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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5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내가 캐나다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여권을 갱신해서 근무하던 대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권 연장 관계로 밴쿠버총영사관에 들렀습니다. 담당 영사의 말이 여권연장은 문제 없는데 한국에 가서 군대에서 오라고 하면 즉시 가겠다는 사인을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군대를 마치지 않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군대에 가려고 벼라별 수단을 다 썼으나 신체검사에 불합격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던 내 고등학교, 대학동기가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자원하고 나서길래 그의 힘으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그 친구는 월급도 많고 안정적인 직장이었으나 양심있는 사람은 ‘이런데 근무할 곳이 못된다’면서 자진사퇴를 하고 떠났습니다).

 나는 영사의 요청에 사인하기를 거부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우는 아이는 물론, 웃던 어른도 뚝 그친다는 그 무서운 박정희 시절이 아닙니까? 나는 속으로 덜컥 겁이 나서  돌아오자마자 아무데나 밥을 먹을 수 있는 데면 취직을 해야겠다 싶어 사방에 원서를 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걸려든 것이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륙 깊숙이 인구 2만명의 도시에 있는 노트르담(Notre Dame) 대학교였습니다. 그 대학은 너무 벽지라 근무하기 시작한 날부터 그곳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에 잡혀가지 않으려면 캐나다 시민권을 받아야겠다 싶어 부랴부랴 시민권을 신청했습니다.

 내가 오늘 캐나다 시민이 될 것이니 와서 축하해 달라며 그 대학 수학과 교수 F를 꼬드겨 함께 시험장에 갔습니다. 운전면허를 받을 때처럼 ‘문제집’이 있는데 그것만 읽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집’에는 ‘캐나다의 수도는?” “캐나다는 몇 주로 구성되어 있나?” 등 ‘문제집’을 읽지 않아도 다 아는 것들이었습니다.

 나의 시험관 판사는 은퇴가 가까워오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갔지요. 판사는 한참 서류를 뒤적이더니 “직업이 뭐냐?”하고 퉁명스럽게 묻기에 ‘대학 선생’이라고 대답했더니 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느 대학이냐?”고 묻기에 “노트르담 대학교 사범대학”이라고 했더니 뭐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얼굴까지 찡그리더니 “너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렇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괜찮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더니 질문 하나 하겠다면서 굉장히 어려운 질문, 즉 캐나다 건국에 대해서 묻는 것 같은데 뭘 물었는지 재생도 못할만큼 어려워서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질문들이 가관이었습니다. “뉴펀들랜드주(New Foundland)는 무엇으로 유명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지리시간에 세계 3대어장(뉴펀들랜드 근해, 라브라도 근해)에 대해서 배운 생각이 나서 “물고기”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른 것을 보면 그때 내가 무척 긴장했던 모양입니다.

 판사는 한가지 더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능”이라고 대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데서 농담하다 쫓겨나면 큰일난다 싶어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판사의 말이 “산림”이라더군요. 다음에는 “퀸살럿 아이랜드에는 무엇이 유명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은퇴하면 이 판사는 관광회사 안내원으로 일할 계획인지 이런 질문만 해댔습니다. 나는 “감자”라고 외쳤더니 판사는 유명한 것을 하나더 요구했습니다. 몰라서 주저주저하고 있으려니 “여자”가 정답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있나. 이런 녀석이 시험관이라고…”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렇게 몇몇 “유명 시리즈”를 거쳐 나는 “다음에 다시 오라”는 낙방통지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1차 시험은 비극으로 끝나고 2차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말이 그 판사는 캐나다 역사에는 자기가 제일의 권위로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역사를 파고들었습니다. 그때는 내 정신력이나 기억력은 펄펄 날던 시절, 그까짓 시골 판사 녀석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랴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재시험 첫 질문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미국 왕당파가 패배하여 캐나다로 대거 망명할 때의 문제였습니다. “17__년(잊어버렸습니다) 7월13일 36,526명의 왕당파들이 미국에서 온타리오주로 와서…” 내가 36,526명인지 아닌지 알게 뭡니까? 내 추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판사가 아무리 역사의 권위라 해도 국경을 넘어온 사람 숫자까지야 알겠는가? 나는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는 숫자를 마구 지껄여댔습니다. 그랬더니 이 판사는 입을 딱 벌린채 나를 더없이 거룩한 존재로 보더니 “합격” 하는 소리를 내지르지 않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네 머리가 판사 해먹기는 충분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1700년대의 교통수단으로 3만6천이나 되는 망명자들이 절차를 밟아 하루에 캐나다에 입국할 수 있는지 여부만 생각해도 내 대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텐데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야, 네가 아무리 역사에는 권위라 까불어도 한국에서 오신 이동렬 박사님을 따르기는 멀었다” 하는 비웃음이 나와  속으로 킬킬대고 웃었습니다.

 요새 세상 풍조에 비추어 말한다면 이 판사는 분명 인종차별로 고발당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이 판사야말로 다른 종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행동을 보였습니다. 편견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고, 차별은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직업이 뭐냐길래” 내가 “사범대학 선생”이라고 했을 때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네까짓게 감히 우리나라 선생님들을 양성한다고?”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너같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도 되느냐?”고 묻는 것은 법규에도 없는 제멋대로 심사기준을 세웠습니다. “뉴펀들랜드와 퀸살럿 아일랜드에 뭐가 유명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산림”과 “여자”라는 말에는 실소와 분노를 금치못할 엉터리 질문이었습니다.

 이 판사는 외딴 도시 넬슨 구석에서 “내가 이래뵈도 역사에는 권위야” 하는 자만심만 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5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시골판사를 골려먹던 그 청춘도, 그 자랑스럽던 내 기억력도 이제는 다 허물어지고 꾀죄죄한 첨지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생활을 돌이켜 볼 때면 그 시민권 시험을 주관하던 판사도 가끔 생각납니다.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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