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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나는 같은 반 친구 L과 함께 내 고향집 역동에 갔습니다. 여름밤이 되어 방안보다는 방밖이 더 시원할 것 같아서 사랑마루로 잠자리를 옮겨서 아버지, L, 나 이렇게 셋이서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당시 나는 미스정이라는 같은 과 2년 후배 여학생에 홀려 어떻게 하든지 이 소녀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L에게 일이 무사하게 잘 되도록 아버님께 말해달라는 부탁도 해두었습니다. 말하자면 뇌물을 쓴 것이지요. 행여나 아버님이 연애결혼에 반대하시면 어떡하나 그야말로 물샐 틈 없는 준비를 해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말 잘하고 붙임성 있는 L은 아버님과 금방 가까워졌는데 L과 아버님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잠이 든 척하고 두사람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L의 주도로 요새는 남녀도 남남처럼 평생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다는 것을 열렬히 주장하였지요. 아버님께서는 L의 화려한 말솜씨에 자기가 밀린다 싶었는지 L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계시다가 L의 열변이 끝나자 “니(너) 다했나?” 하고 확인 질문을 하시더니 “이 사람아, 남녀관계란 니(너의) 말처럼 평생 계속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노 그런데 남자 마음이란 본래 더러운 것이지, 그렇게 깨끗한 것이 못된단 말이여. 처음에 깨끗한 마음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시간이 가면 더러운 심보와 욕심이 발동해서 기어코 여자를 건드리고 싶은 엉큼한 마음이 생기는거여… 내 하나 물어보자. 동렬이 애인이라카는 가(그 아이) 니도 잘 알제? 그 아는 괜찮은 안(아이)가?” 하고 갑자기 내 연인이요 천사, 당시의 미스 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아버지는 나이도 어린 아들친구와 남녀애정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사귄 지가 1년도 채 안 되는, 앞으로 자기 며느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더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지금부터 꼭 57년 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부포동 역동 어느 여름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누워서 이야기 하다가 잠들면 사랑마루는 헐렸다가 다시 들어섰습니다. 아버님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L과 나는 아직도 바다 밖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아버님과 L의 이야기에 나오는 미스정은 나의 본처과 되어 아이 둘을 낳고 우리 부부는 4살박이 소꿉장난 하듯이 서로 킬킬거리며 웃고 지나다가도 별일 아닌 것 가지고 금새 토라지는 생활을 되풀이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13살에 16살이 된 어머니에게 장가를 가셨습니다. 첫날밤에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의 대답이 “나는 이 세상에서 글 읽은 것(공부하는 것)이 제일 싫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님의 고함으로 역동집 기왓장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두 분이 맹렬하게 다투시던 것을 보고 겁이 났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보기 드문 애처가이셨습니다. 아버님은 L에게 자기는 13살에 신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결혼식 당일 만나서 오늘까지 살아왔다면서 신부도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배필을 이루고 살아도 살면 또 정(情)이라는게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 말씀을 따르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정이 새싹 나듯 나고 사랑이 생겨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말도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지요. 서양 사람들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지만 동양에서는 사랑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놓는 것은 어딘지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버니 같이 13살에 배필을 만나 제2차 성(性) 발달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를 낳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쌍고동 울어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가소 잘있소 눈물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씻으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를 마세요

 

 위는 1937년 2월 박영호가 노랫말을 쓰고 김송규(김해송)가 멜로디를 달고 장세정이 취입한 ‘연락선은 떠난다”의 노랫말입니다. ‘아이 울지를 마세요’라는 구절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음반판매가 금지되었답니다.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부두의 이별같이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랑한다는 말에 최후의 진술처럼 술술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임종석에 누운 환자를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척이나 장엄하고 절박한 순간, 이때 방문자가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이 쓰는 말 중에서 사랑이란 말처럼 우리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언제, 어디서나 들어보고 싶어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역동 고가(古家) 사랑마루에 누워서 세 사람이 이야기하다가 잠들던 그 청순 무구한 여름밤은 내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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