어 왔다. 내 작품이 짧지만 핵심을 잘 잡고 노랫말처럼 쉽게 풀어냄으로써 누구나 공감하고 느껴왔던 감정을 잘 반영했다며 숙영소 지도원은 1등을 주었다.

 드디어 우리는 개천 역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수도 평양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함부로 오갈 수도 없는 평양에 도착하니 느낌이 묘했다. 평양은 특별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나도 추방을 안 당했으면 수도 아이들처럼 세련되고 나긋나긋 부드러운 평양 말씨를 쓰며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도 있었을 텐데 참 불행한 우리집의 환경이 야속했다. 평양에 계시는 큰아버지 집을 물어 물어 찾아가는데 처음 타보는 지하철의 풍경에 황홀했고, 사거리에서 끊임없이 수신호를 보내고 있는 여자 교통안전원(경찰)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북한의 지하철은 대형 모자이크 벽화, 현란한 무리등으로 장식하고 지하궁전처럼 꾸렸기 때문에 가히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형 벽화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을만큼 대중교통으로서가 아니라 예술 박물관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것 같다. 큰아버지는 어느 학교 교장으로 계셨는데 고층 건물에 사는 그의 아파트는 지방에서 사는 우리 집과는 너무 다르게 깨끗하고 먼지 하나 없었다.

 숙모님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고 그래서 밥도 고양이 밥 주듯이 조금 주는데 거기 하룻밤 자는 것이 너무 배도 고프고 불편하여 다음날 얼른 숙영소로 돌아왔다. 나는 평양에 가면 그렇게 맛있다는 흘레브(쏘련빵)을 꼭 먹고 싶었는데 어디서 따로 파는 데는 없었다. 숙영소에서 각 중대마다 흘레브 열댓 개씩 배정해 주면 70 조각으로 나눠서 먹어야 했다. 두 입에 다 먹어버리면 끝이지만 정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흘레브, 엄마가 맛있다고 늘 칭찬하던 그 흘레브는 맛이 황홀했다.

 우리는 김일성의 생가 만경대와 그토록 가서 놀고 싶었던 대성산 유원지도 견학하였는데 겨울이라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TV에서 꽤 멋져 보였던 놀이기구들은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었고 정말 작동이 되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우리는 전승기념관도 견학했는데 1953년 7월 27일에 정전 협정이 맺어지면서 전쟁이 멈추게 된 것을 북한이 승리를 했다고 기념하며 세운 기념관이다. 견학생들이 별로 많지 않은 크고 화려한 기념관 안에는 가끔 서양인들도 함께 참관했는데 처음으로 보는 서양인들이 너무 신기해 나는 옆에서 계속 훔쳐봤다.

 그들의 윤기도는 하얀 피부와 옷차림은 그들의 높은 경제수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자유분방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을 바로 내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다. 지방에서는 외국인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옆에서 함께 참관하는 바싹 야위고 마른 얼굴과 꼬질꼬질한 옷차림을 한 우리들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평양 고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숙영소에서 보름 동안의 배움의 천리길 행군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7. 학교 군사훈련

 고등중학교 교육과정에는 15일간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소년군사조직인 청년근위대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성인이 되면 노동적위대라는 민간군사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1년에 15일씩 군사훈련에 참가한다. 이외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 경우 45세까지 예비역부대인 교도대에 자동 가입되며 유사시 군인신분으로 전환된다. 군사훈련은 북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신성한 의무로 간주된다.

 고등학교 졸업을 1주일 앞둔 1988년 7월 말 우리는 군사 야영소에 입소하였다. 청년근위대 훈련은 7일간 합숙하면서 총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법과 제식훈련, 취사병, 보초병, 등등 모든 것이 군대 체계에 따라 생활한다. 7~8명 단위로 분대, 학급은 소대, 학교 단위는 중대, 전체 야영소는 대대로 편성되었고 생활관도 군대 병실과 꼭 같았다. 바로 첫날에 군복과 생활용품을 받았다.

 면으로 된 흰 잠옷과 누런 군복은 후줄근하게 맞지 않았다. 아침 기상 시간은 5시이고 나팔소리가 울리면 10분 안에 중대 전원이 정렬해 있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늦거나 번호를 불러서 인원이 모자라면 기상훈련을 계속 반복한다. 그리고 밤에는 각 중대 숙소마다 보초병이 있는데 2명씩 조를 지어서 2시간에 한 번씩 교대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군대식으로 한다고 해서 무척 호기심이 나고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반복되는 훈련에 지쳐갔다. 도보 훈련과 경례하는 법, 정보로, 우로 돌아 좌로 돌아 갔. 등 별의별 제식훈련을 다 받았다.

 처음에는 오합지졸 같이 엉망이었는데 햇빛이 쨍쨍한 뜨거운 여름 낮에 같은 훈련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모두 독기가 생겨 절도 있게 할 수가 있었다. 그 외에도 경례하는 법과 상황보고 하는 법 등등 말 그대로 군대 신입병사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훈련소 정문 앞에서 보초근무도 선다. 훈련소에 오는 사람에 따라 “받들어 총!”을 하거나, 외부인원이 오면 “섯! 서지 않으면 쏜다!”를 외친다. 무더위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모기 성화는 더욱더 견딜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수기 훈련도 배운다. 빨간깃발을 들고 수신호를 보내 위기 상황에 아군에게 비상상황시에 헬리콥터, 군함 등에 긴급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군사 훈련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공 격 때 방어”, “방어 때 공격”, “육박전”이었다. 전쟁시 총알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총에 검을 꽂고 적들과 육박전을 벌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총에 검을 꽂으면 길이가 내 키만큼 되는 총을 가지고 육박전 연습을 하는 것이 속으로 웃기고, 같잖기도 했다. 적을 쓰러뜨리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지지 않을까 싶다.

 군사훈련에서 핵심은 사격훈련이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총은 거의 38식 자동 보총이다. 매 사람이 무기 번호가 새겨진 자동 보총을 한 정씩 받으면 그것은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내 총이다. 하루 종일 우리는 엎드려서 목표물 조준 훈련을 한다. 목표물은 100m 고정목표 명중하기, 200m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목표물 명중하기, 300m 거리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목표물 명중하기, 150m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목표물을 명중하기 등등 온갖 훈련을 다 받았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에는 땅바닥이 축축한데 종일 엎드려 있어 배가 아프고 뒤틀렸지만 참고 견뎌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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