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눈동자
단풍은 계절의 신호등
좌회전 노란 잎들이 휘날리고
77년 간 먼지 속을 굴러온 눈동자
빨간 신호등 앞에 선다
안구 위를 섬뜩 스쳐가는 칼끝
핀셋에 끌려 커튼 자락이 벗겨지고
새 유리로 갈아 끼는 요란한 소리의
백내장 수술이 끝난 이튿날
문밖을 나가다가 그 자리서 얼어붙고 만다
빨간 신호등
길 건너 빨간 단풍나무 한 그루
그 신호등이 어찌나 선명한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그 산기슭
산나물 캐러 갔던 다섯 살 적
저만치 그늘 속 붉은 철쭉꽃 앞에서
색깔이 뭔지 알지도 못했던 아이는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색깔을 한 번 더 보여주시고
그 신호등 앞에서 꼼짝없이 설 수 있게 해 주심을.
< 시작 노트 >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은 작년 11월. 단풍이 풍경의 채색을 바꿀 때였다. 수술 다음 날 창 밖으로 내다 본 물체는 우선 거리 사인과 길 건너 서 있는 가로수. 가로수 중에는 빨간 단풍도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전율에 가까운 경이가 엄습했다. 그 색깔과 잎새들의 윤곽이 어떻게나 뚜렷한지 잠시 돌부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색깔의 격렬한 선언이었다. 아니 반란이었다.
어릴 적 처음으로 색깔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던 순간과 판박이었다. 하나님께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수술대에 앉아 있을 때는 누가 시술을 하는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길은 기적을 창조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세월의 때에 쩐 수정체를 바꾸고 나니 어릴 적 맑은 눈으로 보았던 세계가 다시 열리고 덩달아 마음도 맑아지기를 다짐하게 됐다.
백내장 수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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